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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법회 ◆

원기 94년 10월 31일 토요정례법회_ 경계 속에 진급이

작성자박은전|작성시간09.11.02|조회수206 목록 댓글 0

 

○ 원기 94년 10월 31일 토요정례법회 ○

 

 

☆ 청년강연

      교단품 8장을 바탕으로 정양선 선진님을 주제로 청년 6단 최성양 교우님께서 강연 해주셨습니다.

 

     

 

 

 

★ 김제원 교무님 설법

 

    

 

성양 교우님께서 강연을 잘해주셨습니다. 자료를 찾으려면 쉽지 않았을 거에요.

강연 맡으신 분들도 물어봐서 잘하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원불교 대종경에 이름이 나온 선진님들은 일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다 사진이 다 남아있다.

 

덕타원님이 교단품에도 나오고 선외록에도 나옵니다. 집안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대종사님하고 한 살 아래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덕타원님의 아버지 충산 정일지라는 분입니다. 이 분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이 충산님은 참 특이하신 분이신데요.

이 분이 1930년 39세입니다. 이 분이 천정리 사람이에요. 백수에 있거든요.

원불교를 서울에 가서 돈암동에 교당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종사님이 몇 제자하고 같이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이 분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이 분은 사업을 해서 돈을 좀 벌다가 휴향 차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대종사님을 만나신 거에요.

그 날 대종사님을 만나서 바로 출가하겠다고 하셨다. 첫 만남에서 출가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일지다.

둘이 한 살 차이입니다. 희한하죠? 영광 사람을 서울에서 처음 만났어.

그 소식이 집에 내려갈 거 아닙니까? 이 분의 자녀들이 누구 누구죠? 이 집안이 특이한 경운데. 우리가 공부를 해볼만한 집안입니다.

 

안타원 김동수라는 분이 부인이십니다. 그런데 따님들이 엄마 때문에 출가합니다.

대종사님이 사타원 이원화 할먼를 안타원 김동수를 잡으라고 보내십니다. 이 분도 항마위십니다.

원래는 남편이 더 높은 사람이 되고 부인은 보조만 하는데 오히려 이 분은 남편보다 더 공부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따님이 보타원 정자선, 정양선, 정광훈, 정양진 모두가 출가합니다. 정양선 이 분은 대봉도입니다.

다음 주 제가 총부를 가는데, 법훈 수여식 때문에 갑니다. 대봉도, 대호법이 나오는 날입니다.

출가한 사람의 사업 성적이 정특등 이상일 때 대봉도, 재가교도가 정특등 이상일 때 대호법이 됩니다.

이번에 잠실 교당 교도 회장이었던 한림 학원 이사장이 대봉도를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축하차 갑니다.

나머지 자식 분들은 대봉도고 정광훈 이 분은 예비 출가위입니다. 이 분이 아주 확실한 분이셨답니다.

중산님이랑 정양선 이 분이 하섬을 개척하셨습니다. 중산 정광훈 선진님이 나무에 일가견이 있으셨습니다.

정광훈 선생님이 원광 여중고 교장도 하셨구요. 하섬을 20년간 개척을 했습니다.

총부도 이 분이 매일 작업복입고 항상 작업을 하셨습니다. 서울 흑석동 사고가 났을 때도 이 분이 제일 나서서 하셨습니다.

이 분이 정남 1호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출가하는 것을 보고 대종사님이 하신 법문이 성양 교우님이 소개해주신 법문입니다.

 

一者出家 九族生天(일자출가 구족생천)

한 사람이 출가를 할 것 같으면, 구족, 구족은 아홉 명의 가족을 말하는 것이죠. 아홉 명의 가족이 하늘에 난다.

이런 법문을 대종사님이 소개를 해주셨는데, 제가 다시 읽어드리죠.

한 사람이 출가하매, 구족이 생천한다는 말은 한 사람이 출가하매 모든 친척이 그 인연을 따라 대도 받게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하신 법문이, 대종사님 법문입니다.

나도 처음 법을 펼 때, 가족으로부터 동리, 동리로부터 각 지방, 그리하여 수만 회원이 되었으며 당신도 당신 처음 출가하면서 원불교가 된거죠.

그 다음 일지네 집안이라든지 도산네 집안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승도산 이동안 선진님. 그 뿌리가 태성이 아닙니까?

저 친구가 도산 이동안 선진님 형제간인 이응철 선진님, 고산님, 한산님 이 집안이 몇 십명이 출가를 했습니다.

지금도 저 친구만 빼고 다 출가했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소개해드릴 분이 상산 박장식 선진님입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나와서 남원에서 제일 갑부였습니다. 이 분이 출가를 하신 거에요. 어머니의 소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내 회갑 잔치는 익산 총부에서 해줘라.’

그러셔서 상산님이 젊은 시절에 남원에서 운수사업을 크게 하고 있었는데 총부에 가보니까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보고는 감동을 하셨다.

그러다 출가를 결심하셨어요. 재가 교도 회장을 하다가 출가를 하셨어요.

지금 원불교의 법재, 교헌 같은 부분은 이 분이 거의 다 기초를 보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쪽 집안도 5,60명 출가를 하셨습니다. 신흥 이씨들 집안, 정일지 집안, 등등 그런 집안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수위단 원로 중앙님이신 호타원님 집안도 거의 다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 분의 오빠가 대산 종사님 시자로 30년 이상을 모신 장산님입니다. 그 밑에 여동생들 모두 출가했습니다. 그런 집안이 많습니다.

남궁부 집안도 저 친구 빼고 다 출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종사님이 하신 말씀이 숯 장수 아들은 숯 장수 하기 쉽고,

뱃사공 아이들은 뱃사공하기가 쉽듯이 가까운 데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 습관이 되고 직업이 된다. 그러죠?

의사집안에 의사 많이 하고 있고, 선생 하는 집안에 선생 하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노릇하기가 가장 어렵고, 호주노릇하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은 기위 출가하였으니 출가한 본위와 목적을 잃지 말고 친족이 고루 제도를 받아 함께 천상락을 즐길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대종경 선외록 17.선원수훈장(禪院垂訓章) 9절) 하셨습니다.

제가 나이 먹은 분들을 보면 그래요.

퇴임 하신 원로 교무님을 보면

‘내가 어찌 다행에 이 법과 대종사님을 만나서 이렇게 살다가 생을 마감해서 노후에 이렇게 하는지 생각 할수록 고맙다’ 하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내가 그 때 출가를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내생에는 반드시 전무출신 할라요.’ 이러는 분들도 많다.

옛날에는 결혼한 분들도 많이 들어왔구요 중간에 상처를 한 분들도 들어 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참 쉽지 않죠. 여러 조건이 있습니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35세가 턱걸이, 전문대 졸업자는 32세가, 고등학교 졸업생은 30세가 턱걸이입니다.

물론 입교한 지 1년이 지나야 합니다. 1년동안 지켜보죠. 중학교 성적까지 다 봅니다.

심성도 프로그램 등 검사를 통해서 1차 당락을 결정합니다. 지금 모집하고 있죠. 거기서 떨어지면 못합니다.

제가 있을 때 어떤 분은 성격이 괴팍해서 떨어졌습니다.

혹은 키가 작아서 안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150이 커트라인인데 148이라서 떨어진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출가하고 보니까 148인데 출가한 사람이 있더라.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까 뒷발을 들었대요.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냐? 간절함이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간절함이 있으면 반드시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신분의성입니다. 신, 믿고 확신하고, 분발심을 더해서 하다보면 까닭, 의심이 납니다. 아이디어가 납니다.

분명히 그렇게 됩니다.

 

정양선 덕타원님께서는 일찌감치 출가하셨죠. 19세에 출가했습니다. 이미 17세부터 출가하려고 대기했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미 출가를 한 상태고 어머니도 신심이 난 상태였으니까.

저 분께서는 출가를 처음 하면 동선과 하선을 하는데 선비를 내야 합니다. 선비가 없으면 근무를 2년에서 3년을 합니다.

그런데 대개는 2년 정도 시키고 나서 하거든요. 그때 당시 유일학림인데 돈 먼저 내면 기수가 빠릅니다.

지금은 돈이 없어도 전무출신 한다고 하면 해라 해라 그럽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 대종사님은 2년 3년 지켜보면서 경계를 넘을 수 있는지 확인하셨습니다. 큰 사람은 고통 없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전무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없다.

간호사 이직률이 엄청 높습니다. 봉급이 쎈데도. 왜냐? 힘들거든. 첫 해에는 어리버리 하잖아요. 그러면 계속 힘들죠.

한 달 두 달 세 달 지나면서 점점 수월해지는데 그걸 모르고 나가버려요. 나가면서 사람들을 원망하고 문제라고 하면서 나가요.

한 사람이 발심하면 여러 사람이 와요. 그런 경우를 보면 직업 하나도, 내가 참지 못하면 이루지 못하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간사하면 힘들고 전무출신하면 힘들 것 같지? 사회 나가면 더 힘들어요. 먹기 싫은 술도 먹어야 하고, 돈도 바쳐야 합니다.

그거 보통 괴로움 아닙니다.

원불교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수양을 하지만, 일반 직장은 기계적으로 일을 반복합니다.

전무출신은 계속 창조적으로 하고 그 속에 보람도 있죠. 학교 선생님 보람보다 전무출신 보람이 훨씬 크다.

나도 선생을 하려다가 전무출신을 했다. 아버지가 계속 인사이동 하는 걸 보면서 포기를 했죠. 어떻게 보면 지금 진짜 선생님이 되었지. 대종사님의 교법을 공부하면서 내 보람도 있는 직업을 가진 것입니다.

 

지금 이 중에는 자기보다 힘든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서산님이 그러시데요.

‘직책이 높든 돈이 많든 누구를 만나도 이 세상에 다 마음이 편안해서 걱정없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만나봤다.’

다 웃고는 있지만 내면에는 말할 수 없는 아픔 고통 슬픔이 다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 하느냐? 인내를 가지고 해결하려 하느냐? 아니면 술로 마약으로 해결할 것인가?

 내면 깊숙이 수양을 통해서 연구와 취사로 해결할 것인가는 다르다.

그래서 교단품 8장에 보면 아리따운 처녀를 식당에 보내서 얼마나 고생시키셨어요?

여러분들 중에 정양선이 딸이거나 친구였다면 그만 두고 나오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제가 어떤 책을 봤는데, 조선시대에 하인하고 주인이 있었다. 어떤 스님이 이 주인한테 절을 지으려니 희사 좀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주인이 희사하면 뭣이 나오냐면 거절했다. 그런데 그걸 들은 하인이 1년 치 품삯을 다 주었다.

그랬더니 내생에 거꾸로 되었다.

하인은 주인이 되고, 주인은 그 사람의 마부가 되었다.

복은 짓지는 못할망정 부정적인 시각을 가져서 오히려 강급을 한 것이다. 반면에 그 하인은 복을 받았다.

그러듯이 우리가 현실을 놓고 볼 때, 고생을 피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대종사님도 그러셨죠. ‘누구나 고를 싫어하고 낙을 좋아한다. 그러나 낙으로 변할 고가 있고 고로 변할 낙이 있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는 그 안에 얼마든지 불합리한 구조가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을 참고 나중에 강자가 되어서 바꾸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나와버리죠. 그걸 참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지금은 훨씬 참기가 쉬운 세상이다. 옛날에 비하면 고생 훨씬 덜합니다. 군대만 봐도 그렇죠. 그런데도 힘들다고 그래요.

과연 힘든가? 우리의 마음이 풀어진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라.

예전을 생각해 보세요. 죽어라 낮에는 밭일 합니다. 저녁 되면 바느질에 일 많습니다.

백화점 가봐요. 다 여자들 뿐이고, 파는 것도 다 여자물품입니다.

 

‘괴로운 경계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삼대력을 얻어나가야 범부의 잡철이 떨어지고 정금같은 불보살이 될 것이다.’

괴로움 속에서 괴로움은 어디서 왔고 원인이 무엇이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공부 속에서 하다보면

얼마든지 마음공부의 힘을 얻어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요즘 사람이 덕타원님이 하신 일을 한다면 100명 중 10명이나 남아있을 겁니다.

나머지는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고 그럴 것이다. 여러분들 나이에 옛날이었으면 시집 장가 다 갔다.

누구는 16세에 출가하는데 지금은 30이 넘어서 서원을 못 세워. 왜 그래. 욕심에 사로 잡혀서.

요새 학벌이 더 높을수록 부모를 더 안 모신다. 어디 가면 좋은지 잘 배웠거든. 그러니까 부모는 안 모시고 불사할 때는 돈 없다

그러고 외제차는 불티나게 나가고 여행은 많이 다녀요. 이것이 뭐냐? 인과를 신앙하고 우리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한반도 역사상 50년 동안 전쟁이 없이 이렇게 풍요하게 산 역사가 처음이다.

그러면 우리가 풍요하게 사니까 어떻게 해야 해? 더 풍요를 누려야 하나?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얼마나 못 살았는데. 그럼 뭐냐? 우리의 욕심은 끝없이 편안함을 추구한다.

이토록 편안해진 세상이 되었는데도 욕심에 찌들어서 놀러나 다니고 그러면 안 된다.

 

오늘 비가 왔는데. 법회에 올까 말까 하다가 안 온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비 하나의 경계도 극복하지 못하는데 무슨 불보살이냐? 우리 사람의 능력은 대단하다. 저는 그걸 체험해 보았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괴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 없으세요?

제가 철원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밖에서 불을 쬐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가스통에 구멍을 안 뚫고 버려서 갑자기 불이 터지는 거예요.

그때 나는 누군가 다쳤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한 명도 안 다쳤다. 우리의 능력은 대단해요. 어떤 것도 하면 된다.

대종사님이 말씀 해주셨듯이 정금 같은 불보살은, 훌륭한 인격은 고통을 감내해서 그 속에서 단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은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그 고통이 엄청난 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계를 극복만 하면.

그러나 극복을 못하면 상처가 된다. 덕타원님께서는 출가하셔서 살이 쪽쪽 빠지는 상황 속에서도 극복해내셨다.

저는 간사 때 12월 말에 5kg가 빠졌다. 교무보다 간사가 한가하면 안 된다. 주임 교무보다 부교무가 한가하면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옛날에 수계농원에 근무하신 교무님들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좌산 상사님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일꾼인지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 원불교를 만나서 종로교당에 가보니 그 일꾼이 수위단원이 돼서 교구장이 되어있더란다.

정말 공부라는 것은 학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활 속에서 얼마나 참고 진리를 연구하고 까닭 있게 하다보면 그 속에서 성공이 온다.

그런데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니니 자문도 잘 얻고 법으로 잘 해결해 나가다 보면 분명히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해결하신 분들이 지금 수도원에 많이 계신다. 여러분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지난 번에 한번 말했죠.

야구하는데 감독이 공 몇 개 밖에 안 던졌는데 빼니까, 그 투수가 화를 내야해?

경계가 아닌 것도 경계라고 하면서 불평하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다. 남들은 다 참고 넘기는 것을 혼자 복 받쳐서 죽으려고 그러고 말이죠. 내가 내성이 약한 것이지.

남들은 웃으면서 할 것을 죽겠다고 고민하면서 하고 있으니 이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할지 모르겠어.

정말로 힘든 경계라면 내가 동감해 주겠어.

 

경계는 반드시 옵니다. 대종사님은 마음공부해서 일 잘하자고 하셨다.

공부해서 복 짓자고 하셨다.

정말로 실속 있게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질문과 답변

 

Q. 용환 교우님 :

힘든 경계를 극복하면 큰 자산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경계를 극복해야 할 것이 있고 피해야할 경계가 있을 것 같은데 그 기준은?

 

A. 교무님 :

서원을 대조하거나 스승님의 본의를 대조하거나 상황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신분의성으로 삼학을 들이대서 해야 한다.

보통 사람은 욕심으로, 스승의 본의보다는 자기 맘대로, 상황에서 보다는 자기 입장으로, 불신 탐욕 나 우로 판단한다.

그러니까 안 된다. 나태한 놈은 지도 지가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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