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101년 5월 18일 수요마음공부방 초청강좌 제19회<대종사십상>, 신성해 관장님
반갑습니다. 오늘 5월 18일 수요마음공부방 초청특강 오늘부터 3주간 원불교의 역사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계신 원불교박물관 신성해 관장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대종사 십상에 대한 강연을 듣겠습니다. 보산 김제원 교무님의 소개 말씀이 있겠습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여기저기 앉아 있으면 나는 나가버려요 그것은 기본 자세가 안 돼 있기 때문에 강의하지 마라 그 소리거든요 비록 앉아서 듣지만 상호불공인 거거든요 예법이 있고 도가 있는 것이고 제대로 시작하게 해 주시고 알아서 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시겠죠 어디가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은혜가 되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텐데요 오늘 모신 분은 아까 기차 타고 올라오셨습니다. 소타원 신성해 관장님이신데요 법호가 밝을 소자입니다. 나이가 이제 6학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원불교 출가자도 아니고 재가자이신데 먼저 원불교를 전혀 몰랐다가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였습니다. 학생 하나가 교전을 갖고 있는 걸 보고 그것 좀 보자 해서 읽고 원불교를 찾아가게 됐고 좌산상사님과 인연이 돼서 코가 껴서 교수도 던져버리고 박물관으로 오신 지 올해로 20년 벌써 20년 됐어요? 세월 빠르네 네 20년 됐습니다. 이집트 문명으로 옥스퍼드에서 박사를 따신 그런 분이십니다. 이렇게 뭐랄까 원불교에서 키운 것 보다 커서 들어오시면 좋은 것 같아요 너무 불량한가 이분이 사학과 교수였고 호주에 있는 리버빌박물관 관장도 하셨습니다. 기획을 아주 잘하시는데 광복 50주년 알타이 문명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했죠 총기획 하셨고 또 한 번 국립박물관에서 파라오와 미라전을 했어요 이것이 아마 세계 박물관 세계 관람수 가운데 2위랍니다. 직접 기획하신 분이랍니다. 국제관계로 활동하시다 보니까 원불교의 박물관도 변화가 생겼죠. 중앙박물관이였죠. 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하게 됐고 전시만 하던 것을 갤러리 기법이라 그래서 상당히 문화적으로 역사박물관을 변화를 시켰습니다. 영광에 가 보니까 역사학자가 보니까 옛날 것이 많은 거예요 학생들 데리고 유물 캐시던 분이라 보이셨나 봐요 실은 대종사님 역사를 넣기 위해 그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 서울교당 있던 한옥 하나를 뗴어다가 영산대 앞에 창립관이라고 거기다도 하도록 하셨고.. 그리고 이제 백년성업 일환으로 민속촌같이 하는 사업 구상해서 총부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분을 안 지가 20년 됐네요 그러면.. 지켜 보니까 되게 뜨거운 여자(웃음) 뜨거운 분이십니다. 열정이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뜨거운 분들이 금방 식어서 변화가 있어지는데 핑계대고 다른 걸 시도하는데 그러지 않으세요 초기 교단의 단맛 쓴맛 다 보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는 것은 스승에 대한 교법에 대한 대종사님에 대한 확신 매력에 에너지를 바칠만하다 충분히 생각하시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이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3회에 걸쳐 하실 것입니다. 좋은 시간이 되실 것이고 원불교 역사를 점검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대종사님 꿈을 복제하시고 만드시고 선진님들이 돌아가시잖아요 그러면 이 분 하고 총부 직원하고 둘이 들어가서 초기 유물을 수습을 하죠 이 분이 발견한 유물도 많습니다. 오늘 또 3주에 걸쳐서 되게 좋은 시간이 거예요 어렵게 모셨으니까 질문도 잘 해주시고 그렇게 해 주세요 모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사실 안암교당은 제가 경희대 출신이라 굉장히 친근한 느낌으로 왔어요 한 서너번 왔죠? 교당 강의도 하는데 특별히 교무님이 많은 원력을 세워서 안암정사를 만들고 계시니까 그 안의 콘텐츠를 풍요롭게 만드시는 거에 동참을 같이 할 수는 없는데 내가 미력한 힘이나마 할 수 있는 게 강의하고 성지에 오셨을 때 얼굴 한 번 보면서 설명해드릴 수 있고 이런 기회를 갖는데 오늘 이렇게 여러분에게 공식적인 자리를 하게 돼서 좋습니다. 학위는 옥스퍼드에서 한 건 아니지만 옥스퍼드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과 변화, 고고학의 발전을 보고 느꼈습니다. 고고학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뭐냐며 인간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것들이 있는데 저의 경우는 진짜 어떤 것들도 땅 밑에 있는 것은 아무리 대학자이든 저보다 정말 나이가 많은 사람들보다도 내 땅 밑에 있는 유적은 나보다 정확할 수가 없어요 선지점을 차지하는 게 가장 기분이 좋았어요 만년 전이든 오만년 전이든 그 사람들이 직접 쓰던 수용품을 만지면서 그 사람화될 수 있다는 거 그거에 대한 익사이팅한 거 뿐만 아니라 그거에 대한 존경 그 물건에 그 당시에 사람들에 대한 모든 것들이 빙의될 정도로 어떻게 보면 즐기기도 했지만 굉장히 소중함을 많이 느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이집트 고고학자가 없었어요. 없어서 한국발굴을 하면서 전공을 이집트로 할 때에 굉장히 괴리가 많았어요 가르쳐주는 선생이 있으면 많은 걸 할 텐데 공항에서 기다려가지고 스튜어디스한테 불특정 다수에게 돈을 주고 올지 안올지 모르는 그런 사람들에게 책 좀 구해달라해서 공부를 했어요. 요즘은 너무나 달라졌잖아요 인터넷이 있고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판단이 중요한 세상이 됐어요. 내가 아는 그 정도의 지식으로 해석을 하는 거야. 저는 선생을 하면서는 제일 주안점이 뭐였냐면 그 주관적 오류를 좁힐 수 있게끔 하는게 큰 목적의식으로 다가왔어요. 발굴을 해서 발굴한 걸 가지고 실증적으로 보기 때문에 정말 실사구시인 거예요 이것 자체가 대종사님하고 많이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사람들의 눈동자 보면서 정신개조를 시켜서 육체적으로 움직인 것도 불만이 생기지 않고 따라갈 수만 있다면..뭐라도 할수있게끔 변화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의 포인트가 뭐냐면 내가 뭘 할 줄 아는 사람이고 내가 동물하고 다른점이 무엇인가. 나는 대종사님의 위대한 점을 여기서 발견했어요 내가 누군지를 알게 해 준 사람 그 전까지는 소외계층의 밥을 먹고 뭐라고 해도 미래에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언제 죽을지 뭐 때문에 죽을까 조차도 생각할 수 없이 잘 데가 있으면 행복이고 먹을 게 있으면 행복이고 이런 정도인데 내 자식은 나와 다른 삶을 살게 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없는 사람에게 내가 하라는 대로 해서 그 생활이 영위될 수 있게 될 때에 그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거 또 내가 앞에 사람처럼 나 아닌 남을 대종사님처럼 구제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게 아니라 신적인 그 분을 보고 따라서 하다 보니까 사람인 것을 느낄 수 있는 그 사람들이 뭘 못했겠어요. 어눌하기 짝이 없고 무산자의 소외된 계층의 우리가 말하는 정말 약소자 이 사람들을 다모아서 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너무나 진부한 얘기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했을것입니다. 공동인재양성 재산 이런 것들을 떠나서 어버이된 입장에서 자식을 대종사님처럼 키울 수가 있게 된 거예요. 그랬을때 부모든 자식이든 무엇을 못하겠어요 죽을 만큼 열심히 해도 힘들지 않았고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가를 해 보는 게 교단이 만들어진것입니다. 그 때 그 주체 대종사님은 제가 봤을 때는 단순히 법신불 사은님 하면서 대종사님하고 같이 오버랩되는 사람이 몇 명이냐는 거예요 대종사님은 법신불 사은님이예요 그런데 그게 된다면 신은 신이예요 부처님 꺠닫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극한 상황 까지도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그런 분이예요 그런 분인데 지금 현재 뒤돌아 봤을 때 대종사님 초기에 그분들은 대종사님 주변에 계셨던 선진들은 우리 교단 최고의 캐치프레이즈가 뭔지 아세요? 제가 봤을 땐 이사병행 이소성대 공도주의예요. 동물처럼 사는 사람이 태반인데 그 사람들이 대종사님을 알아봤다는 거예요 알아보고 하고자 하는 일을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나도 대종사님의 위치에 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했겠어요? 인간이 신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은 극한상황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은 보통이예요. 부처님이 웃을 수 있는 정도는 내가 없는 상태예요. 이미 깨달아진 상태라고 봐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우리 교단이고 대종사님에 대해 생각하면 그립다 아련하다 떠나서 눈물이 많이 나요. 안타깝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제가 박물관을 영산에 만들고 했을 때 아침에 일어나고 마당에 가서 풀 뽑을라고 해 보면 썩은 생선 뭉치가 예쁘게 해놓은 잔디밭에 던져놨어. 누가 그랬는지 몰라요 2007년에 만들어졌을 때 그런 거야. 그런데 100년 전 대종사님이 할 때에는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으셨을까 생각해 보셨어요? 그 시련 그런 것들 당신 혼자서만 했으면 더 크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종교상으로가 아니라 직급으로 따지면 어디까지 갔겠어요. 그랬을 텐데 깨닫고 나서 다른 교단의 어떤 깨달은 사람과 다르게 수련을 한다든가 책 낸다든가 그게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을 복제하게끔 용기를 주는 일을 했어요. 한 사람이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이미 여러 사람이 만들어져서 세상을 굴릴 수 있게끔 하시겠다는 큰 원력을 가지고 하셨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소수 종교가 몇 백개 일어날 때 우리 원불교가 4대종교 진입했다는 거 얼마나 큰일이예요. 그 큰힘을 가지고 4대종교 된다고 생각한 사람 얼마나 되겠어요. 그때 선진들은 낙원세계가 바로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음을 불사하신 건 분명한 거 아니겠어요.
동서고금 봐도 대종사님 같이 주변사람을 업그레이드 시킨 선지자 선각자가 어디있냐는 거죠. 우리가 그 분의 제자이니 못할 게 없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3000년 내려오면서 2000년간 우리나라의 큰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부폐한 사상을 엎고 새로이 만들어서 새시대 새 부처님 주체사상을 가질 수 있게끔 해 준 분이 대종사님이예요. 한국의 근대화에 있어서 최고의 이념을 가질수 있게끔 해주신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내가 왜 서두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대종사님 누구나 다 알죠. 저는 아침에 박물관에 들어가면 대종사님상도 있고 사진도 있고 여러 가지 있잖아요 오늘 들어가서 저에게 힘을 주세요 제가 지치지 않아야 됩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정말 가면서 반갑고 그러면서도 가까이 할 수 있게 너무나 행복해요. 저는 대종사님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거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제자라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데 뭘 타협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되짚어보는 게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은 실체에 대한 카피라는 거예요. 이 실체의 카피가 상처나거나 좀먹거나 사라지게 되는 순간이 되면 실체조차 없어져요. 이런데 이념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과연 대종사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얼마나 알고 내가 얼만큼 내 주변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전달할 능력이 있는가 과연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교도인가 교도로서의 임무가 뭔가. 어떤 거나 그렇잖아요 좋아하는 거에는 좋아할 수 있게 행복을 줬는데 그만큼 되돌려 드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어야 된다. 잊어지지 않는 그분 그분이 해놓으신 그 때 그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네임밸류 브랜드가치 창출 위해 그런 운동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자문자답을 해봤어요 우리는 기성 교단에 비해서 규모라던가 연조라던가 차이가 난다고 믿고 있잖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고고학 하는 사람들은요 오차범위라는 거 있잖아요 2천년 전에 만들어진 종단을 봤을 대 우리는 100년 됐는데 많이 차이나는 거 같잖아요. 우리에게 대종사님 뭐라 그랬어요 우리 대운만 5만년이라 그랬어요 2천년이라는 건 오차범위 안에도 안들어가요 백년이나 이천년이나 따져 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연조에 주눅들 필요가 뭐가 있냐는 거예요. 전부 기성 종단을 따라갈 생각은 필요없이 그거는 오차범위 안에 있는 거라서 우리의 일만 잘하면 되는거죠. 일만 열심히 하고 뭐만 열심히 해도 저거 원불교도니까 저렇게 해야한다 이래야 되는 거예요. 브랜드 가치 만든다고 돈 투자해봐야 돈 내는 방법도 모르는 우리 교단에서 뭘 하겠어요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된다는 거죠 제일 먼저 그거부터 대종사님은 시작했다는 거예요 내 정도에서 할 일은 뭐냐 모자이크 할 필요가 없어요 구멍구멍마다 쓸 수 있는 인재가 있어요. 더 많이 배우고 오래된 교도가 있어도 구멍이 비잖아요 자발적인 자아가 없다는 거예요 이런 자발적인 자아가 어느 사회에서 뭘 하냐에 따라 셀프리더라고 하는 거 한 사람의 살아있는 이런 사람들이 뭐 파는 데서도 그런 말들을 하는데 종단에서는 더 중요한 말들이예요 굴곡이 있을 지언정 절대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절대 거기서 떠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 있는 사람들 조차 과연 여기 소속돼 있다고 느끼는가 소속돼 있다고 느끼는 교도들인가를 재검토해야 된다는 거죠
사실 성업 백주년 성업적으로 해 놓을 수 있는 거 많이 있고 진짜 우리 백주년에 살아서 역사적인 사람 아니예요? 역사의 한 파트를 담당한 거 너무나 자랑스럽고 너무나 저는 혼자서 히죽이죽해요 인제는 200년 사람들 백살까지 살아요 우리도 큰병 없으면 백살 보잖아요 나 혼잘 살기는 가능 한거예요 팔자가 안되면 죽을 수 있지만 교단이 근세에 만들어진 교단잉 100년 이렇게 왔다는 거 대종사님이 대단한 분이라는 걸 모든 분들이 인식
우리는 그냥이잖아요 그냥 이렇게가 아니라 초기 교단의 걸 살피기 위해 여러분들에게 감히 실증적인 사람이 돼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나는 우리 교단이 실사구시의 모든 것들이 적용되는 교단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요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대종사님과 견주어봤을 때 대종사님이 원하는 대로인가 내가 하는 이게 마음에 차실까 양에 안 차겠죠 그렇지만 어여쁜 마음으로 봐주실 수 있는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으로는 그렇잖아요 얼마나 움직였는가 얼마나 그렇게 살아보려고 이뻐 보이게 하려고 해 봤는가 하는 생각을 우리가 백주년에 해 본다고 하면 아마 우리는 영산.. 에 갈 때 내가 한 번 이 백주년이 얼마나 뜻깊어요 나를 한 번 완전히 대종사님이 계셨다는 것을 내 발자국이 대종사님 발자국에 닿은 정도로만 가면 좋겠다 총부를 돌아다닐 때 그 마음이었어요 건물들 속 안에 들어갈 때 어떻게 하셨을 때 뭐가 눈에 띌 떄 반짝반짝하듯이 몇십년씩 있든 홍두깨가 있을 때 손때문든 거 나올 때 이게 언제꺼냐 정말 반짝반짝 모래알 우리는 변화가 없었다 총부 자체가 그래도 많이 불사르고 했다는데도 아직도 옛날 주춧돌이 있는 건물이 있으니까 가보면 서류 같은 것도 별거 다 있어요 이런 교단이예요 얼마나 많아요 만약 그것들이 이게 고고학자의 마음이예요 저는 한번도 근대사를 해 본 사람이 아니예요 구석기에서부터 신석기 청동기 대단한 문명이라고 하는 이집트 문명도 신석기 문명에서 청동기 발굴할 때도 마찬가지고 근대사에 관한 이런 것들 진짜 오버랩이 옛날 시대로 돌아가는 거 전라도 땅을 밟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거기서 살았던 사람 같애 다니시면서 우르르 오셨다 우르르 가고 그런 게 아니라 고즈넉하게 내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가지고 했을 때 그렇게 지내보시면 대종사님에 관한 모든 것 초기 교단의 모든 것들이 주관적일 수도 있고 오류를 줄이려고 노력을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틀렸을 수도 있어요 하려고 노력해보니까 가까이 근접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게 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대종사님과 관련된 초기 교단이 내가 판단했을 때 유품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을 봤을 때 이거는 아니다 하는 것들이 나오는 것들이 내 주관적인 것들이 잘못된 상태에서 된 것도 있지만 많이 맞는 것도 있잖아요 이제는 감성적 처리가 아니라 강의 나온 목적중 하나가 그거예요 일당백의 역할을 하게 됐을 때 감성적으로 하는 건 백주년으로 끝나야 한다 이제 철저하게 기록의 역사상으로 할 수 있게끔 되어야 해요 초기 교단과 선진화 이런 검열을 거치지 않으면 실제 작품으로 남는 거예요 작품이나 기획으로 남으면 안되는 거예요 담당하는 거 아닌 그 당시 계셨던 지존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우리가 늘 하는 공사 우리끼리만 하는 공사가 아니라 열린 공사를 해서 검열이 끝나서 그 대종사님의 것들은 모든 것들을 이 완벽하게 할려고 하는 노력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그거로 인해서도 안될 때도 있어요 그치만 적어도 그 작업들을 하고 누군가 스케일링하고 되고되고 그렇게 되도록 하려면 저변의 확대가 되어야 하고 저변의 확대를 할 때에 기준으로 해야 할 때 대종사님.. 더 많이 할 수 있죠 대종사님 말씀드려서 며칠몇날 안하겠어요 선언적으로 뭘 어떻다 얘기한들 실제 대종사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원불교라고 하는 거 불교라고 하는 걸 지금 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봤을 때는 새 시대를 열었고 새 시대를 연 주체 새 부처님이란 말이예요 대종사 십상 교단적으로 만들어졌을 때 어느 기성교단의 건물 성지에 건물 짓는 다거나 교화적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석상이라든가 그림이라든가 조각품이라든가 이런거 할 때 교단의 교리와 대종사님의 교리와 교단의 필요에 의해서 맞춤으로 하지 않는 게 어디 있냐는 거냐 그거를 그리는 사람 그거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역량만 가지고 하진 않는다 그 사람이 교단에서 필요로 할 때 예술적인 창의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교리상의 걸 합류했을 때 정확한 게 되고 그 다음에 예술을 봐야 한다. 그런데 십상 같은 경우는 제가 십상을 관심 가진 이유 중 하나는 박물관 자료라 해봐야 20장 안돼요 그걸 주시는데 정말 진짜 만화 카피한 거 같이 됐어요. 십상이 잘 만들어져야 되는데 나중에 다른 게 돼 있겠죠 그래서 십상이 더 절실하다는데 새롭게 만들어지는 순간 만들어졌을 때 이런 건 교단적으로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옥에 티가 만들어지면 안 되는데 옥에티가 뭐냐 다 잘되고 조그만 거 잡는 건데 너무나 큰 거에서 오류가 범해지면.. 이 자체에 대해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건 교도들도 잘못이라는 거죠 아는 가운데에서는 진짜 이렇게 되진 않겠죠 너무 크게 잘못된 거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디에 대해서는 십상 문제에 대해 썼는데 20년 박물관 와 있는 동안에 가장 많은 전화를 받은 게 이 부분이다 교육을 시켜달라 이게 상당히 많은 사람의 의견 뭐가 잘못돼고 이렇게 된게 그거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그거를 보고 나니까 앞으로도 있으면 어떡하냐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겠다 이래요 글로 썼더니 이해를 하시고 동조하시는 분들이 있구나 어디에서라도 한번쯤 얘기를 해야겠구나 하는 걸 안암교당에서 하신다니까 이런 기회를 하게 되고 저도 여러분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건 어떻게 해서 제정됐나 십상이라는 게 왜 제정됐나가 다 있어요 십상으로만 알았지 정산종사님이 십상이라는 건 모르시잖아요 십상이 이렇게 된 걸 부처님의 일대기 팔상에 버금가게 이렇게 해서 독자적으로 대종사님은 십상으로 전 시기를 표현을 해서 하신 거를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림으로만 보고 이렇게 하셨는데 이렇게 큰 뜻을 가지고 정산종사님이 이걸 가지고 예전에는요 봐보세요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 기승전결을 찾기가 힘들어요. 초기 교단은요 옛날에 무지식자들이 많았어요 진짜 그런데 그런 분들을 다 모아서 대종사님이 하실 때도요 어떻게 완벽하게 포맷을 할 수 있을까 시작과 긑이 어떻게 될 거고 어떻게 될 거며 뭣 때문에 하는지 또 어떤 연유로 후대까지 가는지 이 모든 것들이 분명해요. 그러나 지금은 왜 이걸 해야만할까 하는 작업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그런데 그게 비교가 돼서 자손만대 5만 10만 갈 수 있게끔 하는 정도로 공을 들이나 아니나. 순간순간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교도들도 마찬가지로 신문에 나오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초기 교단의 사람들 처럼 누구나 다 똑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내가 누군지를 알려줬는데 누군지를 재차 물을 필요가 있게끔 하면 안되는 거죠.
십상도 - 언뜻 봐도 한마디로 얘기하면 그렇지 않아요? 산신령의 포맷이에요. 새시대 새부처님이 말로는 계속하고 자부심을 가져요. 기존에 천년 내려오던 종교 자체에 모든 모순점을 껴안고 그거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새부처로 거듭나신 교법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대종사님에 대해 굳이 우리가 호랑이가 여기 왜 필요하며 굳이 여기에 계시는 저 자체가 한심하게 있는 대종사님 아니예요? 도교나 샤머니즘에 쓰이는 포맷에 새 시대 새부처님에게 쓰이냐고 공인받지 않는 그림이 나오는데 왜 반론 제기가 안 돼냐 그래서 난 너무 속상했어요 대각절 전에는 적어도 한번은 써야 되겠다 하고 쓴 거예요, 진짜 쥐어짜서 오는 게 아니라 이걸 쓰고 있는 내가 슬프더라고 왜냐 이 그림을 봤을 때 한눈에 보면은 산신령도 아니예요? 부인할 수가 없는 이런 거야 장항대각상 위치가 어디예요? 노루목 고개예요 노루목 고개에 호랑이를 그릴 일이 있냐고 호랑이는 어디에 있어요 그죠? 끼워 맞추자면 뭐 그런데 달력을 계속적으로 해가지고 난 달력을... 이런 것들이 이렇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속상하시지 않겠어요?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되잖아요 뭐라고 해야 되겠어요 다른 교단에서 샤머니즘 단계의 교단인 줄 일고 기성 교단의 절에 가 보면 산신각 구색 맞춰져 있는데 우린 뭐냐고 우린 본존불이 있잖아 저렇게 모셔져 있는데 이건 정말 짚고 넘어가야 된다. 십상 문제점이 다 있는데 그 중에 하나만 한 번 새 시대 새 부처님을 표현한 것 치고는 말이 안 된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관천기의상도 보면 문제점이 있어요 얼굴에서나 위치에서나 낭떠러지 같잖아요 삼밭재나 이런 걸 보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거잖아요 밑에 보실 때 하늘 쳐다보고 있는 거 같아요? 오른 쪽이 새로 그려진 그림인데 그 자체 만으로도 문제점이 많죠 여기... 문제점 써 놨어요.
읽으셨죠? 삼령기원상에서도 보면 이렇게 위치라든가 이렇게 우리가 보면 술병이 애가 술병을 산에 갖고 올라가요 그런 것들도 얼굴 표정같은 것도 그거에 대해서도
얼굴의 그 느낌에서 보는 거 이런 것들도 우리가 공감가는 거
구사고행에서도 이런 면에서 봤을 때도 스승처럼 가는 그런 건가 대안으로 할 수도 있겠으나 모자 정자관이라고 하는데 다니면서 쓰는 건 아니거든요 집안에서나 주변에서나 쓰는데 이런 표현이라든가 우리가 이런 걸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거죠
강변입정상 이건 요즘에 보여지는 이런 것과 풍경을 그대로 하는 거고 읽어보셨죠? 그 다음 여기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데 오히려 같은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장항대각상.. 이렇게 이제 문
영산방언상도 보면 여러분 보세요. 대종사님 빗자루질 하는 거부터 이런걸 방언공사라는 큰 일을 기획하시고 창립정신 창업정신인데 이런 걸 저쪽에서 보면서 이렇게 하고 계셨겠어요? 같이 실사구시로 했을 텐데 이건 굉장히 다르죠? 동떨어진 채로 바라보고 이런 거 아니고 제일 잘못된 거가 옥녀봉 상징적이잖아요? 두 갈래로 나야 되는데 하나로 되어 있고 – 한다고 하더래도 다른 것들을 굳이 찾자면 많은 것들이
또 혈인법인도 대개 보면 봤을 때 이거는 4-5월 6월달 이런 땐데 겨울 같은 느낌 나지 않아요? 겨울 같은 느낌이 나죠 매의 눈으로 더 찾을 수 있으면 많은 걸 찾을 수 있어요 심상도 배경도 불분명하게 나와 있는 거 이런 것들 또 사진이 너무 다 이렇게 돌아가신 활동 많이 하신 지난 그 이후의 거다 이렇게 돼 있는데 그거는 이제 그 사진밖에 없으니까
봉래제법상도 보시면 이 때만 하더라도 항타원님이나 하는 분들이 왔다갔다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디 누구도 이걸 보면 교단의 정녀 분이 천명 넘는데 그 그림 안에는 의미상으로 봐도 이렇게 표현한 건 너무 교단적인 정서상 아니라는 거죠 신룡 전법 이건 ....
계미열반도 디테일한 걸 없애는 걸 했지만 열반의 웅장함 슬픔을 표현을 해야 하는데 그런 걸 더 표현이 좀 ... 틀렸다 맞았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법복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법복 입은 사람 상징적인 걸..
십상 문제에서 볼 수 있는 게 사실적인 고증의 문제 그림상의 나온 풍경과 인물과 그런 모습들 실제적으로 좀 논의가 됐으면 저거를 맞았다 틀렸닿 ㅏ기 이전에 열반이 돼셨을 때 장애인에 대해 껴서 봤을 때 구조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초기 교단의 일들을 특히 대종사님의 일들을 검열을 이걸 공중에 알려지기 전에 됐을 때 상당히 많은 것들이 스케일링 될 수 있는데 그 단계를 안 거친게 아쉽다는 거고
교단의 정서 및 겨윤과 반대적 표현 너무 기성교단 흉내에 치중 무릉도원의 모습이지 생활불교 표방 교법 맞지 않다 너무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림을 가지고 표현을 할ᄁᆞ 하는 생각으로 작가적인 소지만 들어 있지 교단적 소지가 직접적으로 들어있지 않다는 걸 말할 수 있다.
과연 대종사는 아는 사람이 그린 것인가? 기성종교의 아류로 표현 된 것 연령 삭발시기 계절 경치조차 다르게 표현하고 대종사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감히 대종사의 경륜과 교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삭발 안했을 때 삭발한 걸로 그려지고 하는 것들 어색하더라도 백주년 때에는 동의를 거친 상태에서 다른 단계가 있었어야 된다는 거죠 있어왔으니까 그대로 하는 건.. 연대별로 머리가 어땠을지 대종사님이 활불로서의 표상으로 맨 처음에 사진 계세요 9년 지나서는 우리가 상상적으로 알고 있는 건데 그 전에 있었던 초선지 사진을 그대로 그렇게 하니까 일방적으로 교단의 의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두 번째고 작가적인 부분만 있진 않았나
여기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고 굳이 대종사 십상을 문제시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 박물관에 오시면 2층에 석상이 모셔져 있잖아요 석상 앞에 왼쪽에 보면 개교정신 있고 오른쪽에는 창립정신 돼 있죠 돼 있는데 그 자체가 잘못됐다 아니다 논의를 하시기도 했대요 그것도 상당힘 많은데 요즘에는 외국에서 많이 오시잖아요 첫 번째 하는 얘기가 예수님 옷들 이렇게 된 거 원불교 불교 알려고 왔는데 똑같은 데냐? 이렇게 물어요 아차아차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묻는 거보다 더 자세히 물어요
개교정신도 보면 대종사님 두루마기 입으신 데다가 우리가 보기엔 법락 같은데 천주교 영대예요 법락이 아니라 천주교 신도가 그린 거래요 그렇게 되니까 한눈에 봐도 이건 영대예요 지적하는 걸 떠나서 그 다음에 원불교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하고 선악의 구별을 해놨어요 교리상 지옥과 천당의 개념이 없는 종교에요 그죠? 자세히 보셔야 돼요 이상태로 26년이 그대로 왔다는 거예요 내가 박물관 와서 내리자고 할 때도 안 내리고 그냥 왔어요 언제 없어질 건가 떠나서 이렇게 26년 오는데도 내리자는 사람이 없으니 무서운 거예요 장항대각상이 이렇게 됐다 저렇게 됐다 하는데도 공인 안받고 그대로 놔뒀어요 달력까지 만들어지면 교단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되는 거잖아요 아무리 출판국에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걸 액자에 꽂는 사람도 있고 지금 이걸 문제시하지 않으면 개교정신도도 내릴 수 없을 거 같고 새로 그려진 것도 몇 십년 갈 거 같다 이게 노파심일까요?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해야겠다 – 보세요 이거 자세히 보셨어요? 원불교 믿으면 천당 가요? 교법에 이런 거 하나도 없거든요 낙원세계만 들었지 우리가 아는 낙원세계 포맷 있잖아요 전 맨 처음에 왔을 때 깜짝 놀랬어요 돈이 없고 그러니까 저걸 못 쳐다보게 대종경으로 다 세워놔서 말씀만 보게 해 놨어요 외국 사람들은 저 그림보고 깜짝 놀라요 사우스캐롤라이나 교도들이 왔는데 직접적으로 이 얘기를 또 하더라고요 지옥간 걸 더 좋아할 수 있지 않나? 이러기도 하고 원 서클 안의 사람만 이렇게 되냐 밖이냐 정말 놀랄 일이잖아요 본의 아니게 원불교 헤드쿼터 안에 ... 원불교 역사박물관에 표상으로 해놓은 건데 누가 아니라고 하겠어요 아는만큼 보인다잖아요 아셔야 돼요 모든 일들이 내가 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왜 소속된 것들에 무관심하냐는 거예요 알 수 있게끔 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개교정신 이런 것들을 읽어보시면 이분법이라는 걸 여기서 ..... 뜻하지 않은 기획이 되 버리는 거니까 여러분들이 일당백이예요 나 하나 알아가지고 열명 천명이 내가 원불교 교도로서 남에게까지 알고 올바로 전달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면 교리를 믿습니다만 해가지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 2000년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믿는 종교는 숭배하는 종교는 숭배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럴까 저럴까 해 보고 우리는 지자본위 – 깜짝놀랬어요 박물관 갔는데 지자본위입니다. 니가 틀렸다 했으니 니가 해라 – 이거 백년 전에 해 놓은 분이 지자본위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아는 사람이 해라 했을 때 굉장하다 그랬어요 그분의 혜안을 우리가 와서 봤을 때 지금 모든 것들은 실체의 카피다 그랬어요 카피가 잘못돼면 실체는 알게 모르게 증발이 된다는 거예요 카피는 실체만큼 소중히 해야 된다는 걸 느끼셔야 된다는 거예요 다른 것들 덜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가 보는 대종사님 원불교의 존재에 자체를 갖다 논할 수 있는 법신불이라는 거예요 이런 게 잘못됐다고 하는 건 가슴깊이 반성도 하고 새롭게 해 나갈 대안이 있어야 되는 거니까 누군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교도들 교무님들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도록 알아야 된다는 거죠 지자본위의 교단이라는 걸 느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은 얼마나 대종사님을 알고 모시는가 우리부터가 대종사를 바로 알고 모시지 못하니 기성종단의 아류로밖에 표현을 못하는 그런 문제를 여러분 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느낄 수 있게끔 돼야 한다는 거죠
우리 교법을 바로 알자는 거 이 자체에 대해 알 수 있게 됐을 때 적극적인 모든 것들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아까 말씀 드렸지만 교단의 감수 자문기관이 필요하다 교화부에도 자문기관이 있고 그래요 그래도 초기 교단의 모든 일들은 철저한 감수와 감찰을 거쳐서 제대로 되게 오만 년의 대운이 터서 영원불사의 교단으로 믿고 있는데 그 교단의 초기를 장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지금 때에 첫 번째 단추를 제대로 꿰야 한다 이 첫단추에 해당하는 시기에 적극적으로 알고 혜안이 갖춰질 수 있도록 하는 교도가 돼야겠다.
제가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거예요 카피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나도 죽는다는 거 실체가 없어질 때 나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없는데 그렇게 됐을 땐 껍질만이라는 거죠 우리는 초기 교단의 세상 사람들의 비교 기준으로 하는 소외계층 무식자라고도 하고 무산자라고도 하는 이런 사람들 오히려 대종사님 모시고 그런걸 실행할 때에는 완벽하게 장엄하게 웅대하게 앞을 보고 해서 대종사님 간 길만 그대로 따라간다면 나도 하나의 도구가 되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받들었다는데 우리는 어떤 상태의 교도인가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고 교단의 많은 것들이 또 있잖아요 관심을 가져준다면 매의 눈들이 많아진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데 감사 감찰 이런 시기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큰 역할을 하시고 저는 개인적으로 교무님 존경해요 새롭게 시작하는 건 아니지만 작은 힘이 모여져서 큰 힘으로 만들 때에 우리 대종사님 말씀하실 때에 지자본위 알아야지 왜 하는지도 알고 알아야지 내 역할이 뭔지도 찾아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시겠죠? 저도 제가 맡고 있는 한은 열심히 하려고 하고 대종사님 제자로서 자랑스럽지만 부끄럽지 않을만큼 노력하도록 늘 깨어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
여러분들이 어떻게 들으셨나도 궁금하고 또 지금까지 가지고 계셨던 일들 중에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성의껏 대답해드릴 수 있는 것들은 질의응답을 하면서 관심분야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 같아요 십상 중심으로 질문 있는 분?
도심) 저는 이 도심이라고 하고요 준비하신 피피티 보면서 궁금한 게 있었는데 그림에 보면 원 모양으로 해 놓으셨잖아요 하얗게 중세시대 때 그림같은 것들 보면 기독교가 이제 많이 기독교 미술이나 이제 많이 발달됐을 때라서 사진을 보면 이제 수녀님이나 성모마리아나 예수님 사진도 이제 동그랗게 되어 있더라고요(불교에서는 광대) 문제점을 제시하실 때 그 부분도 혹시 문제점으로 지적했을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타종교에서도 그렇게 하는데
불교에서도 하는 일이 있으니까.. 말하자면 그런 것까지 하자면 또 굉장히 많은 논의가 될 수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기독교적인 그림 그게 더 익숙하니까 하는데 그쪽에서만 하는.. 지금까지 했던 거에 관심이 없이 스캔하듯이 봤을 거예요 우리 것도 마찬가지고 외국 것도 마찬가지고 기독교 할 때도... 지금 어떤 것들이 잘되고 잘 못되고 이런 것보다도 중요한게 내가 자세가 돼 있다는 거죠 대종사님 알아본 준비된 분들이 있었다 하는 거 같이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만큼 보이니 이걸 계기로 해서 미력하게나마 전달을 시켰으니까 성화볼 때 어떠한 것들을 볼 때 그런 것들을 알고 봐야 한다 어떤 표현이 더 좋을 거 같다는 주관적 의지가 생길 수 있을 거라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의 자격으로 말씀을 드린 거가 앞으로 있을 또다른 일들이 있을 때 이것을 바라볼 수가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하는 거를 이렇게 있을 때 개교정신을 보고 놀랬댔어요 내가 본 저는 교전을 보고 입교를 한 사람인데 내가 본 어느 교전에도 그런 게 없었는데 이건 무슨 일일깔그런게 있었어요. 거기 보면 또 하나 그림 개교정신도 옆에 보면 창립정신 보면 방언공사 위에 ... 대종사님 구름 위에 옥황상제같이 표현돼 있잖아요 하나하나 보자면 그런 것들을 한번쯤 봐줬으면 싶은 걸로... 정서상으로 또는 교리상으로 이런 것들이 맞는가 의문을 가질 때 적극적으로 관찰을 할 수가 있고 소속감을 느낄 수가 있다는 거죠.
채규진이라고 합니다. 강의 인상깊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디서 봤는데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 친일행적 그림에서부터 왜색이 드러나는 거죠 일본풍이 들어가는 그림이 유행이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는 이 그림에서도 왜색을 느끼긴 했거든요 한국의 호랑이 그림하고 다르고 왜색의 그림이나 작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거든요
생존하는 사람뿐 아니라 70대분이세요 30대 초기에 십상을 모셨교 70이 되셔서 두 번째 그린 분이세요 왜색보다는 그 분의 말에 의하면 한국 문화의 정서상 그런 그림을 그렸다 표현을 비슷하게 하시는데 왜색은 그 전에 있었던 그림에 의해 찾아볼 수 있는 게 있어요 대종사님께 팔타원님이 금강상 병풍을 갖다가 잘 그려지고 그랬는데 글도 잘 알아볼 수 없고 이랬는데 몇 점 보관하는 작품 중에 사진 중에 법복 중에 일부에 왜색들이 있어요. 동양화 한국화에 그 그릴 때 개인의 문제인 거 같아요 딱히 왜식으로 그거는 크게 중요하게 안 봤습니다.
초기교단하고 관계된 것도 연결해서 질문해 주세요.
저도 질문하겠습니다.(전성욱 교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말씀하셨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문제제기 하신 부분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내용과 문제 발견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알고만 있으면 되나 바꿔갈 노력을 어떻게 할지 실제로 해보신 경로에 대한 것도 좋고요
사실은 어떤 경로라기 보단 박물관이라는 것이요 문화부 소속이예요 밟았다기 보다는 자문위원회가 있어요 대종사님 뵌 분서부터 퇴임하셔가지고 박물관의 자문위원으로 계신 분이 40분이세요 맨처음엔 5분내외였는데 굉장히 많이하고자 하셔가지고 살아있는 전설분들이세요 하나를 여쭤보면 이구동성으로 할 때 옳은 답들이 순식간에 나와요 박물관에 와서 제일 잘한 것중에 꼽자면 자문위원회 활성화라고 봐요 퇴임한 교무님들이 다 오시면 좋겠는데 대종사님 1기부터 죽 해서 상당히 많은 중요한 일들이 여기서 결정-제기되고 올려지고 하는.. 십상 신문에 썼잖아요 반응도 굉장히 많이 이렇구나 하고선 합일점으로 많이들 오셨더라고요 자문위원회를 그저께 통과를 했습니다. 십상 서류를 올렸다 하는 거를 자문위원회 거치고 원로님드이 너무나 속상해 하시고 더 여러분들은 상상을 못하십니다. 우리 교단의 보물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초기교단부터 지금까지 다 보고 일구셨잖아요 어느 여염집의 8-90대 노인을 뵀을 때 저런 총명한 아직까지도 90이 넘으셨는데도 독서를 1시간 2시간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정력도 가지고 계시고 관심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문제는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원로님들은 즉각 반응이세요 즉각 어떻게 한다고 하면 서로 논의를 하고 이렇게 해요 우리한텐 문제가 저는 관심이 없다든가 얼마나 잘못됐든가 세상이 무너지나 하고 있으면 원로님들은 안그렇다 자문위원회를 빨리 소집해서 그저께 절차를 밟아서 빠리빨리 올려보라고 해서 서류를 지금 하는 중입니다. 진실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해 주십사 해서 초기 교단과 대종사님과 관계된 어떤 걸 만들어지는 시기가 될 때는 검열을 해야겠더라고요 정례화시키는 걸 정식 루트 밟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뭐 있을 때 교무님께 말씀들리면 교무님들이 논의 거쳐 총부로 올리고 하겠죠
됐나요?
사실 초기교단 – 정말 내가 백년의 역사적 주체다 라고 한다면 저라면 영산과 성지들 한번씩 두 번씩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완벽할 만큼 밟으면서 내가 누군가를 대종사님이 알려주셨는데 내가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셨으면 정말 좋겠어요 영산은 졸다가도 영산들어오면 기운이 달라요 차안에서도 기운이 달라요 느껴보세요 박물관에 들어가시면 정말 기운이 달라요 그거를 저 같은 사람이 뭐가 있겠어요 여러분과 똑같이 유물들을 보면서 만지면서 약올리는 거 같은데 타임머신 타고 갔다오는 기분을 어찌 알겠어요 교무님들은 아시는데 저는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인데 수용품들이 만져졌을 때 무슨 기운인지 모르는데 밖에있다 총부로 들어와도 다른데 총부에서 박물관으로 들어올 때 그 기운 어떨 때 그게 들까 하는 걸 한번 느껴보세요 대종사님이 보고 싶고 어떤 대종사님의 제자인가 이런 걸 알아보고 큰 일을 하고자 할 때 불안하고 외롭고 하고자 할 때 총부에 오는 거예요 대종사님 실체를 느끼시는 게 바로 박물관이예요 기운을 느끼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실학자 몇 명이 있다 그러고 독립 몇 명이 있다 그러고 그러잖아요 개화사상가 그렇게 많다는데 그 사람들이 나라를 바꿨습니까? 정말 실학을 실학답게 했다고 하면 뭐가 바뀌었냐 – 이렇게 말하면 혼나더라고요 그래도 – 그 개화사상가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백만의 제자를 가지면서 근대화를 이끈 사람이예요 근데 교과서에 나오시냐고요 이게 제일 억울해요 대종사님의 실체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이해하고 근대에 필요했던 분이고 잘 살 수 있는 기초를 닦은 종단이라는 걸 알면 대접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런 작업이 어디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게 백주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교무님이 강평 이제 해 주세요.
초기교단의 많은 문제점 이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질문하실 거라 생각해서 긴장하고 왔는데 질문을 .. 이제 박물관에서 가을에 그런 걸 기획하고 있어요 영산 성지를 오게 되면 거기에는 그 당시에 대종사님이 아카시아 밥 이런 거 있잖아요 성지 밥차림 이런 거 준비를 했더랬어요 총부에 오면 그 당시 사실 20년 20년씩이예요 창립과정을 하면서 실지로 완전한 실체를 하면서 성공의 역사를 갖고 있는게 익산이고 – 성지 그 곳에 맞는 걸 기획을 해 보고 있어요 많은 좋은 컨텐츠들을 가지고 총부 우리뿐만이 아니라 총부 기관들에게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하시면 더 많이 풍요로워질거라고 봅니다. 초기 교단이 예.
초기 교단 질문은 아니고 유물을 많이 만지시면서(전성욱 교무) 대종사님의 손길을 느끼실 거 아니예요 빙의됐다 그렇게 표현을 하시는데 대종사님의 성격이나 대종사님이 이렇게 마음을 쓰셨구나 실지로 느끼신 것이 있는지 체험하신 걸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손 안 가 본 거 없이 ... 이 영광을 아시겠냐구요 난 여러분 실제 하자면 키는 175에서 176이세요 발사이즈는 265 키에 비해서 발이 작으세요 옷을 입으시는 것도 보면 우리가 봤을 때 몸무게는 한 80정도 말년에 편찮으셔서 그렇게 하실 때는 복수가 차고 계셨는데 바지 허리 사이즈가 46...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일상의 옷들도 다 갖고 계시지만 우리는 사실 제가 박물관 만들면서 의복 성의 하면서 이 세상에 이렇게 스타일리쉬한 분이 계실까 이랬댔어요 가세가 가난한 교단 수위단원들이랑... 모임이 있었는데 화도 나 있는 상태였는데 이런 대단한 분들을 상해져 있으니까 옷들도 만져보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만져 본 최고의 캐시미어는 대종사님 오버에요 이렇게 멋진 옷을 누군가가 입는다면 그 우아함에 남자분이래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겠다 할 정도로 수위단원 모셨을 때 우리 예전에 그렇게 가난했다는데 대종사님 부르주아셨나보다 이랬어요 너무나 멋있고 너무나 좋은 감이고 어디에서도 잘 못 보는 알고 보니까 일본 왕족들 중국 .. 흔히 말하는 수입품같은 거
면 한 줄에 울 한 줄에 이런걸 넣어가지고 날실 씨실 한 것도 우리나라에 없는 것도 많았고 기계적으로 ᄍᆞᆫ 거 하고 진짜 곱게 ᄍᆞᆫ거 하고는 천차 만별이거든요 그 최고급의 것들이 그야말로 아 그 옛날에 가세가 가난해서 왕가 사람들만 시공한 건 아니거든요 너무나 대단하게 모신 거를 유품에서 흔적을 보면서 민속 박물관에도 없어요 등긁개라던가 효자손 호롱불 같은 거 어떻게 이렇게 단아한 걸 많이 쓰신 걸 보면 미감이 아주 특별난 걸 느낄 수 있다 – 보통분이 아니다 자주 쓴 건 마지막까지 갖고 계셨던 꽃병 보면 촛대 만들었다는 것도 초 기능 만이 아니라 미감까지 해가지고 나온 걸 나온 거잖아요 백년 전에 이미 그 생각을 가지고 모든 걸 하신 거예요 그 주밀함 같은 걸 유물에서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뵙고 싶어요 구세를 하시는 분이지만 미각적으로 봤을 때도 이런 분이 어디엔가 있을까 또 없을 거 같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유물 하나하나 보면 성운이 느껴진다 감으로 느꼈댔어요 숙연해지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하고 내가 하고 났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싹 안고 계신 거 같은 느낌 수장고 내에서 작업하는 순간에는 그런 느낌을 몰라요 정말 그립고 그리워서 대종사님의 실체를 어딘가에서 찾고 그럴 때는 지체하시지 말고 박물관으로 오시면 느끼실 수 있습니다.
백주년이 지났기 때문에 조금만 있으면 진품이 유물이 굉장히 많아요 우리 교단이 카피를 못해서 진품이 아직 수장고에 있어요 천주년 아니면 못볼 정도로(?) 완벽히 복원처리 해서 몇 천년 됐을 때나 공개하고 싶어요 카피 해놓고 싶어요 그게 제 심정이예요
백주년에 살아있다는 거 뿐만이 아니라 박물관 유품 볼 마지막 기회라 느낀다면 박물관에 지체하지 말고 오시면 원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박물관에서는 원하면 됩니다가 진짜 실현되는 곳이예요 하나도 없이 시작했잖아 근데 이만큼 했잖아 원하는 된다는 걸 오셔서 느끼시길
이제선) 관장님 전부터 애썼는데 다시 만나서 반갑고요 하나도 그 열정이 변함없이 유지되시는 게 감명깊었고요 질문은 초기교단은 아니고 평소에 갖고 있었던 의문인데 정산종사님의 기쁨을 언급한 것중에 첫째가 이나라에 태어난 거고 둘쨰가 대종사님을 만난 거라고 했다는데
왜 이나라에 태어난게 기쁜일이냐
통합구원의 유일한 종교가 나온 곳이니까..? 그 자체를 하신 분의 제자라는 거 그럴 거 같애 대종사님의 제자라는 거 그게 내가 태어났다는 거 아니면 안 되니까 그래서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기쁨이 큰거겠죠
대종사님의 만난거와 다른 게 아니잖아요
같은 얘기지 내가 태어난 건 대종사님이 만들어놓은 그 모든 것에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거죠 내가 소속감이 그렇게 된다는 거죠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정산종사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원불교 아닌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났어도 좋은줄 모르고 태어났으니까 그럴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인명) 강연 너무 잘들었습니다. 관련있는지는 모르곘는데 선진님들에 대해 강연준비하다보니까 초기교단 사진 이런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홈페이지나 이런 데 많이 올라와 있는 사진 보니까 자세하게 찍어놨는데 그게 발굴하는 재미라 그래야 되나 그런 게 있지만 이게 대체 어떤 연유에서 찍힌 사진인지 설명이 없는게 많더라고요 자료는 남아 있는데 정리 중인 건지 박물관도 복원 관련이 있으니까 실질적인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는데 도움이 있음에도 덜정리가 되고 활용이 되는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박물관의 유물이 있는 것 중에 한 20년이잖아요 앞으로 한 17년 정도 분량이 앞으로 하면 더 많이 들어올 거예요 많이 찾아지더라도 사진을 봤을 때 사실 저는요 사진 봤을 때 영어공부하는 거 같애 무슨 뜻인지 모르고 보잖아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와갖고 사진 이름이 안붙어 있어요 제목이 없는 거야 몇 십번 몇 만번을 클릭을 했겠어요 굉장히 큰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내릴 수가 없었는데 불구하고 진짜 조금만 더 사진이 있었다면 좀더 잘 할 텐데 야박하게 요만큼뿐이 없나 그런데 지금 지나고 보면 했을 때 대종사님이 딱 필요한 그 사진에 있는 건 다 있었어요 다 본 거야 나중에 본 게 뭐냐면 대종사님 서 계신 거 대종사님은 뜻으로 봤을 때 내가 해석하기엔 미륵불 활불이라는 거야 앉아계신거 보다는 서계신게 많아야 되는데 서계신게 없는 거야 대부분이 앉아계세요 활불로서의 역할을 다 하시는데 후대에 남겨진 자료는 그게 아닌 거야 설마 이랬을까 하는데 맨나중에 대종사님 직립보행 하신 사진 보고 반가워가지고 창립도에 그걸로..
딱 필요한 거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남겨진 거 대종사님을 알아 본 그 초기의 선진들이 준비된 교도라는 거예요 대종사님이 역사를 시행하실 때 준비된 교도인데 그 하나만 가지고도 그 분들을 공도할 의무가 있다는 거예요 그분들 받들면서 캤을 때에 대종사님을 풍요롭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속세에서 모든 것을 갖추지 않은 분들인데 그렇게 말씀을 잘 따르고 해서 본인이 생각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한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셨잖아요 그런 것들을 봤을 때 상당히 많은 것들을 중복된 것들이 많잖아요 지금도 계속 하는 걸 그 작업을 우리가 하지는 않는데 그런 분들이 그걸 많이들 하고 있어요 사진 누구누구라는 거 써있는 것도 있고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래도 꽤 많이 있고 덧붙여 설명하자면 기성교단도 다 보게 되거든요 그 때 같이 일어난 민족종교들도 있잖아요 귀는 어떻더라 코는 어떻더라 초상화를 그려놨어 우리는 대종사님이 사진사를 불러오라고 대동해서 중요한 걸 진영으로 찍은 거야 대종사님은 창립주 상징주예요 그런 데에다가 교전을 써 주셨잖아요 살아계신 사실주라는 거예요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변산에 가셔서 글을 다 쓰셔 가지고 할 수 있게 해놔서 훈련한 훈련주세요 사진에 모든 것들을 앞으로 비슷한 세게가 온다는 것을 예측하고 사진으로 남겨놨다는 점에서 대종사님은 대연출가님이다 대종사님의 혜안은 맨 초기교단엥 잡혀진 거 여러분 아시죠 제가 박물관을 하면서 그 다음 선진님부터.. 다는 못했지만 아이템보다 대종사님 떄의 아이템보다 더 좋은 게 나오지 않았어요 포맷이 완벽하게 된 교단이예요 실체에 대한 카피를 하고 있는데 카피가 잘못됐을 때에는 사라지고 사라진 거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실체가 그냥 없어지게 됐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교리가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나도 죽는다는 거죠 나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카피라는 것의 소중함 대종사님 유물이 살아있고 이런데 더 상하지 않게 하는 게 첫 번째 작업 자연적 소멸되는 게 있다면 그거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까지는 우리대에 해야 돼요 전무후무한 교단으로 오만년 대운이 터서 영원히 갈 교단이라는데 대종사님 유품과 수용품을 후대에 있을 5만년 10만년 교도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종교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아야 된다는 거죠.
대종사님 유물을 알아야 돼요 수용품의 혼을 넣어야 되는 거잖아요 우리를 위해 오셨다 가셨는데 오셔 계신데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고 모른다면 공유를 할 수가 없다는 거죠 할 수 있게 대종사님의 모든 것들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