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법회] 대종경 부촉품
대종경(大宗經) 제15 부촉품(附囑品)
원기 105년 10월 17일
설교 : 박세훈 교무님
타이핑 : 김성은
대종경 부촉품
반갑습니다. 대종경 문답법회 마지막, 부촉품 시간입니다.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분의 공부도 성숙해지시고 마음도 편안해지시길 기원하며 부촉품 공부를 시작해보겠습니다.
| 부촉품(附囑品: 분부할 부 당부할 촉) |
| (1) 일정한 목적을 띠고 그동안 있어온 일 또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사적 공적으로 계승되도록 간절히 부탁하는 것. (2) 부처님이나 성현 등이 제자나 후인에게 간절히 당부하는 말. 또는 그들이 열반을 앞두고 유언의 성격을 지닌 법문이나 당부의 말을 하는 것. |
‘부촉’이란 말은 불교용어로, 성자나 부처님들이 당부할 때 많이 사용합니다. ‘부’는 좀 더 강한 어조이고, ‘촉’은 좀 더 부드럽게 당부하는 어조입니다. 그러므로 부촉이란 단어는 ‘일정한 목적을 띠고 그동안 있어온 일 또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사적, 공적으로 계승되도록 간절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계승이란 단어가 핵심이므로, 자신이 깨달은 바와 법을 다음 세대가 이어가도록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뜻은 ‘부처님이나 성현 등이 제자나 후인에게 간절히 당부하는 말, 또는 그들이 열반을 앞두고 유언의 성격을 지닌 법문이나 당부의 말’로, 부촉품은 대종사님께서 열반하시기 1년 전에 하셨던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즉, 대종경은 대종사님의 언행을 주제별로 묶어놓은 것인데, 그 중에서 부촉품은 대종사님이 열반을 앞두시고 당부의 말씀을 하신 법문입니다.
| 대종경 부촉품 7장 원기 이십 팔년(1943) 계미(癸未) 일월에 대종사 새로 정한 교리도(敎理圖)를 발표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 교법의 진수가 모두 여기에 들어 있건마는 나의 참 뜻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꼬. 지금 대중 가운데 이 뜻을 온전히 받아갈 사람이 그리 많지 못한 듯하니 그 원인은, 첫째는 그 정신이 ◯와 ◯으로 흐르고, 둘째는 ◯◯와 ◯◯으로 흘러서 일심 집중이 못 되는 연고라, 그대들이 그럴진대 차라리 이것을 놓고 저것을 구하든지, 저것을 놓고 이것을 구하든지 하여, 좌우간 큰 결정을 세워서 외길로 나아가야 성공이 있으리라.] |
7장은 원기 28년, 열반 5개월 전의 말씀입니다. 앞의 빈칸 두 개는 재와 색입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일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재와 색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끌려가는 것이 돈과 이성문제이죠. 그 당시에도 돈 번다고 법회에 불참하고, 연애한다고 법회에 불참하는 모습은 비슷했을 겁니다.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선 그러한 본능을 이겨내야죠.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자제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명예와 허식입니다. 명예와 허식은 외면을 상징합니다. 종교는 내면에 집중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조직이 생기고 자리가 생기므로 외적인 것을 중시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러한 것을 경계하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핵심은 열심입니다. 지금 이 순간 법회를 보는데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안 되고, 재와 색에만 집중하지 않고 때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대종경 부촉품 9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회상을 연지 이십 팔년에 법을 너무 해석적으로만 설하여 준 관계로 상근기는 염려 없으나, 중·하 근기는 쉽게 알고 ◯◯◯가 되어 참 도를 얻기 어렵게 된 듯하니 이것이 실로 걱정되는 바라, 이 후부터는 일반적으로 해석에만 치우치지 말고 삼학을 병진하는 데에 노력하도록 하여야 하리라.] |
대종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설교만 듣고 변화가 없는 제자들을 보고 걱정이 되셔서 한 말씀으로, 빈칸에 들어갈 정답은 구미호입니다. 대종사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많이 말씀하셨던 단어가 ‘중근’인데, 중근의 대표적인 것이 구미호입니다. 구미호는 잔재주가 많고 의심도 많아서 스승과 법과 회상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을 여우라고 지칭하는데, 꼬리가 9개인 구미호는 얼마나 의심이 많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많은 문답을 해도 만약 의심이 많다면 실행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행을 하지 않는다면 변화가 생기지 않고, 교당 다니는 재미가 없게 되고 이러면 교당에 나오지도 않게 되겠죠. 이것을 대종사님이 중근기라고 지칭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교당에 다니는데 변화가 없다면 실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의심이 많다는 뜻입니다.
| 대종경 부촉품 11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랫동안 그대들을 가르쳐 왔으나 마음에 유감되는 바 셋이 있으니, 그 하나는 입으로는 현묘한 진리를 말하나 그 ◯◯과 ◯◯한 것이 ◯경에 이른 사람이 귀함이요, 둘은 ◯◯으로는 보나 ◯◯으로 보는 사람이 귀함이며, 셋은 ◯◯불은 보았으나 ◯◯불을 확실히 본 사람이 귀함이니라.] |
대종사님께서는 오랫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유감되는 것, 즉 안타까운 것이 세 개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입으로는 현묘한 진리를 말하나 그 행실과 증득한 것이 진경에 이른 사람이 귀함이요, 둘은 육안으로는 보나 심안으로 보는 사람이 귀함이며, 셋은 화신불은 보았으나 법신불을 확실히 본 사람이 귀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똑같이 교당에 다님에도 불구하고 이 세 가지가 안 되는 사람이 많아서 안타까움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 대종경 부촉품 12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도가에 세 가지 어려운 일이 있으니, 하나는 일원의 절대 자리를 ◯◯가 어렵고, 둘은 일원의 진리를 실행에 부합시켜서 ◯과 ◯이 ◯◯같은 ◯◯을 하기가 어렵고, 셋은 일원의 진리를 일반 대중에게 ◯◯하게 ◯◯쳐 ◯◯ 주기가 어렵나니라. 그러나, 수도인이 마음을 굳게 세우고 한 번 이루어 보기로 정성을 다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쉬운 일이 되어질 것이요,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려는 사람과 하다가 ◯◯하는 사람에게는 다 어려운 일이 되나니라.] |
도가에도 커다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원의 절대 자리를 알기가 어렵고, 알았다고 해도 실행에 부합시켜서 동과 정이 한결같은 수행을 하기가 어렵고, 일원의 진리를 일반 대중에게 간명하게 깨우쳐 알려주기가 어렵습니다. 단중들의 일기를 감정할 때, 경계가 없었다고 합니다. 경계가 없을 때는 ‘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정이란 것은 좌선과 염불로 일심을 양성하는 것이고, 동이란 것은 정의를 실행하고 불의는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24시간 마음을 동과 정으로 마음을 한결같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중에게 간명하게 알려주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해를 해야 누군가에게 쉽게 전달을 해줄 수 있는데, 내용을 잘 모르면 간명하게 알려주기가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한 번 하기로 하면 쉬운 일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안하려는 사람과 하다가 중단하는 사람에게는 다 어려운 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안하려는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라도 끝까지, 의심하지 말고 해내라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 대종경 부촉품 15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사업 목표는 ◯◯·◯◯·◯◯의 세 가지니 앞으로 이를 늘 ◯◯하여야 우리의 사업에 결함이 없으리라.] |
우리의 사업 목표는 교화, 교육, 자선의 세 가지로 앞으로 이를 늘 병행하여야 우리의 사업에 결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업 목표는 교화이고, 교육과 자선 모두 교화를 위해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종교기관에서 교육기관 등을 만들어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든지, 자선 기관이 교화를 확장시키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해버린다든지 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는, 어느 하나가 어디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목표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교육과 자선을 하는 것은 원불교 철학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교화를 위해서 자선을 하는 경우에는, 자선행사를 할 때 비교도인을 차별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불교 정신을 가지고 독립적인 목표를 추구해야합니다.
| 대종경 부촉품 16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교법 가운데 ◯◯을 종지로 한 교리의 대강령인 ◯◯◯◯와 ◯◯ 등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다시 변경할 수 없으나, 그 밖의 ◯◯이나 ◯◯는 그 시대와 그 국가에 적당하도록 혹 변경할 수도 있나니라.] |
교법 가운데 일원을 종지로 한 교리의 대강령인 삼학팔조와 사은은 변경할 수 없으나, 그 밖의 세목과 제도는 변경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사요의 네 가지인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는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력양성 안의 조목 중 하나인 ‘여자도 인류사회에 활동할만한 교육을 남자와 같이 받을 것이요’는 바뀔 수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이런 세목은 변경 가능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교육평등이 실현된 지역에서는 이러한 세목이 변경되겠지만, 아직 남녀에 차별을 두어 교육을 하는 나라에서는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력양성’이라는 대강령 자체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대종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열반 후에 제자들이 교리에 대한 해석을 두고 분파를 나눌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 대종경 부촉품 19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스승이 ◯을 새로 내는 일이나, 제자들이 그 ◯을 받아서 후래 대중에게 ◯하는 일이나, 또 후래 대중이 그 법을 반가이 받들어 ◯◯하는 일이 ◯◯◯◯되는 일이라, 그 ◯◯도 또한 다름이 없나니라.] |
대종사님은 스승이 법을 새로 내는 일, 제자들이 그 법을 받아서 후래 대중에게 전하는 일, 또 후래 대중이 그 법을 반가이 받들어 실행하는 일이 삼위 일체되는 일이라 그 공덕이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위일체는 성부(하나님)와 성자(예수님)와 성령(예수님이 지상에 내려오신 것)이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원불교에서의 삼위일체인, 제법(법을 만듦)과 전법(법을 전함), 그리고 법을 실행하는 것은 모두 공덕이 같다고 합니다. 대종사님이 법을 만든 것과 여러분이 실행하신 공덕이 같다는 뜻으로, 실행하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포부와, 민주적인 성품을 가진 성자가 또 있겠습니까? 참 대단한 분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부촉품과 관련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일제 강점기’입니다. 대종사님이 1943년에 열반을 하셨는데 그 즈음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1935년에 감옥에서 나오셔서 총부를 찾아오셨습니다. 안창호 선생님은 점진주의자로 점진적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자는 사상을 가지셨습니다. 대종사님도 ‘이소성대’라는 생각을 가진 점진주의자로, 도산 선생님과 사상이 일치하기 때문에 도산께서는 대종사님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일본은 주재소를 총부 안에 만들어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대종사님을 인도의 간디와 비슷한 통
치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원불교를 없애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불시 검문을 해도 재와 색, 즉 돈과 여자 둘 다에서 문제 될 게 없어 없애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황도불교’로 만들려는 계획으로 변경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도중 대종사님이 열반을 앞두고 경전을 만드십니다. 이때 일본이 일본어로 경전을 만들고, 대종사님께 일본으로 넘어오라, 창씨개명을 하라는 등의 요구를 합니다. 하지만 대종사님이 보기에 일본이 오래갈 것 같지 않으며 일본의 요구를 들어줬다간 원불교가 흔들릴 것 같다는 판단하시고, 열반에 드시기 전에 흔들리지 않게 많은 준비를 하십니다. 그 당시에는 교조가 죽으면 종교 자체가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에 일본도 대종사님만 사라진다면 원불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기 43년 6월에 열반에 드시는데, 당해 3월에 교전을 만들기 시작하셨고, 8월 5일에 총부로 배송이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법문들은 일제 강점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부촉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라고 한다면, 저는 ‘나는 무엇에 의지하고 사는가?’를 꼽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그랬고, 대종사님도 그랬고 모든 성자들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이런 질문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보통 사람들은 돈에 의지해서 돈을 열심히 벌고, 사람에 의지해서 인맥을 만들거나, 능력에 의지해서 커리어를 만듭니다. 혹은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라면서 자신에게 의지하기도 하죠.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에 했던 법문이 '자귀의 법귀의 자등명 법등명‘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많이 아프셨는데, 그때 부처님의 제자 중 한명이 법문을 청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귀의 법귀의는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는 뜻이고, 자등명 법등명은 스스로 밝히고 법으로 밝히라는 뜻입니다.
| 대종경 부촉품 14장 (전략) 음부경(陰符經)에 이르기를 "생(生)은 사(死)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 하였나니, 생사라 하는 것은 마치 사시가 순환하는 것과도 같고, 주야가 반복되는 것과도 같아서, 이것이 곧 우주 만물을 운행하는 법칙이요 천지를 순환하게 하는 진리라, 불보살들은 그 거래에 매하지 아니하고 자유하시며, 범부 중생은 그 거래에 매하고 부자유한 것이 다를 뿐이요, 육신의 생사는 불보살이나 범부 중생이 다 같은 것이니, 그대들은 또한 ◯◯만 믿지 말고 그 ◯을 믿으며, 각자 자신이 생사 거래에 매하지 아니하고 그에 자유할 실력을 얻기에 노력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예회를 보는 것은 마치 ◯◯이 ◯을 보러 온 것과도 같나니, 이왕 ◯을 보러 왔으면 내 물건을 팔기도 하고 남의 물건을 소용대로 사기도 하여 생활에 도움을 얻어야 장에 온 보람이 있으리라. 그런즉, 각자의 지견에 따라 유익될 말은 대중에게 알려도 주고 의심 나는 점은 제출하여 배워도 가며 남의 말을 들어다가 보감도 삼아서 ◯왕◯래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가 일이 크고 ◯◯은 신속하니 가히 범연하지 못할 바이니라.] |
부촉품 14장은, 대종경님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으로, 1943년 6월 1일에 열반하시는데 14장은 5월 16일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법문을 말씀하시고 1주일 뒤에 아프시고, 그로부터 1주일 뒤에 열반에 드십니다. 이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귀의 법귀의 자등명 법등명과 연관이 있는데, 빈칸의 정답인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으며’는 법귀의 법등명을 뜻합니다. 이날은 대종사님이 보신 마지막 법회날으로, ‘우리가 이와 같이 예회를 보는 것은 마치 장꾼이 장을 보러온 것과 같나니, 이왕 장을 보러 왔으면 내 물건을 팔기도 하고 남의 물건을 소용대로 사기도 하여 생활에 도움을 얻어야 장에 온 보람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법회를 봄이 장을 봄과 같다고 하였는데, 내 물건을 팖은 내 얘기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고, 물건을 사는 것은 남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음입니다. 따라서 법회는 다른 사람들과 물건, 즉 깨달음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왕공래가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법회의 핵심은 공부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를 하는 것이죠. 마지막 빈칸은 ‘생사가 일이 크고 무상은 신속하다’입니다. 생사가 일이 큼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말씀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말씀을 하신 거고, 무상이란 변화를 말하므로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뜻입니다. 이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공부를 미루기 보다는,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촉품 질의응답
| 대종경 부촉품 11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랫동안 그대들을 가르쳐 왔으나 마음에 유감 되는 바 셋이 있으니, 그 하나는 입으로는 현묘한 진리를 말하나 그 행실과 증득한 것이 진경에 이른 사람이 귀함이요, 둘은 육안으로는 보나 심안으로 보는 사람이 귀함이며, 셋은 화신불은 보았으나 법신불을 확실히 본 사람이 귀함이니라.] |
Q. (청년4단 이경주 교우님) 견성해서 진리자리를 본 사람이 귀하다는 의미인가요?
Q. (청년4단 류서현 교우님) 보고 안 보고를 판단하신 기준은 무엇인가요?
Q. (청년4단 류서현 교우님) 화신불은 중생제도를 위해 중생의 모습으로 변신해 나타난 부처님이고, 법신불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라는데, 즉 대종사님 등의 큰 스승은 알아채고 따르나 막상 진리를 체득한 자는 적다는 말씀인가요?
A.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에 한 번에 대답하겠습니다. 법신은 차이가 없으나 보신과 화신은 다릅니다. 법신이라는 것은 보통 ‘청정법신불’이라고 하며, 본래의 마음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의 본래 마음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부처님에 더하지도 중생에 덜하지도 않은 똑같은 자리(견성)입니다. 하지만 ‘원만보신불(보신)’과 ‘백억화신불(화신)’은 법신과 다릅니다. 보신불은 인과의 부처로 삼급 삼위가 꽉 찬 자리로 ‘성불’해서 되어가는 것, 즉 수행을 통해 원만보신불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출가위는 부처가 되는 길을 밟아 나가서 부처가 된 것이므로, 이때는 청정법신불과 원만보신불이 같은 상태가 됩니다. 그 전, 법마상전급까지는 편화신불입니다. 백억화신불은 역사적인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대종사님법을 나투는 것, 즉 제중입니다. 그러므로 견성해서 진리자리를 본 사람이 귀하다는 의미가 맞습니다. 화신불은 보았으나 법신불을 확실히 본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대종사님을 육신으로는 보았지만 대종사님이 가지고 계신 본래 자리를 본 사람은 귀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를 밖으로만 모시거나 절에 있는 부처, 혹은 대종사님만 바라보며 모시는 사람들은 화신불은 보았지만 법신불은 못 본 사람들로, 대종사님이 대단한 부처인지는 알았지만 자신의 부처(법신불)는 못 본 것입니다. 보고 안 보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견성이 되는데, 대종사님께서는 견성은 말로 알 수가 없고 하는 행동까지 봐야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그렇다 입니다. 대종사님은 부처라고 생각하지만 자기는 깨달을 생각을 않는 것은 화신불만 보고 법신불은 보지 않는 것입니다.
Q. (청년4단 류서현 교우님) 육안과 심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육안이라는 것은 내 몸에 있는 눈으로 형상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심안은 오안(五眼)을 의미하는데, 가려져있지 않은 형상만 볼 수 있는 범부의 육신에 갖추어진 눈인 육안(肉眼), 가려져 있는 형상도 볼 수 있는 천안(天眼), 현상의 이치와 진리는 알지만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은 알지 못하는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눈을 뜻하는 혜안(慧眼), 모든 현상의 참모습(진리)과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을 두루 아는 보살의 눈인 법안(法眼), 이 모든 것을 갖추어 세상을 꿰뚫어보는 부처의 눈인 불안(佛眼)까지, 수행의 정도에 따라 갖추게 되는 총 다섯 가지의 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육안으로는 보나 심안으로 보는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형상 있는 것만 보고 형상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신은 육안으로 보이나 법신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귀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 대종경 부촉품 7장 원기 이십 팔년(1943) 계미(癸未) 일월에 대종사 새로 정한 교리도(敎理圖)를 발표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 교법의 진수가 모두 여기에 들어 있건마는 나의 참 뜻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꼬. 지금 대중 가운데 이 뜻을 온전히 받아갈 사람이 그리 많지 못한 듯하니 그 원인은, 첫째는 그 정신이 재와 색으로 흐르고, 둘째는 명예와 허식으로 흘러서 일심 집중이 못 되는 연고라, 그대들이 그럴진대 차라리 이것을 놓고 저것을 구하든지, 저것을 놓고 이것을 구하든지 하여, 좌우간 큰 결정을 세워서 외길로 나아가야 성공이 있으리라.] |
Q. (일반진급단 남궁부 교우님) 도학으로 안 될 거면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차라리 명예, 돈 구하기 등 과학으로라도 한 길을 파는 게 낫다는 말씀인가요?
A. 그런 의미가 아닌,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의미입니다. 도학을 공부하려고 왔으면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지 않고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교당에 와있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생각하거나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 아닌, 일심으로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어느 하나에 마음을 온전하게 하지 않으면 둘 다 안 되고, 법회시간만이라도 일심으로 집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부촉품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부촉품은 대종사님이 열반을 앞두시고 1년 정도 하셨던 말씀을 모아놓은 것으로, 대종사님 말씀의 핵심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사람만 믿지 말고 법을 믿으라고 하셨고, 부처님께서도 자귀의 법귀의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만 보지 말고 누구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내 안의 부처에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내 능력이나 돈 같은 것에 의지하기보다는 내 마음의 법에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나의 원래 마음에 의지한다, 그것이 법신이다.’ 이것이 부촉품의 핵심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