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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실천이성비판 3장 순수 실천 이성의 동기들

작성자지니는까꿍이|작성시간04.11.12|조회수632 목록 댓글 1

실천 이성 비판 제 3장 순수 실천 이성의 동기들

 

철학과 200122993 김혜진

 

<주제> 동기와 의지는 이성과 감성 모든 것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또한 모든 것은 감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유라는 의미를 사용한 것은 과연 무슨 근거 였을까? 그리고 경향성을 배제한 법칙과 도덕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경향성을 배제한 것이 인간이라고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또한 칸트는 형식만을 말했더라도 도덕적인 것에는 주관적인 것도 포함하는 것이지 객관만이 형식과 내용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구성> 칸트는 이 부분을 통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순수 실천 이성의 동기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동기와 의지,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 그는 설명한다. 또한 그러한 설명으로 인해 도덕 법칙과, 그에 대한 존경, 그리고 이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또한 인간성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게 옳다고 봐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인간의 수단과 목적을 가리는 것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도..
 
<의견> 칸트는 형식주의자이면서 동기주의자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는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 규정한다고 하며, 법칙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도덕성이 없다고 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동기란 도덕 법칙이라 한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는 객관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도덕이라는 것에는 이미 주관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주관적인 것 모두가 아닌 그러한 것들 중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이 모여 객관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들로 도덕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옛날부터 부모님이나 노인을 공경하라고 한 도덕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점점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와 그와 같은 노인들을 보면 스스로 누가 머라고 한다 해도 공경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런 행동들은 주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이 공동체 안에 있는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것도 역시 도덕 법칙인 것처럼 도덕적 가치나 도덕 법칙 이러한 것들은 모두 주관적인 것들이 객관성을 띠게 된 것들이다. 그러나 동기가 도덕 법칙이라면 신에게도 통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칸트는 이것을 인간에게만 통용이 된다고 하였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 것일까? 신에게는 동기라는 것조차 없단 말인가? 만약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저 장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유가 있다면 동기도 있을 것인데, 어찌 이러한 것들이 인간에게만 통용된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동기는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 계기이며 이유이다. 이러한 동기는 이성을 포함하고 감성도 포함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객관성과 주관성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아까 든 예에서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처음에는 주관성이다. 그러한 것이 사람들의 힘을 얻어 객관성을 띠고, 필요성에 의해 암묵적으로 도덕 법칙이 되었다. 이렇게 도덕 법칙이 되었다면, 그것은 모든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의지는 자유 의지이며, 경향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시 말하면 주관성이 없고 감성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동기로서 도덕 법칙의 작용은 단지 부정적인 것이고, 그런 것으로서 이 동기는 선험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경향성과 일체의 감성적 충동은 감정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고, 도덕 법칙은 의지의 규정근거인데 이런 경향성을 방해함으로 고통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유 의지라는 것 즉 의지라는 것이 과연 객관성을 띠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 의지는 객관성이 지닌 의지가 아니라 주관성이 강한 의지이다. 의지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어떤 동기나 원인이 주어진다. 나에게 의지를 강하게 하는 것은 나의 마음가짐이고,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나는 의지는 자신의 감정의 기초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성의 기초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강하게 열망하는 이 마음이야말로, 자신의 감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고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좌절하지 않고, 강하게 열망하여 나도 기필코 나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의지를 곧게 세움으로써 나의 의지로 어떠한 일을 하려고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리고 그러한 동기로 자신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부터 그러하고,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모든 이들이 결국 나타나는 행위의 결과가 같을지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기초의 감정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칸트는 이를 부정하여 자유 의지는 경향성, 즉 욕구가 없고 주관성이 없다고 한다.
 도덕 법칙은 실천적인 순수 이성을 매개로 한 행위의 형식적 규정 근거이고, 또한 선과 악이라는 이름 아래의 행위 대상들의 객관적인 규정 근거라고 한다. 이 글에서 볼 때, 칸트는 도덕 법칙은 형식에서 객관적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하여 선과 악의 규정근거라고 할 수 있을까?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과연 도덕 법칙 하나 일 것인가? 아니다.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스스로의 양심에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을 양심에 맡길 수는 없지만, 일부 의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심과 이성이 만나서 선과 악을 나눈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은 처음부터 과연 나누어져 있었던 것일까? 예를 들어 생각을 해본다면, 전에 한동안 이슈가 되었던 성폭행을 한 아버지를 죽인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법정에 서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 " 나는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인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녀는 우리가 볼 때 그저 객관적인 것에서 아버지라는 부모를 죽인 패륜아이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인가?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건 인간을 죽였다고 하는 것은 악이다. 이것이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절실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악이 될 수 없다. 자신이 겪지 않는 이상 그 아픔을 모르고 그 고통을 모를 것이다. 아마 그녀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객관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이러한 상황을 객관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런 경우를 보았을 때 과연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과연 존재하게 되는 것인가 의심스럽지만,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되어진다.
 자유는 흔히 일상생활에서의 사용하기를 어떠한 것에서의 해방이나 독립을 뜻한다. 하지만 경험과학에서의 자유란 인과율, 생성율이라고 한다. 또한 칸트에게 있어 자유는 이성을 통하여 추리로 예지적인 원인이며, 실천 행위의 당위적 근거이다. 즉 그는 자유를 순수한 법칙을 준수하는 실천적인 조건으로 국한 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경향성을 배제하고 이성이라는 것만을 자유라는 원리에 놓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칸트가 말한 이 부분이 가장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째서 자유가 실천 행위의 당위적 근거가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선의지는 무조건적인 선이다. 그리고 이것인 법칙 자체의 동기라고 하며 이것 때문에 도덕적 관심은 감성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관심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유라는 개념에 따라서 다르게 되는 것 같다. 칸트의 자유와 일상 생활에서의 자유의 의미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선의지가 과연 도덕 법칙의 동기가 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도덕 법칙의 동기는 다시 말했듯이 주관적인 동기라고 본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선이라고 하는 선의지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모두 초월한 것일 것이다. 이러한 선의지는 아마 인간이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과연 선의지가 도덕 법칙의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할 수도 없고, 감성과 감정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나, 칸트는 이성으로 도덕적 관심과 도덕 법칙, 선의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감정, 감성을 필요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과연 신에 대한 것인지 인간에 대한 것인지를 알 수 없다.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은 모든 경향성과 이성에게 가해지는 불가피한 강제와 결합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경향성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실천 행위를 의무라 한다. 이런 것은 경향성을 배제로 하여 이성, 선행하는 의지의 규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칸트의 경향성은 인간의 욕구이고 주관적인 마음이다. 인간의 사고는 이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로 결합하는 것은 반발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무에서 경향성을 배제시킴으로 이해 선행하는 의지의 규정이 가능할까? 의무를 실행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경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경향성이라는 인간의 욕구를 주관성을 배제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과연 그러한 욕구를 배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배제한다면 과연 그것이 인간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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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니는까꿍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1.12 ㅠ.ㅠ 빠진부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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