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토프 바라티에 (「위대한 비상」2001)
출연: 제라르 쥐노(마티유 선생), 장 밥티스트 모니에르(소년 모랑주), 막상스 페랑 (페피노), 프랑수아 베를레앙(라샹 교장), 카드 메라드(샤베르 선생), 마리 부넬(비올렛)
장르: 드라마
제작: 2004
상영시간: 97분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영화에 관하여: [코러스]는 어린이들의 성장과정을 그린 성장영화면서 교육현장의 모습을 담은 교육영화이다. 이 작품은 [여왕 마고]를 만든 장 드레빌레 감독의 [나이팅게일의 새장](1947)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1950년대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자전적 영화 [400번의 구타](1959)를 배경에 두고 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의 전통을 잇는 전형적인 성장영화이다. 2004년 유럽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고 2005년 아카데미영화제, 골든글로브, 런던 아카데미 등의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관객 900만명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영화의 감독 크리스토프 바라티에는 2001년에 [위대한 비상]을 연출했다.
배우에 관하여: 주인공 마티유 선생 역을 연기한 제라르 쥐노는 [불량소년들], [세라자드], [고스트파트너]에 출연한 만년 조연배우이나 [코러스]로 전세계 영화팬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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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으로 본 영화비평
“꾸지람 속에서 자란 아이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미움 받으며 자란 아이 싸우는 것 배우고
두려움 속에서 자란 아이 불안함을 백우고
동정 속에서 자란 아이 낙담하는 것을 배우고
놀림 당하며 자란 아이 수줍음을 배우고
시기 속에 자란 아이 질투를 배우고
부끄러움 속에서 자란아이 죄의식을 배우고...”
도로시 놀트라는 시인이 지은 <생활 속에서 배운대로 하는 어린이>라는 시의 일연이다. [코러스]를 보면서 이 시가 생각났다.
[코러스]의 배경은 2차대전이 휩쓸고 간 1940년대 말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 있는 기숙학교 <퐁 드 레땅>(직역하면 ‘존재함의 토대’ 무언가 암시하지 않는가?). 이 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부적응으로 낙인찍힌 가난한 학생들을 수용해 놓고 지역의 부유한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하는 특수 기숙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출세하지 못한 한을 품고 할 수 없이 이 학교에 부임한 라샹이다. 그의 교육철학은 저 유명한 물리학의 뉴턴의 제3법칙 <작용-반작용>(악시옹-레악시옹>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가장 확실한 아동교육의 원리인 이 법칙은 학교의 규칙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반작용, 즉 처벌이 이루어지면 확실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의 규칙은 그가 정한다. 모든 학생은 예외 없이 이 원리에 의해 가혹하게 다루어지며 모든 교사들도 이 교육철학에 따르도록 훈련된다. 그의 교육철학에도 예외는 있다: 그는 후원자들 앞에서는 자비로운 교육자로 변신한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학교에 한 대머리 선생이 나타난다.
마티유 클레몽, 그는 훌륭한 작곡가가 되려 했지만, 음악에의 꿈을 접은 채, 시골 기숙학교 사감 자리에 지원한 실패한 예술가이다. 그를 기다리는 환경은 무정하고 가혹한 교장이 통치하지만, 끊임없이 저항을 시도하는 작은 악동들이 공존하는 폐쇄된 작은 왕국이다. 그러나 실패한 작곡가 마티유는 거기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냈다. 왜 일까?
이 영화의 표층구조는 그 이유가 바로 <코러스>라고 이야기 한다. 이 무자비한 학교 시스템에 갖힌 아이들을 구한 것은 마티유의 한맺힌 음악에의 열정과 자부심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합창연습을 통해 극도로 산만한 아이들에게 집중력과 의욕을 고취시켰다. 처음에는 대머리 마티유를 우습게 보고 그들의 장난기의 희생제물로 삼으려 했던 아이들은 마티유를 지도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높으신 후원자 백작부인 앞에서 그들의 예술적-사회적 가치를 입증한다.
그러나 마티유의 성공비결은 그뿐이었을까? 이 영화의 심층구조는 그것이 마티유의 건강한 인격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마티유와 이 학교의 다른 선생들과 비교해보자.
교장 라샹은 아이들의 교육의 책임을 맡았으면서도 그 자리를 자신의 출세의 수단으로만 이용한다. 그에게는 후원자들에게 잘 보여 자리를 유지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편안하게 사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이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그에게 사회의 낙오자요,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는 이 쓰레기들을 관리하기 위해 강압적인 규율을 적용했다. <악시옹-레악시옹>!
체육교사 샤베르는 애국자로서 프랑스를 단결시킬 수 있는 것은 체육과 음악이라고 믿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장의 명령과 학생들의 일탈행위에 분노한 나머지 악시옹-레악시옹의 공식으로 학생들을 대한다. 또 한사람의 교사는 안경잡이 수학선생 카팡티에다. 그는 출퇴근하면서 자기가 맡은 수학을 충실하게 가르친다. 그에게 아이들의 처지나 관심사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다. 라샹의 체제에서 침묵하면서 자신의 일만을 할 뿐이었다. 이 두 사람은 마침내 마티유의 코러스가 아이들을 변화시키자, 자신들의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마티유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티유도 다른 선생과 마찬가지로 부임하자마자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이중경험을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교사와 사감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무례한 아이들의 벽에 부닥쳤다. 이 두가지 현실의 갈등 속에서 그는 다른 교사들이 택한 쉬운 길을 거부했다. 그는 그를 끝까지 배신하는 문제학생에게 교장의 방식대로 위협과 처벌로 대하지 않고 고민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그의 인격은 한 가지 극단에 빠지지 않고 긴장 속에서 대안을 찾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그가 평생을 갈고 닦아온 음악에서 그는 코러스를 통해 새로운 교사-학생 관계를 만들어 냈고 주위 교사들 마져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자신의 처지에 상관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티유의 한계도 보여준다. 몽당의 예이다. 몽당은 어른들,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무시되고 버림받은 아이이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둔한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지적으로 예민한 아이였고 건장한 몸을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몽당은 끝까지 저항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를 사회부적응아와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기성사회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뿐이었다. 몽당의 분노와 복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이 영화는 몽당과 같은 아이가 우리 주위에 또 없는지 묻는다. 아이들의 아름다운 합창을 기억하며 이 영화평을 마무리한다. 그 합창의 가사대로 사람을 교육하는데 희망보다 더한 감미로움이 있을까!
저 바다를 어루만지듯
갈매기 가볍게 내려앉고
작은 섬의 깨진 바위틈에
덧없이 부는 겨울 미풍
마침내 사위어가는 그대의 찬 숨결
저 멀리 높은 산 속으로
바람 마주하며 그대의 날개 펼쳐 잿빛 동쪽 새벽하늘로
무지개의 길 찾아 그럼 봄이 모습을 드러내죠
조용히 바다위로
라모의 ‘오. 밤이여’
오. 밤이여 이 세상에 가져오소서
매혹적인 고요와 당신의 신비함을
당신이 동반하는 그림자는
너무도 아름다워요
그런 감미로운 콘서트
희망을 노래하는 당신 목소리 당신의 힘 너무도 커서 모든 걸 꿈으로 바꾸죠.
<솔로>
오. 밤이여 이 세상에 그대로 계시소서
그 매력적인 고요와 당신의 신비함을
당신이 동반하는 그림자
너무도 아름다워
더 아름다운 게 있을까요 당신이 주는 꿈보다
더한 진실이 있을까요
희망보다 더한 감미로움이!
출연: 제라르 쥐노(마티유 선생), 장 밥티스트 모니에르(소년 모랑주), 막상스 페랑 (페피노), 프랑수아 베를레앙(라샹 교장), 카드 메라드(샤베르 선생), 마리 부넬(비올렛)
장르: 드라마
제작: 2004
상영시간: 97분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영화에 관하여: [코러스]는 어린이들의 성장과정을 그린 성장영화면서 교육현장의 모습을 담은 교육영화이다. 이 작품은 [여왕 마고]를 만든 장 드레빌레 감독의 [나이팅게일의 새장](1947)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1950년대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자전적 영화 [400번의 구타](1959)를 배경에 두고 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의 전통을 잇는 전형적인 성장영화이다. 2004년 유럽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고 2005년 아카데미영화제, 골든글로브, 런던 아카데미 등의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관객 900만명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영화의 감독 크리스토프 바라티에는 2001년에 [위대한 비상]을 연출했다.
배우에 관하여: 주인공 마티유 선생 역을 연기한 제라르 쥐노는 [불량소년들], [세라자드], [고스트파트너]에 출연한 만년 조연배우이나 [코러스]로 전세계 영화팬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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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으로 본 영화비평
“꾸지람 속에서 자란 아이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미움 받으며 자란 아이 싸우는 것 배우고
두려움 속에서 자란 아이 불안함을 백우고
동정 속에서 자란 아이 낙담하는 것을 배우고
놀림 당하며 자란 아이 수줍음을 배우고
시기 속에 자란 아이 질투를 배우고
부끄러움 속에서 자란아이 죄의식을 배우고...”
도로시 놀트라는 시인이 지은 <생활 속에서 배운대로 하는 어린이>라는 시의 일연이다. [코러스]를 보면서 이 시가 생각났다.
[코러스]의 배경은 2차대전이 휩쓸고 간 1940년대 말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 있는 기숙학교 <퐁 드 레땅>(직역하면 ‘존재함의 토대’ 무언가 암시하지 않는가?). 이 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부적응으로 낙인찍힌 가난한 학생들을 수용해 놓고 지역의 부유한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하는 특수 기숙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출세하지 못한 한을 품고 할 수 없이 이 학교에 부임한 라샹이다. 그의 교육철학은 저 유명한 물리학의 뉴턴의 제3법칙 <작용-반작용>(악시옹-레악시옹>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가장 확실한 아동교육의 원리인 이 법칙은 학교의 규칙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반작용, 즉 처벌이 이루어지면 확실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의 규칙은 그가 정한다. 모든 학생은 예외 없이 이 원리에 의해 가혹하게 다루어지며 모든 교사들도 이 교육철학에 따르도록 훈련된다. 그의 교육철학에도 예외는 있다: 그는 후원자들 앞에서는 자비로운 교육자로 변신한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학교에 한 대머리 선생이 나타난다.
마티유 클레몽, 그는 훌륭한 작곡가가 되려 했지만, 음악에의 꿈을 접은 채, 시골 기숙학교 사감 자리에 지원한 실패한 예술가이다. 그를 기다리는 환경은 무정하고 가혹한 교장이 통치하지만, 끊임없이 저항을 시도하는 작은 악동들이 공존하는 폐쇄된 작은 왕국이다. 그러나 실패한 작곡가 마티유는 거기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냈다. 왜 일까?
이 영화의 표층구조는 그 이유가 바로 <코러스>라고 이야기 한다. 이 무자비한 학교 시스템에 갖힌 아이들을 구한 것은 마티유의 한맺힌 음악에의 열정과 자부심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합창연습을 통해 극도로 산만한 아이들에게 집중력과 의욕을 고취시켰다. 처음에는 대머리 마티유를 우습게 보고 그들의 장난기의 희생제물로 삼으려 했던 아이들은 마티유를 지도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높으신 후원자 백작부인 앞에서 그들의 예술적-사회적 가치를 입증한다.
그러나 마티유의 성공비결은 그뿐이었을까? 이 영화의 심층구조는 그것이 마티유의 건강한 인격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마티유와 이 학교의 다른 선생들과 비교해보자.
교장 라샹은 아이들의 교육의 책임을 맡았으면서도 그 자리를 자신의 출세의 수단으로만 이용한다. 그에게는 후원자들에게 잘 보여 자리를 유지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편안하게 사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이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그에게 사회의 낙오자요,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는 이 쓰레기들을 관리하기 위해 강압적인 규율을 적용했다. <악시옹-레악시옹>!
체육교사 샤베르는 애국자로서 프랑스를 단결시킬 수 있는 것은 체육과 음악이라고 믿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장의 명령과 학생들의 일탈행위에 분노한 나머지 악시옹-레악시옹의 공식으로 학생들을 대한다. 또 한사람의 교사는 안경잡이 수학선생 카팡티에다. 그는 출퇴근하면서 자기가 맡은 수학을 충실하게 가르친다. 그에게 아이들의 처지나 관심사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다. 라샹의 체제에서 침묵하면서 자신의 일만을 할 뿐이었다. 이 두 사람은 마침내 마티유의 코러스가 아이들을 변화시키자, 자신들의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마티유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티유도 다른 선생과 마찬가지로 부임하자마자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이중경험을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교사와 사감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무례한 아이들의 벽에 부닥쳤다. 이 두가지 현실의 갈등 속에서 그는 다른 교사들이 택한 쉬운 길을 거부했다. 그는 그를 끝까지 배신하는 문제학생에게 교장의 방식대로 위협과 처벌로 대하지 않고 고민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그의 인격은 한 가지 극단에 빠지지 않고 긴장 속에서 대안을 찾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그가 평생을 갈고 닦아온 음악에서 그는 코러스를 통해 새로운 교사-학생 관계를 만들어 냈고 주위 교사들 마져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자신의 처지에 상관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티유의 한계도 보여준다. 몽당의 예이다. 몽당은 어른들,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무시되고 버림받은 아이이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둔한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지적으로 예민한 아이였고 건장한 몸을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몽당은 끝까지 저항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를 사회부적응아와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기성사회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뿐이었다. 몽당의 분노와 복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이 영화는 몽당과 같은 아이가 우리 주위에 또 없는지 묻는다. 아이들의 아름다운 합창을 기억하며 이 영화평을 마무리한다. 그 합창의 가사대로 사람을 교육하는데 희망보다 더한 감미로움이 있을까!
저 바다를 어루만지듯
갈매기 가볍게 내려앉고
작은 섬의 깨진 바위틈에
덧없이 부는 겨울 미풍
마침내 사위어가는 그대의 찬 숨결
저 멀리 높은 산 속으로
바람 마주하며 그대의 날개 펼쳐 잿빛 동쪽 새벽하늘로
무지개의 길 찾아 그럼 봄이 모습을 드러내죠
조용히 바다위로
라모의 ‘오. 밤이여’
오. 밤이여 이 세상에 가져오소서
매혹적인 고요와 당신의 신비함을
당신이 동반하는 그림자는
너무도 아름다워요
그런 감미로운 콘서트
희망을 노래하는 당신 목소리 당신의 힘 너무도 커서 모든 걸 꿈으로 바꾸죠.
<솔로>
오. 밤이여 이 세상에 그대로 계시소서
그 매력적인 고요와 당신의 신비함을
당신이 동반하는 그림자
너무도 아름다워
더 아름다운 게 있을까요 당신이 주는 꿈보다
더한 진실이 있을까요
희망보다 더한 감미로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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