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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법회 ◆

원기 95년 7월 17일 정례법회 < 박원진 교무님의 출가 감상담 : 마음의 원리와 지은보은>

작성자[樂苦療苦]耕德|작성시간10.07.19|조회수227 목록 댓글 0

950717 교무님 설법

 

안녕하십니까. 안암교당 부교무 박원진 교무입니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 중,

제가 좋아하는 2명의 도반이 제가 부임한지 7개월이 지났는데도

출가 감상담을 듣지 못했다고 듣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출가 감상담을 빗대어서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출가라는 것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음속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보십시오.

출가라고하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에 출가를 한다는 것을 가정을 떠나서 금욕 생활을 하고,

정진하는 것을 떠올려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가 특이한 사람입니까? 특별한 사람입니까?

저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

 

먼저 출가 전의 저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는 내 마음보다는 남들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남에게 상처를 줄 것 같으면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했습니다.

대신에 다른 서운한 것을 쌓아 두고, 혼자 속병을 하다가 터져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관계가 안 좋아지면 내가 실수 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사과를 하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런 저는 중3때 돈의 필요성을 느끼고, 돈을 벌려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자공학과를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차근차근 밟았습니다.

대기업에 갔고, 연구직에 있다가 마케팅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출가를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의 생각으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잘하고 싶은데 경제적인 벽에 막혀서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원불교를 믿기 전에 ‘나신교’를 믿었습니다.

나신교는 나는 나를 믿는다. 그리고 종교는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들만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성현들의 말씀은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나는 나에게 힘이 있으니깐 종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출가를 하고 법복을 입고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다니 세상일은 참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원불교를 믿게 되었는지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원불교와의 인연은 저희 어머니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군대를 갔다 와서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효심이 충만한 상태인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의 평생소원이 제가 한 번 교당을 나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김제원 교무님을 뵈었습니다.

처음에 법회를 갔을 때는 관심도 없었고, 분위기 이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교무님이 말씀하신 것이 재밌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할 도리 다 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한 달 후에 다시 어머니께서 한 번만 더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가기 싫었지만, 이 건에 대한 효도를 마지막으로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당까지 가는데 지하철로 40분 정도의 시간을 가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자의적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원불교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고,

교무님께서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하시는지를 알아야겠다.

비록 내가 안다닐 것이지만 그것은 꼭 알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때의 설법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그 때의 설법내용이 발심이었는데,

미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전, 후에 마음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

대체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만나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그 사람을 만나면 왜 짜증이 나는가?

그 마음이 일어나는 원리가 참 묘하고 신기하지 않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집에 가면서 생각을 해보니 정말 그 원리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마음이 일어나는 원리에는 생각이 없고, 마음 일어나는 내을 가지고,

판단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마음의 원리에 대한 설법을 듣고 나니 뭔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마음이 일어나는 원리를 보며 잘 사용하면서 사시는지,

아니면 일어난 마음으로만 시시비비, 즐겁다, 밉다, 싫다하는 것은 일의 시비이해에만 치여서

사는 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마음의 원리는 대소유무의 이치이다. 진공묘유의 조화이다. 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봤을 때 대소유무는 무엇이냐? 본래 우리의 텅 빈 마음을 대자리라고 하죠.

우리가 입정을 할 때, 단전에만 집중하고, 호흡에 집중하면, 모든 마음이 놓아지고,

맑고 청정한 기운을 느끼는 텅 빈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가 대자리입니다.

 

그러다가 묘하게 슬프고, 괴롭고, 온갖 마음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소자리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일어날 수 있고,

어떻게 취사하는 것에 따라서 앞으로 나에게 올 것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유무 자리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곧 마음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마음공부 하는 데 있어서 힘이 될 것입니다.

 

마음은 인과의 이치에 따라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처리하는 가에 따라서 인과의 원리에 따라서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을 잘 처리하면, 착심이 녹아 나고, 마음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리를 서서히 알아가면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음식을 만들지는 못하면서 맛을 따지기만 하는 사람에서 이제 음식 만드는 원리를 알아서,

음식을 얼마든지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차원이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 후로는 한 번만 빠지고, 한 번도 안 빠지고, 교당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 것이 하나있는데, 그 주의 설법의 포인트를 잡아서,

한 번 이상은 꼭 실천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원리에 대해 가늠을 잡고,

경계를 당할 때에는 그 이치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 가는 사례들이 작게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례를 소개드리면, 연구원 생활 중 팀 프로젝트를 할 때였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의 제품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고 다른 부서로 갔습니다.

후에 제품에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에서 회의에서 저를 부르지도 않았고,

문제의 원인을 찾는 과정 속에서 저의 선임이 저의 파트로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교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싸우고 나와 버렸거나, 속으로 쌓아서 화병이 생겼을 것입니다.

원불교법을 알지만, 잘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원리를 대조해보았습니다. 그러면 시비이해를 뛰어넘어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먼저 선배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선배님의 마음은 책임을 전가하고 그런 것도 없는 본래 텅 빈 마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다음은 소자리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경계에 따라, 선배는 정확히 문제점을 찾지 않고,

쉽게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에게 쉽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습니다.

똑같은 일이 있을 때, 인과가 없다면 모두가 다 똑같이 행동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이것이 다 본인이 지은 인과의 작용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정에 따라,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났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무자리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일을 그대로 받아치면, 본질을 떠나서 싸움이 일어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선으로 갈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억울한 마음도 경계를 따라서 일어난 것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 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 억울해서 받아칠 것인가,

그런 사람들까지 품어 안을 것인가 하는 행동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되받아치면 악연이 될 것이고, 내가 받아들이면 최소한 악연만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생각이 정립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고,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야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내가 먼저 다가서자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배에게 억지로 더 다가서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자 몇 달 후에 선배가 다가와서 미안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법을 다행히 만나서 일도 해결되고, 서로간의 관계도 좋아지게 되었으니,

대종사님의 법이 얼마나 뛰어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좋은 법을 이생에 다행히 만났는데, 어떻게 하면 영생을 회상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에 되지는 않고, 뭔가 나를 잡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법이 좋아서 출가한다고 하지만, 내가 과연 전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인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 생각 끝에 재가를 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재가를 하면서 보여주는 시간만, 훈련할 때, 법회 볼 때만 잘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회상에 은혜를 입었으니깐 재가로서 죽기 전에 교당 2개는 짓고 죽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법을 만나고, 지내면서 항상 기분이 좋고, 마음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써,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일이 많아지니 힘이 부치게 되었습니다.

교당일, 직장 두 가지 너무 일이 많아져서 하나를 쉬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되자, 감사 생활은 줄어들고, 자꾸 원망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너무 좋았었는데, 늘 감사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왜 안 될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은혜를 일으키면 감사생활이 되는데, 나는 그것을 절대적인 은혜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왜 그러냐. 생각해 보니, 나라는 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고, 내가 화나면, 일시적인 은혜,

일시적인 행복, 감사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상을 깨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단 나를 보림하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살아가면서 그저, 환경에 따라, 나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 내 몸은 부모님한테 받았는데, 그럼 부모님한테 받기 전의 몸은 어떤 몸인가?

이 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몸은 한 생인가, 영생인가? 하는 의문들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혜두를 연마하고, 선으로써 직관으로 알아 가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마음에 가지고 사셔야 됩니다. 그래야 아상을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감사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1초에 몇 번 마음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찰나는 수학적으로 1/108초라고 합니다. 이 찰나에 900번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생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10초에 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그 생각들이 일어나기 전의 순간은 어떤 순간입니까? 그러면 그 때는 마음이 죽어있는 것인가?

왜 나는 이런 생각들이 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 나는가? 이런 마음에 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의문들에 대해서 스스로 해결해야합니다.

 

제가 공부를 해보니깐, 설명을 잘 들어서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공부로 이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힘들어집니다.

여러분이 몸과 마음에 관한 두 가지 화두를 가지고, 교당 생활을 하시고, 삶을 살아가시고,

그래야 우리가 일대사를 해결 하실 수 있습니다.

 

사은 중에 천지 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공기, 땅, 해와 달이 없이는 당연히 그 것 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회사 다닐 때, 엘리베이터에서 정원을 넘어서 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습니다.

15분 정도 고장이 났었는데, 공기도 부족하고, 잘 서있을 수도 없고, 폐쇄 공포증을 통해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리되어서 딱 나오는 순간,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천지 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상적인 것에만 은혜를 느끼면 안 됩니다.

혼탁한 공기를 마시고 있다면 그것도 은혜로 생각할 수 있습니까?

맑은 공기는 은혜롭고, 혼탁한 공기는 해롭기 때문에 은혜롭지 않다면, 상대적 은혜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공기든 나쁜 공기든 은혜라고 느껴야 절대적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집이 태풍에 떠내려간다고 해도 은혜로 알고 감사할 수 있느냐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형상적인 것만 보지 말고, 이면에 이치적인 것을 볼 수 있어야 절대적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가 운행하는 8도가 정전에 있습니다. 천지 8도를 우리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은 그대로, 받게 되는 그런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천지 8도에 따라 운행되는 천지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명확히 깨쳐야 합니다.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들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 생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본질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이치를 명확히 깨치고 행하려면, 내가 출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구원으로 살아가면서, 이치를 깨닫고 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생에 이 좋은 법 만났으니, 이생에 무언가 소득을 얻어가야겠다고 생각해 보니깐,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 번째로 가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덕사업이 가장 큰 가치가 있다고 대종사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연구원으로써의 생활영역은 집, 회사, 술집, 회사였습니다. 모든 분들은 정말로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이런 정성과 에너지를 과학사업, 도학사업 중 어떤 것에 쏟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비할 것도 없이 도학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기업이 잘 한다고 해도, 개인의 사기업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도학사업은 마음을 운전하고, 한계가 없는, 정말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한 사람을 교화를 시켰다고 해도, 그것이 과학 사업보다는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출가한 과정을 돌아보면, 멀리 보지 않더라도 원불교법을 만나서 생각해 보면,

이리저리 끌렸던 마음들이 조금씩 사라졌었고, 마음의 원리를 알아서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매순간 하지 못해도, 한 순간만 해도 너무 행복했었습니다.

그래서 내 일생을 여기에 바치고,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게 보면, 나를 위해서, 보은하기 위해서, 출가하였습니다.

 

제가 말씀 드린 것이 출가자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가 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그래야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출가 재가가 구분 없이 함께 어울려서 낙원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출, 재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는 같은 서원으로 같은 목적을 향해 같은 방향을 걸어가는 도반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듯, 출가와 재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의 원리를 잘 알아서 잘 사용하고, 은혜를 알아서 보은하며 사는 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오늘 말한 핵심입니다.

출, 재가를 떠나서, 함께 해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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