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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실천이성비판 2-1

작성자소현이|작성시간04.12.02|조회수126 목록 댓글 1
실천이성비판 2-1
200021905 박소현

★주제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영혼의 불멸성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다.

★구성 및 내용
“행복을 필요로 하고 또한 행복할 자격이 있으나 그럼에도 행복을 누리자 못하는 것은 이성적 존재자의 완전한 의욕과는 전혀 양립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무릇 덕과 행복이 함께 한 인격에서 최고선을 소유하고 이 경우에도 행복이 윤리성에 정비례하는 몫을 가지고서 가능한 세계의 최고선을 형성하는 한에서 이 최고성은 전체, 곧 완전선을 의미한다. ··· 행복이란 이 세상의 이성적 존재자가 그 실존 전체에서 모든 것을 자기 소망과 의지대로 하는 상태이며 그러므로 행복은 자연이 그의 전 목적에 합치하는 데에 또한 자연이 그의 의지의 본질적인 규정 근거와 합치하는 데에 의거한다. 그런데 도덕 법칙은 자유의 법칙으로서 자연 및 자연의 우리 욕구 능력과의 합치에 전적으로 독립해 있는 규정 근거들에 의해 명령한다. ···최대의 행복이 최대한의 윤리적 완전성과 가장 정확한 비례로 결합되어 있다고 표상되는 전체 개념으로서의 최고선의 개념 안에는 내 자신의 행복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할지라도 최고선의 촉진을 지시하게 되는 의지의 규정근거는 행복이 아니라 도덕 법칙이다.”
칸트는 행복과 도덕 법칙에 대해서 행복은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이 모든 것을 자기 소망과 의지대로 하는 상태로 도덕 법칙은 우리 욕구 능력과는 전적으로 독립해 있는 규정 근거들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나는 행복과 도덕 법칙에 대해 칸트는 이 둘이 서로에게 대립적인 관계이거나 독립적인 관계로 이해했다. 그런데 대립적인 관계로 보면 도덕 법칙을 행하면 행복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립적인 관계는 아니고 서로의 공통이 없는 독립적인 관계로 이해했다. 마치 수학의 벤다이어그램처럼 행복에 대한 차집합을 도덕법칙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행복은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감정이고 도덕 법칙은 이성적 존재에게 동일하게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칸트는 행복과 도덕에 대해서 도덕과 행복이 독립적인 관계가 아니고 도덕은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은 아니지만 행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덕법칙의 궁극의 목적인 최고선의 개념에서 행복을 포함한다고 한다. 그러나 행복은 최고선을 촉진시키는 의지의 규정근거는 아니며 이런 규정근거는 도덕법칙인 것이다. 이러한 칸트에 행복은 어딘지 애매모호한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을 보면 지적인 덕이 최상의 행복을 가져오며 행복은 완전한 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으로 보고 행복을 선과 일치시키면서 이를 추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우리가 지적인 덕을 통해 행복으로 얻을 수 있고 이런 행복을 통해 선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인데 칸트는 행복은 경험적인 것이어서 보편적이지 않으며 도덕법칙은 보편적인 것으로 의무를 명령하여 이성적 존재로 하여금 이를 행하게끔 하면서도 이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행복만을 추구해서도 안 되며 최고선의 개념 안에 행복이 포함되어 있지만 행복이 그것의 규정 근거도 되지 않는 식의 행복에 대한 애매모호한 것을 말한다. 마치 칸트가 말하는 행복은 홍길동처럼 서에 번쩍 동에 번쩍하는 느낌만 들 뿐이다.

“목적들의 순서에 있어서 인간은 (그와 함께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 목적 그 자체라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은 동시에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됨 없이, 결코 누군가의 (심지어 신의 ) 한낱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 인격의 인간성은 우리 자신에게 신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이제 당연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도덕법칙의 주체요 그러니까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의 주체며, 이 주체를 위하여 그리고 이 주체와 일치해야만 도대체가 무엇인가가 신성하다고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칸트는 이성이 없는 존재는 수단적으로 보고 물건이라고 했고 이성이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결코 수단으로 봐서는 안 되며 목적 그 자체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수단으로서가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성은 동물과 인간을 비교해 인간의 우월성을 갖게 하는 근거이다. 이성에 대해 객관적인 실재성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비록 몇몇의 철학자는 이렇게 보고 있지 않긴 하지만) 그리고 이러한 이성을 통해 우리는 선험적으로 인식된 도덕법칙을 행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그런데 요즘에 사회를 보면 과연 칸트 말대로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의성이 있으며 이를 통해 도덕법칙을 의식하는가에 대한 의심이 든다. 모 프로그램에서 성매매 단속법과 관련된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우연찮게 그 방송을 보게 되었다. 성 매매를 하는 한 업주에 대한 것이었는데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그 업주는 성매매를 통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아가씨들을 사서 숫자를 늘이고 그런 식으로 해서 돈을 벌어 땅을 사고 건물을 사서 그 지역에서는 몇 손가락에 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여하튼 대충 이런 내용의 방송이었다. 칸트가 말한 대로라면 인간은 모두가 동일한 이성을 가지고 있고 도덕법칙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성을 지닌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서가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위에 말한 것을 보면 여기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것 하나의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요즘 뉴스를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칸트가 말한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봐야한다는 것이 틀리고 수단으로 봐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상황이며 고쳐져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칸트의 인간에 대한 목적론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이 과연 절대적이고 보편적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의심이 된다.
“의지의 도덕 법칙과의 완전한 부합은 신성성, 곧 감성 세계의 어떠한 이성적 존재자도 그의 현존의 어떤 시점에서도 이를 수 없는 완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합은 실천 상 필연적인 것으로 요구되므로, 그것은 저 완전한 부합을 향한 무한한 전진 중에서만 만나질 수 있고 ··· 이런 무한한 전전은 동일한 이성적 존재자의 무한히 지속하는 실존과 인격성-이것을 사람들은 영혼의 불멸성이라고 부르거니와-을 전제하고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최고선은 실천적으로는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하고서만 가능하다.
도덕 법칙과의 완전한 부합은 완전함에 이르고 그것은 완전한 부합을 향한 무한한 전진 중에서만 만나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런 무한한 전진은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도덕적 규정에 대한 명제는 유용성을 갖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변 이성의 무능력을 보완하며 이 명제가 없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편안함에 맞춰 기교적으로 다루게 되어 결국에는 신성성이 위엄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성성의 위엄을 지키고자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하는 것은 유한적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전제한다. 이것은 유한적 존재인 인간은 영원히 도덕법칙과의 완전한 부합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 등에서 칸트의 이론은 뜬 구름을 잡는 느낌을 받는다. 이상은 항상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이 바라 이상형은 결코 만날 수 없는데 말 그대로 이상이기 때문이며 이상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상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데 칸트의 도덕법칙과의 완전한 합치는 이룰 수 없는 이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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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요한 | 작성시간 04.12.13 bra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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