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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향연

작성자aftermahler|작성시간04.09.12|조회수128 목록 댓글 0

이작품은 아테네의 비극 작가인 아가톤(Agathon)의 작품이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때 이것을 축하하기 위해 아가톤의 집에서 벌어진 축하연에서의 토론이 주된내용이다.
연회의 참석자는 아가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데모스, 아리스토파네스, 에리크시마코스, 파우사니아스, 파이드로스였고, 토론의 마지막에 알키비아데스가 참석한다. 연회중 에리키시마코스의 제안으로 돌아가며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미하는 연설을 하기로 한다. 에로스에 대한 찬미가가 없는 데 의문을 제기한 변론가 파이드로스가 가장 먼저 일어나는데, 그는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신이며, 최대의 행복(사랑)의 근원이라고 찬미한다. 다음으로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미를 반대하며 에로스를 신화적 기원에 따라 두 종류로 분류하고 인간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선하고 악한 일을 선하고 악한 속성을 가진 두 에로스의 영향으로 설명한다. 선한 에로스는 사랑으로 인한 인간의 고귀한 행위를, 추한 에로스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한 행위라고 말한다. 이어 에리크시마코스는 파우사니아스의 에로스 이분법을 인간의 육체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설명을 시작하여 우주의 전 사물과 현상으로 확대시킨다. 추한 것(병약한 것)과 아름다운 것(건강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물의 상태, 음악, 계절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 상태로 구분하여 이들이 에로스의 영향 아래에 있으며 의사(또는 인간)의 일은 이들을 적절히 관리하여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은 원래 지금의 두 사람이 등과 머리를 붙인 모습이었으나 반으로 나뉘어졌는데 에로스는 그 결합을 위해 도움을 주는 신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연회의 주인공인 아가톤이 연설을 하는데 그는 앞서의 에로스 찬미를 에로스 신(神)이 인간에게 무엇을 행하느냐에 따른 찬미라고 말하고, 그는 먼저 신의 본성에 대해, 다음에 신의 선물을 찬미하려한다고 말한다. 그는 에로스의 이름으로 에로스를 모든 덕성에 적용하고 그 효용을 들어 찬미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시작되는데 그는 아가톤에게 질문하여 에로스가 아름다움과 함께 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아가톤의 논리를 바로잡는다. 그런 후, 소크라테스는 신(神)들의 대가인 디오티마의 말을 인용하여 연설한다. 디오티마는 어설픈 배움을 앎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지라 할 수도 없음을 비유해 설명하고, 에로스의 존재를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양측을 매개하는 중간자로 정의한다. 여기서 에로스는 神의 이름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치환된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의 발현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며,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는 경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모든 사람의 모든 사랑을 다룰 수 있게 되고 인간의 욕망을 덧붙여 ‘인간은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한다’라는 문장으로 에로스를 말한다.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연설의 마지막에서 본질적인 아름다움 또는 참된 덕을 포착해 길러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이끄는 데 에로스가 유용하기 때문에 에로스를 찬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책을 처음 읽었을때 내 시선을 끈 것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말하는 플라톤의 에로스 이야기가 아니라 파우사니아스나 알키비아데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동성애의 뉘앙스였다. 특히 파우사니아스의 에로스에 대한 찬미가 자연스럽게 동성애의 모습으로 흘러가는 것은 흥미로웠다.(물론 괘변이지만) 이 토론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직업적인 특성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에로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고 소크라테스는 그 지엽적인 발언을 포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린 플라톤의 미에 대한 생각역시 자신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책의 후반부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알키비데아스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묘사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표본으로서 기술해놓은 모습에서 하나의 철인적인 모습을 느낄수 있었고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미의 궁극적인 모습을 유추해낼수는 있었다. 그러나 플라톤이 미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름다움 자체의 본질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 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미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미에 대한 이런 절대적인 기준은 그 기준이 모호해지고 아름다움 혹은 예술에 대한 절대적이거나 혹은 엘리트주의적인 바탕이 이미 전제되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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