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시)
이십년된 옛 사진첩에서 한쪽 발을
절뚝이며 그가 걸어 나온다
고장난 다리 하나로, 춤으로 리듬을 만들며
절뚝절뚝 걸어 나온다
등받이가 없는 간이역 의자에
그가 앉아 희미하게 웃고 있다
제 울음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부러진 의자에 앉아 있다
빈 햇살과 놀고 있는 흑백사진 속
아버지를 넘겼다, 나를 넘겼다
가을이 달을 반쯤 베어 먹고, 가을이
열매들을 씹어 삼켰다 오븐을
닦다가 치약 뚜껑을 열다가 벤자민에
물을 주다가 나는 문득 사진 첩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낡은 구두는 끈이 풀어져 자꾸만 덜거덕거린다
사진첩 속에서 한쪽이 부러진 아버지의
의자에 앉았다 나오고
아직 과부가 되지 않았던 젊은 엄마와
만개한 벚꽃 아래서 친구가 되었다 나온다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
이십년 빛바랜 사진첩을 넘긴다
아버지를 넘기고 나를 넘긴다
하루를 넘기는 것은 사진첩을 넘기는 일이다.
김현숙금산면 장사리
사진첩.hwp <- 저자의 수정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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