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미학

플라톤의 향연

작성자보라빛거울|작성시간04.09.07|조회수1,199 목록 댓글 0
200219094 철학과 문보경

▶주제
-사랑은 조화를 향하는 것

▶구성
-아리스토파네스: 잃어버린 짝에 대한 그리움으로서의 에로스
-소크라테스(디오티마): 중간자로서의 에로스

▶의견
-우선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이제 와서 이 글을 읽게 되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글은 아가톤의 향연에 모인 사람들이 차례로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미하는 내용으로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아폴로도로스가 아리스토데모스의 증언을 토데로 그의 친구 글라우콘에게 전하는 형식을 취하며, 글은 플라톤이 썼다. 형식이 이렇다보니 글을 읽기에 상당히 수고로웠다. 헷갈려서,,;; 그렇지만 순간순간 보여지는 화자들 저마다의 노련한 주장들은 나의 감탄을 쏟아내기에 충분했다.
여기에서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등 여러 인물들의 주장이 펼쳐지지만, 나는 아리스토 파네스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특히 아리스토파네스의 에로스에 대한 주장이 인상깊었다. 그는 나로서는(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저 환상적인 동화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예전에 본적 있는 영화 "헤드윅"이 떠올랐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의 성별을 세 가지로 상정했는데 남자, 여자, 그리고 남녀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있는 제 3의 성이 그것이다. 영화 "헤드윅"에서도 그의 주장을 인용한 듯한 가사의 노래가 쓰이는데 그 당시 영화를 보면서 사람의 기원에 대해서 저렇게 생각할 수 도 있구나 하고 놀랬던 기억이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하는 사랑이란 세 분류의 인간으로부터 강력하고 오만한 인간의 힘에 대한 신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원래 하나였던 인간이 둘로 나뉘게 되고, 그 분열된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열망으로 그리고 있다. 여기서 잠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는데, 신을 위협할 정도로 강한 자신의 본래적 힘을 회복하기 위한 선천적인 욕망이자 원죄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능력이라고 생각되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에로스가 어떤 신이나 인간에게도 부정을 행하지도 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결코 강요하는 일이 없으며, 강요당하지도 않는다고 밝히고 에로스 는 정의와 함께 절제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특히 향연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에로스 신을 '완벽함' 그 자체를 찬미하고 수용을 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에로스 신은 결핍된 상태의 '중간자' 라고 하는 것에 대해 주목했다. 이것은 에로스를 추구하거나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 결핍을 충족시키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잠시 이 의견에 동조하면서 진정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고 갈구하는 것의 뿌리는 그것의 부재에서 비롯되며 그것의 충족, 더 나아가 충족시키는 과정까지를 사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의 주장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에로스가 인간에게 좋은 것, 선한 것을 추구하게 만들며, 또 그렇게 된다고 어느 정도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둘은 에로스에 대하여 출발부터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아리스토파네스는 완벽함 자체에서 시작했으며 소크라테스는 결핍에서 사랑이 시작된다고 본다. 인간이 완벽하고 모든 것이 채워져 있다면 다른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정리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조화를 향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의견에서 잃어버린 반을 찾는 일도, 소크라테스의 주장처럼 결핍으로부터 에로스를 추구하는 일도 궁극적으로는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는 불균형에 대해서 조화를 꾀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