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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소식

대종사님 자녀분 결혼사진 보셨나요

작성자쭈쭈|작성시간13.12.17|조회수503 목록 댓글 1

다음 카페 <원불교 역사의 광장에>  숭산님과 겸타원님의 일생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맛보기를 보여 주니 왕림하시어 초기교단의 법정을 흠뻑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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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타원 취재기 2/

부산 전 교당이 합력하여 추진한 혼사

 

대종사 맏며느리 임영전 새댁 

 

부산 3개 교당 교무가 합심하여 혼사 추진

그 뒤 총부조실에서 장적조더러 다녀가란 연락이 있었고, 갔다와서는 사진을 보내라며 일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영전은 파마머리에 양장 차림의 사진을 내주었더니, 부산의 전 교무가 합세하여 다시 사진을 박자고 서둘렀다. 부산 전 교무라봤자 초량교당 교감 조전권, 남부민교당 교무 조일관, 당리교당 교무 박영권 세 교무였다.

세 교무가 영전의 머리를 곱게 다듬고 검정치마 저고리를 입혀 시내 사진관에 동행하였다. 작은 체구에 조신스럽고 내성적이고 매우 겸손한 순종형의 조선처녀, 이런 점이 임영전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임영전의 결혼은 장적조를 비롯하여 세 교무, 그리고 부산지방 전 회원의 적극 성원과 전폭적인 지지 아래 혼사가 추진되었다.

구양근은 딸의 결혼을 적극 찬성했지만 임청암은 ‘걸레 한번 빨게 한 일 없는 아이를 대중이 많은 곳으로 보낼 수 없다’며 반대했다.

혼담은 결혼식 15일을 남기고 결정이 되었다. 영전이 결혼하겠다고 하니 임청암은 허락했다. 딸의 혼사가 결정되면서 임청암은 교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박광전-임영전 결혼식. 총부 대각전 1943. 1.7

입던 옷 빨아입고 시집오너라

양가 혼사의 전권 대사로 총부에서 이동진화가 내려왔다. 신랑 신부간에 사진이 교환되고 사주단자 대신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 법문이 전달되었고, 또 조실로부터 당부가 있었다.

“결혼 준비 따로 준비할 것 없다. 입던 옷 빨아 입고 오너라”

종사주의 말을 받들어 완고하고 엄격한 임청암은 가족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준비할 거 없다. 옷만 빨아 입고 가거라.”

종사주의 장남이요 총부에서 최고 학벌인 동양대 출학과 출신 박광전이 이화여전 다니는 부산 처녀와 결혼한다고 하자 총부에는 큰 화제가 되었다.

종사님은 총부 구내에 거주하는 권장부 권동화와 이영훈을 불러놓고 미리 경계의 말을 했다.

“영전이 오면 너희들이 샘날 만큼 이뻐 할 것이다. 어쩔레?”

경성지부로 임사를 맡아 가게 된 학원생 이성신은 열흘 뒤에 결혼식을 보고 가겠다고 종사님께 말씀 드렸다.

종사주는 벽장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신부의 사진이었다.

“결혼식이 별 거가니? 이 사진 광전이 낯바닥에 대봐라.”

신랑 신부가 얼굴 한번 본 일없이 결혼 날짜를 잡았다. 임달렴이 20살이 되던 1월6일 가족들과 함께 부산을 출발해 대전역을 경유, 익산으로 왔다. 익산역에서 택시를 불러타고 총부에 왔다.

임달렴이 종사주께 큰 절을 올리자 “그래 너 왔냐. 올라온다고 애썼다”고 반기면서 누른색 봉투를 하나 건넸다. 법명증이었다.

“내가 네 이름을 바꿨다. 앞으로 이 이름을 써라. 임영전, 얼마나 좋냐. 네 신랑이 박광전이니까, 둘 이름을 합치면 ‘영광’이네. 아, 얼마나 좋냐”

처음 법명이 종숙鍾淑인데 영전靈田으로 바꿨다.

원기28년 1월7일, 대각전에서 이화여전 보육과 재학중인 19세의 신부 임영전 양과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를 나와 총부 교무부에 재임중인 28세의 신랑 박광전 군의 결혼식이 정산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황정신행이 지어준 드레스와 하얀 면사포를 쓰고 결혼 반주곡에 맞춰 신부가 입장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종사주가

“허, 우리 영전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더라”며 기뻐했다

부산지방 불법연구회원들은 경사가 났다.

남부민 임씨 집 둘째 딸이 부처님의 며느리로 시집갔다는 사실은

불심 장한 부산지방에서는 굉장한 화젯거리요 대단한 경사였다.

 

송도성-박길선 결혼기념 사진. 1929년 12.21 영춘헌(현 구조실)에서 결혼하고 읍내 사진관에 가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상대의 입장 봐가며 결혼식 준비하라

이 일을 가지고 시비하는 사람도 있었다. 큰딸(길선) 결혼식은 아무 준비 없이 찬물을 떠놓고 작은 강당(현 구조실)에서 고구마 공양으로 끝났는데 큰아들 결혼식은 성대하게 올렸다는 것이다.

“선생님, 큰딸 결혼은 간소하게 하더니 큰아드님 결혼식은 어찌하여 성대하게 합니까? 아들 딸 차별하는 것 아닙니까?”

“길선이와 도성이는 두 집안이 모두 내 제자이니 간소하게 해도 잘 이해한다. 그러나 광전이는 부산지방 재가회원하고 결혼했다. 사돈집 입장도 생각해야지. 내 본위로만 할 수 있나”

“그러시면 어째서 종사님께서는 정남 정녀 칭찬을 하면서 종사님 자녀는 결혼을 시키시나요?”

“정남 정녀가 좋은 점도 있지마는 만일 내 자녀를 성혼시키지 않으면 사회에서 구설수가 있을 것이다. 내 자녀를 결혼시킴으로 해서 결혼의 자유를 법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시키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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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창훈 | 작성시간 13.12.18 감사합니다. 교무님 덕분에 조부모님 이야기를 보고 그분들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전 외가집에 봤던 사진들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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