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물리적 세계의 인과관계
구 성 : 『이것이 정신 활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 알려면, 먼저 우리는 물질을 검토하고, 물질의 작용에서 필연성의 관념이 무엇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 살펴보고, 어떤 물체나 행동이 다른 물체나 행동의 불가피한 원인이라고 결론내리는 이유를 고찰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 추정을 확정하기 위해 정신 활동의 항상적 합일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용
흄의 ‘정념에 관하여’에서 흄은 필연성이라는 개념을 기존의 것과 다른 것으로 정의하면서 그의 논의를 이끌어 간다. 일단 흄의 이론에서 필연성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필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물질적인 세계에서 필연성을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필연성은 다른 말로 원인과 결과 사이를 이어주는 어떠한 것으로 물질세계는 필연성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높은 곳에 뛰어내리면 그 사람은 아래를 향하여 일정한 중력가속도의 영향을 받아서, 떨어지게 되어있다. 125cc 엔진을 장착한 오토바이는 전주에서 익산사이를 약 40분에 걸려서 지나갈 수 있고, 250cc 엔진을 장착한 오토바이는 같은 거리를 30분이면 지나갈 수 있다. 이것은 물리적 세계가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 이다. 하지만 흄은 이러한 물리적 세계의 필연성을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의지와 이성에 관한 정의를 하게 된다. 흄에 의하면 필연성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속성이 아니다. 당구를 칠 때 첫 번째 공이 두 번째 공을 때리면 두 번째 공이 움직일 것이다 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단편적인 현상들이 시간적인 전후관계를 가지고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러한 상황을 필연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대하게 되면 상상력을 발휘하여서 그것에 전후 관계를 부여하며 뒤에 일어난 사건이 앞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에게 필연성이라는 관념을 가지게 만드는 물리적인 상황을 흄은 항상적 합일이라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물리적인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필연적인 관계라고 표현한 흄은 이런 물리적 세계의 가정을 정신적인 세계의 수준으로 까지 끌어 올리게 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는 어떠한 원인들은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물질의 운동에서는 필연성을 인정하고, 정신의 작용에서는 필연성을 부인하는 것은 명백하게 불합리하다는 것을 흄은 주장하려는 것이다. 흄은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흄의 이러한 복잡한 이론을 어디서부터 인정을 해야 하는가? 그가 도달하게 된 결론을 나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나는 그가 기초를 두고 있는 물리적인 원인과 결과의 부정에서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흄의 논증을 전개하는 과정을 보게 되면, 동기와 행동 사이의 합일이 어떤 자연적 작용에서와 같은 항상성을 갖는다는 것과, 오성에 미치는 그 영향력 또한 우리가 하나의 존재로부터 다른 존재를 추정하도록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라는 것 등인데, 이러한 이론의 원천은 물리적인 세계의 필연성 개념이 정신적인 세계로 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원인과 결과에서 발생하는 필연성이 인간의 습관과 감정 같은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드리지 않아야 한다.
흄이 필연성에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항상적인 합일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의 추정이다. 여기서 나는 항상적인 합일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어떠한 상황이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며 발생하게 되고 언제나 동일한 선행 작용이 있으면 같은 후 작용이 있다는 것으로 항상적인 합일에 대해서 이해하였으며,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어떠한 것을 지각하는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정신의 추정은 문제가 된다. 필연성은 규칙적이고 확실하며, 인간의 행동거지는 불규칙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필연성은 인간의 행동거지에서 기인할 수 없다 라는 지적을 흄은 글 중에서 자신이 스스로 하고 이것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러한 반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고 그 전에 그가 한 주장, 인간의 행동거지를 필연성의 이유로써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물리적인 세계에서 필연성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세계 속에서 형성된 관념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지 우주의 체계는 그러한 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적인 전후 관계가 아니며 후자라는 결과에 대해서 전자가 분명히 그 원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물리적인 세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어떠한 사건에 의해서 다른 사건에 일어난다는 사실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는 상황을 생각을 해 보자. 첫 번째 공을 때리게 되면 그 공은 일정한 힘으로 굴러가게 되고 두 번째 공을 맞추게 된다. 여기서 흄 식의 이론에 따르면 첫 번째 공이 두 번째 공에 닿은 사실은 두 번째 공이 움직인다는 사실의 원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며 전자의 상황은 분명한 원인이다. 이것은 세계를 구성하게 있는 절대적인 세계의 운행원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어떠한 물리적인 대상도 같은 공간 속에서 있을 수 없다 라는 세계의 운행원리가 거기에 작용하는 것이다. 첫 번째 공이 두 번째 공에게 굴러가서 두 번째 공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빼앗는 것은 이러한 물리적 세계의 원리를 첫 번째 공이 자극했기 때문에, 그러한 원리를 작동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원인으로써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에는 이러한 원리들이 있으며 이러한 원리들이 진정한 실체라는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동원리들을 작동하는 그러한 물리적인 작용은 그러한 원리에 의해서 발생하는 후속적인 작용의 원인 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인 세계에는 흄이 정의하는 식의 필연성이 아닌 우리가 기존에 사용해 왔던 그런 의미로써의 필연성(논리적인 의미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과연 우리 인간이 흄 식의 필연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보게 되면 아이들은 물체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초기에는 인식하지 못한다. 즉 이러한 신념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정신 작용에 일정한 조작을 가하여 물리적인 세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극을 주게 되면 아기는 거기에 맞는 신념을 형성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주정거장에서 아이를 기른 다고 생각해보자. 우주정거장에서는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에서와는 전혀 다른 물리적인 반응들이 일어난다. 아이는 이러한 작용들을 보고 자라면서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필연성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원인과 결과의 필연성은 옳은가? 아이는 지구에 오게 되면 혼란을 겪을 것이다. 지구에서의 환경에 의해서 자신이 원인과 결과의 인관관계로 알고 있던 사실들은 논파될 것이다. 이러한 원인의 차이는 중력의 작용이라는 물리학의 법칙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우주의 원리가 먼저 있는 것이고 사람의 인식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가변적이다.
흄은 이러한 가변성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가 이야기하는 필연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사회적으로 통념상 합의 되고 있는 사항들이다. 이러한 합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흄은 사회 통념에 의한 합의를 통해서 필연성을 정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어떠한 예를 들고 있다. 먼 나라에서 돌아온 여행자인데, 그 여행자가 우리에게 자신이 보았던 북위 50도 지역의 기후에 대해서 이 지역에서는 과일철이 자신의 고향과 완전히 뒤바뀌어 있어 겨울에 모든 과일이 결실을 맺어 완전히 무르익고 여름에는 시들어 버린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의 고향에서는 이를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는 주장이다.
이는 그러한 사회적인 합의가 인과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그러한 합의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연적인 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북위 50도 지역에서 발생하는 물리학적인 원리들은 그들이 그 원리를 알든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간에 동일하게 작용한다. 우리의 지식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세계의 필연성은 단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신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형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065 단어
참고자료
『정념에 관하여』 데이비드 흄
『서양철학사』 스털링 P 렘프레히트
구 성
1. p145 의지의 본성과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정념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이므로 우리는 여기서 의지를 우리 탐구의 주제로 삼을 것이다.
2. p145 내가 의미하는 의지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우리 신체의 새로운 동작을 유발하거나 정신의 지각을 창출할 때, 우리가 느끼고 의식하는 내부 인상일 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3. p145 따라서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곧잘 어렵게 만들도록 했던 정의나 구별을 우리는 제쳐 놓을 것이다.
4. p146 보편적으로 인정되듯이 외부 물체의 작용은 필연적이며, 그리고 외부 물체들 사이의 운동 전달과 인력 그리고 상호 응집력 등에서 무차별성이나 자유는 조급도 없다.
5. p146 우리가 물체들의 상호 영향력이 의존하는 원리를 지각할 수 있을 정도로 물체의 본질이나 구성을 깊이 천착할 수는 결코 없다.
6. p146 우리는 결코 원인과 결과 따위에 대한 어떠한 관념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인과 결과의 관념에 들어오는 필연성은 정신의 결정일 뿐이며
7. p146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필연성에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 요서는 항상적 합일과 정신적 추정 등이다.
8. p147 이 추정을 확정하기 위해 정신 활동의 항상적 합일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9. p147 나의 행동이 나의 동기와 기분 그리고 여건 등과 항상 합일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증명할 것이다.
10. p147 인간사의 일상적 과정을 아주 가볍게 일반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11. p147 그 부분들의 응집력은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원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12. p148 태양의 운행과 기후 변화 등과 같이 인간의 행동에도 자연의 일반적 과정이 있다. 인류에게는 공통적인 성격 뿐만 아니라 상이한 민족과 개인에게 고유한 성격들이 있다. 이런 성격들에 대한 지식의 기초는그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의 제일성에 대한 관찰이고, 이 제일성이 필연성의 참된 본질을 형성한다.
13. p149 인간의 행동보다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욕구보다 무상한 것이 무엇인가?
14. p149 사람이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고 극심한 고통과 노력을 대가로 치르며 미련한 것을 번복하는 데에는 촌음으로도 충분한다.
15. p149 필연성은 규칙적이고 확실하다. 인간의 행동거지는 불규칙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필연성은 인간의 행동거지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16. p149 정신은 상반된 실험들을 비교하여 우세한 실험에서 열세인 실험을 뺌으로써 남아있는 확증이나 명증성의 정도를 처리한다.
17. p150 이 부조리한 사고 방식은 혼돈된 관념 및 모호한 술어 따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우리는 추론할 때, 특히 이 주제에서 이런 관념과 술어를 매우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18. p150 동기와 행동 사이의 합일이 어떤 자연적 작요에서와 같은 항상성을 갖는다는 것과 오성에 미치는 그 영향력 또한 우리가 하나의 존재로부터 다른 존재를 추정하도록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 등이다.
19. p150 결과적으로 우리가 물질의 운동에서는 필연성을 인정하고 정신의 작용에서는 필연성을 부인하는 것은 명백하게 불합리하다.
20. p150 그런데 도덕적 명증성은 인간의 동기와 기질 그리고 상황 따위를 고찰함으로써 도출된 인간 행동에 관한 결론일 뿐이다.
21. p150 우리는 그 인물 됨됨이나 외양을 기록한 사람이 가이사르의 죽음과 아우구스투스의 계승 및 네로의 잔혹성 따위와 같은 사실을 긍정하리라고 추정한다.
22. p151 우리가 원인과 결과라고 일컫는 모든 대상들을 그 자체로 고렴하면, 그 대상들은 자연에서의 어떤 두 대상처럼 독립적이고 분리된 것이다.
23. p151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추정은 상상력에 습관이 작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항상 합일된 대상들에 원인과 결과 등의 관념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반드시 긍정해야 한다.
24. p151 또 필연적 연관은 오성의 결론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지각일 뿐이다.
25. p151 우리가 항상적 합일을 관찰하는 모든 경우에, 또 그 합일이 신념과 의견에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모든 경우에 우리는 원인과 필연성등의 관념을 가진다.
26. p151 우리가 도덕적 명증성이라고 일컫는 것에 바로 이런 항상성과 영향력이 있으므로 나는 더 문제 삼을 것이 없다.
27. p152 돈도 방책도 없는 죄수는 자신을 에워싼 담장과 창살은 물론 간수의 완강함으로 미루어 자신이 탈옥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28. p152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는 도끼나 형구 따위의 작용에서처럼 호송인의 단호함과 충성심으로 미루어 자신의 죽음을 확실히 예견할 것이다.
29. p152 우리가 물리적 필연성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을 통해 접합된 연쇄적인 원인들에 의해 기억과 감관 등의 현재 인상과 미래의 사건이 연고나되면 미래의 사건은 거의 확실하지 않을 수 없다.
30. p152 나의 정의에 따르면 필연성은 인과의 본질적 부분을 이루며, 결과적으로 자유는 필연성을 제거함으로써 원인 도한 제거하고, 자유는 곧 우연이다. 우리는 대체로 우연이 모순을 내포한다고 생각하며, 적어도 우연은 경험과 직접적으로 상반되므로, 자유또는 자유 의지 등과 상반되는 논변이 언제나 존재한다.
31. p153 내가 믿기에, 우리는 자유론이 우세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32. p153 우리는 필연성의 관념이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힘과 방해 및 구속력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여긴다.
33. p153 방해와 대립적인 자유와 그리고 필연성과 원인 따위의 부정이 의미하는 자유등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34. p154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대개의 경우에 우리의 의지를 따르는 것으로 느끼며, 또 우리가 의지 자체는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으로 상상한다.
35. p154 이 심상 또는 희미한 운동이 의지 자체로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의지의 자유가 부정되어야 한다면 의지의 자유는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두 번째 시험을 통해 발견하기 때문이다.
36. p154 그리고 우리가 변덕스럽고 불규칙적인 모든 행동을 실행할 수도 있다지만 우리의 자유를 보여주려는 욕구가 우리 행동의 유일한 동기인 한 우리는 필연성의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37. p155 그러나 관찰자는 대체로 우리의 동기나 성격에서 우리의 행동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관찰자는 그와 같이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자신이 우리의 처지와 기분 그리고 우리의 표정과 성향의 가장 은밀한 원천을 완전히 숙지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우리의 행동을 추정할 수 있으리라고 결론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의 학설에 따르면 이것이 필연성의 실제 본질이다.
38. p155 필연성은 원인의 본질적 요소이다. 나는 필연성이 같은 대상들의 항상적 합일과 결부에 있거나 또는 정신이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을 추론할 때 이 추론에 있다고 본다.
39. p156 이 필연성이 없다면 곧종교와 도덕이 완전히 전복되어야 하며 그 밖의 모든 가정 또한 신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을완전히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40. p156 이 두 동기는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선한 행동을 낳고 악한 행동을 방지하는 기초적 원리로 가정되는 것은 틀림없다.
41. p156 신이 주재적인 역량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가증스러움과 흉함 때문에 범죄를 응징하는 자로 간주되더라도, 인간의 행동에 필연적 연관이 없다면 정의와 도덕적 형평에 맞게 징벌을 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징벌을 가하는 것을 이성적 존재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42. p156 자유론 또는 우연론에 따르면 이 연관은 없어지며, 어느 누구도 아주 무의식적이고 우발적인 행동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 없다.
43. p156 이 행동이 유래된 지속적이거나 항상적인 원인이 그에게는 전혀 없으므로 또 그 행동은 그런 성질의 것을 전혀 남겨두지 않으므로 따라서 사람이 징벌과 보복의 대상일 수는 없다.
44. p157 일반적 의견은 이와 상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직 필연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따른 상벌을 받는다.
45. p157 성급한 기질이 정신에 항상 있는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질은 이따금 작용하며, 전체적인 성격을 손상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46. p157 또 특히 생활이나 행동거지 따위의 명백한 개선을 수반하는 뉘우침은 모든 죄를 일소한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47. p157 그러나 자유론 또는 우연론에 따르면 그런 행동은 결코 정확한 증거가 아니며, 결과적으로 범죄적이지도 않다.
48. p158 자유와 우연이 동의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앞에서 제시했던 것과 그리고 도덕적 명증성 및 인간 행동의 규칙성 따위에 관해 내가 말한 것 등을 돌이켜 보도록하자.
49. p158 정념과 이성의 싸움을 이야기 하며 이성의 편을 들고, 사람은 이서으이 명령에 따르는 만큼 유덕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은 물론 심지어 일상 생활에서조차 가장 흔하다.
50. p158 만일 다른 동기나 원리가 그의 행동지침과 어긋날 경우에 그 동기나 원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적어도 상위 원리와 합치될 때까지 그는 그 동기나 원리와 맞서야 한다.
51. p158 이성을 정념보다 우위에 두는 가정이 가장 일반적이다. 지금까지 이성의 영원 불변성 및 그 신적 기원은 최고의 장점으로 드러났다.
52. p158 첫째, 오직 이성만으로는 어떤 의지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 둘째 이성은 의지의 방향을 결정할 때 결코 정념과 상반될 수 없다.
53. p158 의지의 문제에서 우리는 언제나 실재의 세계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논증과 의욕은 서로 아주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진다.
54. p159 따라서 추상적이거나 논증적인 추론은 오직 원인과 결과 따위에 관한 우리의 판단을 지배할 뿐, 우리의 어떤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55. p159 이 경우에 충동은 이성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지배를 받을 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56. p160 이성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유발할 수 없고, 어떤 의욕도 불러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추정으로는 바로 이성직능은 의욕을 막거나 어떤 정념 또는 정서를 선택하려고 싸울 역량이 없다.
57. p160 이성은 근원적 영향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효력을 갖거나 잠시라도 정신을 긴장시킬 수 있는 어떤 원리와도 맞설 수 없다.
58. p160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고 또 노예일 뿐이어야 하며, 정념에게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외에 결코 어떤 직무도 탐낼 수 없다.
59. p160 정념은 근원적 존재이며, 사람들이 원한다면(근원적으로) 존재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60. p 161 반드시 정념은 어떤 판단이나 의견을 수반하는 한에 있어서만 이성과 상반될 수 있다.
61. p 161 또 정념이 목적을 충족시킬 수 없는 수단을 선택하지도 않는 경우에 오성은 그 목적을 정당화할 수도 없고, 비난할 수도 없다.
62. p161 간단히 말해서 어떤 정념이 불합리하려면 거짓 판단을 동반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말해서 불합리한 것은 정념이 아니라 판단이다.
63. p162 이 행동이 의도된 결과의 원인이라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내가 이 가정이 거짓임을 알면 곧 이 행동은 내 안중에도 없을 수밖에 없다.
64. p162 의지를 결정하는 일이 흔한 이 차분한 정념들 외에도 같은 종류의 격렬한 정사가 있는데, 이 정서 역시 이성이라는 직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65. p162 이 적개심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쾌락이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의 악과 처벌을 욕구한다.
66. p163 형이상학자들의 공통적인 오류는 의지의 방향이 이런 원리들 가운데 어떤 것에 전적으로 귀속된다고 여기며 그 밖의 원리는 전혀 영향력을 갖지 못한 것으로 상정한 데 있다.
67. p167 그런데 우리의 정념을 증감시키고 쾌락을 고통으로 바꾸는등 이런 것에 가자 d중대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습관과 반복이다.
68. p168 그 정념을 수반하는 정념은 모두 자신이 선행하거나 수반하는 정념을 쉽게 전환된다.
69. p169 상상력과 감정이 함께 밀접하게 합일되며,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감정과 완전히 무관할 수도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70. p171 그들은 그와 같은 이익을 이익에 대한 개별 관념을 통해서 표상하지 않고 이익에 대한 일반 관념아래서만 알게 되므로, 아테네인들이 그런 이익의 모든 여건을 숙지하고 있을 때보다 그런 이익이 그들의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은 덜하며 매력도 덜하다.
71. p171 생활 방식에 알맞고 관심을 끄는 쾌락은 생활방식과 거리가 먼 다른 쾌락보다 우리의 욕구와 욕망을 유발한다. 동일한 원리를 통해 우리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도 있겠다.
72. p172 신념은 현전하는 인상과 관련된 생생한 관념일 뿐이다. 이 생동성은 격렬한 정념은 무론 차분한 정념에 이르기 까지 모든 정념을 불러일으키는데 필요한 여건이다.
73. p172 우리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우리와 인접한 만물을 특히 강하고 생생하게 표상하며, 그런 대상이 그 밖의 대상보다 상상력에 월등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74. p172 우리 자신과 그 대상 사이의 공간을 사이를 거쳐서 비로서 그 대상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그 대상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사유경로를 매순간마다 바꿀 수밖에 없다.
75. p173.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대상 즉 인접한 대상과 먼 대상 등을 고려해야한다. 인접한 대상은 우리 자신에 대한 관계 때문에 힘과 생동성에서 인상에 버금가고, 먼 대상은 우리가 그 대상을 생각하는 방식의 단속 때문에 더욱 약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현상한다.
76. p174 어떤 사람은 형이상학에 호소하지 않고도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공간 또는 연장은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어 시각이나 의식에 동시에 현전할 수 있는 숱한 공존적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77. p175 표상 작용을 단속시키고 약화시키는 데에는 과거의 짧은 거리는 미래의 훨씬 긴 거리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갖는다.
78. p176 미래의 거리는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상은 사물의 추이를 내다보고 그 대상의 현재 조건이라고 간주되는 것과 아울러 그 대상이 향하는 조건 안에서 그 대상을 조망한다.
79. p176 거리가 표상 작용과 정념을 약화시키는 이유, 시간거리가 공간거리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 이유, 그리고 과거 시간 거리가 미래 시간 거리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 이유등이다.
80. p177 넓은 평원, 대양, 영원 수세대에 걸친 계승등 이 모든 것이 즐거운 대상이며 아름답지만 알맞은 크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수반하지 못하느 모든 대상을 능가한다.
81. p178 사람을 완전히 좌절시키거나 위협하지 않는 적대관계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아 일상적 위엄이나 도량보다 더 우리를 고무시키는데, 이것은 인간 본성의 주목할 만한 성질이다.
82. p178 정념을 뒷받침하며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호의적이며, 이와 반대로 정념을 약화시켜 힘을 빼앗는 것은 우리에게 얹짢다.
83. p179 높고 낮음에는 자연적 차이도 없고 본질적 차이도 없으며, 이런 구별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운동하는 물질의 중력에선만 발생할 뿐이다. 이런 사실은 철학 뿐 아니라 상식으로도 명백하다.
84. p180 여기서 분명해지듯이 상승과 몰락의 실제 본성은 어려움과 성향에서 비롯되고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결과도 이런 원천에서 발생하다.
85. p181 선이나 악이 현존하거나 어떤 대상이 우리 직능의 근원적 형식을 통해 우리의 욕망을 유발시키기에 적합할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한 정념은 정식의 격력하고 감지할 수 있는 정서이다.
86. p181 이 격렬한 정념과 차분한 정념 따위의 원인과 그 결과는 모두 매우 가변적이며 대개 각 개인 고유의 기분과 성향에 의존한다.
87. p182 이른바 정념과 이성의 투쟁은 대체로 인간 삶을 다채롭게 하고, 사람들을 서로 다르게 할 뿐 만아니라 시대에 따라 사람 자체도 다르게 한다.
88. p183 이 정념을 수반하는 쾌락은 직접 감정으로 되돌아가며, 우리의 욕구나 의욕, 또는 기쁨이나 희망을 새 힘을 준다.
89. p183 적을 처벌하려는 욕구나 친구의 행복을 원하는 욕구 뿐만 아니라, 배고픔과 성욕 그밖의 몇 가지 신체적 욕망도 이런 종류이다.
90. p184. 그런데 그 실재성이 의심스러운 대상이 욕구나 혐오의 대상이라고 가정하면 정신은 어느 한 측면으로 향함에 따라 기쁨이나 슬픔의 순간적 인상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하다.
91. p185 전혀 상이한 대상들에서 상반된 정념들이 발생할 때 인상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대립을 막는 관념들 사이의 관계가 결여되어 이 정념들은 번갈아 가며 발생한다.
92. p186 상상력이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마다 고유의 정념을 산출하며, 이 정념은 점차적으로 쇠퇴하고 현악기의 현을 튕근 뒤의 감지할 수 있는 진동으로 이어진다.
93. p187 우연들이 양측면에서 대동하고 어느 측면이 다른 측면보다 우세하다는 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때 두려움과 희망 따위의 정념이 발생할 수도 있다.
94. p188 개연적 선이나 개연적 악은 대체로 희망과 두려움을 산출한다. 개연성은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이 동요하고 가변적이어서 자연히 정념의 혼합과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95. p189 확실한 악은 가능적이든 불가능적이든간에 두려움을 낳는데 때때로 동일한 영향력을 미친다.
96. p190 어떤 현상의 갑작스러움과 기이함은 자연히 정신의 동요를 낳는다. 이런 동요는 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나 탐구욕을 유발시키는데, 이런 호기심이나 탐구욕은 매우 격렬하므로 대상의 강하고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에 언짢게 되고, 그 동요와 불확실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비탄과 기쁨이 혼합된 정념 또는 두려움의 감각과 유사하다.
97. p191 의심이 어떤 측면에서든 오직 선하고 바람직한 것만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경우에도 의심은 이런 정념을 산출한다.
98. p192 진리의 종류는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관념들 자체의 비율을 발견하는데 있고, 다른 것은 대상에 대한 관념이 그 대상의 실재와 합치하느데 있고, 다른 것은 대상에 대한 관념이 그 대상의 실재와 합치하는데 있다.
99. p193 진리를 호의적이도록 하는데 필요한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여건은 진리를 고안하고 발견하는데 활용된 재능과 역량이다.
100. p196 관념의 생동성이 쾌락을 제공하므로 관념의 확실성은 정신에 특정 관념을 고정시키고, 그 대상을 선택함에 있어서 동요를 억제함으로써 불안을 막는다.
구 성 : 『이것이 정신 활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 알려면, 먼저 우리는 물질을 검토하고, 물질의 작용에서 필연성의 관념이 무엇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 살펴보고, 어떤 물체나 행동이 다른 물체나 행동의 불가피한 원인이라고 결론내리는 이유를 고찰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 추정을 확정하기 위해 정신 활동의 항상적 합일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용
흄의 ‘정념에 관하여’에서 흄은 필연성이라는 개념을 기존의 것과 다른 것으로 정의하면서 그의 논의를 이끌어 간다. 일단 흄의 이론에서 필연성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필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물질적인 세계에서 필연성을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필연성은 다른 말로 원인과 결과 사이를 이어주는 어떠한 것으로 물질세계는 필연성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높은 곳에 뛰어내리면 그 사람은 아래를 향하여 일정한 중력가속도의 영향을 받아서, 떨어지게 되어있다. 125cc 엔진을 장착한 오토바이는 전주에서 익산사이를 약 40분에 걸려서 지나갈 수 있고, 250cc 엔진을 장착한 오토바이는 같은 거리를 30분이면 지나갈 수 있다. 이것은 물리적 세계가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 이다. 하지만 흄은 이러한 물리적 세계의 필연성을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의지와 이성에 관한 정의를 하게 된다. 흄에 의하면 필연성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속성이 아니다. 당구를 칠 때 첫 번째 공이 두 번째 공을 때리면 두 번째 공이 움직일 것이다 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단편적인 현상들이 시간적인 전후관계를 가지고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러한 상황을 필연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대하게 되면 상상력을 발휘하여서 그것에 전후 관계를 부여하며 뒤에 일어난 사건이 앞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에게 필연성이라는 관념을 가지게 만드는 물리적인 상황을 흄은 항상적 합일이라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물리적인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필연적인 관계라고 표현한 흄은 이런 물리적 세계의 가정을 정신적인 세계의 수준으로 까지 끌어 올리게 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는 어떠한 원인들은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물질의 운동에서는 필연성을 인정하고, 정신의 작용에서는 필연성을 부인하는 것은 명백하게 불합리하다는 것을 흄은 주장하려는 것이다. 흄은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흄의 이러한 복잡한 이론을 어디서부터 인정을 해야 하는가? 그가 도달하게 된 결론을 나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나는 그가 기초를 두고 있는 물리적인 원인과 결과의 부정에서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흄의 논증을 전개하는 과정을 보게 되면, 동기와 행동 사이의 합일이 어떤 자연적 작용에서와 같은 항상성을 갖는다는 것과, 오성에 미치는 그 영향력 또한 우리가 하나의 존재로부터 다른 존재를 추정하도록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라는 것 등인데, 이러한 이론의 원천은 물리적인 세계의 필연성 개념이 정신적인 세계로 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원인과 결과에서 발생하는 필연성이 인간의 습관과 감정 같은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드리지 않아야 한다.
흄이 필연성에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항상적인 합일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의 추정이다. 여기서 나는 항상적인 합일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어떠한 상황이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며 발생하게 되고 언제나 동일한 선행 작용이 있으면 같은 후 작용이 있다는 것으로 항상적인 합일에 대해서 이해하였으며,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어떠한 것을 지각하는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정신의 추정은 문제가 된다. 필연성은 규칙적이고 확실하며, 인간의 행동거지는 불규칙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필연성은 인간의 행동거지에서 기인할 수 없다 라는 지적을 흄은 글 중에서 자신이 스스로 하고 이것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러한 반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고 그 전에 그가 한 주장, 인간의 행동거지를 필연성의 이유로써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물리적인 세계에서 필연성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세계 속에서 형성된 관념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지 우주의 체계는 그러한 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적인 전후 관계가 아니며 후자라는 결과에 대해서 전자가 분명히 그 원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물리적인 세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어떠한 사건에 의해서 다른 사건에 일어난다는 사실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는 상황을 생각을 해 보자. 첫 번째 공을 때리게 되면 그 공은 일정한 힘으로 굴러가게 되고 두 번째 공을 맞추게 된다. 여기서 흄 식의 이론에 따르면 첫 번째 공이 두 번째 공에 닿은 사실은 두 번째 공이 움직인다는 사실의 원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며 전자의 상황은 분명한 원인이다. 이것은 세계를 구성하게 있는 절대적인 세계의 운행원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어떠한 물리적인 대상도 같은 공간 속에서 있을 수 없다 라는 세계의 운행원리가 거기에 작용하는 것이다. 첫 번째 공이 두 번째 공에게 굴러가서 두 번째 공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빼앗는 것은 이러한 물리적 세계의 원리를 첫 번째 공이 자극했기 때문에, 그러한 원리를 작동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원인으로써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에는 이러한 원리들이 있으며 이러한 원리들이 진정한 실체라는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동원리들을 작동하는 그러한 물리적인 작용은 그러한 원리에 의해서 발생하는 후속적인 작용의 원인 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인 세계에는 흄이 정의하는 식의 필연성이 아닌 우리가 기존에 사용해 왔던 그런 의미로써의 필연성(논리적인 의미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과연 우리 인간이 흄 식의 필연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보게 되면 아이들은 물체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초기에는 인식하지 못한다. 즉 이러한 신념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정신 작용에 일정한 조작을 가하여 물리적인 세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극을 주게 되면 아기는 거기에 맞는 신념을 형성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주정거장에서 아이를 기른 다고 생각해보자. 우주정거장에서는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에서와는 전혀 다른 물리적인 반응들이 일어난다. 아이는 이러한 작용들을 보고 자라면서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필연성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원인과 결과의 필연성은 옳은가? 아이는 지구에 오게 되면 혼란을 겪을 것이다. 지구에서의 환경에 의해서 자신이 원인과 결과의 인관관계로 알고 있던 사실들은 논파될 것이다. 이러한 원인의 차이는 중력의 작용이라는 물리학의 법칙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우주의 원리가 먼저 있는 것이고 사람의 인식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가변적이다.
흄은 이러한 가변성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가 이야기하는 필연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사회적으로 통념상 합의 되고 있는 사항들이다. 이러한 합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흄은 사회 통념에 의한 합의를 통해서 필연성을 정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어떠한 예를 들고 있다. 먼 나라에서 돌아온 여행자인데, 그 여행자가 우리에게 자신이 보았던 북위 50도 지역의 기후에 대해서 이 지역에서는 과일철이 자신의 고향과 완전히 뒤바뀌어 있어 겨울에 모든 과일이 결실을 맺어 완전히 무르익고 여름에는 시들어 버린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의 고향에서는 이를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는 주장이다.
이는 그러한 사회적인 합의가 인과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그러한 합의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연적인 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북위 50도 지역에서 발생하는 물리학적인 원리들은 그들이 그 원리를 알든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간에 동일하게 작용한다. 우리의 지식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세계의 필연성은 단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신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형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065 단어
참고자료
『정념에 관하여』 데이비드 흄
『서양철학사』 스털링 P 렘프레히트
구 성
1. p145 의지의 본성과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정념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이므로 우리는 여기서 의지를 우리 탐구의 주제로 삼을 것이다.
2. p145 내가 의미하는 의지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우리 신체의 새로운 동작을 유발하거나 정신의 지각을 창출할 때, 우리가 느끼고 의식하는 내부 인상일 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3. p145 따라서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곧잘 어렵게 만들도록 했던 정의나 구별을 우리는 제쳐 놓을 것이다.
4. p146 보편적으로 인정되듯이 외부 물체의 작용은 필연적이며, 그리고 외부 물체들 사이의 운동 전달과 인력 그리고 상호 응집력 등에서 무차별성이나 자유는 조급도 없다.
5. p146 우리가 물체들의 상호 영향력이 의존하는 원리를 지각할 수 있을 정도로 물체의 본질이나 구성을 깊이 천착할 수는 결코 없다.
6. p146 우리는 결코 원인과 결과 따위에 대한 어떠한 관념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인과 결과의 관념에 들어오는 필연성은 정신의 결정일 뿐이며
7. p146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필연성에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 요서는 항상적 합일과 정신적 추정 등이다.
8. p147 이 추정을 확정하기 위해 정신 활동의 항상적 합일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9. p147 나의 행동이 나의 동기와 기분 그리고 여건 등과 항상 합일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증명할 것이다.
10. p147 인간사의 일상적 과정을 아주 가볍게 일반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11. p147 그 부분들의 응집력은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원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12. p148 태양의 운행과 기후 변화 등과 같이 인간의 행동에도 자연의 일반적 과정이 있다. 인류에게는 공통적인 성격 뿐만 아니라 상이한 민족과 개인에게 고유한 성격들이 있다. 이런 성격들에 대한 지식의 기초는그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의 제일성에 대한 관찰이고, 이 제일성이 필연성의 참된 본질을 형성한다.
13. p149 인간의 행동보다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욕구보다 무상한 것이 무엇인가?
14. p149 사람이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고 극심한 고통과 노력을 대가로 치르며 미련한 것을 번복하는 데에는 촌음으로도 충분한다.
15. p149 필연성은 규칙적이고 확실하다. 인간의 행동거지는 불규칙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필연성은 인간의 행동거지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16. p149 정신은 상반된 실험들을 비교하여 우세한 실험에서 열세인 실험을 뺌으로써 남아있는 확증이나 명증성의 정도를 처리한다.
17. p150 이 부조리한 사고 방식은 혼돈된 관념 및 모호한 술어 따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우리는 추론할 때, 특히 이 주제에서 이런 관념과 술어를 매우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18. p150 동기와 행동 사이의 합일이 어떤 자연적 작요에서와 같은 항상성을 갖는다는 것과 오성에 미치는 그 영향력 또한 우리가 하나의 존재로부터 다른 존재를 추정하도록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 등이다.
19. p150 결과적으로 우리가 물질의 운동에서는 필연성을 인정하고 정신의 작용에서는 필연성을 부인하는 것은 명백하게 불합리하다.
20. p150 그런데 도덕적 명증성은 인간의 동기와 기질 그리고 상황 따위를 고찰함으로써 도출된 인간 행동에 관한 결론일 뿐이다.
21. p150 우리는 그 인물 됨됨이나 외양을 기록한 사람이 가이사르의 죽음과 아우구스투스의 계승 및 네로의 잔혹성 따위와 같은 사실을 긍정하리라고 추정한다.
22. p151 우리가 원인과 결과라고 일컫는 모든 대상들을 그 자체로 고렴하면, 그 대상들은 자연에서의 어떤 두 대상처럼 독립적이고 분리된 것이다.
23. p151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추정은 상상력에 습관이 작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항상 합일된 대상들에 원인과 결과 등의 관념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반드시 긍정해야 한다.
24. p151 또 필연적 연관은 오성의 결론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지각일 뿐이다.
25. p151 우리가 항상적 합일을 관찰하는 모든 경우에, 또 그 합일이 신념과 의견에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모든 경우에 우리는 원인과 필연성등의 관념을 가진다.
26. p151 우리가 도덕적 명증성이라고 일컫는 것에 바로 이런 항상성과 영향력이 있으므로 나는 더 문제 삼을 것이 없다.
27. p152 돈도 방책도 없는 죄수는 자신을 에워싼 담장과 창살은 물론 간수의 완강함으로 미루어 자신이 탈옥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28. p152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는 도끼나 형구 따위의 작용에서처럼 호송인의 단호함과 충성심으로 미루어 자신의 죽음을 확실히 예견할 것이다.
29. p152 우리가 물리적 필연성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을 통해 접합된 연쇄적인 원인들에 의해 기억과 감관 등의 현재 인상과 미래의 사건이 연고나되면 미래의 사건은 거의 확실하지 않을 수 없다.
30. p152 나의 정의에 따르면 필연성은 인과의 본질적 부분을 이루며, 결과적으로 자유는 필연성을 제거함으로써 원인 도한 제거하고, 자유는 곧 우연이다. 우리는 대체로 우연이 모순을 내포한다고 생각하며, 적어도 우연은 경험과 직접적으로 상반되므로, 자유또는 자유 의지 등과 상반되는 논변이 언제나 존재한다.
31. p153 내가 믿기에, 우리는 자유론이 우세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32. p153 우리는 필연성의 관념이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힘과 방해 및 구속력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여긴다.
33. p153 방해와 대립적인 자유와 그리고 필연성과 원인 따위의 부정이 의미하는 자유등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34. p154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대개의 경우에 우리의 의지를 따르는 것으로 느끼며, 또 우리가 의지 자체는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으로 상상한다.
35. p154 이 심상 또는 희미한 운동이 의지 자체로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의지의 자유가 부정되어야 한다면 의지의 자유는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두 번째 시험을 통해 발견하기 때문이다.
36. p154 그리고 우리가 변덕스럽고 불규칙적인 모든 행동을 실행할 수도 있다지만 우리의 자유를 보여주려는 욕구가 우리 행동의 유일한 동기인 한 우리는 필연성의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37. p155 그러나 관찰자는 대체로 우리의 동기나 성격에서 우리의 행동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관찰자는 그와 같이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자신이 우리의 처지와 기분 그리고 우리의 표정과 성향의 가장 은밀한 원천을 완전히 숙지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우리의 행동을 추정할 수 있으리라고 결론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의 학설에 따르면 이것이 필연성의 실제 본질이다.
38. p155 필연성은 원인의 본질적 요소이다. 나는 필연성이 같은 대상들의 항상적 합일과 결부에 있거나 또는 정신이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을 추론할 때 이 추론에 있다고 본다.
39. p156 이 필연성이 없다면 곧종교와 도덕이 완전히 전복되어야 하며 그 밖의 모든 가정 또한 신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을완전히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40. p156 이 두 동기는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선한 행동을 낳고 악한 행동을 방지하는 기초적 원리로 가정되는 것은 틀림없다.
41. p156 신이 주재적인 역량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가증스러움과 흉함 때문에 범죄를 응징하는 자로 간주되더라도, 인간의 행동에 필연적 연관이 없다면 정의와 도덕적 형평에 맞게 징벌을 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징벌을 가하는 것을 이성적 존재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42. p156 자유론 또는 우연론에 따르면 이 연관은 없어지며, 어느 누구도 아주 무의식적이고 우발적인 행동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 없다.
43. p156 이 행동이 유래된 지속적이거나 항상적인 원인이 그에게는 전혀 없으므로 또 그 행동은 그런 성질의 것을 전혀 남겨두지 않으므로 따라서 사람이 징벌과 보복의 대상일 수는 없다.
44. p157 일반적 의견은 이와 상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직 필연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따른 상벌을 받는다.
45. p157 성급한 기질이 정신에 항상 있는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질은 이따금 작용하며, 전체적인 성격을 손상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46. p157 또 특히 생활이나 행동거지 따위의 명백한 개선을 수반하는 뉘우침은 모든 죄를 일소한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47. p157 그러나 자유론 또는 우연론에 따르면 그런 행동은 결코 정확한 증거가 아니며, 결과적으로 범죄적이지도 않다.
48. p158 자유와 우연이 동의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앞에서 제시했던 것과 그리고 도덕적 명증성 및 인간 행동의 규칙성 따위에 관해 내가 말한 것 등을 돌이켜 보도록하자.
49. p158 정념과 이성의 싸움을 이야기 하며 이성의 편을 들고, 사람은 이서으이 명령에 따르는 만큼 유덕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은 물론 심지어 일상 생활에서조차 가장 흔하다.
50. p158 만일 다른 동기나 원리가 그의 행동지침과 어긋날 경우에 그 동기나 원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적어도 상위 원리와 합치될 때까지 그는 그 동기나 원리와 맞서야 한다.
51. p158 이성을 정념보다 우위에 두는 가정이 가장 일반적이다. 지금까지 이성의 영원 불변성 및 그 신적 기원은 최고의 장점으로 드러났다.
52. p158 첫째, 오직 이성만으로는 어떤 의지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 둘째 이성은 의지의 방향을 결정할 때 결코 정념과 상반될 수 없다.
53. p158 의지의 문제에서 우리는 언제나 실재의 세계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논증과 의욕은 서로 아주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진다.
54. p159 따라서 추상적이거나 논증적인 추론은 오직 원인과 결과 따위에 관한 우리의 판단을 지배할 뿐, 우리의 어떤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55. p159 이 경우에 충동은 이성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지배를 받을 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56. p160 이성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유발할 수 없고, 어떤 의욕도 불러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추정으로는 바로 이성직능은 의욕을 막거나 어떤 정념 또는 정서를 선택하려고 싸울 역량이 없다.
57. p160 이성은 근원적 영향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효력을 갖거나 잠시라도 정신을 긴장시킬 수 있는 어떤 원리와도 맞설 수 없다.
58. p160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고 또 노예일 뿐이어야 하며, 정념에게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외에 결코 어떤 직무도 탐낼 수 없다.
59. p160 정념은 근원적 존재이며, 사람들이 원한다면(근원적으로) 존재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60. p 161 반드시 정념은 어떤 판단이나 의견을 수반하는 한에 있어서만 이성과 상반될 수 있다.
61. p 161 또 정념이 목적을 충족시킬 수 없는 수단을 선택하지도 않는 경우에 오성은 그 목적을 정당화할 수도 없고, 비난할 수도 없다.
62. p161 간단히 말해서 어떤 정념이 불합리하려면 거짓 판단을 동반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말해서 불합리한 것은 정념이 아니라 판단이다.
63. p162 이 행동이 의도된 결과의 원인이라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내가 이 가정이 거짓임을 알면 곧 이 행동은 내 안중에도 없을 수밖에 없다.
64. p162 의지를 결정하는 일이 흔한 이 차분한 정념들 외에도 같은 종류의 격렬한 정사가 있는데, 이 정서 역시 이성이라는 직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65. p162 이 적개심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쾌락이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의 악과 처벌을 욕구한다.
66. p163 형이상학자들의 공통적인 오류는 의지의 방향이 이런 원리들 가운데 어떤 것에 전적으로 귀속된다고 여기며 그 밖의 원리는 전혀 영향력을 갖지 못한 것으로 상정한 데 있다.
67. p167 그런데 우리의 정념을 증감시키고 쾌락을 고통으로 바꾸는등 이런 것에 가자 d중대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습관과 반복이다.
68. p168 그 정념을 수반하는 정념은 모두 자신이 선행하거나 수반하는 정념을 쉽게 전환된다.
69. p169 상상력과 감정이 함께 밀접하게 합일되며,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감정과 완전히 무관할 수도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70. p171 그들은 그와 같은 이익을 이익에 대한 개별 관념을 통해서 표상하지 않고 이익에 대한 일반 관념아래서만 알게 되므로, 아테네인들이 그런 이익의 모든 여건을 숙지하고 있을 때보다 그런 이익이 그들의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은 덜하며 매력도 덜하다.
71. p171 생활 방식에 알맞고 관심을 끄는 쾌락은 생활방식과 거리가 먼 다른 쾌락보다 우리의 욕구와 욕망을 유발한다. 동일한 원리를 통해 우리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도 있겠다.
72. p172 신념은 현전하는 인상과 관련된 생생한 관념일 뿐이다. 이 생동성은 격렬한 정념은 무론 차분한 정념에 이르기 까지 모든 정념을 불러일으키는데 필요한 여건이다.
73. p172 우리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우리와 인접한 만물을 특히 강하고 생생하게 표상하며, 그런 대상이 그 밖의 대상보다 상상력에 월등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74. p172 우리 자신과 그 대상 사이의 공간을 사이를 거쳐서 비로서 그 대상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그 대상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사유경로를 매순간마다 바꿀 수밖에 없다.
75. p173.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대상 즉 인접한 대상과 먼 대상 등을 고려해야한다. 인접한 대상은 우리 자신에 대한 관계 때문에 힘과 생동성에서 인상에 버금가고, 먼 대상은 우리가 그 대상을 생각하는 방식의 단속 때문에 더욱 약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현상한다.
76. p174 어떤 사람은 형이상학에 호소하지 않고도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공간 또는 연장은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어 시각이나 의식에 동시에 현전할 수 있는 숱한 공존적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77. p175 표상 작용을 단속시키고 약화시키는 데에는 과거의 짧은 거리는 미래의 훨씬 긴 거리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갖는다.
78. p176 미래의 거리는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상은 사물의 추이를 내다보고 그 대상의 현재 조건이라고 간주되는 것과 아울러 그 대상이 향하는 조건 안에서 그 대상을 조망한다.
79. p176 거리가 표상 작용과 정념을 약화시키는 이유, 시간거리가 공간거리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 이유, 그리고 과거 시간 거리가 미래 시간 거리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 이유등이다.
80. p177 넓은 평원, 대양, 영원 수세대에 걸친 계승등 이 모든 것이 즐거운 대상이며 아름답지만 알맞은 크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수반하지 못하느 모든 대상을 능가한다.
81. p178 사람을 완전히 좌절시키거나 위협하지 않는 적대관계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아 일상적 위엄이나 도량보다 더 우리를 고무시키는데, 이것은 인간 본성의 주목할 만한 성질이다.
82. p178 정념을 뒷받침하며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호의적이며, 이와 반대로 정념을 약화시켜 힘을 빼앗는 것은 우리에게 얹짢다.
83. p179 높고 낮음에는 자연적 차이도 없고 본질적 차이도 없으며, 이런 구별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운동하는 물질의 중력에선만 발생할 뿐이다. 이런 사실은 철학 뿐 아니라 상식으로도 명백하다.
84. p180 여기서 분명해지듯이 상승과 몰락의 실제 본성은 어려움과 성향에서 비롯되고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결과도 이런 원천에서 발생하다.
85. p181 선이나 악이 현존하거나 어떤 대상이 우리 직능의 근원적 형식을 통해 우리의 욕망을 유발시키기에 적합할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한 정념은 정식의 격력하고 감지할 수 있는 정서이다.
86. p181 이 격렬한 정념과 차분한 정념 따위의 원인과 그 결과는 모두 매우 가변적이며 대개 각 개인 고유의 기분과 성향에 의존한다.
87. p182 이른바 정념과 이성의 투쟁은 대체로 인간 삶을 다채롭게 하고, 사람들을 서로 다르게 할 뿐 만아니라 시대에 따라 사람 자체도 다르게 한다.
88. p183 이 정념을 수반하는 쾌락은 직접 감정으로 되돌아가며, 우리의 욕구나 의욕, 또는 기쁨이나 희망을 새 힘을 준다.
89. p183 적을 처벌하려는 욕구나 친구의 행복을 원하는 욕구 뿐만 아니라, 배고픔과 성욕 그밖의 몇 가지 신체적 욕망도 이런 종류이다.
90. p184. 그런데 그 실재성이 의심스러운 대상이 욕구나 혐오의 대상이라고 가정하면 정신은 어느 한 측면으로 향함에 따라 기쁨이나 슬픔의 순간적 인상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하다.
91. p185 전혀 상이한 대상들에서 상반된 정념들이 발생할 때 인상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대립을 막는 관념들 사이의 관계가 결여되어 이 정념들은 번갈아 가며 발생한다.
92. p186 상상력이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마다 고유의 정념을 산출하며, 이 정념은 점차적으로 쇠퇴하고 현악기의 현을 튕근 뒤의 감지할 수 있는 진동으로 이어진다.
93. p187 우연들이 양측면에서 대동하고 어느 측면이 다른 측면보다 우세하다는 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때 두려움과 희망 따위의 정념이 발생할 수도 있다.
94. p188 개연적 선이나 개연적 악은 대체로 희망과 두려움을 산출한다. 개연성은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이 동요하고 가변적이어서 자연히 정념의 혼합과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95. p189 확실한 악은 가능적이든 불가능적이든간에 두려움을 낳는데 때때로 동일한 영향력을 미친다.
96. p190 어떤 현상의 갑작스러움과 기이함은 자연히 정신의 동요를 낳는다. 이런 동요는 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나 탐구욕을 유발시키는데, 이런 호기심이나 탐구욕은 매우 격렬하므로 대상의 강하고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에 언짢게 되고, 그 동요와 불확실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비탄과 기쁨이 혼합된 정념 또는 두려움의 감각과 유사하다.
97. p191 의심이 어떤 측면에서든 오직 선하고 바람직한 것만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경우에도 의심은 이런 정념을 산출한다.
98. p192 진리의 종류는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관념들 자체의 비율을 발견하는데 있고, 다른 것은 대상에 대한 관념이 그 대상의 실재와 합치하느데 있고, 다른 것은 대상에 대한 관념이 그 대상의 실재와 합치하는데 있다.
99. p193 진리를 호의적이도록 하는데 필요한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여건은 진리를 고안하고 발견하는데 활용된 재능과 역량이다.
100. p196 관념의 생동성이 쾌락을 제공하므로 관념의 확실성은 정신에 특정 관념을 고정시키고, 그 대상을 선택함에 있어서 동요를 억제함으로써 불안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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