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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6]고락에 대한 법문-교무님 설법

작성자순명부처|작성시간04.04.11|조회수118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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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원기 89년 4월 6일 화요공부방은 "고락에 대한 법문"으로 지난 번 이제선 교우님 강연에 이어

교무님께서 마무리 정리를 해 주시겠습니다.

 

 

어느 새 하얀 여름 법복을 입고 나오신 김제원 교무님.

오늘 따라 더 미남으로(?) 보이시네요*^^*

 

 

# 부처님은 세상을 죄고의 바다 즉 고해(苦海)로 보셨지만,

대종사님은 인생은 고락이라고 하셨다~!!

 

육도윤회에 관하여

(1) 육도

천상(天上) : 고통은 없고 락만 있는 자리

인도(人道) : 사람은 인도이다.

    대도의 길 : 고통이 없이 낙만 있는 길이 대도의 길이 아니다. 도와 함께 하는 낙이 있는 것이 바로 대도이다.

수라(蒐羅) : 몸을 못받는 보. 자살한 사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수라보를 받는다.

            수행자들도 수라보가 많다.

            수행을 하면서 수행의 맛을 본 사람들은, 계속 수행만 하고 싶고, 일을 하기 싫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네가 몸을 받기 싫다고?" 하면서 몸을 안 주어버린다.

아귀(餓鬼) : 귀신

축생(畜生) : 짐승

지옥(地獄) : 무엇이 지옥보인가? 물과 햇볕과 공기의 은혜를 잘 받지 못하는 생명들을 지옥이라 한다.

            기생충, 지렁이 같은 생명들.

 

(2) 사생 : 태란습화(胎卵濕化)

 

이렇게 육도사생으로 변화해간다.

 

# 영혼의 숫자가 몇개인가? 영혼의 숫자는 변화가 없다. 명성이 몸 안에 있는 영혼의 숫자도 엄청나다.

그래서 금강경에 "항하사 모래수". "무량수"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 천도법문에는 "사람의 몸을 받아"라는 표현이 나온다. 왜 사람의 몸을 받아야 할까?

천상계는 복진타락이라, 복을 짓지는 못하고 까먹는 자리가 된다.

그러나 사람은 복도 무한히 지을 수 있고, 죄를 무한히 지을 수 있는 자리이다.

따라서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 원불교 계문에서  "사육을 먹지 말라" 하는 것은, 짐승들도 개개의 한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나도 육도 중 어느 자리라도 갈 수 있다. 나나 내 가족들이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육도사생을 모르면서 원불교 공부를 했다 하신 분이 계신다면, 공부를 너무 못한 것이다.

원불교 법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신다 하는 말씀이 되겠다.

 

인과란, 복을 많이 지었으면 진급, 죄를 지었으면 강급한다는 것.

내가 다음 생에 어디로 갈지 모른다.

따라서 삼난(三難)법문이 나왔다.

이 세상에서 세가지 어려운 것이있으니,

    ① 사람 몸 받기 어렵고

    ② 불법 듣기 어렵고

    ③ 불법만나 깨치기 어렵다.

 

 

 

 

 

◈ 4고와 8고

4고 : 생로병사

8고 : 생로병사 +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

 

(1) 4고 : 생로병사

생로병사가 한번에 그친다는 사람은 단생관을 가진 사람이다.

단생관을 가진 사람의 공통점은 쾌락주의에 빠져서 오욕락만을 누리려 한다는 것이다. 죽으면 그만이니, 이 생에 최대한 건강하고, 즐겁게 잘먹고. 잘 놀고, 취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취하고 다니는 것이 목표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한 것과, 오직 이것만이 목표가 되는 것은 다르다.

반면 원불교는 영생관이다. 영생관에서는 생로병사생로병사... 이렇게 계속 반복한다.

정전에서는 생로병사를 춘하추동에 견주어서 말씀해 주셨다.

봄에 새싹이 파릇파릇 나오고, 여름에 자라서 가을에 열매맺는 것처럼,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 변하는 것을 주관한다.

그래서 생로병사는 짧게는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 같고, 길게는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 같다.

 

단생관은 생사를 생사로 보는 생사관이다.

영생관은 생사를 변화로 보는 변화관이요, 영생관이다.

 

4고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병고의 고통이라고 한다.

현상적으로 가장 큰 고통은 육신의 병이다. 그리고 이 병은 의사선생님이 고쳐주신다.

그런데 육신의 병보다 더 큰 고통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부자유다.

부자유의 원인은 부정당한 행이다.

                    부정당한 행-> 부자유(구속)

 

(2) 8고 중 작용적 고

애별리고(愛別離苦) :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여기서 애별리고의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 한번 손들어 보라. 거의 없다.

    이 고통이 어디서 오나. 한 생각이 때문이다. 한생각 쉽게 생각했다가 온다.

원증회고(怨憎會苦) :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③ 구부득고(求不得苦) : 구하는 데 안 구해지는 고통

    (예) 예를 한번 들어보자.

    답- 시험불합격. 명예욕이 안채워질 때.

       교당이 이사를 가야 하는데(웃음) 마음대로 안됨.(웃음)

    맞다. 나도 그 문제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④ 오음성고(五陰盛苦) : 오음이 왕성한 고 (육신이 왕성해짐으로써 색에 끌려서 괴로움)

도서관에 앉아있는데 앞에 예쁜 여자가 앉았을 때 심신이 일어난다.

그런데 고통만 있느냐. 낙도 있다.

 

삼락 -인간락 천상락 극락

 

    인간락=유형의 낙    

    천상락=무형의 낙

    극락=유무를 초월한 낙

 

 

 

 

 

 

① 인간락 = 오욕락 (다섯가지 욕심) : 재(財) 색(色) 명리(名利) 식(食) 수

식욕(食慾)은 욕심 중에 하근한 욕심 중의 하나이다.

 

② 천상락 = 무형의 락

이것을 알면 재 색 명리 식 수의 즐거움를 더 넘어서는 즐거움이 된다.

여러분은 염불 좌선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정도인가. 나는 이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염불과 좌선을 하여 진경에 든 그 맛을 하면 뇌에서 알파파가 나온다고도 하고,

아편보다도 더 좋다고 한다.

사선락(四禪樂)에 대해 - 다음에 설명해 주겠다.

③ 극락(極樂) = 불보살의 낙

수도인의 참 락. 고와 낙을 자유하는 자리.

이 자리에는 앞에 "무상(無上)"을 붙여서 "무상(無上)극락(極樂)"이라고도 한다.

무상이 무엇인가. 반야심경에는 : 시무상주 시무등등주(1등도 없는. 최고등도 없는 주문) 라는 말이 나온다.

무상극락이란, 위도 없고 최고등도 없는 극락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고를 피하고 낙만 맞자는 것이 아니라,

극락에서 고와 낙을 버리지 않고 수용하며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고통을 받는 단계 3가지.

인고(忍苦) : 고통을 인내함.인과 모름, 부정.

② 안고(安苦) : 달게 받는다. 인과를 안다.

③ 락고(樂苦) : 즐겁게 받는다. 인과를 초월.

 

고락의 법문을 듣고 젊은 사람은 감동이 덜하다. 오히려 나이든 사람들이 절실하고, 공부하기에 재미는 있다.

그런데 사실 공부할 사람은 젊은 사람이고. 나이든 사람은 이제 확인만 할 뿐이다.

 

고통을 받는 단계란, 내가 지은 죄업에 대한 고통을  어떻게 받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된다.

"아이 고통스럽다"하고 받기 싫어하며 받을 것이냐,

"그래 내가 지은 것이니 빨리 받아버리자."하고 편안하게 받을것이냐.

고통을 받으며 "아이 고통스럽다"하고 원망심이 나는 것은 인과에 대한 부정이 된다.

 

대산종사님은

"인과는 여수(與受)이니 감수(甘受)하고 종은(種恩)하라."하셨다.

감수-달게 받는 이유 : 내가 지은 복이므로,

종은하라 : 종은하기 어렵다.

 

 

◈ 고락에 관하여

저번주에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에 고락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인과

 

고락

 

과거

원인에 의한 결과

우연한 고락

스스로 원인을 모르므로

우연이라 생각

불구, 천벌, 자신의 환경 등

지어서 받는 고락

원인을 아는 고락

빚 보증, 시험에 낙방

현재

가치에 의한 결과

정당한 고

낙으로 변함

성불하기 위한 수도(좌선),

제중하기 위한 이타.

정당한 낙

영원한 낙

공부잘하는 사람이

 계속 공부를 잘하는 경우

부정당한 고

영원한 고

자학,범법, 범계,

부정당한 낙

고로 변함

시험 전 잡기 등

미래

원인에 의한 고락

변하는 고

 

 

변하는 락

 

 

영원한 고

 

자신의 장애에 대해 계속 원망생활. 

영원한 락

 

복이 많은 사람이

 

 

(1) 고락은 주관적이다.

아까 좌선할 때 다리가 아팠는가 아니면 넉넉하고 편안했는가.

어떤 사람은 좌선할 때 괴로운 고가 되나, 나는 좌선할 때 이보다 더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좌선이 괴로운 사람도, 물론 현재에는 누워 자는 것보다야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끝내는 낙으로 변할 것이다.

 

(2) 보통사람은 주위 환경이 좋으면 복을 까먹기만 하기 쉽다.

보통 사람은 주위 환경이 좋으면 까먹느라 바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말 복족족 혜족족인데도 더 복짓느라 정신이 없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3) 오는 낙 다 받지 말라.

대종사님 법문에 "낙 다 받지 말라." 하신 말씀이 있다. 낙 다 받지 말라. 다시 그 낙을 영원한 낙으로 바꾸라.

내게 오는 낙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 이타적 봉공의 삶을 산다면, 지속적 영원한 낙으로 나게 되어 있다.

부산에 갔더니 어떤 분이 대종사님께 이불을 한 채 지어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대종사님은 그것을 다 받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고 한다.

복을 아주 많이 지으시고 구세성자로 오신 대종사님조차도 오는 복 다 받지 않으셨다.

우리도 복이 오면 다시 또 투자의 길로 가야 할 것.

 

(4) 아무리 복을 많이 받은 사람도, 죄를 많이 받은 사람도 인과의 이치는 그대로 적용된다.

복은 복대로 죄는 죄대로이다. 그래서 고락이 상반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아무리 못된 사람도 누구 좀 도와주기도 하지 않는가. 그럴 때 복은 복대로 받는다.

때로는 아주 복이 많고, 지금도 복을 짓고 있는 사람도 어떤 작은 일에서 걸릴 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많이 지었으나, 그 과정에서 죄도 지었으므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성자인 대종사님도 해수병으로 고생하시지 않았는가.

정산종사님은 암으로 고생하셨다.

대산종사님도 몸이 아주 좋지 않아 죽을 뻔하시기도 했다. 왜 그러셨겠는가.

그 내용이 인과품이 나온다. 어떤 분이 대종사님께

"대종사님은 세세생생 다생겁래를 서원을 세우시고 오신 부처님이라 큰 죄를 짓지 아니하셨을 것인데

천식과 일제의 억압이라는 고통을 어떻게 당하시게 되셨습니까."

 

그러자 대종사님이,

"내가 인과의 이치를 알고서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런데 다생겁래로 중생을 제도하면서 부지중 억압하였는가 하노라."

-> 정당한 일이라도 억압하였다면 인과가 온다!

훈장선생님이 "너를 위해 때렸으므로 " 맞은 아이가 아파한 만큼의 인과가 오지 않겠는가. 분명히 온다.

그러나 고통만 오겠느냐. 아이를 가르쳤으므로 복도 온다. 고락이 함께 오는 것이다.

 

 

(5) 인과가 무서워 정당한 일을 못해서는 안된다.

보통 사람은 고통이 싫으니 고통이 되는 것은 일체 피한다.

그런데 성자들은 고통을 받을 줄 알면서도 정당하다면 행하신다.

 

그래서 정산종사님은

"인과가 무서워 정당한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과를 모르니만 못하다."하신 것이다.

 

내가 원불교 학과에 다닐 적에 어떤 동기가 회화 시간에 말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더니 대답하기를, "인과품에 보니  말한번 한것, 마음한번 먹은 것도 허공법계에 스민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하였다. 

법문 공부를 잘못하면 웃겨버린다.

 

회화시간에는 말을 하는 것, 자유로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주이다.

그런데 허공법계에 심어지기 때문에? 인과가 무서워서?

말을 안하는 것은 공부를 잘못한 것이다.

 

인과를 알아서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지" 하고 싸늘히 미소짓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과 알아서 보은하자는 것이다.

인과가 사랑과 은혜이다.

저 고통 받는 사람들을 통쾌하게 볼 것이냐. 사랑과 은혜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정당한 고락으로-정당한 락뿐만이 아니라

# 뭐하자는 것이냐.

-행주 좌와 어묵 동정간에 온전한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다.

-동정간 삼학공부하자는 것.

"무궁한 세월을 한결같이 지내자는 말씀."

 

오늘 소개해드리고 싶은 법문이 있습니다.

 

여래(如來)의 삼대원.

여래의 삼대원은 만능(萬能), 만지(萬智).만덕(萬德)이다.

그런데 이것을 위해서는 만수(닦고 닦고 또 닦아야) 만연(갈고 갈고 또 연마해야지 한다) 만행(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삼학.

① 만수(萬修) -> 만능(萬能)

② 만연(萬硏) -> 만지(萬智)

③ 만행(萬行) -> 만덕(萬德)

 

 

고락의 원인

①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

-고락의 근원(뿌리)는 무엇인가? : 인과를 모르는 것.

 

 

내가 짓는 것                   (나의 한마음 한생각)            

3독심->악->죄->고
3학->선->복->락

 

(1) 삼학->선->복->락

마음이 착하기만 하면 안된다.

현실속에서 그런 사람을 많이 본다. 저 사람 참 좋은데 가난하고 고통받는다, 해서 보면 그 마음속에 삼학이 빠졌다.

아무리 사람좋아도 삼학이 없으면, 그 사람은 낙보다는 고통의 길로 가면서 괴롭다 괴롭다 한다.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그래서 내가 내가 대종사님 법으로 안내해주면, 말을 안듣고 고집부리고 나쁜 쪽으로 간다.

 

(2) 삼독심->악->죄->고

삼독심(탐진치)을 내면 고로 간다.

탐은 과한 욕심, 진은 성내는 마음, 치는 어리석음.

치 곤란-자기가 치인줄 모른다.

(예) 젊은 현대인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데,

미래에 대한 준비없이

여기저기 놀러만 다니고 마음만 착한 사람은 낙을 맞아올 수 없다.

 

 

 

 

고와 락의 주체는 무엇인가? 바로 나이다. 나의 한마음.

한 경계 속에서 내가 한마음 챙겼나 못챙겼나 하는 것이 문제이다..

한 생각.쉽게 하여 둘이 좋아해서 애별리고 당한다.

 

② 가령 안다 할지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요

    -사실은 제대로 모른 연고라 볼 수 있다. 세번째까지 연결.

 

③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행자지(自行自止)로 육신과 정신을 아무 생각없이 양성하여 철석같이 굳은 연고요.

자행자지 : 스스로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한다.

공부방도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직장도? 숙제도? 운동도? 그래서야 되겠는가.

나에게 선을 보여달라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선을 보여주겠는가.

그 기준은 그 사람이 얼마나 지속되게 나가느냐. 하는것이다.

정성이 부족하면 어디를 가나 환영과 신용과 믿음을 받기가 어렵다.

친구도 반갑다 해도, 정성없는 사람에게는 자기 여동생 주라 하면 주지 않는다.

 

④ 정신과 육신을 법으로 질박아서 나쁜 습관을 제거하고 정당한 법으로 단련하여 기질변화가 분명히 되기까지 공부를 완전히 아니한 연고요,

이런 경우 많지 않은가.

학생이 "시험공부해야 하는데.." 하면서 어느새 게임을 하러 가는 것.

대종사님은 따라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내놓으신 것이다. 신앙생활은 기질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신앙을 통해서,

- 말을 함부로 하던 사람이 악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 방청소 안하던 사람이 깨끗하게 방청소도 하게 되고,

- 잠도 자기 멋대로 하다가 일과를 지켜나간다.

- 부모에게 말도 함부로 하다가 가끔씩 효도도 한다.

 

신앙을 통해 사은의 은혜 (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은혜 속에 사는구나) 하는 것을 알면 달라진다.

철없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전부 자기 꼬붕인줄로 안다. 이런 사람은 가는 데마다 손님이다.

직장가서도 교당가서도 "누가 나 안 챙겨주나."하는 생각 뿐이다.

 

그러나 주인인 사람은 보이는 것이 많다.

집안 경제도 보이고, 교당 와서도 교무님 심경과 단원들 심경도 보인다.

 

온갖 대접만 받고 다니는 사람은 아직 기질변화가 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사실적 도덕 훈련을 위해서 기질 변화까지 이어지는 것.

이것이 유무념으로 잡아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까지 어떻게 하겠다고 유무념 잡지 않으면 후회와 다짐 뿐.

그러려면 그 고통이 쓰라린 고통과 아픔.

여러분, 누가 여러분께 예쁘다고 박수쳐줍니까.

엄마를 왜 좋아하나. 엄마가 온갖 고생하니까 "우리 엄마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부모의 은혜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갚을까 생각못하고 대접받을 생각만 해서는 안되겠다.

 

응용하는 가운데 수고 없이 속히 하고자 함이니라.
 

욕속심 문제-욕속심 있는 사람은 도가의 모리배다~!!

영어 하나만 공부하려 해도 몇년이 걸리는데.

정성없이 속히 이루고자 한다는 것은, 빨리 이루려다 금방 작파해 버린다는 것과 같다.

 

 

이 법을 만나서 어떤 사람을 보면

- 서서히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 사정없이 올라가다 어느 순간 떨어지는 사람도있고,

- 만나서 있는지 없는지 하다가 언제 봉게 없더만.*^^*

 

(교무님 너무 찔려요*^^*)

(교무님 제발 제 얘기좀 하지 마세요*^^*)

모두 함께 웃는 즐거운 공부방입니다.

 

 

 

 

◈ 진리의 공식! 대소유무~!!

 

대종사님은 진리의 공식을 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대소유무다.

 

① 고락의 돈공 : 우리 원래 자리에는 고락이 없다.

② 현실세계에서의 고락 : 누구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고와 락이 분명히 있다.

③ 유무 : 있어졌다 없어졌다 변화한다.

 

고락의 돈공

수양

도통

견성

해탈

여유

현실의 고락

연구

영통

양성

대각

심사(深思)

고락의 변화

유무

취사

법통

(취사력용단력)

솔성

중정

음덕(陰德)

 

삼학은 사은사요와 결부되어 나왔을 때 강한 창조력과 추진력이 있다.

(예) 연구력도-사은에 보은하기 위한 연구. 사요의 실천을 위한 연구가, 훨씬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

 

 

# 질문과 답변

 

Q. 손명균 : 극락은 절대적인 것인가?

A. 교무님 : 절대적인 것이다,

Q. 손명균 : 그런데 분명히 극락에 있는 사람도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나.

A. 교무님 : 절대는 상대를 포함한 것이다. 상대를 무시한 절대는 있을 수 없다.

        고락을 떠난 자리에서 수용 고락을 초월하면서 수용한 것이 바로 극락이다.

 

Q. 김상진 : 애별리고-그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A. 교무님 : 애별리고는 만난 이상 헤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게 고통이다. 무척 괴롭다.

        이 자리를 놓고 연구만 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자성을 알지 못하고 내 마음에서 쉽게 수용하고 마음에 남는 게 없어지느냐. 그렇지 않다.

 

◈ 삼학 병진 공부법

수양 연구 취사가 같이 돌아가야 한다. 대종사님은 "이것이 가장 빠른 공부길이다."라고 하셨다.

삼학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현재 아무리 착하든, 복이 있든

미래에 어떻게 되느냐에 차이가 나타난다.

삼학은 실행이다.-내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어떻게 실행을 했나. 실행 위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한주일동안 산 것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한주일간 반성을 해 보니, 잘산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일주일간의 죄복을 결산해보라.

 

◈ 솔성은 소 자리에서, 인사는 대 자리에서

솔성의 도=소

인사는 덕=대-대타

보통 중생은 자기가 못된 짓한 것은 덕으로써 "그럴만 했어" 하고 감싸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소 자리에서 도를 적용해 비판한다.

그러나 반대로 솔성은 소 자리에서, 인사는 대 자리에서 덕을 발휘하라 하셨다.

 

◈ 수행과 보은에 바쁜 일생

어떤 사람이 대산종사님께 "내가 앞으로 일생동안 뭘 해야할지 걱정이다."하고 여쭈었더니
대산종사님이 "나는 그놈이 걱정이다."

"재가를 하든 출가를 하든. 내가 내 삼학수행에도 삼학공부, 사은보은, 사요실천이 바쁜데 뭘할런지 걱정이라니...."하셨다.

얼마나 바쁜 인생인가.

 

Q. 서혜원 : 아까 대종사님이 받으신 이불을 다른 사람을 주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결국 이불 받은 사람이 복 까먹은 것은 아닌가.  누군가는 결국 자기 복을 까먹게 되나.

A. 교무님 : 이불이 한채 더 있는 사람은 무자력자에게 줄 수도 있겠다.

            대산종사님은 절대약자를 도와주자고 하셨다.

            그 도움이 진급과 은혜로 간다면 기꺼이 도와주어야 하고,

            부자력과 의뢰심을 갖게 하고 빚만 지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한다면 그것은 고려를 해봐야 할 것이다,

            보통 사람이 불쌍하여 감정나면 도와주는 것은 자기입장에서 도와주는 것밖에 안된다.

 

다음주에는 영육쌍전법(김정원 교우님 강연)을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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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진우 | 작성시간 04.04.11 순명부처님 대단합니다. 눈물이 다 납니다. ㅜㅜ 모두다 제 이야기 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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