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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이야기

조계산과 주변마을의 지명 -5 <송광면 이읍-상이읍-천자암>

작성자요산 점수생 인 오|작성시간11.02.04|조회수225 목록 댓글 0

 

       ◐ 이읍리의 지명

 

연번

       지 명

                         위 치

                              뜻과 유래

01

*이읍리(송광면소재지): (하이읍 상이읍 신정(신이읍) 조포막 원동 인덕 6개 마을로 이루어짐)

1914년 고읍(하이읍) 이읍(상이읍) 인덕을 통폐합하여 이읍리라 통칭함.

-송광면은 조계산의 남쪽 외서면에서 서북으로 흐르는 송광천이 곡천에서 보성강(동강)을 만나 조계산이 서쪽으로 뻗어 내린 끝단을 휘감고돌아 모후산과 경계를 이루며 동북으로 흘러 주암면에 까지 이르니 곡천을 꼭지 점으로 남북 60여리를 강물 따라 돌아가며 마을들이 길게 형성되어 낙수를 중심으로 한 북쪽은 상도, 이읍을 중심으로 한 남쪽은 하도로 나뉘어 서로 거리가 멀고 학구가 다를 뿐만 아니라 역대로 상도는 순천 하도는 벌교(낙안)로 생활권마저도 달라 거리감이 상존하여 왔는데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관공서 유치를 두고 끊임없이 대립하여 이질감이 더욱 높아 졌으며 그로 인해 송광면의 주요관공서인 면사무소 지서 우체국과 장이 분산되고 때에 따라 옮겨가는 우여곡절이 거듭되었으며 그 때마다 면사무소를 끌어가려하고 또 빼앗기지 않으려고 인맥을 총동원하여 줄다리기를 하였으며 중간지점으로 타협이 되는가했으나 이읍(하도)에 조금 더 가깝고 분기점인 곡천과 상도의 끝 마을인 대곡을 두고 또다시 줄다리기를 하다가 끝내 대곡으로 옮겼으나 후에 다시 곡천으로 옮긴 다음 주암댐(1984~1991)으로 상도의 중심지 낙수를 비롯한 대부분 지역이 수몰됨으로서 모든 관공서가 이읍으로 모여 현재의 송광면소재지가 되었다.

✹ 면사무소: * ~1956-낙수 *1956.3~1978.4-대곡 *1978.4~1988.-곡천 *1988~ 현재-이읍

✹ 지서: *1945.12(설치)~1946.5(소실)-낙수(원등) *1946.5~1950(전시소실)-대곡 *1950.~1957.1-낙수 *1957.1~1978.3-신평(낙수 다리건너 평촌-고대 삼거리) *1978.3~1988.4 곡천 *1988.4~ 이읍

✹ 우체국: *1963. 9.30 개국(이읍리 원동(992번지 별정우체국) *19** 신정으로 이설

✹ 5일장: *~1956 낙수 *1956~대곡 면사무소 따라 옮김 (1964 송광시장 1970 이읍시장 허가-군지)

 

02

이읍리의 마을이름들

배골(梨邑) 웃배골(上梨邑) 아랫배골(下梨邑) 고읍(古邑) 이촌(梨村) 이제원(梨濟院) 원동(院洞) 인덕(仁德) 신정(新亭) 조포막

1

배골(梨邑)

*이읍(梨邑)의 우리말 이름인 배나무 고을. *배나무가 많아 배골이라 하였다함.

*배골⇒ 이촌(梨村) ⇒이읍(梨邑) ⇒ 상, 하이읍으로 분리 ⇒ 다른 마을 차차 통합.

*우리말 배골의 배에 대하여 배나무(梨)와 배(舟)를 두고 의문과 설왕설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촌부곡재부서칠십오리((梨村部曲在附西七十五里)” 이촌부곡은 순천도호부의 서쪽75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배나무(梨)가 마을 이름의 유래임은 사실로 입증하여주고 있으나 배골에 대해 마을의 형상이 배(舟)를 닮아 풍수지리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노인들이 더 많다. 마을의 서쪽 끝인 신정을 <배끝에> 라고 부르는 것도 배골(마을)의 끝이라고 하는 분과 배(舟)의 끝(머리)이라고 하는 분으로 갈린다 한편 주암댐이 완공된 직후 만수위 때 쓰레기수거선이 한차례 배끄테 들어온 사실을 두고 풍수의 전설이 딱 들어맞았다고 들 하고 있었다.

2

아랫배골

(下梨邑)

운구재와 둔병곡에서 상이읍 서쪽으로 내려오는 큰 개천과 서남(낭)고개 상이읍과 똥뫼 남쪽으로 내려오는 작은 개천이 좌우로 흘러내려 송광천과 합류하는 하단에 평지가 넓게 형성된 곳.

(국도에서 천자암으로 가는 다리 건너 좌측일대)

이읍의 큰 마을로서 예전에는 고읍이라고 불렀음,

3

웃배골(上梨邑)

이읍의 윗마을, 하이읍과 천자암의 중간에 있음

상하이읍 모두를 배골이라 부른 것으로 알지만 하이읍은 고읍이라하고 주로 상이읍을 배골이라 하였음, 송광사를 왕래하던 길 입구 마을

4

고읍(古邑)

하이읍을 고읍이라 부름

“읍”이라는 행정구역의 마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음 고읍을 행정구역이 아닌 상 하이읍이 하나의 마을이던 부곡(部曲)의 시기에 마을을 다스리던 관사의 이름으로 풀이함.

<송광향지 편저자 진인호>

5

이읍성지

(梨邑城地)

하이읍과 상이읍 중간지점인 똥(동)산 좌측아래 드들댕이라 불리는 곳 (지금도 그곳의 땅속을 파면 기와장이 나옴)

이촌(梨村) 부곡(部曲)의 터, 삼국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곳(내 고장 승주의 얼 1983) 백제의 성지로 추정

6

고읍 터

상이읍마을 앞에 솟은 산기슭의 대밭

고읍을 다스리는 관청의 터로 추정,<진인호>

7

이촌(梨村)

이읍(배골)을 말함.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촌(梨村) 부곡(部曲)이 순천부의 서쪽 7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음

옛날에는 상하이읍이 따로 있지 않고 고읍 터가 있는 곳에 이촌이라는 부곡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향지 -편저자 진인호-> (큰 절(송광사)이 사회의 중심에 있을 때는 모든 교통이 윗배골과 운구재로 통하였음으로 상이읍과 가까운 곳에 이촌이 있었을 것으로 이해됨)

9

인덕(仁德)

장동과 하천을 경계로 다리 건너기전 초등학교 방향(西)의 마을

옛 어른들은 몽종골이라 불렀으나 1912년 인덕으로 개명 .다리목에 기와가마가 있었음

10

조포막(造泡幕)

이읍 다리건너(서쪽) 국도변 산비탈 마을 6.25 후에는 약40호가 살았음.

두부를 만들던 곳, 두부를 만들던 조포막이 마을이름이 되었음

11

원동(院洞)

괴솟골을 포함한 승남중학교 일대,

(승남중학교를 지을 때 주춧돌이 나왔음)

이제원(梨濟院)이라는 역원이 있었던 곳. 노인들은 원님이 지날 때 이곳에서 가마꾼이 교대를 하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2

이제원(梨濟院)

이읍(배골) 원동에 있던 워(院)의 이름

이읍의 물 건너편에 있는 원이라는 뜻

13

신정(마을)

신정들의 서쪽 끝단(면사무소일대)

주암댐 수몰로 인해 이읍이 면소재지가 되자 1988년 신정들의 서쪽 끝단에 면사무소 등 송광면 관공서 이전과 함께 새롭게 형성된 마을의 이름

14

신정(들)

고읍의 서쪽 큰 개천 건너 배끄테 까지 형성된 이읍의 큰들

신정들의 서쪽 끝 배끄테 안쪽에 초군들의 쉼터인 신정이 있었음 -?-

15

괴소ㅅ골(지명)

원동(승남중학교) 동쪽 마을에 이어진 곳(약30m) 들에 있던 언덕 이름

고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에서 붙여진 이름.

조포막 등이 개가 엎드린 형상인데 괴소골 고양이의 꼬리를 무니 고양이가 움츠린 모양을 하고 있었다함, 주변의 땅 임자 들이 점차 파 들어가 사라져 버림

16

괴소ㅅ골(마을)

괴소골의 승남중학교에 인접한 곳

6.25때 괴소골 우측인 승남종학교에 인접하여 마을이 들어서자 마을 이름도 괴소골로 부름

17

인덕재(仁德峙)

영봉 뒤편의 높은 봉우리에서 인덕마을 까지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의 하단(초등학교 동쪽)

이읍(방향)과 영봉(방향)으로 넘나드는 고개, 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사라졌음

18

몰(말)궁글이

인덕 재를 넘어가는 하천가 가랫대보 위의 낭떠러지(장동 새 다리에서 건너다 보는 낭떠러지

몰(말의 옛말 또는 사투리)+궁글(굴음)+이(형용의 뒤에 붙어 명사로 만드는 말) *말이 구르는(굴러 떨어지는) 곳. 이곳으로 말을 몰고 돌아가다 자칫 말이 발을 잘못 디디면 가릿대보로 궁글어(굴러 떨어져) 진다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

*말이 두 마리나 떨어져 죽었다고 전해옴

19

가래대보

송광천 장동(인덕)다리 위에 있는 보

가래대 들에 물을 대는 보

20

가래(대)들

괴솟골과 인덕 사이의 감남쟁이 건너편 들

가래대보에서 물을 대는 들,

*가래나무(개오동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21

22

방짓골(마을)

(방죽골)

인덕(장동)을 지나 영동으로 돌아가는 모퉁이의 오룡으로 건너가는 농로다리 위(남)쪽의 완만한 경사지

방죽이 있어서 방죽골이 아니라 옆에 거북등이 있으므로 거북은 방죽 안에 있으므로 거북이 있는 곳이라는 지형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 1910년경까지 마을이 있었음<향지>

23

거북등

오룡으로 건너가는 농로다리 좌측 방죽골 하단에 송광천과 나란히 솟아 있는 산등(영봉으로 돌아가는 국도 하천건너편)

거북이 엎드린 모양

24

진사골(辰蛇洞)

영동마을 서쪽봉우리에서 거북등(송광천)을 향해 뻗어 내린 두 줄기의 골짜기

진=용(12지지의 다섯 번째), 사=뱀(12지지의 여섯 번째)을 의미함 좌(西)측의 큰 골짜기와 우(東)측의 가느다란 골짜기가 거북(등)을 향하고 있는 모양을 용과 뱀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

25

감남정(柿木亭)

솔모랭이 정자나무가 있는 곳

감남쟁이 들 현재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정자가 있는 초군들의 쉼터였는데 예부터 감남정으로 불러오므로 오래전에는 감나무(柴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

26

감남쟁이들

마을 우(동남)측 솔모랭이 끝단의 큰들

감남정(柿木亭)이 있는 들,

*감나무정→ 감남정→ 감남쟁이

27

감남쟁이보

모랭이보와 무덤이보 사이 송광천과 장안천이 합류하는 곳

감남쟁이 들에 물을 대는 보

28

정자나무거리

감남정 들의 현재 느티나무가 있는 곳

네 아름도 넘은 수백 년 된 썩어서 속이 빈 정자나무에 1935~6년경 나환자와 거지들이 모여 살면서 불을 피우다 불이 붙어 해방직후까지 한 가지가 겨우 살아 있었으나 태풍에 부러져 죽음, 지금의 나무는 1955년경에 두 나무를 심었는데 한 나무는 아이들이 나무를 잡고 하도 노대는 바람에 죽고 한 나무만 살아남은 것임.

29

팽나무거리

드들댕이의 중간지점

<송광향지에는 마을의 동쪽>

커더란 팽나무가 있었으나(0000경) 죽었음

30

배끄테(끝에)

신정(면사무소지점) 아래 하천과 이어진 지점

배골의 끝, *이읍(배골)의 지형인 배(舟)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음

31

자(짜)구남정

신정에서 서쪽 산척방향으로 한 능선 사이인 현 이읍 장터와 뒤편의 골짜기

입구에 자귀(짜구)나무가 있던 쉼터를 포함한 뒤편 골짜기를 모두 이르는 말 .

하이읍의 서편(산척방향)과 동남쪽(인덕방향)사이에 초동(사람들)들의 쉼터인 짜구남정⇔신정⇔감남정이 차례로 있었음

32

장성(승)거리보

송광천의 무덤이보와 오리보 사이 현재 감남쟁이에서 괴솟골로 건너가는 다리지점

장성(승)거리 보에 물을 대는 보

33

장성(승)거리들

이읍 진입로 입구 서쪽 정자나무 들

장승이 서있는 곳의 들, 장성으로 발음함

34

장성(승)거리

국도삼거리에서 이읍마을로 하천(다리)을 건너기 전 정자나무 옆 옛 길의 좌우

고읍(하이읍)의 목장승이 (19**까지)서있던 곳,

<송광향지>는 위치를 괴솟골 서쪽으로 기록

35

오리들

송광천이 장동에서 이읍으로 굽이도는 곳으로 튀어나온 감난쟁이 들의 하(끝)단 부

들을 감고 도는 하천의 모양이 오리를 닮음

36

오리보

송광천의 장성(승)거리보 아래 감남쟁이에서 괴솟골로 건너가는 다리 아래

오리들에 물을 대는 보

37

귀(구)신바구

상이읍에서 하이읍으로 내려오는 서쪽 큰 개천 드들댕이 좌측 개울가 (하이읍으로부터 약500m 지점)

귀신이 나타난다고 붙여진 이름. (바위 앞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었던 곳)

38

대내골

조포막과 덕동사이 조포막에 가까운 남쪽 뒷산을 향한 두 골짜기, 조포막에 인접한 골짜기가 웃대내골이고 다음(덕동방향)골짜기가 아랫대내골

송광향지에는 죽내골(竹內洞)로 기록되어 있으나 큰 내골(大川)이 어원이라 설명<***(**)>

39

웃대내골

조포막과 서쪽으로 인접한 짜구정 건너편골짜기

아랫대내골 위(동쪽)에 있는 골짜기

40

아랫대내골

웃대내골에서 덕동방향(서)으로 인접한 여운녈 건너편골짜기

웃대내골 아래(서쪽)에 있는 골짜기

41

모시골

아랫대내골 남쪽 골짜기 상단

모시나무 밭이 많았음(많이재배)

42

횟돌바구

짜구남정의 건너편 개천(송광천)구 도로 안쪽에 있던 바위 (웃대내골과 아랫대내골 경계방향)

일제 때 그 바위에서 회(시멘트)를 채취 하였다함. 도로 옆 땅 임자가 흙을 쌓아 형태가 거의 묻혀 버렸음

43

마당재

운구재에서 천자암으로 가는 길 봉대미골 몬당을 넘어 능선에서 천자암으로 돌아가는 지점 (오거리였음)

이읍(둔병골)에서 송광사비룡폭포(이천장골)로 왕래하던 고개, 이곳은 1운구재 2천자암 3이천장골(송광사) 4둔병골(이읍) 5능선따라 천자암 뒷봉우리(742고지)로 갈라지는 오거리

44

둔병곡(屯兵谷),

둔병골, 둔배

상이읍에서 운구재 길(방향)로 약200m지점에서 농로 삼가리에서 우측(742고지방향)으로 약500m 올라간 지점의 골짜기 일대 (현재 상이읍 상수도집수탱크가 설치된 곳)

병사들이 주둔했던 골짜기, 병사가 주둔했던 시기는 불명

45

똥메(똥산)

(동산)

하이읍에서 약700m지점 드들등 우측에 상이읍을 가로막고 솟아 있는 동산

똥산 또는 동산이라고 하며 주변의 산과 이어져 있지 않고 떨어져 마을과 가까운 곳에 똥 덩이 모양으로 솟아있는 작은 산을 말함

46

드들댕이(들)

상이읍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중간지점에 작은 봉우리처럼 볼록 솟은 곳에서부터 상이읍마을 밑까지 잔등처럼 펼쳐진 들.

똥산과 낡은 터 사이가 드들댕이 앞머리

드들은 딛을(밟을) 댕이는 덩이(덩어리)의 사투리, 고읍에서 상이읍을 향해 큰 개울 쪽 길로 갈 때 밟고 올라간다는 뜻

47

모랭이

천자암 뒷산(742고지)에서 달띄기를 거쳐 뻗어 내리던 줄기가 자자골 상단에 와서 솔모랭이 줄기와 갈라져 괴솟골 방향 송광천 앞에서 멈춘 끝머리

모랭이는 모롱이의 다른 발음으로 길모퉁이라는 뜻, 고읍과 장안 사람들이 이 끝머리를 돌아 왕래하였음

48

모랭이(들)

모랭이 끝단 감남쟁이 들 우(장안)측

모랭이 끝에 있는 들

49

모랭이보

장동 똑두쟁이, 장안에서 내려오는 하천 월은삼거리 아래 (성시보 아래)

모랭이들에 물을 대는 보

50

말배미(논)

모랭이들 안에 있던 약 서마지기 크기의 논배미

‘배미’는 논배미의 준말로 구획진 논을 세는 단위, 논의 모양이 정사각형으로 옛날 곡식을 되는 말(斗) 모양으로 생긴데서 유래

51

자작골(尺尺谷)

솔모랭이(우측)와 모랭이(좌측) 사이의 감남정들의 북쪽 골짜기, 고속도로로 인해 막히고 넓은 지하도가 두 개 뚫렸음 <향지>에는 고읍동쪽으로 표기

한자두자 하는 자자가 자작으로 변하였고 한자로는 척척곡(尺尺谷)으로 표기 하지만 유래는 알 수 없음

52

솔모랭이

달띄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자작골 상단에서 모랭이와 갈라져 마을우측(동남) 까지 뻗어 내린 산줄기의 끝단 고속도로 공사로 목아 잘렸음

소나무로 가득한 산줄기의 끝단을 돌아가는 곳, 안에서 모랭이를 돌아 또다시 솔모랭이를 돌아오면 하이읍의 노인정 뒤편 ‘외등’ 앞에 다다름,

{소를 몰고 돌아오는 곳이라 하여 ‘소모랭이‘라는 분도 있음}<강병준>

53

공마당

마을 우측 솔모랭이의 머리 위에 있었던 현재도 형태가 그대로 있는 넓은 운동장 터

일제강점기인 1936~7년경 집회 운동경기 등 모든 행사를 하기 위한 개화사업의 하나로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약500평 크기로 만든 공공운동장

54

옹구막

(옹기가마)

상이읍으로 가는 길 공마당에서 나오는 길이 왓등과 만나는 지점, 도로로 인해 사라짐

옹구는 질그릇인 독 즉 옹기의 사투리, 이 지방에서는 옹기가마를 옹기를 굽는 사람들이 사는 집(막)과 합하여 옹구막으로 불렀음

55

무등쟁이(정)

(舞童亭)

죽산마을 앞 당산나무가 있는 곳

무등쟁이를 무동정(舞童亭)으로 기록함

<송광향지>는 ‘무등은 절터이고 ’쟁이’는 장인(匠人)에서 왔을 것이라고 하나 이 일대에서 지명에 부르는 ‘쟁이’가 쉬어가는 곳의 명칭 접미사로 쓰이므로 머무르는 곳의 한자 정(停)이나 머무르는 곳에 있는 정자의 정(亭)에서 비롯된 사투리 발음으로 보인다.

56

무등쟁이 들

무동정 앞 일대

무등쟁이 앞에 있는 들

57

무등쟁이 보(湺)

송광천 배끝(신정)앞에 있는 보

무등쟁이 들에 물을 대는 보

58

배남쟁이(정)

신정뒤편 요골입구 선돌배미서쪽 끝에서 샘골 쪽으로 약70m지점

배나무가 있던 쉼터에서 유래 <송광향지>에는 “배나무정자가 있었음”이라 기록

59

시풍쟁이

(甚風停)

고읍의 동쪽, 외등(옹구막자리)에서 상이읍으로 약150m지점(고속도로 통로) 우측 산비탈

추운 겨울바람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곳

60

모당골

(모퉁이골)

똥섬 우측의 시풍쟁이 북(위)쪽 골짜기

6.25 때 몬당(꼭대기)에서 봉화를 올리던 곳, 모댕이골 즉 돌아가는(시풍쟁이에서) 모퉁이에 있는 골짜기

61

독다리

상이읍 마을로부터 약300아래 모당골 입구와 맷돌바위 중간

상이읍 길 서낭고개방향에서 내려오는 개천에 놓여 있던 폭 약2m 길이 약3.5m 크기의 돌다리 (시멘트다리공사를 하면서 없어짐)

62

외등

(와등)

마을 입구에서 상이읍으로 가는 길의 좌측(마을의 우측) 미륵법당 뒤 낮은 언덕 <드들등 아래 있는 들-향지>

-고읍마을의 동쪽 경계인 개천 밖에 있는 언덕

-소를 몰고 소모랭이를 돌아와 마을 입구인 이곳에서 ‘와’하고 멈추는 곳(소가 엎드려 있는 형상)

63

자라(래)바구

국도다리 밑(서쪽) 신정과 조포막 사이 하천의 좌측(신정에 가까이)

자라 형상을 닮은 바위

64

구시둠벙

송광천 신정과 조포막 사이 자래바구 아래(서쪽) 국도다리에서 보면 굽이도는 위치에 물이 깊게 보이는 곳

‘구시’는 구유의 사투리 물이 담겨 있는 구시(유)를 닮았다 하여 불리는 이름, 이읍의 청소년들이 여름에 목욕을 하던 곳

65

장구배미

오리들 안에 있는 서마지기 논배미

장구모양으로 생겼음

66

황새바구

이읍초등학교 앞 감남쟁이보 안에 있던 바위

황새가 항상 앉았던 바위

67

운구재(인구재)

송광사와 이읍을 넘나드는 고개

이읍에서는 송광사의 스님들 시신을 화장하기 위하여 널을 운구(메고 옮김)했던 데서 유래 하였다고 하나 송광사의 문헌에는 인구재(人救峙)라 하여 호랑이로부터 사람을 구원하는 곳 또는 인구라는 스님이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곳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68

수(쓰)배기

운구재에서 하이읍 뒤편으로 내려오는 긴 능선의 중간지점인 산척마을의 금성당 골짜기와 만나는 길이 험한 비탈

‘수’는 남의 토지를 경작하여 비율대로 바치는 곡식이고 배기는 주워 담는다는 말에서 온 사투리. 송광사의 논을 지어 수를 바치러 쌀을 지고 갈 때 이곳의 길이 험하여 아차하면 쌀가마니가 굴러 떨어져 골짜기에 흩어진 쌀을 주워 담아 가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

69

짓댕이(짓등) (잿등)

운구재 좌(서)측에서 수배기를 거쳐 마을 뒤편으로 뻗어 내리던 긴 줄기가 풍덕골 위에 멈춰 솟은 등

잿(고개)마루에 가까운 산등 혹은 고갯마루(잿몬당, 잿몰랑

70

풍덕골

마을뒤편 짓댕이에서 좌측으로 신정과 우측 드들댕이 앞머리 까지 마을전체를 넓게 감싸 돌고 있는 골짜기 중의 가장 우측골짜기, 마을입구에서 약450m 낡은 터가 골짜기의 입구

골짜기의 입구(낡은 터)에 있던 풍덕골이라는 마을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 옛날 골짜기의 입구에 풍덕촌이라는 있었다는 기록이 향지에 있음

71

요골

풍덕골과 샘터골 사이의 샘터골 우(동)측에서 짓댕이 아랫 등 뒤편으로 풍덕골 을 향한 골짜기

짓댕이 앞 골짜기 중앙하단 들과 마주치는 지점에 작은 동산이 솟아 그 끝단에 마을 상수도탱크가 서 있음

72

샘터골

짓댕이에서 배끝으로 내려온 산줄기와 요골 사이의 골짜기, 이읍교회가 골짜기의 입구이며 골록골 중간으로 넘어감

웃샘터와 아랫샘터가 있었던 골짜기,

73

낡은 터

마을(리사무소)에서 약450m지점의 좌측 낡은 터 뒤편 짓댕이(운구재)로 오르는 골짜기입구

옛날에 그곳에도 집들이 있었으나 사라진 뒤에 그 집터를 낡은 터라 했을 것으로 추정.

풍덕촌이라는 이름이 있음<향지>

74

죽동우배미

풍덕골 낡은 터

흉년에 죽 한 동이하고 바꿔먹은(소작을) 너마지기 논배미

75

선바우(바위)

낡은 터 아래 논, (짓댕이 중앙 잔등 끝단(상수도 탱크)밑. *풍덕골 남쪽<향지>(넓이 약80cm 두께 약40cm 사람 키 높이로 서 있던 바위)

선바위를 쓰러드렸더니 마을의 농사가 잘되지 않아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전설이 있음,

*2000년 초 박영식 씨가 포크레인으로 파다가 마을의 집 앞 골목에다 옮겨 세음

76

선바우배미

신정에서 풍덕골로 오르던 짓댕이 중앙 잔등 끝단 우측 길 아래 논(현재 마을 뒤에 새로 낸 넓은 길 위의 큰 논

 

선바우(위)가 있는 서마지기 가량의 논 매미

77

여운녈

이읍 신정(배끝)에서 산척으로 돌아가는 국도변 좌측(남쪽)의 하천(송광천)

물살이 빠르게 여울지는 곳. 여울목과 비슷한 말

78

여운녈들

배끝을 지나 산척입구 가까운 곳(송광천 하수종말처리장) 까지 국도방향 하천변(고수부지)에 길게 이어져 있던 들(논)

여운녈에 있는 들

79

천자암

이읍(면소재지)으로부터 북방 약2.5km은 산(742고지) 중간의 벼랑 위

보조국사의 제자가 된 금나라 황제(장종)의 세 째 아들인 천자(후일 송광사의 제9세 담당국사)가 창건하여 수도를 하였던 곳이라 하여 천자암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옴

80

742고지

천자암 뒤편의 높은 봉우리, 천자암과 송광굴목재 사이에 있음 (742m)

천자암의 뒤편 봉우리를 6.25공비토벌 작전 시 높이(m)에 따라 부른 군사용어, 정상에 이무기가 하늘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의 바위가 있으며 기우제를 지내던 곳

81

천잠산

(천자암산)

천자암 뒷산(742고지)

송광사지세의 청룡줄기(좌) 어께에 해당하는 곳, 송광사 쪽에서 부르는 이름이나 기록은 없음,

이읍마을 사람들이 천자암의 뒤편 봉우리라 하여 천잠산으로 부르는 명칭이 없거나 모를 때 주변의 상징적 명칭을 빌어서 부르는 이름

82

천자암골

천자암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천자암산과 마찬가지로 골짜기의 이름이 없으므로(천자암은 골짜기에 있지 않음) 상징적으로 부르는 이름

83

쌍향수

천자암에 대웅전 우측 처마 끝 언덕 위

천연기념물 제88호, 800년 수령의 두 아름이 넘는 크기의 나란히 서있는 곱향나무 두 그루.

보조국사와 제자인 중국의 천자 담당국사(후일)가 나란히 꽂아둔 지팡이가 살아나 가지가 거꾸로 숙이고 있다는 전설이 있음

84

범바구(바위)

천자암(뒤편)과 742고지능선 중간에 있는 커다란 바위(암등)

멀리 이읍 마을에서도 하얀 빛으로 보이며 옛날에 그곳에 사는 커다란 호랑이가 항상 그 바위에 앉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함, 그 능선 산세의 형상인 虎伏形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

85

호랑이 발끝자리

천자암 종각이 있는 낭떠러지 위

742고지에서 범바위를 거쳐 천자암으로 내려오는 줄기가 호랑이가 엎드려 개(조포막)를 노려보고 있는 형상으로 천자암이 머리헤 해당하고 그 끝인 종각자리가 뻗고 있는 발끝에 해당한다고 함, 종각을 지을 때 산세를 상하지 않기 위해 떨어내지 못하게 하였다 함

86

맷돌바위

상이읍 마을이 시작되는 입구 마을길과 서남고개 길 삼거리

커다란 바위의 허리 중간이 갈라져 맷돌을 포개 놓은 모양 (사진)

87

당산나무

(상이읍)

마을입구, (개울을 따라 옛 지름길로 올라가는 마을회관 약40m전)

현재는 약350년 수령의 당산나무 한그루만 있지만 광복 전까지 4그루가 있었으며 나무 앞에당산제를 지낼 때 지낼 때제물을 바치는 돌로 쌓은 제단이 있었다. 70년대까지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매구(풍물)를 침

88

벅수(장성)자리

(상이읍)

동산과 서쪽 큰 개울사이 디딜댕이로 올라가는 옛길의 마을 앞 논머리 어귀에 약3m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서있다 (사진)

200년이 되었다는 옛 장승은 1990년경에 광주(의) 대학교에서 사가고 지금 것은 그때 한밤나무 웃동과 아랫동으로 옛것과 비슷하게 다시 만든 것이다 서방(좌측 높이180 둘레90) 각시(우측 높이220 둘레 하65 상80)

89

짐대거리

(상이읍)

장승 자리와 맷돌바위 아래 마을로 들어오는 길 두 곳, (장승자리가 있는 곳이 본래 아랫배골과 윗배골을 왕래하는 큰길이었음)

70년대 후반(1976) 까지도 10여m 높이의 나무 끝에 먹이를 물고 가는 오리 형상을 깎아 앉힌 짐대(솟대)를 세웠다. 이읍마을의 지형이 달리는 배의 형국이어서 돛대(돛대를 세워야 마을이 흥한다)라 여김

90

모개나무거리

(상이읍)

상이읍마을(회관)에서 천자암 길로 약250m지점 큰 바위와 정자나무 두 그루 그리고 모과나무가 있는 곳(봉연정)

약350년 된 모과나무가 있어 모개(과)나무 거리라고 부름, 오래된 팽나무와 네 가지로 뻗어 오른 대형 해송도 함께 있었으나 팽나무는 1925년 죽고 소나무는 주인(봉연정)이 손님들의 앉을 자리를 만든다고 땅으로 비스듬히 뻗어 오른 아래가지를 흙으로 묻자 2007년 사망

91

서낭고개

상이읍과 장안을 넘나드는 고개, 마을입구 맷돌바위에서 동쪽 골짜기로 올라 장안으로 넘어감

서낭당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전해옴, 현재는 서낭당의 흔적이 없으나 옛날에는 고갯마루에 서낭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상이읍 김삼봉(76)>

92

종골(좁은골)

서남고개 좌(북)측과 삼상골 우(남)측 사이에 있는 골짜기

좁은 골의 발음이 종골로 바뀌었다고 함

93

삼상골(三相洞

마을 우(동)측 종골과 선돌개미 사이의 골짜기

3명의 재상이 날 터가 있는 골짜기 -?-

94

선돌개미

마을의 동쪽 십상골 좌(북)측과 진자갓 우(남)측 사이에 있는 달띄기로 오르는 골짜기 입구의 완만한 경사지

선돌이 있는 산비탈

95

진자갓

선돌개미 좌측 새(끼)까끔 아래, 마을로부터 천자암 길로 약200m 위에 있는 모개나무거리(천자암골)의 우측 일대

진=긴(길다) 자=재(고개 오르막) 갓=가(옆),

긴 고개의 갓이라는 긴재갓이 진자갓으로 변함

96

영사(靈砂)바구

마을 동(右)쪽 달뜨기 아래 약500m지점에 있는 바위의 이름, 선돌개미에서 영사바구를 거처 달띠기로 오름(마을에서 약1km)

옛날 이 바위에서 영사(靈砂)를 고았다고(제조) 전해옴 *영사(가루)는 수은과 유황으로 합성하여 제조하는 어린이의 경기 등에 사용했던 붉은 가루약 *영사는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서는 제조를 하면 안 되는데 조포막에 마을이 형성된 뒤부터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 제조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전설

97

달띄기(봉우리)

이읍 동쪽의 북바구 아래 봉우리, 진자갓 우(남)측 선돌개미로 들어가 영사바위 좌측으로 오름

달이 떠오르는 봉우리(일출봉). 천자암 뒤 742고지에서 남서방인 이읍마을 우측을 향해 뻗어 내린 줄기의 중간인 상이읍 동편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있는데 상이읍에서는 제일 위를 북바구, 가운데를 달띄기(마지막은 이름이 없음) 하지만 하이읍에서는 가운데 달띄기가 앞 봉우리에 가려 보이지 않으므로 북바구를 달띠기라고 부르고 있음

98

북바구(바위)

상이읍 동쪽 진자갓과 새끼까금 뒤에 있는 달띄기 위(북)의 봉우리 장안 마을에서 잘 보이는 봉우리 상단에 북바구가 있음

주로 장안마을에서 부르던 이름이며 북처럼 생겼다는 바위의 이름이 봉우리의 이름이 됨.

99

참샘(찬샘)

상이읍 마을회관으로부터 서남고개방향으로 약120m 삼상골 입구에 해당하는 대밭 앞

찬물의 ‘찬샘’이 참샘이 되었다함, 사방1m 깊이 약70cm 사각석주조립형, 네 기둥과 지붕이 있는 마을의 성스러운 샘

100

참샘골(마을)

상이읍 본 마을에서 동쪽(서남고개방향)참샘이 있는 곳으로 떨어져 있던 작은 마을

참샘 마을, 현재는 마을이 모두 이어져 있음

101

새(끼)까끔

상이읍 우(東)측 진자갓 위쪽의 산.

<송광향지에는 천자암 북쪽 말림갓이 있던 고개라 기록>

큰 산에 딸린 작은 산(아기 산) 까끔은 야산의 이 지방 사투리,

102

말림갓

상이읍 뒤편의 송광사 절산

나무나 풀을 베지 못하게 관리하는 산

103

지서 터

국도에서 다리건너 송광천과 이읍동쪽으로 내려오는 작은 개천이 만나는 좌(서)측 모서리지점의 마을입구 빈터와 논 일대

6.25전후(1948.4.22~1956.7.4)좌익소탕의 필요성 때문에 개설된 벌교경찰서 예하의 지서(출장소), 조계산과 모후산 공비토벌의 점, 공비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ㄴ'형 두 하천의 반대편에 건물을 감싸는 ‘ㄱ'형 돌담을 높이 약2.7m 폭1.2m 총길이 약40m 이중으로 쌓아올려 바깥담에는 일정간격으로 사격 창을 내고 상단을 나무로 덮고 흙을 깔아 초병들이 교행하며 보초를 서는 돌성(토치카)을 쌓았고 여러 곳에 ’ㄱ'자 형으로 문을 냈으며 그 밖으로는 깊이 약3m, 지면의 폭 약5m의 방공호(40m)를 팠고 방공호 밖으로는 건물 전체를 빙 둘러 이중으로 죽책을 둘러 삼중 사중의 방어막을 설치하였다.

104

장성(승)거리 물레방아

현재 국도와 이읍 길 삼거리의 중학교 방향 하천 쪽 모서리

장성거리보의 물로 돌려 곡식을 찧던 벼락방아→기계식방아→ 무명을 타는 방앗간으로 1970년대 초까지 돌림

105

물레방아 보 물레방아

장성거리보 물레방아에서 중학교방향으로 약60m

물레방아보 물로 돌림, *곡식 찧던 벼락방아→ 밀가루방아→ 수력모터발전 (1980경까지 돌림)

106

제재소

장성거리보 물레방아와 무덤이보 물레방아 사이

1950년대 천자암 뒷산에서 벌채한 소나무를 켜든 공장

107

짐대(솟대)거리

(하이읍)

장성거리에서 다리를 건너와 마을 입구

전봇대만큼 높은 짐대(오리)를 만들어 세우고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매구(풍물)를 쳤음

108

큰 샘

마을의 한(큰)골목 끝 삼거리에 있는 샘

1.6m×1m 사각에 깊이60cm 까지 바닥을 채우고 네 귀에 기둥과 지붕을 얹은 마을의 큰 샘

109

통 샘

앞 끝에(지서 밑)

통으로 샘을 만들어 둥그런 모양, 마을 사람들 2/3가량이 이 샘을 사용

110

벼락바구(바위)

큰샘으로부터 약30m 아래 개울가 마을길옆에 기대고 있는 바위

가로세로 약1.6m 높이 2,5m 크기의 바위 윗부분이 잘리고 깨어진 형태로 얹혀 있는데 벼락을 맞아 그렇게 되었다고 벼락바구(위)라 함

111

한골목

마을입구(리사무소 앞)에서 큰 샘까지 마을 중심을 지나가는 큰 골목

한=大(큰)의 우리말, 즉 큰골목

112

아뭇골

마을의 우(동)측 큰 개울과 맞닿은 현재 미륵사원이 있는 욋등 밑(앞)

마을외곽으로 흘러내리는 양 개천을 경계로 좌우로 나누어 작은 개천의 우(동)측을 부르는 이름

113

죽안

마을의 좌(서)측 개울과 맞닿은 곳

마을의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큰 개천의 좌측을 부르는 이름, 대밭이 있었음

114

아래끝과 웃끝

마을의 입구인 남쪽 끝과 뒤편 북쪽 끝

마을을 상하로 나누어 입구(남)를 아래 끝, 뒤편(북) 끝단을 뒤끝이라 불렀음

115

무댐(덤)이보

감남쟁이보와 장성거리보 사이

비가 약간만 와도 물이 모여들어 보가 물속에 잠겨버리므로

116

마당재

천자암 길 운구재를 지나 봉대미골 몬당 넘어 능선에서 비탈로 돌아가는 지점의 이읍 둔배골에서 올라와 송광사 이천장골로 넘어가는 오거리

양쪽 모두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와 마당처럼 쉬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코재

송광사 쪽 토다리입구에서 이천장골로 넘는 고개

지게를 지고 오를 때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데서 유래, 거의 이읍 사람들이 다니면서 붙인 이름

*보

성시보(장안)→ 모랭이보→ 감남쟁이보→ 무덤이보→ 장성거리보→ 오리보

 

 

 

 

* 2009~2010: 하이읍:최태윤(96) 임병일(86) 강병태(82) 강병준(75) 임병우(75) 김재진(75) 김평옥(75) 최용성(75) 임석호(75) 박근영(73) 최우규(73) 박영탁(71) 김봉남(69) 임효성(67) 등

상이읍:김영환(83) 김삼봉(76) 이용순(73) 등

인덕: 김용태(86) 등, *참고문헌: 송광향지 1986. 8 17 발행(진인호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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