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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에서...

260602 낭백스님의 발원

작성자범일|작성시간26.06.05|조회수5 목록 댓글 0

260602

♡낭백스님의 발원♡

조선 후기, 범어사에는 보시행을 많이 베풀기로 유명한 낭백(浪白, 법호 낙안·만행) 스님이 계셨습니다.

당시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범어사에는 무려 36종이 넘는 가혹한 관청 부역과 잡역이 부과되어, 스님들이 도를 닦기는커녕 일에 치여 살아가기 바빴습니다.

이를 뼈아프게 개탄한 낭백스님은 부처님 앞에 큰 원력을 세웠습니다.

보시행을 많이 하여 다음생에 고위관리로 환생하여 어려움을 혁파하리라

세가지 약속
1,대다수 관리는 말을 타고 법당앞까지 자신은 절 입구 어산교 하마비앞에서 내리리라

2,자신의 사용하던 방을 봉해 두었다가 스님 스스로 열것이다

3,고위관리가 되어사찰의 어려움을 해결할 하리라

스님은 산에서 칡덩굴과 짚을 구해다가 쉬지 않고 짚신을 삼았습니다. 그렇게 만든 수많은 짚신을 자신이 신지 않고,

먼 길을 걸어 다니는 가난한 나그네들과 행인들이 거저 신을 수 있도록 고갯길이나 길목 나무 위, 바위 위에 항상 얹어두어 누구나 가져가게 했습니다.

2. 절 주변이나 산비탈의 자투리 땅을 일구어 오이와 참외 채소등을. 지나가는 굶주린 이들과 목마른 행인들을 대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동래군을 들어오고 나가는 길목 소나무 아래 샘을 파서 행인들 목마름을 해결하고

어느날 입적할때가 되어 금정산 깊은곳으로 늙은 몸을 호랑이에게 보시하고자 산속으로 들어가 열반하셨다

"내가 떠난 후 내 방 문을 봉하고, 수십 년 뒤 절의 부역을 면해줄 관리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한 뒤 산속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조엄이 범어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조엄은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 들여온 바로 그 분입니다.)

그는 절 입구 어산교 다리에서 말에서 내려 많이 익숙한듯
절을 둘러보던 그동안 수십 년 굳게 닫혀 전해 내려오는 낭백스님의 방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스님들이 말림에도 불구하고 그 봉인된 문을 뜯고 고리를 잡아 열었습니다.

그 방 안에는 먼지 쌓인 빛바랜 유묵(글씨) 한 점이 남아있었는데, 바로 이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開門者 是 閉門人

"문을 여는 자가 바로 문을 닫은 사람이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조엄 관찰사는 자신이 전생에 범어사 스님들을 구원하겠다고 원력을 세우고 떠난 낭백스님의 환생(후신)임을 단박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전생과 마주하며 크게 놀라고 감격한 조엄은 즉시 동래부사에게 명하여 범어사에 내려진 36가지의 혹독한 부역을 모두 혁파(면제)해 주었습니다.

폐문(閉門): 전생의 낭백스님이 원력을 품고 방 문을 닫아걸고 떠난 것
개문(開門): 후신인 조엄 관찰사가 되어 돌아와 그 문을 다시 연 것 시공간을 초월한 원력과 환생의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범어사 옛길 비석골에 세워져 있는 조엄의 공덕비('순상국조공엄혁거사폐영세불망단')가 바로 이 놀라운 고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생각하고 보시행을 실천하고
몸을 바꾸어 전생의 원을 성취한
이야기 불망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한 불망비가 지금도 범어사 옛길에 서 있습니다♡비오는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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