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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209_화요_명인명사(6)_고타원 이덕심 교무님 강연

작성자김정원|작성시간08.12.13|조회수420 목록 댓글 6

원기 93년 12 09 요공부방

□ 고타원 이덕심 교무님 강연 ( 전안암교당 교무님 )

  

 

 

 

반갑습니다.

안암교당에 젊은 청년교우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활기가 넘치고,

우리 교단의 장래가 믿음직스럽고, 우리 대종사님의 교법을 앞으로 크게

발전시킬 동량들이니 소중하고, 바쁜 시간에 법회를 보러 오시는

교도님들이 고맙고, 오늘 안암교당에 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 교무님이 안암교당 청년법회를 보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세대 차이도 나고 무슨 법회를 볼 수 있을지 몰라서

처음에는 사양을 했어요. 그러자 저보고 출가 동기에서부터 일생 동안

전무 출신 한 그 경험담과 노후에 수도 생활하는 이야기 등등을

후진이라면 후진이고, 동지들이라면 동지들에게 해주면 좋겠다고 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고,

젊은 청년들이 우리 세대가 살았던 것을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 혼자 이렇게 저렇게 살았단 얘기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법회를 나오는 우리 청년 도반들 이라고 하면, 신앙이나 수행이나

마음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노소 차이가 없어요. , 대화하는

입장에서도 남녀와 고하의 차이가 없습니다. 서로 법으로 통하는 묘한

그 이치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 교무하고 원로 법사님들 하고

통하고, 저희들도 청년들과 통할 수 있어요.

 

오늘 저녁에 한 시간이나 하래요. 보통 삼사 십분 이면 길다고 하는데

한 시간이면 뭔 말을 할까? 그것도 고민이고, 종법사님 법문이나

한 구절 전하는 것이 소득이 있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여러분도 나이

먹고 원로니까 두서 없이 하는가 보다고 생각하세요.

 

교무님이 느닷없이 제 약력 쓴다면서 물어봅니다. 생각해 보니까

제 머리 속에 18살에 출가 했다는게 의아하죠?

그러나, 우리들 세대는 6.25전쟁이 일어난 때 이에요.

8.15, 6.25, 4.19, 5.18 등 전쟁과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온 세대입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6.25가 났어요. 제 고향은 전북 임실군 관촌면

이라는 촌입니다. 전주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제일 많았고,

사상범들도 많았어요. 6.25 오기 전에 환영하고 그러니까 많이 하니,

유엔군들이 불바다를 만들고 가버렸어요.

 

하루 아침에 철로가 다 붕괴되고 학교다 다 풍비박산이 됐고,

시골의 700여 가구가 다 불바다가 되는 희생을 당했어요.

그 이후 1.4 후퇴 이후에도 빨치산들이 와서 젊은 청년들을

다 데려갔어요.

 

저도 오빠가 위로 두 명 계셨는데 학생 때 다 행방불명 되었다.

저는 어리니까 남아 있었는데 한 살, 두 살 먹고 학교는 공부 할 처지가

아니고, 인민군들은 내려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불안해서

저를 임시로 총부로 피난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다 저쩌다 거기에 빠져버렸어요.

 

그때 2대 대산종법사님이 즉위에 안 오르고 게실 때입니다.

투병 생활 하면서 사가에 계실 때인데, 저희 어머님이 대산 종사님과

심심상인이 될 정도로 기운을 연하시고 신성이 대단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들이 걱정이 되고 집안이 그렇게 되니 기도를 하면서

대산 종법사님께 말을 나누셨는데, 대산 종법사님이 아들들에 대해서는

얘길 안하시고 어머니에게 관우행씨(어머니법호) 같은 보살 뒤에는

도인 자녀가 있을거라고 하시며 큰 놈을 보내라고 하셔서 절 총부로

데려간 것이에요.

 

그래서 총부에 가서 종법사님을 뵈니, 물으시기를

너 평생 여기서 똥통 지고 청소하며 살겠느냐?’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있다가 바로 정산 종법사님을 처음 뵙고는, 저도 모르게 총부를

나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렇게 총부에 눌러 앉은 것이 여태까지 사는

것이에요.

 

지금도 생각해 보면 성인의 말씀은 땅에 안떨어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대산 종법사님이 말씀하셔서 제가 이렇게 나왔는데 밑의 동생들은

생각도 안했어요. 제 밑에 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노릇을

하는데, 대산 종법사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주사를 놔드려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차가 없어서 이십리를 걸어 다녀야만 하고 보건소도 없어서

주사를 놔드리려 하면 익산 시내에서 총부로 사람이 와야 했습니다.

 

동생이 주사를 종법사님에게 주사를 놔드리는데. 하루는 종법사님이

덕일이가 뭐 될련지 모르겠다. 정토나 할려면 쓰겄다.’고 말씀해서

동생은 전무출신이 뭔지도 몰라서

정토가 뭐냐?’고 묻고 전무출신 내조라 하니

그럴려면 내가 해버리지 뭐.’ 이러더라고요.

종법사님에게 한 번 주사 놓고 거기서 인연이 딱 되어서 다시 고등학교

들어가 지금까지 전무출신을 하고 있고.

 

막내 남동생도 면사무소에 불이나 호적이 잘못 되서 원래 나이보다

4살이나 어려요. 사립학교를 다니고 교대를 시험 보려고 하니 군대

안가려고 호적을 수정 했단 이유로 퇴짜를 맞아 진학이 안되었습니다.

 

제가 결핵으로 치료를 하고 있을 땐데 어머니께서 누나 약도 좀 갔다

주고 종법사님 뵈러 다녀오라고 해서 남동생이 약을 가지고 왔어요.

식당에서 사람들 모두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종법사님이 남동생을

보고서는 저 녀석이 전무출신 한단다.’ 이렇게 말하신 거에요.

 

전무출신이 뭔지도 모른 남현이가(남동생) 벌떡 일어나서 제정신이

아니듯 사방에다 절을 해요. 엉겹결에 보따리 싸서 전무출신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3남매가 지금 전무출신을 합니다.

 

저희 큰오빠는 돌아가셨지만. 그때는 정고 4학년 이었어요.

그때 6.25가 났어요. 시국이 그렇고, 사상이 트인 사람들은 전부

사상가로 몰리던 때 입니다. 동경중 나온 사람들이 사상에 물들고

6.25까지 나자 덤으로 오빠가 사상가로 몰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소년 사상범으로 7년간 옥고를 치뤘어요. 그러고 나와서도 형사들이

맨날 따라다녀서 숨어서 살아야 하는데, 어머니가 신심 있는 어른이라

오빠를 데리고 종법사님께 데리고 간 거에요.

 

대산 종법사님이 말씀하기를 너는 6.25 때 이미 죽을 몸인데 사은의

위력으로 어머니의 정성으로 기적 같이 살아 났으니까.

죽은 폭 잡고 이 회상에서 있으라고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4년제 고등학교는 지금의 대학교 보다 실력이 훨 낫습니다.

그래서 지성인 대우를 해서 소년형무소에서도 노동일을 안하고 책 출판.

교정, 편집 등의 일을 시켜서 배운 기술이 인쇄 기술 이었습니다.

그걸 미끼 삼아서 원광사에 집어 넣었습니다.

 

오빠가 젊어서 7년 동안 청년 때에 고문당하고 저녁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밤새 떨고그러한 위기를 지내면서 참으로 신앙이 무서운

거에요.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려고 지극한 기도를 올렸어요. 그랬더니

밤마다 등을 두드리는 산신령 같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너는 걱정 말라고 하면 그 소리에 개어난 적이 수도 없이 많았어요.

그때 이미 오빠는 병이 든 상태라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처음에는 4남매가 전무출신 하였다. 우리 어머니는

너희들은 부모 호강시키려고도 말고, 잘 살려고도 말고, 이 법 만나서

전무출신만 하면 소원이 없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뜻을 따라서 4남매가

다 출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18세의 나이가 나의 출가동기에요.

공부를 한 후.. 그리하여 첫 부임으로 종로교당으로 갔어요.

예타원 종사님이 그 때 매우 편찮으셨어요. 30세에 대수술까지 받고

그 해 졸업생 중 제가 가장 기골인데 건강하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영리하다고 종로로 보냈답니다. 종로에서 2년 살고 3년째 접어들면서

병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 때 너무 어린 부교무가 업무도 과다하고,

신경도 쓰고, 교무님은 편찮으셔서 휴양 가시고, 서울대학생 교우회가

활성화 되고 그럴 때 입니다.

 

그러다가 병이 나서 별수없이 총부로 쉬러 가서 재무부에 가서 살살

근무한다고 했는데, 그만 결핵이 중증으로 넘어가서 죽는다고 하니까

별수 없이 치료를 시작해서 4년간을 투병생활을 하였어요.

그 때 육신이 완전히 한번 죽었는데, 대산 종법사님께서 살려주셨다.

그 젊은 나이 스물 일곱, 여덟, 아홉, 그럴 때에 몸은 아파도 마음은

어서 활동을 하고 싶어하니까.

가만 놔두면 죽을 것 같아서 여러 방편을 써서 저를 4년 간을 눌러

놓으셨어요. 이후에 건강이 완전히 완쾌되어서 31세부터 처음 교화를

시작했어요.

 

처음 정읍 소승이라는 조그만 교당에서 1년을 살았는데,

이듬해 정읍 칠보라는 곳으로 갔다. 전주에서 교육감으로 있던 분이

그곳으로 와서 초창기니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양반이 다시 발령 받아서 나가버렸어요. 학교 선생님과 관사에서

법회 보니 어떻게 되겠어요? 도저히 교당이 이루어질 수 없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이 교당을 벗어나서 내 의욕대로 교화를 하고 살아볼까

하는 생각뿐 이었다.

 

대산 상사님이 휴양하고 계실 때인데, 총무부장님이 의정부와

송천동 연원교당을 만드는데 덕심이를 보낼려고 하는데 대산 종사님이

승낙을 안하셨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향타원님이 말씀하셨다.

덕심아, 네가 칠보를 나오려는 생각이 있으면, 아무리 다른데 가서 잘

살아도 칠보 문 닫고 나왔다 이 간판이 항시 따라 다닌다. 네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 교당을 살려놓고 발전 시켜놓고 나와야 된다.’

그 말씀을 듣고는 생각이 180도 전환이 되었다. 나갈 생각만 했지

그 생각은 안했거든..

 

그때부터 한 마음을 돌리니까 1년 안에 집을 짓게 되더라.

2년을 살았는데... 1년을 교당에 나면서 어떻게 교당을 이룰 것인가

곰곰히 생각했다. 그 지역에서 정미소도 하고 제법 잘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데 아들이 삼화토건 이라고 건축 사업을 한다고 하였다.

 

그 때 무슨 용기가 났는가 그 삼화토건에 찾아 가서 도덕사업으로

원불교에 후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사정을 했다. 그 사장이 술을 좀 많이

드시고 오셨는가 나에게 욕을 하는 거에요. 생전에 부모에게도

욕 한번 안 들어보았다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사장 앞에서 창피를 당하였다.

 

당시에 통행금지 때문에 교당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딸 방에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미안했던가 와서 우리 영감이 이런 저런 일로 화가 난 것

같으니 나보고 이해하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달래고 가요.

더 서러웠어요.

 

새벽에 나오려는데, 영감님이 밤새 마음이 변해서 내가 다는 못해주어도

육송(기와집 지으면 서까래 올리고, 기둥으로 쓰는 것) 보내줄 것이니

알아서 하라고, 그것으로 시작해서 기와공장가서 기와 얻고,

부인이 시멘트를 사 주어서 칠곡교당을 1년 안에 벼락 같이 지었어요.

 

그때만 해도 집 한 채 지으면 교단이 들썩거렸어요. 총부 어른이

다 오다시피 하고, 초청장 보내고 너무 좋아서 잠이 오질 않았어요.

그렇게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때 전주교당에서 교당 불리기를 하던 때 입니다.

연원교당을 동전주, 서전주 두 군데를 만들었는데 총부에서 덕심이가

와야 하므로 덕심이를 데려오라 한 것이다. 교당 짓고 1년 밖에 안

살았는데 오라 하니 별 수 없이 서전주에 간 거에요.

 

서전주에 가서 보니 비가 오면 철철 새는 곳에다 전세 하나 얻어놓고

가셨더라. 현실의 괴로운 것이 무섭지도 괴롭지도 않고, 오직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때 궁리궁리 한 것이,

잠종회사 사장이 있으니까 그 사장을 만나서 땅을 얻을 생각에 만나러

갔는데, 그 사장이 얼마나 구두쇠인지 나를 안 만나려고 밥 먹으러

문 밖으로 안 나온 것이다. 나도 오기로 끝까지 기다리다가 딸내미가

저희 아버지 방 안으로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 갔어요.

 

그러자 그 사장이 덕진 어디에 있는 땅을 200평을 줄 테니 가라고

하였다. 그 말을 믿고 등기이전 하러 다시 찾아가니 언제 했냐는 듯이

입을 싹 씻어버리더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무 억울하고 괘씸하여,

속으로 당신이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맘 상해주고 하면 안좋아,’

속으로 이렇게 독한 마음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부인이 느닷없이 아침에 혈압으로 코를 골면서 못 일어났어요.

집안이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는데, 영감이 정신차리고 빨리 일어나라고

하니, 그 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는 코피를 쏟으면서 일어나 말하기를

그런 순진한 도인에게 거짓말을 해서 내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아무데도 못나간다고 하면서 당장에 약속을 지키라고 해서

영감은 부인이 또 병 날까 싶어서 가계수표로 땅값을 써서 주었어요.

 

그렇게 그 집에서 땅을 얻어가지고, 그래서 설계사무소 소장에게

망설이다 사정 이야기를 하니 이렇게 어려운 시국에 여자 선생님이

큰 일을 하느냐고 하면서 흔쾌히 건축업자를 소개 시켜주었습니다.

 

목재하는 집에 마지막으로 갔어요. 사장을 만나러 갔더니,

사장이 일언지하에 나는 아직 종교 같은 것 생각도 못하고 입찰건이

있어서 바쁘다며 그냥 나가버리더라. 그 집 문을 열고 나서는데 하늘이

노랗더라. 그래서 법신불 앞에서 통곡을 하고, 기도를 하고 난리를

피웠는데, 그 날 저녁에 전화가 왔어요.

 

그 사장이 그날 입찰이 되기로 다 결정이 되었는데, 물론 딸 것이다

하고 갔는데, 그 일이 안되었어. 그때 그 순간에 제 얼굴이 떠오르더래,

내가 박절하게 그 교무한테 한 것이 이런 결과가 있는가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그 당시의 30만원이 지금의 3,000만원보다 더 클 겁니다.

옆에 있는 부인보고 30만원 정도 예산을 세워서 하라고 말하는데

부인이 잘 못 알아듣고 50만원 이란 소리가 들리자 내가 전화기에다

대고 ‘50만원이라고 했네!’하고 큰소리로 말해버렸어요. 그래서

30만원이 엉겁결에 50만원이 되었어요.

 

그 집에서 목재를 지어서 서전주교당을 창립 4년 만에 신축 해놓고

나자. 손바닥만한 학교 선생을 하시는 분이 진북동에 연원교당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 뜻을 받아들여 진북교당까지 하고 오니까.

30대는 초창교당을 몇 군데하고 나니 다 가버리더라구.

 

40대에는 기성교당으로만 다녔다. 경상도 김해로 갔어요.

김해에서는 교도들이 불심도 좋고, 신심도 있고, 사업가도 있고 좋아요.

그 때에는 청소년 교화를 하는데 너무 잘되고 일반교화도 잘 되고

서김해교당까지 연원교당으로 내고 거기서 교화를 재미있게 하다가.

 

광주로 왔어요. 광주에서도 신기하게도 어디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화도 기운이 있어요. 기운이. 초등학교 선생님부터 대학

교수까지 부부간이 40쌍이 나왔다. 일반법회 말고도 부부법회만 80명이

나왔다. 법당이 좁으니 2부로 내고, 나중에 안되니 무등교당을 떼어

내고, 그렇게 6년을 마치고 나니

 

50대 되었을 때는 기가막히게 낙후교당으로만 보내더라.

오래되었으면서도 다 땅에 떨어진 교당만 보내줘요...

그래서 처음에 여기 안암교당에 왔어요. 내가 왔을 때에는 지금 같은

고대광실이 아니고, 옛날옛날 와가로 기역자 집인데, 비만 오면 철철

새어서 다라 갔다 놓고, 연탄 가스가 문 사이로 다 들어오고, 화장실이

재래식 화장실로 퍼내는 것이고, 아궁이를 쓰고, 광주에서도 기름보일러

때고 수세식 화장실을 썼는데, 그곳은 그렇게 생겼어요.

서울이라는 한복판에그런데 거기가 재개발로 팔도 못하고 고치지도

못하고 그런 애로가 없었어요.

 

서울에 올 때 광주교도 두 내외 4명이 바래다 주었는데, 대문부터

간판이 흔들흔들 떨어지려고 하고, 방안의 한옥 천장은 흙더미가

내려앉아서 축 쳐져 있고. 전임이 가면서 “여기에 대고 주무시지

마세요” 하고 갔어요. 흙 떨어지면 큰 일 난다고

 

우리 광주교도가 나를 내려 놓고 가다가 맘이 아파서 차마 가지 못하고

경동시장에 가서 철사와 못, 종이 등을 사가지고 왔어요. 나중에 뜯을

망정 대문이라도 반듯이 하고 간판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냐면서

대문도 반듯이 하고 천정도 깨끗이해서 신문도 붙여서 정리를 해주고

갔어요. 주인정신이란 이런 것 입니다.

 

우리 안암동 교도들, 이 양반들이 나중에 가보니 사가에 정말 잘 사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잘 사는 교도들이 거지 같은 교당을 재미로 다녔다냐?’

하는 오해를 했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이 교당을 재 부흥을 시킬

것인가 이렇게 오매불망 하다 보니, 기적적으로 그 집이 팔리고,

이 땅을 사게 되었는데 집을 지을 대책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돌아가신

신도현 사장님, 우리 학타원 부군 되시는 분이 큰 원력을 세우셔 가지고

이 집을 집터로 단독불사를 해 주셨는데 그 과정도

 

부모님 돌아가시고 스승님 돌아가셨어도 밤새 철야해 본 적이 없었어요.

신사장이 수술을 한 후에 병실에 나 혼자 있을 때에 신사장님이 내 손을

잡으면서

내가 언제 나서서 우리 교무님이랑 미국도 가고 그럴 것이냐

하고 한탄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말하자면 그러한 깊은 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 양반이 선천적으로 선량하고 후덕하신 분이다.

처음에는 뵙기가 힘들어서 그 양반을 만날려고 애를 썼는데,

억지로 찾아가서 뵈니 아주 인자하시더라. 그렇게 뵌 후로 저녁마다

전화통을 붙잡고 여러 가지 말을 하고, 먼저 전화를 하지 않을 땐

그분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순전히 전화를 통해 교화하고 불공하고, 또 당신이 병환이 나셔서

서둘러서 이 집을 짓기까지 사연이 많습니다. 그렇게하여 이 집을

지었어요. 여러분이 이 집을 리모델링하여 더 아름답게 해놓고 교화도

잘 하니 얼마나 흐뭇한지 모르겠어요.

 

교도들이 집 지을려고 모아 놓은 7천 만원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데

단독불사를 하게 되니까 그 돈을 가지고 연원교당을 하나 하자고 하여

철원을 개척 하였어요. 그 돈으로 연원교당을 하자 하여 철원을

개척했어요. 철원에 가서 교도들이 합심하여 그때 돈으로 1 5

들여서 땅 사고, 개축하고, 남자 부교무 데리고 들어가서 개척교화를

2년간 재미있게 하였다.

 

처음으로 철원을 물어물어 갔었는데, 민통선 안의 땅을 사려고 했어요.

그런데 민통선 안에 백마고지, 위령탑, 전시관에 가 보니, 몇 천명이

거기에서 죽었대요. 가서 보니 소름이 끼쳐요. 내가 거기에서 기도를

드리나니, 자연스럽게 마음에 글이 하나 떠올랐어요.

 

한번 읊어볼까요?

 

회보에 보니 분단 40

말 없이 묻혀있던 중부전선

 

이 광활한 대지 위에 새 천지가 열리고

새 기운이 동하고

평화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날

 

젊은 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백마고지 위령탑 앞에

대도의 향불을 피우며 임들의 고귀한 희생의 대가로

이제 찬란한 영광의 축복이 함께 하리니..

 

새회상 열리는 경축의 날에

개벽의 일꾼으로 돌아오소서.

 

 

나중에 그 집을 사가지고 자는데 대종사님 석고상을 모시고 수 많은

군중들이 따라 오는 꿈을 꾸었다. 천지의 기운이, 새 회상 열리는

기운을 타고 음계에서 동참하는가 싶어서, 그 때 천도재도 지내고

기도도 많이 하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군인들이 버글버글 하다.

그때 지어놓은 철원교당이군인교화 한다고,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그곳에서 교화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때 안안동에서 연원교당을 철원에 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군인교화를

하지 못할거에요. 철원교당이 군교화로 제 1위 이다.

그때 회상을 항시 합니다. 후진들이 아름다운 집을 지어놓고 편안하게

살지 개척교화 한다고 고생하느냐고 하는데, 그때 교화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2년을 살고 나니 부산진 교당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때도 죽기살기로 법당을 멋있게 지어놓았다. 부산같이 아름다운

도시가 없어서, 여기에서 한 몇 년 잘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2년 밖에 안되었는데 신촌으로 발령이 났어요.

 

안 간다고 버텼는데.. 어느 선진이 그러시는데 다 네가 할 일 정해져

있고, 일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거기는 안정되게 집 지어서

편안하니 누가 가든지 교화할 것인데 가라 하면 가야지하고

예타원님이 어떻게 꾸중을 하시길래

 

신촌에 갔더니 태산 같이 일이 기다리고 있더라.

최준명 회장이 건축업자인데, 그 집이 30년이 넘어서 새로 지어야

한다고 했다. 전기가 100볼트여서 에어컨도 못 쓰고, 파이프가

오래되어 쓸 수도 없고, 수도가 새서 몇 십 만원씩 요금만 나오고

이런데도 전임 선생님 계실 때는 손대면 이 집 헐어야 한다며 손도

못 대게 하더래요. 그런데 제가 갔더니 집 좀 지었다는 것을 알고는

이것 싹 다 뜯어내서 내 발인식 할 때까지 싹 다 고쳐놓으라고 했어요.

 

개축공사가 집 짓는 것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이후로 화정교당

창설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천안의 원성교당 인수해서 연원교당 만들고

백주년, 원음방송, 신협 사건까지 하여 일이 태산같았어요.

그렇게 6년을 마치고 나니 병이 나기 시작했어요.

 

총부로 가서 쉬면서 사정해서 순교감을 하였는데 척추가 고장이 나서

걷지를 못하니 수술해서 회복해서 좀 다니다 보니 무릎이 마비가 되어

양쪽 연골 대수술을 하니 건강히 일을 못해요. 1년 남기고 퇴임을

했어요. 지금은 수도원에서 편안히 지내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것이 제 일생이에요.

 

 

수도원에서 보니 50여 명이 같이 살고 있다. 그런데 다 애쓰고 살아서

똑같이 출발을 했어요. 똑같이 귀밑에 잔털이 스물스물 하던 사람이

주물주물 늙어가지고 하나 같이 70이 넘었으니까.

세상에 뭣 하고 이렇게 늙었나

고 하면서 웃음소리도 하고 그러는데,

 

그 일생이 너무너무 순간이에요. 젊어서 일할 때는 세월이 그렇게

빠른지도 몰랐다. 세월이 너무 무상하면서, 자기도 떳떳하고 당당하고

보람되게 잘 살았다면 덜 허무한 것 같다. 그런데 같은 공사를 해도

여러 가지 애로가 있어서, 자기 서원대로 성취 못하는 사람도 있고,

병고에서 터덕거린 사람도 있고, 마음대로 못하여 마음에 한이 남은

사람도 있고 가지가지 인데. 또 자기가 수행하고 공부하는 생활

중에서도 때로는 시비가 따라 많은 고통을 느낀 사람도 있는데.

 

그런데 저는 가만히 회상을 해보니, 마음속에 감사한 일뿐 이에요.

어찌 다행히, 과거 전생에도 공사를 했는가 가는 곳마다 호법주들을

만났어요. 이 대도성업을 유감없이 계획한 대로 다 성취를 하였어요.

일생에 생각해 보면, 처음에 예타원 종사에게서 부교무를 할 때 어떻게

이 어른이 통찰력이 좋으신지, 출납장에 점 하나 찍은 것을 귀신 같이

찾아내요. 10원 한 장만 틀렸어도 밤새서 맞춰야 결제를 해줘요.

 

공사가 너무나 분명하신 분이셨다.  4.19 직후 자유당 전성시대라 돈이

많은데 당시에 돈을 셀 줄도 몰랐었다. 당시 정산종사님 시봉금,

그리고 역경사업과 출판사업 하느라 돈이 들어오지,

그때는 서울교당과 종로교당 둘만 있었는데 원남교당 사려고 기금

모아놓고 있는데, 그 돈을 어떻게 감당을 못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금고도 없었어요.

 

돈을 안고 자다가, 요 밑에 넣었다 하였다. 부교무 방도 없이 응접실,

사무실, 침실이고 다 했으니까. 그 돈을 그렇게 관리를 하다가 보니,

이 양반이 노파심에서 돈은 사가 따르니 절대 남의 눈에 띄지 말게

하라고 하였다. 한 푼도 공사를 분명히 하여 청렴하게 하시니,

그렇게 처음부터 배우니 평생 좋은 버릇이 되었어요.

 

아닌 말로 저 같이 건축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만지고 하여도,

재색명리 간에 시비를 듣지 않았어요. 하기 어려운 대도사업 유감없이

잘 하였고 너무너무 감사할 일뿐이고, 전생에 복을 지어 놓아서 이렇게

받았는데 내가 금생에 다 까먹고 나면 다음 생에 털털대면 어떨까

싶은데, 남은 여생에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부지런히 복 짓는 일이더라.

 

교도들을 시켜서 큰 일도 하지마는 직접 내가 짓는 내복도 따로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디서 오라고 하면 부지런히 갑니다. 사래비 받아서

여러 곳에 교화하라고 준다. 그렇게 복 짓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우리들이 죽는 날 까지 자기의 목적을 향해서 가야지

할 일 다 했다고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물직적으로도

육신적으로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열심히 하여 세세생생

축복받아야겠다 하는 욕심이 생긴다. 노후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내 얘기만 듣는 것이 뭔 대수냐.

종법사 법문이라도 하나 전해야 우리 청년들에게 소득이 있겠다 싶어서.

 

 

대산 종사님께서 인생으로부터 갖추어야 할 세가지 도.

이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겠지만. 제가 써가지 왔어요.

여유. 심사. 음덕 이렇게 3가지 입니다. 세 가지 갖추어야 할 도.

이 법문, 대산 종사님께서 삼학을 근기 따라 공부할 수 있도록

부연법문을 많이 하셔서 밝혀 주셨어요.

 

그 중에도 여유. 심사. 은덕 이라는 법문을 제가 법호수여식 하는

분에게 선물로 써서 공부하시라고 액자에 넣어 드렸더니,

그 부군되는 분이 원불교 말씀이 종교 냄새도 안나고,

쉽고 해서 우리 가훈 하면 쓰겠네라고

말하면서 응접실에 걸어 놓고 가훈으로 했어요.

아하. 세상 사람들에게는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말을 바꿔서 말씀 드리니까.

무종교인까지도 이해가 된다고 그래요.

 

오늘도 우리 청년들이나 교도님들이나 무엇이 급하니 급하니 해도

정력 쌓는 일이 급한 일인데, 이 여유라는 글자가 남을 여자,

넉넉할 유자 거든요. 여유 있는 마음이라는 것은,

그냥 아무나 여유 있는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병 중에

위험한 병이 바빠바빠, 금방금방 처리하려 하는 것이다. 여진이 없어.

너무 각박한 마음에 뭐든지 소유하려고 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이

살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나 70~80%만 채우고,

나머지 20~30%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여유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유를 가지려면 수양을 해야죠. 수양을 해야 여유가 생겨,

수양은 어떻게 하는가? 정신수양의 방법이.. 심고, 기도, 염불, 독경,

좌선이 다 정신수양 방법 아닙니까? 이러한 수양을 해야 마음을 멈출

수도 있고, 마음을 멈추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느 교도 한 분이, 자기는 남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인데 자녀는

말썽쟁이인데, 하루는 강의를 하는데, 전화가 왔더랍니다.

아들 놈이 일을 저질러 경찰서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오라는 겁니다.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어요? 중요한 강의를 하려는 마음이 요란해지고,

강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신을 못 차리다가,

내가 이럴 때 수양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독경을 하였다.

 

서원문을 외우고 한참을 하고 보니 자기 마음에 요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아지고, 분노했던 마음이 안정되고, 산란했던 마음이 일심이 되고,

이렇게 마음이 온전하고 넉넉해지면서 그 경계를 무사히 넘기고,

경찰서에다 강의 끝나고 가서 내가 처리할 것이니 그대로 두라고하고

강의 끝내고 나서 아들 일을 잘 처리하였다고 이렇게 감상담을 얘기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 분의 마음에 수양의 힘을 빌려서 마음을 멈추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으면 강의를 망치고, 아들에게 온전히 하였겠요?

마음의 여유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꼭 갖추어야 할 길이다.

 

여러분들도 경계에 따라서 해야 한다.

대산 종사님은 아주 쉽게 말씀해 주셨다. 삼독오욕으로 끌려 다니면서

우리의 마음이 구멍이 났다. 그 마음을 때우는 것이 수양이다.

그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수양이다. 우리가 염불 독경이라도 하면

그 염불 독경에 따라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하면 다급하고

위험한 일을 당해서 힘이 생긴다.

 

두 번째는 깊을 심, 생각 사이다.

심사 뒤에는 원려가 따른다. 보통 지식과 지혜는 다르죠.

지식은 배워서 아는 분별지이고, 지혜는 진리를 깨친 반야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 반야지를 얻어야 깊은 생각이 나오는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날마다 사는지 모른다. 이 세상은 시비이해로 운전하고 이 우주는

대소유무로 건설되어 있다고 한다. 사리간에 깊이 생각하여 깨치라는

것이다.

 

이 세상을 잘 살아나가려면 사리에 밝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 하려고 하는 것이 죄를 짓게 되고 항시 진리의 장난에 놀아난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는 형상도 없이 허공에 있는 것처럼 가늠을

못 잡더라.

 

그러나 대산 종사님께서는 진리는 탯거리 하듯 해서는 안된다.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 이것이 말하자면 현실적으로도

볼 수 있고, 실천 할 수 있고,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유무의 진리를

깊이 생각하고 생각해서 깨치라는 것이다. 그래야 진리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는다. 진리의 장난이라는 것은 지혜가 단촉하여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다. 대종경에도 육도와 사생으로 널리 전개된 세상을 모르는

사람은 한 쪽 세상만 보는 사람이다.

 

, 육도와 사생에 승강되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눈 앞의 일만 보는

사람이다. 그런 법문이 있거든요. 깊은 진리를 심사를 하여 깨치지 못한

사람은 그와 같이한 치 앞을 못 본다.

 

우리 대산 종사님 같은 성자들은 길게 보고 멀리 영생을 바라보는

지혜가 있으므로 그렇게 영구한 법문을 하신 것이다.

대산 종사님께서 한 30년 전부터 하나로 사세 하나로 사세 하는 법문을

많이 하셨어요. 씨족의 울을 넘고, 민족의 울을 넘고, 종족의 울을 넘고,

종교의 울을 넘어서 하나로 사세 하나로 사세 노래를 하셨거든요.

그 어른은 이미 세계 대세가 씨족 사회, 성씨, 나라, 종족도 이제는 다

없어진다. 앞으로 남은 것 하나가 종교 문제인데, 그것도 일원대도로

통합될 것이다. 멀리 영생을 바라보는 성자의 지혜 입니다.

 

심사공부를 잘 하여서 최소한 초견성을 해야 하고,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다 안다. 유무의 세계가 과연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활용이

되어야 하느냐? 이것을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견성 한 것이 불공과 행동에서 다른 것이다.

 

깊이 생각한다. 이 말씀은 바로 경전 연마도 부지런히 하고,

의두 성리도 부지런히 단련하고, 법회도 열심히 보아서, 근본적인

지혜를 단련하여 항시 사리 간에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여진이 있고

멀리 본다. 성인들 같이 영생을 보고 멀리 보고 몇 십 년 몇 백 년 후를

바라 보시는 그런 지혜를 닮아 가야 한다.

 

진리의 장난에 놀아난 사람들은 소유를 하게 되면, 그것에 자만하고,

그것에 만족하고, 권모술수 부리다가 결국엔 추락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장난이다. 사람이 유무 변화의 진리를 잘 관찰하고 잘

실현하여, 있을 때는 더욱 겸손하고 명예가 돌아오면 더욱 자중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추락하는 걸 보면 다 이것

하나를 몰라서 그래요. 이 유무의 장난에 놀아난 거에요.

성자들이 볼 때는 다 애기같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음덕이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기 힘으로만은 절대 못 산다.

자 타력이 병진을 해야 살아간다.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있죠.

어떠한 음조가 따라도 따라야 성공을 한다는 말입니다.

음조란 숨은 덕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음덕을 베풀면 음조가 따르고,

음조를 받을려면 음덕을 실천해야 하고. 음덕은 물질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이 바로 복 짓는 도구이다.

 

무본편에 마음으로 심공덕을 쌓고, 행공덕을 쌓고, 법공덕을 쌓으라.

우리들 마음에 심공덕만 쌓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공부이다.

성인을 추앙할 지언정 시기하지 않기가 어렵다. 추앙하면서 시기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들이 남 잘하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서 기뻐하고 축원해 주고 칭찬해 준다는 것은 보통 공부가

아니며 그것이 심 공덕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항시 기도해 주고,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고, 내 힘이 닿는 대로 언제나 합력해 주는 것.

 

공사를 하는데 가만히 보면, 같은 공사를 하더라도 묘하게 기운을 합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운을 떨어지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신촌에서 천안 원성교당을 만드는데 교도들이 다 반대를 해요.

 

가만히 고민을 하고 있으니, 형편도 가난하고 어렵고 영감님이

십여 년을 교통사고로 병들어 누워있고, 자녀도 병신인 할머니 한 분이

살짝이 와서

저는 평생에 연원교당 하고 싶은 것이 소원인데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못하지만, 꼭 해야 한다면, 제가 비상금으로 있는 돈 2천 만원이 있는데

그것을 종자로 해서 한 번 용기를 내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그 입장에서도 도저히 그런 돈을 내놓을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인데

이렇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이 고맙던지,

내가 광고를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하였다. 다른 사람의 2 30억 보다

더 큰 돈이고 이렇게 협조를 해주시니 이 분처럼 2천 만원만 해주시면

창립주로 영구하게 역사에 올린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자기는 2억을 해도 괜찮은 사람도 있거든요. 그래서 나도 2천 만원,

너도 2쳔 만원, 그래서 3 5천을 만들어서 천안도 했어요.

 

한 사람의 원력이 그와 같이 큰 힘이 된다. 이것이 바로 심공덕이다.

그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한 사람도 있다. 자기가 형편도 안되는데

뭘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이렇게 심공덕이 큰 역할을 한다.

 

행공덕으로도 말할 것 없다. 물질로만 복 짓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육신으로 행동으로 덕을 베풀어 놓아야 음조가 따른다.

중요한 것은 법 공덕이다. 이것이 우리 회상에 간절히 요청되고

실현해야 할 사항이다. 대종사님의 원만하고 거룩한 일원대도를,

여러분이 법 공덕으로 베풀어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신심이 나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법공덕을 베푼다면 어떤 것보다도 기가

막힌 공덕이다. 참으로 해석을 하기로 하면 끝도 없이 해야 한다.

세 가지 갖추어야 할 도가 여유, 심사, 음덕. 머리 속에 새기게 글씨를

한 번 더 보여주겠습니다.

남을 여, 넉넉할 유, 깊을 심, 생각 사, 숨을 음, 큰 덕 입니다.

공부만 잘 한다고 하면 내가 써주도록 붙여 놓고 공부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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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과 답변

 

박윤호 :

이 길을 간다는 것이 원불교 신문을 보면 영산선학대 광고를 할 때 보면,

거기에다가는 여러분 똥 풉시다, 청소 합시다.’라고 하지 않잖아요.

실상은 어떻게 보면 그러한데..

이런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용기 주시는 말씀을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고타원 이덕심 교무님 :

당시에는 상하 윤리도 무섭고 전통적으로 은연중에 젖어온 세대인데,  

그런데 지금은 우리들이 봐도 후진들이 그러고 와서 살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우리는 후진들을 금같이 옥같이 아낍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부교무 시절에 했던 1/10도 안되는데,

오히려 우리가 상전같이 부교무를 위해 주고 살아요. 그러니 그런 염려

할 것도 없다. 너무 호강하고 교당에서 금이야 옥이야 한다.

서원만 돈독하고 전무출신만 한다고 하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예쁘고

소중하다.

 

걱정하지 말고 서원만 세우십시요. 대도 회상에 와서 성불하고 제도

하는 것 같이 큰 일이 없습니다. 내가 갖춘 것이 없는데도 갖추었다고

하면 대종사님 교법 하나 신봉하고 이 회상에 전무출신 한다는

이 자부감 밖에 없는데 맘 속에 두려움이 없어요. 서원이 있고 신심이

있고 이 법을 위해서 살 각오를 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어요.

교단에서 이제는 인재양성을 과거식으로 하지 않는다.

너무 염려 하지 마세요. 전무출신 생각이 있으신가봐?

 

가정에서 호강스럽게 자란 사람들이 서원을 세워서 전무출신 한다고

하면 대종사님이 상근기라고 하셨어요. 이 큰 세계 사업을 하고

큰 공부를 하려고 사원을 세우는데, 그런 시시한 것에 구애 될 필요가

없고 설령 똥을 푸고 청소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상을 크게 가지고

하면 대중을 위해서라면 상관할 것이 없어요. 원력이 크면 그것에

구애가 하나도 없어요.

 

 

송종원 :

심공덕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반대로 교무님을 속상하게 하고

다른 사람까지 신심을 떨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제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덕심 교무님 :

교도들이 세정을 모르고 억지 소리를 하는 거에요. 어느 교도를 질투를

하면서 교무를 모략하는데 도대체 내가 천년 만년 살 집도 아니데

뭐 하러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이 일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어서

하루는 총부에 가서 호소를 하러 갔습니다.

 

길 가에서 예타원 종사를 만났습니다. 모시던 스승님이라 눈물을

닦으면서 야속한 얘기를 하니까 이 어른이 자신의 얘기를 쭉 하셨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이 못난 인간이 교도 한 명이 속을 썩인다고 호소하려 갔으니 얼마나

챙피 하던지 그냥 오려고 하는데, 그 분이 한 마디 하신다.

네가 도둑의 마음이지 1억 이면 하늘이 아는 재산이다. 그런데 3억이

넘는 돈을 횡재하고도 네가 그 고통을 안 받으려고 하느냐?

아 이러시는 거에요. 너를 시험하는 것인데 그것도 감당하지 못하느냐는

말이어서 더욱 고개를 못 들고 참회를 하면서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그 교도를 찾아갔더니 수술을 한다고 병원에 있다고 하더라.

그 날 저녁에 수술하는데 간병을 해주었다. 그런데 보자마자 대뜸

자기가 선생님한테 엉뚱한 소리를 해서 벌 받는 것 같다고 하면서

펑펑 울더라고요. 그래서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이 섭섭한

것 같다고 믿으면 당신을 믿지 딴 사람을 믿겠소. 이렇게 그 양반을

잘 불공하고 화해하고 끝났다.

 

이렇게 심공덕에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내 스스로 힘이 부족 할 때는

스승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나중에 스승님을 뵈오니까 말씀하시기를

거봐라 네가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 일터가 네가 할 몫인데

그걸 벗어나려고 하면 되냐며, 공사를 하더라도 천심으로 해야한다

하셨어요.

 

 

황원공 :

교당 신축을 하면서 타력을 빌리셨는데 사람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할

때에 가장 중요한 점들이 궁금합니다. 두 번째는 제가 볼 때는 어려운

일이셨는데 말씀은 재미있게 즐겁게 하시는 것이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려운 일이나 경계 속에서 힘들 때 마음을 돌리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덕심 교무님 :

나는 성격상으로 잠을 안자고 고민을 하려고 해도, 성격이 그런지,

뭣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낙천적인 성격이 있어요. 그래서 동기들이

생전 고민을 안한다고 하는데, 그런것 같아도 내가 외골수로 뚝심과

지구력이 있어요. 그래서 한번 붙잡으면 끝까지 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애로도 있고 창피도 당하지만, 내가 이 대도성업을

이뤄야겠다 하는 그 생각이 먼저 있다.

 

대낮에 시장에서 옷감을 훔쳐서 도망가는 사람을 보고 도둑놈이라고

고발을 하였다. 어째서 사람들이 다 보는 데에서 네가 그런 짓을 했냐?

고 물으니 자기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오직 이 명주 밖엔 안 보였습니다.

그러더랍니다. 그 사람은 체면이고 무엇이고 아랑곳도 없고 자기가

구하려는 명주필만 가지고 도망 간 겁니다.

 

그렇듯이 우리들 심정도 다른 체면 하나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이 교당을 일룰 것인고 자나 깨나 그 걱정 이에요. 좌선을 해도 길

가다가 집을 봐도 그 걱정이고 딴 데서 사람만 보면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교도로 만들어 볼까 이런 오매불망한 원력이 사무치니까

기적이 수도 없이 나타났어요. 정 말을 안들어서 설득을 해도 안되면

진리가 제재를 합니다.

 

좌선을 하고 있는데 사이렌 소리가 나더라. 우리 교도집에서 불이

났어요. 부인이 남편을 설득으로 해서 사업을 하게 하려고 하는데

안되더라. 새벽에 부인도 기도를 하려고 교당을 나오는데 창고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더라. 바로 신고를 해서 금방 잡아버렸어요.

말하자면 한 번 놀라게 해서 정신을 차리게 하더라. 이 쪽에서 간절히

원하는 힘이 세면, 진리가 비춰준다. 그런 일도 있고,

 

전부 기적이 아닌 일이 없습니다.

 

대산 종법사님이 초도 순시를 했어요. 즉위 후에 고향 땅을 전주를

거쳐서 가게 되어서 우리교당에 오시는데, 초창기에 우리교당은

다섯 세대가 같이 사는 전세 집 이었어요. 작은 방에 종법사님을

모실려니까 마음이 속상했는데,

 

부처님 오시는 기회를 어떻게 이용해서 위력을 입을까 오매불망

생각하고 있다가. 아까 말한 건축회사 사장, 목재 사장, 잠종회사

사장에게 큰 성자가 전주에 오시는데 뵙기만 해도 큰 축복이라고 하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복 받는다고 하면 사족을 못 쓰더만.

어떻하면 되냐고 묻기에 나 따라서 출근 전에 일찍이 오시면

된다고 하고, 종법사님에게 데리고 가 응접실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들어가려는데 실장이 종법사님 식사 후 쉬는 시간이라면서 절대 면회가

안된다고 해서 지금 종법사님을 안 뵈오면 기회를 놓치겠다 싶어서

당신이 뭣을 알아 우리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데...’

하면서 실장하고 토닥거리면서 싸우고 있으니 종법사님이 안에서

그 소리를 들으셨나 봐요.

덕심이 죽는다 문 열어줘라.’

그래서 그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가니까. 이 사람들이 종법사님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어요. 얼마나 황당해서 뭐라고 변명을 하려는데,

종법사님이 수시응변하시는 위력이 있거든요. 종법사님이

! 저 사장들이 서전주 집 짓는다고 오셨단다. 박수 한 번 치자.’

그래서 박수를 막 치니 이 양반들이 혼이 빠져 버렸어요.

어리둥절해서 무릎 꿇고 앉아서

아니 성현이 와서 뵈오면 복 받는다고 해서…’하니

종법사님이

아니 좋은 일 하면 복도 받지.’ 이러셔서..

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집 짓는다고 광고를 해서

그래서 다 한 거에요.  이렇게 원력이 사무치면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

거에요. 어떻게 해야 할까 일호의 사심도 없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단순했던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일호의 사가 없으면 바로 진리의 위력을 입는다고 하였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렇게 올바른 오롯한 정성을 바친 일터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기적이다. 전부 무슨 힘으로 그런 일을 하였겠는가.

 

여러분들도 끝까지 구하면 다 얻어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다 성취하고

정성껏 노력하면 다 이루어 집니다. 정성 하나 원력 하나 뭉쳐서 대도

초창을 이루었다.

 

아쉬운 부분은 요즘 후진들을 보면 그런 의지가 약하다.

이론적으로는 영리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고 그러는데 뒷마무리가 약하고

실천이 없고 이런 부족한 점이 보여도, 그것은 커가면서 철이 나겠지

하고 기다리고 참는다. 그러면 다 철이 나고 사명감에 불탄다.

 

나는 후진들과 많이 살았어요. 살 때는 상당히 애도 먹이고 걱정스러운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세월이 갈 수록 아이들이 의젓하게 철이 나고

책임을 다하고, 챙겨주고 하면 신통하고 그래요. 여러분들도 사회에서

그렇게 하면 다 성공합니다.

 

 

박순명 :

교무님 말씀을 받들거나, 초기교단사를 보면, 과거 선진님들은

간절 하셨던 것 같은데 그때 나이랑 우리랑 똑같은 나이 이신데

어떻게 저희는 그런 간절함이 없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만약에 교무님이 다시 태어나시면 요즘 젊은이들과 같을지

지금의 그 모습일지 궁금하고, 다시 태어나시면 어떤 제도사업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이덕심 교무님 :

현세에 서원이나 보면 전생에 우리들의 전생의 습관과 원력이 있어요.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전무출신을 우연히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금생에도 전무출신 했으니까 갔다가 오면 이 길 가야지 딴 길

가겠어요? 이 길 밖에 더 좋은 길이 없다 싶어요. 세상에는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우리는 전무출신 하느냐 마느냐 생각도 안해요.

무조건 세세생생이지. 걱정 말고 들어와봐.

 

진짜 가정사 보면 조금 꿀맛 좀 보고 살다가 파탄 나고, 가까운 인연

관계에서도 얼마나 애를 태우는데, 그 댓가를 절반만 공사에다 오롯이

한다면, 대 공도자로 세세생생 축복 받고, 환영 받고, 존경 받을 겁니다.

어머니 일생을 보면 얼마나 자녀들을 위해 희생을 하는데,

그런 정성으로 만 중생을 위해서 절반만 바쳐도, 절반 다 안 바쳐도

이렇게 호강 하고 당당하게 사는데 그렇지 않겠어요?

 

 

서도안 :

공부를 하다 보면 죽어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이덕심 교무님 :

다 그렇다. 항시 일즉심으로 다 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도 죽기로써

눈이 안 떠져서 눈을 감고 선방에 들어가던 때도 많았습니다.

이 길이 정당한 길이고 이 공부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원력이

사무치니까 마음을 챙기는 것 이에요. 마음으로 부처 되기가 얼마나

쉬운 일 입니까. 우리들도 가다가 나태심도 나고 싫증도 날 때가 있어요.

그것을 마음을 빨리 돌리고 다시 서원을 챙기고 큰 스승에게 가서

훈증도 받고 지도도 받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마음이 살아나면서

용기도 나고 신념도 서진다. 근본적으로 하기 싫은 것은 아니거든요.

그때 그때 게으름이 나서 그런 것이지,

공부 잘 하시겠구만! ㅋㅋ

 

-끝-

 

타이핑 : 박순명, 김정원

편   집 :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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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김정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7 순명교우님에게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가기를... 저도 고맙습니다. ^^b
  • 작성자김호겸 | 작성시간 08.12.15 정원교도님 후기 감사해요~ 멀리서 공부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어요 ^^
  • 답댓글 작성자김정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7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힘이 납니다. 우리 모두 큰공부인 되어BoA요 ^^v
  • 작성자박예성 | 작성시간 08.12.17 우와... 어제의 강연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 해요 ^^ 정원교우님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잘 활용할께요^^
  • 답댓글 작성자김정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7 잘 활용하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모든 불보살들이 아주 좋아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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