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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제4장 후기 고전 철학자들 요약정리

작성자덕화(길태은)|작성시간15.03.24|조회수362 목록 댓글 0

▣ 미학사

제4장 후기 고전 철학자들 요약정리

 

성명: 길태은(박사과정 3기)

제출일:2015.03.24

 

당시의 지극히 중요한 과학적 ․ 철학적 저술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는 당시가 지적 활동이 활발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와 리세움이 아직 존속하고 있었고 세 가지 주된 철학적 운동이 개화하게 되었다. 스토아학파, 에피큐로스학파, 회의주의학파가 그것이다. 다행히도 이들 각각과 관련된 미학 이론에 관하여 몇 가지 이야기될 수 있다.

 

1. 헬레니즘과 로마 고전주의

스토아학파는 여기에서 쾌를 두 종류로 구분했던 것 같다. 정신의 비합리적 운동인 쾌hedone는 철학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형태의 악마가 그렇듯이)그것은 부정확한 판단과 허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면 마음이 올바른 사람은 시로부터 정신의 합리적 고양인 그런 종류의 쾌chara를 끌어낼 수 있다.

에피큐로스학파는 음악과 거기에서 비롯된 쾌를 비난하였다는 주장이 이따금 있어 왔다.

스토아학파에 맞서서 에피큐로스는 감각이 그 자체로서는 인식적 가치를 결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의견doxa이 감각과 결합하게 될 때 비로소 지식이 생겨나거나 세계에 대한 어떤 언급이 가능해진다.

회의주의학파는 객관적 진리를 목표삼는 고통스런 철학적 사유를 체념함으로써 평정심과 태연자약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드는 역설로 사유를 끌어들임으로써 그러한 체념을 성취하였다.

 

2. 플로티누스

플로티누스의 전문용어가 특이하고 때때로 신비스러운 것이어서 그 정교하고 복잡한 형이상학의 일부는 아직까지도 의심과 논쟁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대강은 이렇다. 가시적 세계 뒤에는 그 궁극적 원천이며 근거로서 플로티누스가 ‘일자’(一者, to hen),또는 ‘제1자’라 부르는 것이 있고 이것은 그자체 일체의 관념과 지식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양상 하에서 어떤 용어에 의해—이것들이 충분히 깊게 다루어진다면—틀림없이 기술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선이며 무한이다(“Ennead" Ⅱ, "Tractate" ix, sec. 1). 우리가 일자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그것은 궁극적 실재를 그 제1의 ‘근본 원리 hypostasis 적절한 동의어가 없으므로 문맥상의 규정에 따라서 그 의미를 달리하는 용어—에서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일자는 또한 제2, 제3의 근본원리를 지니고 있는데 이들은 제1의 것과 동일하지만, 이들에겐 서로 다른 기능 혹은 역할이 아마도 주어진다. 제2의 근본원리는 지성 또는 마음이며 예지신(Divine Knower, nous)으로서, 그것이 알고 있는 것nota과 동일하다. 즉 그것은 가지적 세계를 구성하는 플라톤적 형상(혹은 이데아), 가시적 세계의 이상형 혹은 모범이다. 제3의 근본원리는 순수영혼psyche 혹은 창조성과 생활의 원리이다. 이 세 근본원리는 하나의 단일한 초월적 존재를 구성하며, 그것으로부터 다른 모든 실재가 ’유출‘tolma되어 나온다. 또한 그 모든 다른 실재는 제1의 원천 epistrophe인 그것에로 복귀하기를 갈망한다. 유출은 일시적 과정이 아니라 영속적이다. 존재는 샘과 같이 흘러 넘친다(Ⅴ, ⅱ, 1). 중심 광원에서 멀어질수록 그 빛은 점점 희미하게 된다(Ⅴ, ⅲ, 12).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은유로부터 우리는 자연과 가시적 세계를 포함한 다양한 실재의 부분들은 존재의 빛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러나 가장 실재의 것인 영혼과 지성에서 최하위의 질료에 이르기까지에는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실재에의 참여 정도에 따라 배열된다는 이러한 개념에 의해 플라톤의 존재-생성 이원론은 일면 극복되고 있으나 가시적 세계와 가지적 세계의 대비가 자연과 제2의 근본원리인 형상의 구분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

플로티누스의 설명은 종종 막연하고 때로는 불가해한 것이 되고 있지만, 플라톤의 가장 중요한 사상에서 자신이 취할 바를 유지하고 심화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미 개념에 새롭고 중요한 형이상학적 지위를 부여함과 더불어 소중한 연구로 평가된다.

플라톤의 모방에 대한 의심에 플로티누스의 점잖은 회답이 여기에 있다. 즉, 한 그루의 나무와 그 나무의 그림에 대하여 형상은 자신이 어떤 미를 소유하건간에 그 미를 그 각각에 부여하는데, 이 때 나무와 나무의 그림은 그 형상을 균등히 나눠 갖는다. 화가의 자유도 그와 같아서 사실상 화가의 그림이 저 형상을 나무보다 더 충분하게까지도 포착하여 나타낼 수 도 있다. “그러므로 피디아스(Pheidias)는 감각적 사물들 가운데의 어떤 모델에 입각하지 않고, 제우스 자신이 시각적으로 나타나고자 한다면 취할 것이 틀림없는 어떤 형태를 파악함으로써 제우스 상을 만들었다”—이는 유명한, 어떤 의미에서는 혁명적인 진술이다.

대체로 플로티누스는 미의 두 등급을 플라톤에 비해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제시한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글귀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공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실재가 연속적인 일련의 평면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 각각은 존재의 중심 광원으로부터 보다 멀리 있으며, 또한 각각이 어떤 의미에서 보다 가까이 있는 것들의 모방이라면, 모든 미들은 희미하긴 해도 자신들이 암시하는 절대미와 궁극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모든 수준에서 미는 신과 친족관계에 있다는 어떤 의식이 영혼 속에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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