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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법회 ◆

원기 98년 1월 26일 청년법회 김제원교무님 설법

작성자유미|작성시간13.02.05|조회수66 목록 댓글 0

무념해서 늦어졌습니다.ㅠ

안 늦도록 하겠습니다^^

 

2013.01.26

안암 교당 청년법회

김제원 교무님 설법말씀

간사님들 인사말씀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하셨습니까? 이 세 사람들이 간사 기간에 시간을 썼던 것들을 여러분들이 시간을 보냈던 것들과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어디에 많이 투자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했는지. 세 간사들 모두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저도 저런 힘든 과정을 보냈습니다. 이보다 건물이 더 큰 건물에서 10분의 교무님을 모셨었습니다. 간사 때 교구장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많은 교무님들이 “자네가 전생에 업장이 많아서 이생에 더 고생이 많구나” 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보다 더 많이 보은하고 은혜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고되지 않았느냐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용광로에서 잡철을 골라내는 저를 단련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행자지하고, 사심에 쌓인 나가 아니라 그것을 떼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간사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힘들지 않으면 문제가 있습니다. 맘이 힘드냐, 몸이 힘드냐, 다른 정신에 끌려서 힘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면서는 명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합니다. 큰 인물은 반드시 단련 속에서 나옵니다. 그냥 원석을 두어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단련이 힘들지만.. 그것이 뭐냐 공부입니다. 그것이 진급길입니다. 힘들 때 사심이 들지 않습니다. 그때 커나가는 과정입니다. 첫 경계는 매우 힘듭니다.

성공은 어디에서 오냐면 준비에서 옵니다. 수한교우는 3년 반이나 살아서 교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아서 교무 잘할 것입니다. 뭐가 필요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압니다. 짧게 보면 지금 수한교우 보다 더 어린사람들이 교무님 곧 됩니다. 수한 교우가 생각이 없진 않았습니다. 수한교우는 멀리 본 겁니다. 지도자는 철저한 준비 속에서 나온 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준비가 부족하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우연히 김포 쪽에 다도 박물관에 간적이 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분이 박물관을 20년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물건, 인연, 구상, 다른 지역 견문 등의 다양한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무엇을 이루고 해냈다는 것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원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있으면서도 없는 것입니다.

예성 교우 감상담에서 상사님께 일과 관리하고 실생활에 철저하게 법으로 녹아내는 것과 자신의 한계를 느끼기를 바랐는데 본인이잘 느끼고 왔어요.

예전에 개그맨이었던 사람이 강의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강의에서 강조했던 것이 “끈기”였습니다. 원불교 용어로 풀면 ‘신분의성’ ‘신성’ ‘정성’입니다. 끈기는 신분의성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분발하고 의심도 놓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해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놓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쉽지 않습니다. 넘어지더라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일으켜 세워줄 수 없습니다. 도와줄 뿐입니다. 요새 젊은이들 2년도 안 되는 군대도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자신에 대한 확신, 목표, 확실한 원력과 앎, 대종사님이 주세불이라는 신심이 있으면 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경계가 와도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분의성이 없으면 경계에 이길 수 없습니다. 경계가 좌절에 대상일지 공부 찬스일지는 이것이 있고 없음이 좌우 합니다. 음식 먹고, 일과 지키기가 쉬운 것 같아도 지키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것 하나 못해서 건강 헤치고, 일과 엉망이 됩니다. 간사생활을 하면 일과 지키는 것은 타력이라는 환경 때문에 잘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출가 전 군대에 있을 때 군종 법회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진행하다 보니 당시 만연했던 구타 문화 속에서도 부처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 때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제대 할 때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 타력을 입어서 저는 구타를 안 할 수 있었습니다.

일생을 놓고 보면 자력을 강조하는 사람은 복 지을 기회의 3분의 2 이상을 놓쳐요. 사실 내가 하고 싶지 않지만 주위의 책임과 권선 등에 의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복을 짓는 것이 많아요. 자유의지가 강한 사람은 타력으로 성장하고 복을 지을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타력에 대해서 의지적으로 입을 필요도 있습니다. 못해요. 안 해요. 하지 마시고 할 능력이 되니까 시키는 것이니까 타력을 잘 이용하고 받아들이세요.

應 供 : 공양에 응해라

그것이 타락하거나 병나거나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세요. 단 자신이 자신의 관리를 잘 하면서 해야겠습니다. 자신의 관리가 완벽하게 안 될 지라도 공적인 것과 타력을 입다보면 자기 관리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신앙 - 보은불공 - 대비

수행 - 자기관리 - 대자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학문과 분야도 들어 올 수 있는 틈을 항상 열어 두세요. 서로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내가 결국은 크는 것입니다. 너무 벌려도 곤란합니다. 어떤 것도 중도에 맞아야 합니다. 내 목적과 선후본말, 내 여건에 맞게 중도를 찾아야 합니다. 성장은 내가 틈을 줘서 받아들였을 때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원불교를 만났을 때 그랬습니다. 이런 삶과 이치가 있는 줄 몰랐었다면 억울한지도 모르고 안타까운 인생을 살 뻔 했습니다. 이것들을 간사의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마세요. 힘들지만 배워가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역할을 해서 행복을 주어지는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출가자들은 이런 큰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간사로 살았던 사람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최대한 도와줘야겠다는 마음과 꼭 불보살, 이 힘든 세상에 대보은자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불지를 향해서 가는 행복, 내가 몸은 힘들지만 행복의 눈물과 기쁨의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을 여러분도 함께 느끼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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