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借船) 과 조도가리의 유래
70년 12월 1일 실시한 정부 수산인구(水産人口)센서스에 의하면 전남(全南)의 어가(漁家)는 6만 4천 9백 5가구(家口)로 전남(全南)의 38.8%였고 그 가족수는 47만 2천 2백 60명으로 전남(全南)의 40.5%였으며 어업종사자(漁業從事者)수는 18만 3천 9백 44명으로 전국(全國)의 50%였다.
한편 이 중 자영(自營)어업이 아닌 고용 어가(漁家)는 1만 6백 9가구(家口)로 가족(家族)은 5만 8천 7백 46명이며 이 가족(家族)중 남의 어업에 고용되는 어민수(漁民數)는 1만 7천 1백 여명이었다.
또 어민을 고기잡이 어부와 양식어민(養殖漁民)으로 구분해 보면 어부(漁夫)로 5만 6천 1백 9명이고 양식어민은 12만 7천 8백 35명이었는데 고기잡이 어부(漁夫)중 22%가 남의 배에 올라 고용어부로 종사하고 있다.
이 밖에 통계(統計)는 도내 어가(漁家)중 순전히 어업수입(漁業收入)으로 생계(生計)를 꾸려가고 있는 어가(漁家)는 3천 4백 21가구(家口)에 불과하고 2만 6천 5백 40가구(家口)는 다른 수입(收入)이 생계비(生計費)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어가(漁家)중 1년에 5개월 이상 어업(漁業)에 종사하는 가구(家口)는 1만 6천 8백 20가구(家口)에 달했다.
무동력선(無動力船) 전(全) 어선의 12%
이 수산인구(水産人口)센서스 결과는 전수 및 표본 조사결과의 중간보고에 불과하므로 아직 이렇다할 뚜렷한 경향을 꼬집어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중간보고는 전남(全南)의 어민(漁民)들이 경남·북(慶南·北)이나 경기(京畿)에 비해 고용 어민이 적은 대신, 어가당 가족(漁家當 家族)수가 6.2명으로 가장 많아 살기가 어렵고 어획량(漁獲量)은 전국(全國)의 19%에 불과하면서 어민수(漁民數)는 전국의 반수를 차지해 어업규모가 영세하고 1인당(人當)소득이 극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고용어업비율이 낮다는 것은 어업의 기업화(企業化)가 이뤄지지 못하고 겨우 가족(家族)노동 인구에 의존하는 전근대적인 원시어업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상도 엿볼 수 있다 하겠다. 이 밖에 통계(統計)는 전국(全國)의 어로 종사자중 79%가 전남에 집중, 전남에 어민이 많은 듯 하나 실상 일본조 및 연승어부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어민다운 어민수는 극히 적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중략)
그러므로 전남의 육지부 연안의 어민들은 주식어업에 종사하고 낙도(落島)어민들은 연안어업에 종사하며 목포(木浦), 여수(麗水)등 일부기업인들이 근해어업에 종사할 뿐 원양(遠洋)어업은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이 차선출어(借船出漁)
앞서 소개한 통계로 도내에서 어부(漁夫)를 싣고 출어하는 배는 불과 3천 5백 42척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낙도(落島)의 어로(漁撈) 생계에 어민들이 어떻게 고깃배를 타고 살아가는 것일까.
진도 조도(鳥島)는 옛날 범선으로 연안 어업에 의지해 살아가던 곳이라 전국적으로 가장 선업자(船業者)가 많다. 지금도 조기잡이에는 2천여명이 출어(出漁)하고 있는데 범선어로 당시 비교적 어로 기술이 숙련되어 전국 어디서나 조도 어부(鳥島 漁夫)라면 그 기술을 인정해 줬다.
「조도(鳥島)갈이」란 말은 지금도 목포(木浦)에서는 조도(鳥島)사람들의 별명처럼 불린다. 옛날 조도 어부(鳥島 漁夫)들이 전국을 누빌때마다 어느 포구(浦口)에나 조도(鳥島)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자신들의 배에 조도(鳥島) 갈 사람을 타라고 「조도(鳥島)갈 사람 없느냐」는 뜻으로 「조도(鳥島) 갈이! 조도(鳥島) 갈이!」하고 승선자(乘船者)를 불렀으므로 그만 별명이 조도(鳥島)갈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처럼 유명했던 조도(鳥島)사람들도 어로장비가 현대화하고 어선이 동력(動力)화하면서 자기배를 갖지 못하고 경상도 강원도 등지에서 차선(借船)해 고기잡이에 나섰 던 적이 있다.
(그때 당시)
조도(鳥島) 면장 김종규(金鍾圭)씨에 의하면 지금도 조도(鳥島)에서 조기잡이 나가는 배는 2백 80여척에 달한다. 그중 2백 20여척은 강원도(江原道)이나 기관장으로 어로(漁撈)에 자신이 있고 자금유통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차선(借船)해 온다.
정월(正月)에 배를 가져오던 목포(木浦)에 나가 월리(月利) 6부짜리 자금 1백만원쯤을 신용 융자받아 그물을 마련하거나 외상으로 장비를 갖춘다. 이 출어 준비 자금외에 임시 선주(船主)가 된 사람은 동무라해서 승선자(乘船者) 8-9명을 구하고 선장(船長)급은 과 일반 어부에게 선금(先金)을 주어 가정에 남는 가족(家族)의 춘궁대책을 세우게 한다.
이 밖에 선주(船主)는 주부식(主副食), 유류(油類)등을 싣고 2월 들어 출어에 나선다. 한번 조기잡이 나서면 이 배는 6월이 되서야 돌아온다. 한번 만선(滿船)됐다하면 ...그야말로 노가 나지만 재수가 없을 때는 ....차선주(借船主)는 망하기 마련-.
그러나 한 그물 인생들은 마이구리(만선(滿船)을 이름)되는 경우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도박같은 출어(出漁)를 반복하는데 근래 흉어(凶漁)가 계속되어 낙도(落島)에는 이 차선투기(借船投機)로 망한 집이 한두집씩은 있기 마련이다.
선주·어부 6·4제(船主·漁夫 6·4制)
한 배에 오르는 어부(漁夫)수는 대개 8-9명이라 했다. 좀 큰 배에는 10명이상으로 승선한다. 한번 배에 오르면 모든 경비는 공동(共同)부담이 된다.
주부식비(主副食費), 유류비(油類費), 교제(交際), 경비 등이 얼마나 되든지 고기잡이 판돈에서 우선 제하고 남은 돈 중 60%는 선주가 차지하며 나머지 40%가지고 선원들이 나눈다.
예를 들어.. 그 때 당시의 돈으로 환산해서..
3개월 출어에 2백만원어치 고기를 잡을 경우 비용은 보통 20만원가량이 들어 나눌 돈은 1백 80만원이다.
그 중 선주가 1백 8만원을 가져가고 어부(漁夫)가 8명이면 한사람 앞에 9만원꼴 차지가 된다. 그러나 요즘 조기잡이는 1백만원 어획고가 보통이므로 한사람 차지가 3-4만원에 그친다.
그러므로 위험한 해상선업(海上先業)의 월수입은 1만원에서 3만원을 오르내리는셈-. 이런 선업생활도 전남의 낙도(落島)에는 어선 소유자가 적어 기회가 적어진다고 울상들이나 안타깝다.
출어제(出漁祭)날은 흥청거려
고기잡이 출발이란 섬사람들에게 있어 자연(自然)에 운명을 내 거는 날이라 큰잔치가 벌어질수 없다.
출어제(出漁祭)이전에 섬에서는 이미 당제(堂祭)에서 풍어제(豊漁祭)를 겸하거나 정초(正初) 특별히 출어제(出漁祭)날을 받아 제(祭)를 지내는게 보통이지만 섬에서 1, 2척 출어에 나가는 곳에서는 특별히 날을 받아 제를 지내고 닻을 올린다.
이 날은 선주(船主)집에서 떡을 빚어 마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고 마을 어른들에게는 막걸리를 대접하며 때로는 덩이 쌀밥(고사밥)을 나눠주기도 하기 때문에 온 마을이 축제(祝祭)기분에 젖어들고 마을 어린이들은 별미(別味)의 쌀밥덩이나 떡을 먹게 되어 다시 없이 기쁜날이 된다.
선주(船主)와 선원(船員)들이 풍어(豊漁)와 무사를 빌고 마을 사람들도 한결같이 만선(滿船)이 되기를 기원한다.
(중략) 만선(滿船)이 되자 어촌(漁村)에 돌아오면서 부르는 어부(漁夫)들의 함성에 가까운 만선가(滿船歌)는 인상적이었다.
「천고여 만고여 이 엿사 소리에 닻올라온다.
아-양 아야 에에 에요-. 청천하늘엔 별도 떴제, 우리네 그물엔 맬도 들었제 아-암 아야 에에-요. 사농공상 직업중에 우리네 어장이 제일이여
아-양아야 에에-요-.」
(중략)
한 배에 5-11명까지 승선하고 멸치잡이에서는 선주(船主)가 50% 선원이 50%를 차지하며, 이곳에서 잡은 멸치는 건조해 건 멸치로도 팔지만 일기가 나쁘면 젓을 담아 .. 전국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낙월 임자(落月 荏子)근해는 전국의 김장에 쓸새우젓용 새우잡이 어장(漁場)이다. 특색은 대부분의 배가 무동력선으로 t수는 20t급에 달하지만 자체 이동능력이 없기 때문에 멍텅구리배라 부르는 배로 1백여년간을 선체(船體)나 장비를 개량하지 않고 새우잡이를 하고 있다.
진도 서거차(西巨次)에서는 삼치를 많이 잡는 수도 있다. 이런 때는 배가 고리속에 파묻혀 가라앉을 것 같은 상태가 되고 어부(漁夫)들은 풍어기(豊漁旗)를 높이 달고 장구와 징을 치면서 함성을 지르고 포구(浦口)에 돌아온다.
문제는 이처럼 흉어(凶漁)속에서도 풍어(豊漁)를 이루는 수가 있어 어민(漁民)들이 손을 놓지 못하고 집념에 사는데 영영 자금 얻기가 힘들고 배를 갖지 못하는 데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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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져가는 우리 조도 지방의 어업 형태와 어려웠던 그 가난의 시절을 우리는 벌써 잊어가고 있읍니다.
현재의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이루워진 열매에 해당한다 할 것 입니다.
우리는 재대로 한 것이 없지만 그 혜택은 고스란히 우리 젊은 세대가 누리고 있읍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세상을 향해 고개를 빳빳히 들고 .. 그져 조금 운이 좋아서 부모님들 보다 편히 살고 있음을 .... 거만한 몸짓으로 자랑해야 되겠읍니까?
우리는 다만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부모님의 피와 눈물과 땀의 소산을 먹고 있음을 기억하여 괜찮은 여미인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