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제출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중국의 미학사상을 집어들고는 이걸 요약 정리해보고 싶은 욕심에
시간만 보내다 이제야 올립니다.
공부는 시간을 가지고 해야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다음에 뵐 수 있을 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공자의 미학사상 |
철학과 박광철
1) 공자의 미학은 ‘예로 서는 것(立於禮)’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를 살았던 유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전국시대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으로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 은, 주시대가 끝난 시점이다. 공자의 미학사상은 정치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고대 노예제가 끝나고 봉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 은, 주, 서주(西周)의 정치사회제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보고 그 당시의 ‘예악’이 붕괴되어 소멸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공자는 미학 문제를 전문적으로 논하지도 않았고 체계적이지도 않지만 [논어]에 기록된 언급 중에서 그의 미학의 정의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논어 자체가 공자의 언급인지 아니면 후대 제자들의 편집인지, 또 다른 이들의 공동 작품인지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일단 공자의 언급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시대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대한 분류가 고대 중국에도 존재하는데 논어의 술이편에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닌다.’는 구절이 나오며 예를 구체적으로 6예(藝)라 하여 예, 악, 사, 서, 어, 수로 나누었다. 시, 서, 예, 악 등 지금의 예술 분류와 유사한 부분 이외에도 ‘사, 어, 수’등의 자연과학적 기술과 지식도 포함하고 있다. 공자에게 이러한 시나 악 그리고 문학 등은 모두 예(禮)에 복무해야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즉 복례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서주시대 이전의 이상적 국가모델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서주시대 이전의 예술적 가치와 형식이 기준이라는 자신의 미학을 설명함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시대 말기 플로티누스는 다섯 가지로 예술을 분류하였는데 1)건축과 같이 물리적 사물들을 만들어내는 예술 2)의술 및 농업과 같이 자연을 도와주는 예술 3)회화와 같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 4)수사법 및 정치와 같이 인간의 행동을 개선하고나 장식하는 예술 5)기하학처럼 순수하게 지적인 예술이 그 것이다. 이러한 분류의 원칙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이지만 질료적인 건축에서 순수하게 정신적인 기하학으로 끝나는 하나의 등급을 보여준다. 공자에게도 이러한 원칙이 보이는데 미학평가를 내릴 때 견지하던 윈칙과 방법은 ‘선(善)’을 앞세우고 ‘미’를 뒤로 하며 ‘질(質)’을 앞세우고 ‘문(文)’을 뒤로 하며, ‘덕’을 앞세우고 ‘언(言)’을 뒤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가 우선이 되고 ‘악’은 그 다음으로 예에 종속된다. 이러한 분류는 정치사상과 분리하여 예술 혹은 미를 보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공자의 미학 사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논어]를 중심으로 왜 그의 미학이 ‘예’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정치 도덕과 분리된 순수 예술에 대한 공자의 부정적 인식과 다른 주장을 하고자 한다.
2) 공자의 '미'와 '선'의 개념
[논어]에 나오는 ‘미’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도덕적 범주와 미학 범주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논어 리인(里仁)] 공자가 말하기를 마음이 어진 것이 아름다움이 된다. 혹은 [논어 안연] 군자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것은 이루어 주고 다른 사람의 악한 것은 이루어 주지 않는다. 소인은 그 반대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는 언급과 같은 도덕적 범주가 하나다. 다른 하나는 [논어 술이(述而)] 공자가 제나라에서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 3개월간 고기맛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음악이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줄은 몰랐다.‘는 언급과 같이 미학 범주가 있다. 공자는 일반적으로 ’미‘와 ’선‘을 혼합하여 쓰고 있다. 공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선진제자(先秦諸子)의 언급에 흔한 일이다. 이는 미와 선이 객관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필요성 또한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선의 개념은 보다 도덕 범주 혹은 실용 공리적 범주로 쓰이는 반면 미는 미학 범주 혹은 심미 대상으로 구별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이를 모방하는 예술에 대한 개념과 비슷하게 선이라는 개념과 미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선은 사물의 형식을 고려하지 않고 사물의 내용만을 고려하는 것이 가능한 반면, 미는 엄격하게 말해서 사물의 내용과 형식의 통일 혹은 반영이 알맞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안연편 음악에 대한 공자의 말에서 ’소‘와 같은 3개월간 고기맛을 잊게 할 정도의 예술작품은 미와 선의 고도의 통일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정현(鄭玄)의 논어 해설을 보면 “’소(韶)‘는 순(舜)임금의 음악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순이 스스로 요(堯)임금에게서 선양받은 것을 말하고, 참으로 선하다는 것은 태평을 말한 것이다.”고 되어 있는데 도덕적 우월성이 아름다운 미학적 형식을 가지고 있음에 대해 공자가 평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논어 팔일(八佾)]편에 ’회사후소(繪事後素)‘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그림을 그린 후에 흰 색을 칠한다는 뜻이다. 정현은 이에 주를 달아 말하기를 “회는 그림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먼저 여러 색깔을 칠한 후에 흰 색을 그사이에 칠하여 그림을 환성한다. 미녀가 고운 보조개와 아름다운 자질이 있더라도 예(禮)를 닦아서 그것을 이룬다는 비유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공자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예를 닦아서 이룬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예에 부합되어야 선한 것이고, 예에 부합하는 선한 자질이 있어야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렇게 공자는 사람에 대한 미학적 평가에 있어 ‘선’을 앞세우고 ‘미’를 뒤로하는 절대적 원칙을 보여주고 있다. 공자의 자연미에 대한 관점도 이러한 원칙에 서있다. 공자는 자연물이 사람들에게 아름답다고 감상되는 까닭은 자연물 자체의 형상적 표현이 사람의 미덕과 서로 유사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설명이 가능한 이론으로 ’비덕(比德)‘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진 사람은 산과 덕이 비슷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은 공자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고 선진시대 사람들의 자연미 감상에 있어 보편적 이론으로 보인다. 이러한 심미적 사실은 시경(詩經)에 많이 보이고 있다. 공자는 이러한 원칙 속에서 선왕 즉 요, 순, 문, 무, 주공의 도는 아름다워서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이것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선왕시대의 예악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모든 것은 그것을 모범으로 삼고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예로 단속하는 것(約之以禮)’은 공자의 정치, 도덕사상의 중심내용이며 미학 사상의 중심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며 예, 문덕, 선은 모두 바로 이 ‘인’의 구체적 체현이고, 따라서 아름다움도 또한 인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팔일]에서 사람으로서 어질지 않으면 악(樂)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유행해(儒行解)]에서는 사람이 만일 인하지 않으면 ‘악’의 활동에 종사 할 수 없고 악의 아름다움, 즉 예술미를 창조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인이나 덕은 모두 하늘이 준 것이고 다시 성인과 군자에게 준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고 착한 예와 악은 하늘이 낳은 인과 덕을 갖춘 성인과 군자가 창조한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미학사상은 선험된 미학관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플라톤의 [이온(Ion)]에서 시의 본질적 요소로서 신적인 영감을 언급하는 대목 '시인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신 자신이다. ... 저 훌륭한 시들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신들의 작품이며, 시인들은 단지 신들의 통역자에 불과하다.(Plato Ion 533 E - 534 E)'와 비슷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3) 공자가 논한 '문'과 '질'
[논어 술이]에서 공자는 네 가지 측면에서 가르쳤는데 그것은 문(文), 행(行), 충(忠), 신(信) 이었다. 이 때 문(文)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면 [논어]에서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첫째, [논어 팔일]에서는 ‘주나라는 하, 은 두 왕조를 거울삼았으니 빛나는 도다. 그 문(文)이여 나는 주를 따르리라’는 언급으로 보아 서주의 문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주의 모든 문물, 법률, 제도를 포함하여 ‘시, 서, 예, 악’등의 종류가 바로 그것이다. 둘째, [논어 공야장]에서 자공이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고 하였습니까? 라는 물음에 대해 공자가 답하기를 ‘민첩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文)이라고 한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문(文)은 인간들이 요구하는 지식과 학문이라는 지금의 보편적 상식과 유사하다. 셋째,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투박하고 문(文)이 질(質)을 이기면 호화로우니, 문(文)과 질(質)이 잘 어울린 이후에야 군자이다.’라는 [논어 옹야]편의 문장에서 문은 사물의 ‘질’을 표현하는 양식으로 보인다. 즉 문은 사물의 형식이고 질은 사물의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문과 질이 어울린다는 표현은 형식과 내용이 화해로 융합되어 도달한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그렇지 않으면 비루하고 거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공자의 ‘문’은 구체적으로 서주 문화(시, 서, 예, 악 등)를 지칭하고 일반적으로는 모든 지식, 학문을 의미하고 사물의 표현양식으로 보기도 하는데 모든 문화 예술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공자는 추상적인 문과 질,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논한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주장의 핵심은 서주사회의 정치, 법률, 제도와 도덕을 회복하는 복례(復禮)의 관점에서 문과 질이 어울리는 상태의 지향을 의미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공자는 복례를 실현하는 원칙과 방법으로 ‘질’을 앞으로 하고 ‘문’을 뒤로 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해 ‘선’을 앞으로 하고 ‘미’를 뒤로 하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4)공자가 논한 ‘시’ ‘예’ ‘악’
공자의 시대에 악(樂)이라는 개념은 예술의 유형으로서 음악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시, 노래, 춤 등을 모두 총칭하는 것이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시’ 삼백 편을 공자께서 모두 거문고로 연주해보고 노래해 보며 ‘소’, ‘무’, ‘아’, ‘송’ 의 음에 맞도록 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음악’이라는 말은 [여씨춘추]에서 가장 먼저 나타는데, [중하기(仲夏紀)]에 ‘음악의 유래는 매우 멀다. 도량형에서 생겨났고 태일(太一)에 근본하고 있다.’고 하였다. [논어]에는 음악이라는 말이 없고 ‘악’이라는 개념만 있다. 하지만 ‘시에 흥하고 예에 서고 악에서 이룬다.[논어 태백]에서 보듯이 시와 악을 구별하고 있다. 이 때 시로 흥한다는 흥은 일어난다는 것으로 몸을 닦는 데는 반드시 시를 배우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논어정의]에서 ’시를 배운 이후에 예를 배우고 이어서 악을 배운다. 시는 악장인데 악은 예에 따라 행하는 것이니, 예가 선 이후에 악을 쓸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공자가 사람에게 정치사상 교육을 하는 관점에서 시와 악을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공자의 교육사상 가운데는 ‘시’, ‘예’, ‘악’이 삼위일체가 되어 있지만, ‘예’가 중심이 되고 우선이 되기 때문에 ‘시’와‘악’은 거기에 종속되고 그 다음이 되는 것이다. ‘예’에 합치하지 않는 ‘악’은 들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악은 예에 종속되고, 예에 합하지 않는 시는 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시도 예에 종속된다고 볼 수 있다. [논어 양화]에서 공자 말하기를 ‘시는 그것을 가지고 흥기할 수 있고, 살필 수 있고, 무리를 지을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자는 먼저 시의 정치 사회 교육적 의의를 설명하고, 다른 한편으로 시 자체의 예술적 특성과 결과를 이야기 하고 있다. ‘시로 살핀다’는 뜻은 자신이나 가족, 이웃의 삶과 생활을 지켜보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자연에 비유하는 것이고 ‘시로 원망 한다’는 뜻은 윗사람의 정치를 원망하고 비방한다는 뜻으로 좋지 못한 정치를 비판하는 풍자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 있다. 원망은 일종의 감정이나 정서이고 시가 이러한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는 예술의 한 분야임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는 ‘예’에 종속되어 있고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논어 자로]에서 ‘시 삼백편을 암송하면서 그것을 정치에 적용하여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홀로 대응하지 못하면 비록 많이 외우더라도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자에게 시를 배운다는 것은 정치에 잘 응용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면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5) 결론
공자의 미학사상은 ‘예로 단속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으로 시, 악, 문학 등의 예술은 모두 ‘예’에 종속되고 ‘예’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공자는 미와 선, 문과 질, 덕과 악이 반드시 융화되고 통일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미학의 평가에 있어서는 ‘선’을 기준으로 하고 ‘미’를 그 뒤로 하며, ‘질’을 앞세우고 ‘문’을 뒤로 하여 ‘예’가 우선이 되고 ‘악’은 그 다음으로 예에 종속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사회와 분리된 순수한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상이다. 인간 그리고 사회와 분리된 사물 자체의 미를 개념화 하고 분석하는 미학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분석대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다만 공자의 미학관점이 복례에 집중된 점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일정한 편향을 가지는 오류에 빠질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시 삼백수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등의 예를 세우는 악의 실천 활동에 대해 전쟁과 혼란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묵자의 ‘노예지배계층의 향락’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공자에게 피지배계층의 시와 음악 그리고 춤 등은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공자의 미학사상은 정확한 시대적 판단인지 아닌지는 불문하고 서주시대 이전의 지배계층의 정치사회제도로의 복귀를 통한 당시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했던 정치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미학사상으로 한계 지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자의 이러한 미와 선, 문과 질, 예와 악 그리고 시 등의 미학 개념과 범주에 대한 언급은 중국의 미학사상, 유가의 미학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미학사 - 먼로C.비어슬리, 이론과실천, 1987
중국의 미학사상 - 시창동(중국 복단대학 교수), 연암출판사, 1994
미학의 기본 개념사 - 타타르키비츠, 미술문화, 1999
先秦儒家의 美學思想 硏究(선진유가의 미학사상 연구) - 심현섭, 2006
시경 - 조두현, 혜원출판사,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