길
강지영
스물여섯 들어서면서 나에게도 차가 생겼다.
시속 30km에도 놀라가며 저속 운행으로 도로에 혼잡을 더하기는 했지만, 차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의기양양했다. 차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감각을 완전히 익히기 전까지는 저속 운행을 고집하며 조심해서 다녔는데도 운전대에만 앉으면 알고 있다고 자신했던 길도 생소하기만 했다.
운전대를 놓고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과 아무나 붙들고 주차를 부탁했던 시간이 추억이 되어 웃음을 더할 즈음 용기 내어 친구와 첫 장거리 운전에 나섰다. 함께 대원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요즘 그 흔하다는 네비게이션도 없이 당당하게 지리산으로 향했다. 한 시간 남짓하면 도착한다던 대원사는 아무리 가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지리산 인근 마을들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지나가는 차들이 많지 않아서 없던 길을 내가며 유턴도 하고, 인심 좋은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세 시간쯤 달리다가 눈앞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대원사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몇 갑절은 더 걸려서 돌아온 길이지만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은 길보다 더 값지게 느껴졌던 것은 그런 고생이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아직도 내 차에 네비게이션 자리는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버린 빨리빨리 세상의 상징물인 것만 같아, 준다는 사람이 있는데도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게 된다. 네비게이션 덕에 통로의 기능만 남겨진 쓸쓸해진 길에 나 한사람 정도는 길이 선사하는 풍경과 물어물어 길 찾아가던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며 살고 싶은 고집 같은 것이다.
지령에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운전 길처럼 인생도 운치를 잃고 무미건조해졌다.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길에 들어 실패도 경험해 보며 자신이 선택한 길이 진정 자신의 것이 되는 과정을 겪어가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들의 선택에 든 기회비용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도 모른 채 모두 똑 같은 꿈을 꾸며 걸어가는 모습이 왠지 씁쓸하다. 어떤 길에 들어서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한 번 택한 길이 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길 중에서 하나의 길을 택한 것일 뿐, 그 길속에는 또 다른 길이 무수히 갈래 나있다. 실패해서 지금 서 있는 그 자리로도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경제적인 안정, 뒤처지면 끝이라는 조바심으로 모두들 타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길은 길로 통하게 되어 있으며, 길을 잃어 한 번 가본 길을 다시 가게 되더라도 그 길은 전에 딛었던 그 길과는 또 다른 길이 된다는 것을. 당장 눈앞에 놓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조바심이 날 때는 제 소리에 더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자신이 그리는 미래의 그림에 필요한 길을 택한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길을 낼 수 있을 힘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사방에 길이 있고 오늘도 사람들은 쉼 없이 길을 걷는다. 그런데, 정작 길 주인은 없어 보인다. Cormac McCarthy의 소설 <The Road>에서 두 부자는 빛 한 점 없는 잿빛 길을 끊임없이 걷는다. 당장 이 길에 들어서면 목숨이 위험해 질지 모른다 해도 그들은 살아있는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믿음으로 서로가 의지가 되어 계속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왔던 길은 금방이라도 목숨을 앗아갈듯 했지만 그들이 선택해 온 길이 흔적이 되어 다시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에, 다들 이미 나 있는 길만을 고집한다. 그 길을 선택하고서도 길이 너무 좁다고, 길이 너무 한길로만 나 있다고 불평한다. 모두가 가는 길이 자신에게도 맞는 길일까. 한 번 선택해 버린 길 위에서 더 이상의 선택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느 길에 닿았다 하더라도 거기서부터 길은 다시 난다. 겁만 잔뜩 집어 먹고 자신의 의지가 빠진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길을 가면 자신이 내는 새 길은 가질 수는 없다. 이미 나 있는 길을 택하건 Robert Frost의 시에서처럼 새로운 길을 내면서 가건, 끊임없이 걸으며 길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그래서 그 길이 어느 날 어떤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현재의 선택에 신중을 기하고 최선을 다해 길을 떠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심사평>
백일장 응시작품을 심사위원 7명이 정독한 다음에 토의를 거쳐 당선작을 선정했다
당선작품은 참신성의 부족과 주제의 일관성에 있어서 흠결이 지적되기도 해서
논의를 거듭한 긑에 간신히 전원일치의 합의로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수필의 문장은 작자의 삶을 반영하므로 개성사유 감성이 적절히 드러나야 한다.
응시자들이 백일장 제재에 국한되어 자신의 삶과 인생의 반영이 충분히 유도되지 않은 점이 있었다
당선작품이 완벽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잠재력과 문잔의 수련도가 보인다는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있었음을
부기해둔다.
심사위원 : 정목일 신일수 허학수 배정인 박동선 서현복 문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