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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미학과제] 플라톤의 이데아와 모방론_이정숙

작성자이정숙|작성시간15.03.30|조회수1,037 목록 댓글 0

   

 

플라톤의 이데아와 모방론

                                                                            

                                                                                                      이 정 숙

 

 

 

 

1. 들어가는 말
    플라톤의 미학 사상의 핵심은 형이상학적 이데아 이론에 기반 한 모방에서 출발한다. 현실세계와 모든 사물의 근원이자 본질인 이데아는 서로 분리되어있으나 이데아가 모든 것의 근원이므로 현실세계의 모든 것이 이데아로부터 기원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장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모방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2. 플라톤의 이데아와 모방
   이데아론에 대해 보다 실생활에 근접한 예로서 밤하늘의 별을 들 수 있다. 우리와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빛을 내뿜고 있는 별은 그 빛이 발해서 우리 눈으로 닿기까지 수억 년의 세월이 걸린다. 때문에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수많은 별들이 실제로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지 아니면 폭발하여 사라졌거나 변색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직접 근거리에 접근하여 확인하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기서 빛을 내는 별은 실존하는 실체요, 우리 눈으로 도착해 보여 지는 별빛은 플라톤이 허상이라고 여기는 현상세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실존하는 것과 그것에서 나온 부산물로 분류되어질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실존하는 실체가 있다고 하여 실체로부터 투영되어져 나온(플라톤의 이론에 따르면 모방된 것들) 존재에 대한 가치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인가?’, ‘실존하는 것만이 중요하고 부산물들에 대한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별이 사라졌거나 없어졌다고 하여 단지 별로부터 시작된 빛이 별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하여 그로부터 기인한 별빛의 존재가치가 부정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빛이 만들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각각의 역할이 있고, 별을 떠나온 시점(이데아로부터 현상세계가 모방되어져서 창조되어진 시점)부터 이미 둘은 분리되어진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존재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므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사상을 가지고 분류하여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인간은 누구나 작은 세포에서 시작해 분열하여 태아가 되고 아이가 태어나 자라 성인이 되어 온전한 생활을 영유하는 인생주기를 가지고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단순이 떨어져 나온 몸 안에서의 작은 세포나 각질 정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또 다른 생명을 얻어 삶을 살아가듯 본질인 이데아로부터 모방되어져 나온 부산물들도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적인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시나 음악, 그림 등에서 완전한 창작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하여서 그로부터 모방되어지고 파생되어진 것들의 독창적인 부분들이나(예술의 세계에서는 자주 이데아와는 완전히 성질이 다른 독창적인 것들이 우연의 법칙에 의해서 출현하기도 한다.) 모방품 고유의 것들이 가지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단순히 ‘모방품’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되어지는 것은 많이 복잡하고 다양하다. 시작은 이데아로부터일 수 있으나 이미 생산된 이후로는 본질인 이데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존재가치는 모방되어진 것들의 역할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나타나야 한다는 것은 필자의 생각이다.
   좀 더 예술적인 분야로 접근해 보면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유명 작품이다. 그 작품이 마릴린 먼로 본인의 모든 것을 전부 고스란히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이 가지는 가치나 영향력,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1.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                                                    [그림2. 피카소의 도라마르의 초상]

 

                                 


                                                      이미지 출처: https://www.google.co.kr/

  

 

    또한 피카소로 대표되는 큐비즘계열의 화가들은 실존하는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폭의 2차원적인 캔버스 안에 모두 담기 위한 일환으로 대상의 모든 부분들을 전부 분해하고 새롭게 조합하여 작품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도라마르의 초상 그림을 보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부분들뿐만 아니라 그 각도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부분들까지 한 번에 화폭에 담아내려는 피카소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두 작품을 비교하여 바라보았을 때 플라톤은 큐비즘 학파의 그림이 좀 더 본질인 이데아를 담고자 고민했다는 점에서 의식 있는 비모방적인 모방자라고 하여 선호하였을 수 있겠으나, 실제로 사람들이 바라보았을 때 아름답다는 기준과 큐비즘의 그림은 상당히 거리가 있다. 각각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전달이 다르고 모방자의 의도에 따라서 작품에 따라 각각 전하는 바나 아름다운 요소가 다르므로 어떤 작품이 더 의미 있고 더 아름답고 더 가치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파이드로스>편에서 플라톤은 참된 시인이나 창조적 예술가들은 어떤 신적 영감과 같은 것의 작용을 받으며, 그들 자신이 인간의 영혼에 대해 말해야 하며 인간의 영혼에 의해 이해되는 것을 생산해야할 뿐만 아니라 이데아 또는 형상(eidos)에 관한 인식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국가>편에서 플라톤이 ‘비 모방적인 모방자’와 ‘모방적인 모방자’를 구분한 것과 같이 우리는 여기서 참된 예술가와 모방적 예술가를 구분한 플라톤의 주장을 발견한다. 참된 예술가는 실재 또는 이데아의 세계에 닻을 내리고 있으며, 모방적인 예술가는 실재의 모방, 감각의 세계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현돈, 『미학과 현실』,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2, pp.139-140.참고)
   이와 같은 주장에 기반 하였을 때 플라톤은 앤디워홀의 그림보다는 본질에 대한 고찰이 들어있는 큐비즘 학파의 그림을 더 선호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앤디워홀의 그림이 피카소의 그림에 비해 덜 아름답다고 할 수 없으며,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는 없다. 각각의 예술작품은 창조되었을 당시 제작자의 기술과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의미와 그것에 미치는 영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어떠한 불변의 통일된 기준에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나오는 말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각각 창조되어진 것들은 그 자체에서 역할이 모두 다르고 그 안에서 의미의 경중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현상세계에서 살아간다. 현상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의 근원이자 영원불변의 가치인 이데아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것을 반영하고 모방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플라톤의 기본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반면 이데아만이 중요하고 모방되어진 모든 것들은 가치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플라톤의 모방론을 기반으로 바라본 미학에서는 무조건 실존하는 실재만이 옳고 나머지는 허상과 같이 그르다고 여겨지기에 모방되어지고 창조되어진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플라톤의 사상과 미학에서의 가장 큰 한계점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김현돈, 『미학과 현실』,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2.
남경희, 『플라톤』, 아카넷, 2000.
오병남, 『미학강의』,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인터넷 참고
 https://www.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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