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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중세철학

<중세철학사> (E.질송) 요약 과제 - 아베로에스, 알베르트 마그누스, 로저베이컨, 보나벤투라

작성자김상엽|작성시간04.11.29|조회수373 목록 댓글 0
 

<중세 철학사> (E.질송) 요약 과제 아베로에스 편 (p.309 ~ 321)



5. 1. 3. 아베로에스(Averoes)

아비센나와 함께 가장 중요한 아랍 철학자인 아베로에스는 1126년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났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석을 통해 ‘대주석가’라는 칭호를 들었다. 그의 저작들 중 아랍어 원본은 부분적으로 사라졌지만 라틴어 원본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다. 아베로에스는 1198년 72세의 나이로 죽었다.


5. 1. 3. A 철학과 종교

철학과 종교의 상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아베로에스의 주요한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철학적 작업의 자유와 신학적 토론의 엄격함은 충돌하는 것 같이 보였다. 이에 대해 아베로에스는 이해력에 따라 코란 본문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를 분명히 정하고 이를 넘지 말라고 금지하는데서 해결책을 발견했다.

지성은 세가지 종류가 있고 이에 따라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예를 든 증명을 요구하고 필연성을 통해 지식을 얻을 것을 주장하는 예증적 사람, 개연적인 논증으로 만족하는 변증적 사람, 상상력과 열정에 호소하는 웅변적 논증으로도 충분한 권고의 사람이 그것이다. 코란은 이 세 종류의 지성에게 동시에 말하며 각각의 정신은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코란을 이해하고 해석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종교 본문과 논증적 결론 사이에 충돌은 이렇게 철학적인 본문 해석으로서 조화를 세워야 한다. 이 원리로부터 지성은 할 수 있는 해석만 해야 한다는 결과와 지성은 그보다 더 높은 지성 계급을 위하여 알려지지 않은 해석을 열등한 지성 계급에게 알려서는 결코 안 된다는 두 가지 결과가 직접 나온다. 문제는 철학자들이 자꾸 높은 지식을 열등한 지성에게 전달함으로써 이단의 구실을 만들어줘 버린 데에 있다. 그러므로 정확히 구별을 해 주어야 할 세 가지 교훈과 해석의 질서가 있는데 절대적 진리와 지식을 주는 철학이 가장 위에 있으며 그 다음 신학이 변증적 해석과 단순한 개연성의 영역에 등급이 매겨지며, 마지막으로 종교와 신앙이 이 등급에서 맨 밑에서 등급이 매겨진다. 문제는 이러한 세 가지 질서를 결정하는 시점인데 아베로에스는 예언의 실재를 인정하고 선지서를 인간 지식의 절정에 둠으로써 종교적 신앙을 공격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분명히 계시보다도 철학적 진리를 인간 진리의 가장 높은 형태로 보았다. 반면에 신학은 신앙도 철학도 아니어서 그 둘이 타락한 것으로 보고 사색의 가장 나쁜 형태라고 주장했다.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순수하게 회복시키려 했으며 철학적 진리는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이러한 신념은 아베로에스 학파의 뚜렷한 표지 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약간의 과장이 섞인 찬양문구도 남겼다.


5. 1. 3. B. 인식론과 형이상학

아베로에스의 논리학은 곧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충실한 해석이었다. 인간학과 형이상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답습하는데 아비센나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석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 중에서도 존재로서 존재와 존재 자체와 관련된 속성을 연구하는 형이상학에서 아베로에스는 아비센나와 다르게 모든 실체는 존재이기 때문에 실존의 문제를 따고 생각하지 않는다. 존재는 한 가지 뜻만 지니는 어떤 것이 아니지만, 존재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존재라고 규정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는 유비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 범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감각적인 사물들은 우리의 지성 작용을 통해 알려지며 이러한 가지성이 존재의 본성이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관계처럼 자연적 사물들도 어떤 사고 혹은 제작자의 지성 속에 있는 가지적 형상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개별 이데아의 존재를 믿는 플라톤주의는 틀리지만, 이러한 감각적 사물들이 가지적 존재로부터 가지성을 얻는다는 점만큼은 아베로에스도 동의한다.

아베로에스에 따르면 보편자에게 실재가 있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렇다고 각 개별자에게 보편자가 현존하고 있지도 않다. 보편자는 실체가 아니고 지성의 산물이다. 학문은 추상의 방법을 통해서 보편자를 알게 되는 것이다. 형상은 존재의 능동성이며 본질이고, 질료를 현실화하고 규정시킨다. 두 가지가 개별 실체를 만든다. 모든 감각적 실체는 존재하게끔 하는 능동성과 생성하게끔 하는 가능성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첫째 움직여지고 움직이게 하지 않는 집합, 둘째 매개 집합은 움직이게 하고 움직여지는 것들, 셋째 움직여짐 없이 움직이게 하는 것들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마지막 부류의 존재가 순수 능동성이며 비물질적 실체들이다. 이러한 부동자인 시동자들은 다만 존재할 뿐이며 오직 예지들이다. 이들은 영원히 천상 몸체들을 움직이며 또한 천상 몸체들은 가지적 완성을 위한 사랑에서 움직인다. 움직이는 구체들은 그 크기와 운동 속도에 따라 위계를 형성하며 시동자들도 역시 이에 따라 위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위계 속에서 다른 모든 원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목적, 다른 모든 것들의 형상과 운동의 원인인 첫째 시동자가 있으며 그 단일성이 우주의 단일성과 존재를 보장한다. 신은 이러한 가장 높은 구체, 전체 우주 시동적 예지가 있게 하는 원인이다. 그리고 인류의 지적 지식의 원인인 능동적 예지도 이러한 시동자에 의해 가능하다.

우주의 중심에 있는 네 가지 원소가 있어 이 원소들의 성질과 천상 구체의 운동이 생물들에게 생명을 주며 능동 예지가 존재들의 형상을 준다. 형상들은 하나님 속에 있으며 질료 속에 있을 때보다 더 고상한 상태이다. 사람의 영혼도 이 형상들 가운데 하나이고 사람들은 불충분함을 극복하기 위해 지식과 욕구를 통해 자신의 원인으로 향한다. 아비센나와 달리 아베로에스는 수동 지성 즉 상상력을 허용하며 신체 소멸 후에도 계속 존재하는 능동지성과 달리 신체와 함께 소멸한다. 능동 지성은 인식을 불러일으키려면 이 수동 지성에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지성의 접촉은 질료적 지성을 낳는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히 지적 가능성이다. 이를 통하여 가지적인 것에 대한 수용성이 생기며 가능적 지성은 개별적이다. 개인의 불멸이란 오직 능동 지성의 측면에서만 그러하고 가지적 실체의 불멸성은 될 수 없다.

후에 라틴 철학자들 중 알베르트 마그누스는 추상적 지식의 과정을 서술한 부분에 과심을 갖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인식을 위해 인간 지성에 빛을 비춘다는 교리와의 유사성 덕분에 후에 스콜라주의자들에 의해 쉽게 받아 들여진다. 오직 개별 능동 지성 위에 더 높은 능동적 개별 지성인 하나님을 가정해야 한다는 점만 후에 덧붙여진다. 


 


<중세철학사> (E.질송) 요약 과제 알베르트 마그누스 편 (p.391 ~ 414)



7. 1.

1206년 라우잉엔에서 태어나 1223년 도미니크회에 입단했다. 콜로뉴와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르쳤다. 1260년 라티스본 주교로 임명되었고 후에 그만두고 쾰른에서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1208년 그곳에서 74세의 나이로 죽었다.


7. 1. 1. 알베르트와 세속 학문

생물학과 동물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에 지적 관심이 많았던 알베르트 마그누스는 방대한 분량의 문헌을 남겼다. 우리는 그의 신학 저술을 통해 그의 입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알베르트는 로저 베이컨과 함께 그리스 아랍 학문이 담고 있는 정신 세계가 라틴 세계와는 많이 다르며 기독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의 첫 번째 라틴 사람이었다. 신학과 철학그리고 신앙과 자연 이성이 서로 다르다는 인식은 알베르트로 하여금 모든 형태의 철학적 학문적 학문을 완전하게 익혀야겠다고 결심하게 했으며 이는 서양 사상사에서 전환점이 된다. 알베르트의 또다른 업적은 철학 저술들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체계적으로 다시 잡아준 그의 방법론에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알베르트는 철학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기독교 진영과 비기독교 진영의 철학자들을 자유롭게 섞어 놓았다. 알베르트의 지적 유형은 아주 독특한 것이다.

알베르트는 게으름을 몹시 싫어하여 학문의 세계에서도 저술들속에서 오류를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자들을 비판했다. 토마스와 비교할 때 그의 저술들은 훨씬 구체적이고 인간적으로 생생하다.


7. 1. 2. 네 명의 동시대 존재들

알베르트의 피조물 대전에 따르면 하나님은 질료, 시간, 최고천, 천사의 본성인 네 명의 동시대 존재를 창조하셨다.

질료는 발생의 순서에서 첫번째이며 제 1질료가 사물들의 제 1원리 혹은 기원이다. 형상과 떨어져서는 알 수 없는 질료는 형상에 관해 가능성으로 있다. 질료는 발생과 소멸의 보편적 주체로서 단순하지만 구별되는 존재들끼리 동일한 질료를 갖고 있고, 영적인 실체와 비영적인 실체는 같은 종류의 질료를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질료를 바라보는 신학자의 관점과 철학자의 관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신학자의 관점은 창세기에서 창조주가 모양을 갖춘 존재로 바꾸는 재료이다. 그러나 철학자에게 있어서 질료는 변화의 주체이며 다양한 종류의 변화는 다양한 질료를 요구한다. 

시간은 존재에 고유한 지속이다. 하나님은 변할 수 없는 존재로써 그의 척도는 영원, 즉 영속적으로 현존하는 지금이다. 오직 하나님만 영원하고 존재는 시작이 있기 때문에 시간과 같은 순간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운동이나 변화의 척도이며 끝임없이 대체되고 흘러간다. 역시 시간도 신학자의 관점과 철학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신학자에게 시간은 영적이거나 물질적인 변화의 척도여서 천사를 포함한 모든 피조 존재에 적용된다. 철학자에겐 시간은 운동이나 변화의 척도이며 언제나 앞과 뒤를 포함한다. 모든 종류의 지속은 나름의 시간을 갖고 있으며 천상 몸체와 달밑 존재들의 지속도 같지 않다.

최고천은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받았고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우주적 원인이다. 천문학적 하늘 위엔 비물질적인 삼위일체의 하늘이 있다. 최고천은 단순한 물체 가운데 가장 고귀하며 움직이지 않고 천사의 거주지이며 그 본성은 빛의 본성이다.그 다음 하늘인 궁창은 본성이 굳고 견고하며 많은 별을 담고 있다. 움직이는 구체는 각각의 시동자를 두고 있다. 개별적 예지가 구체를 움직이는 원인이며, 영혼이다. 또 질료에 결합되어 있지 않은 인간 영혼은 자유나 자유 의지를 가능케 한다.

천사는 복합적 본성이며 질죠가 전혀 없는 곳에서 전체의 형상으로써의 존재이다. 천사는 가지적 실재에 대한 본유적 지식을 부여 받고 그런 지식에 대하여 추론 할 수 있는 예지이다. 천사가 인간 영혼과 전혀 다른 점은 질료와 전혀 결합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7. 1. 3. 사람

창조에서 가장 나중에 태어난 복합적 존재인 사람은 영혼, 신체, 이 둘의 연합을 주목해야 한다.

알베르트의 영혼 정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정의를 조화시켜 영혼은 본질의 관점에서 볼 때는 비물질적 실체지만 신체와 관련해서 볼 대 신체의 능동성이며 시동자가 되는 것이다. 각 동물에도 하나의 영혼이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곧장 직접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 영혼의 생장능력, 감각능력, 이성능력을 가진다. 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베르트는 그것이 신의 인식임을 말한다. 능동지성은 영혼 속에 있으며 아베로에스와 달리 영혼의 있음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적 개념의 작용인이며 가능성으로부터 능동성으로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가지적인 것은 종의 형식으로 영혼에 주어지는데 전적으로 개별적 존재로 그 모든 개별화하는 규정을 포함하는 질료가 형상을 통해 현재 존재의 종류가 된다. 이렇게 추상한 형상들은 마음속에서 아주 많은 개별 실체가 되며 지성은 공통 본성을 본전함으로써 이 개별적 실체들에게 보편성을 준다.

영혼은 스스로 실존하는 실체이며 신체와 구별되기에 신체가 죽은 후에도 살아 남는다. 실체인 영혼은 신체의 시동자이며 지성은 인식과 합리적 탐구를 통하여 사람의 의지와 능성성을 이끌기 때문에 실천적 지성이다. 이런 실천적 지성은 제 1 시동자인 선 일반으로 향한다. 의지는 영혼의 자연적 성향이며 지성에 의하여 파악하는 선을 향하는 영혼의 경향성 이기 때문에 다양한 성향을 포함한다. 선택의지는 조정하는 능력으로는 이성에, 자유로운 능력으로서는 의지에 속하는 이중적인 것이다. 선택 의지는 사람이 좀더 높은 자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즐거워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유는 올바른 것을 바라는 의지의 올바름을 보존하는 능력으로써 서로 구별된다.

도덕적 양심은 도덕 문제에서 실천 이성이 두 대전제로부터 이끌어내는 결론이며 대전제는 실천 원리에 대한 습관적 인식, 소전제는 실천 이성의 구체적 판단이다. 인간의 영원하지 않은 이 세상에 있다. 오직 한 세계만이 있으며 인간과 하나님에 비추어 그 구조가 질서 정연한 세상이다. 세계는 본래적으로 통일성을 확보하고 있다.


7. 1. 4. 하나님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존재 자체와 존재의 속성을 다루는 초물리학이 있다. 형이상학은 순수하게 사변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것을 고찰한다. 알베르트는 신학의 본질 속에 경건을 포함시킨다. 이 경건이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며 신학이 형이상학과 달라지는 부분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최고 존재와 인간이 이 목적에 이르기 위하여 알아야 하는 것을 다룬다는 점이다. 하나님과 비교하면 다른 모든 존재는 우연성에 의해 존재하며 최초로 창조된 것만이 실존이며 무엇(quod est)과 구분된다. 하나님은 불변하며 완전히 단순하며 다른 존재는 복합적이다. 하나님은 참되고 선하다. 존재들의 원리로서 창조주라 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목적인이다.

후에 알베르트는 자신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몇몇 입장을 수정하였다. 이는 알베르트가 학문을 정복하고자 하는 엄청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나 그는 오직 신학의 원리에 반대되는 잘못된 결론을 반박하기 위해 논거를 끌어들이는 목적이 있다는 것은 핵심적인 지적이다. 

 

 

 


<중세 철학사> (E.질송) 요약 과제 로저 베이컨(Roger Bacon) 편 (p.415 ~ 438)



7. 2. 로저 베이컨

로저 베이컨은 대략 1214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에 대한 역사 연구가 분명치는 않지만 파리에 갔으며 세속 학문과 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기독교 지혜의 통합을 그의 줄기찬 목적으로 삼았다. 1274년 경에 옥스포드로 돌아가 과학 연구에 집중했으며, 1257년 프란치스코회로 들어갔으나 몸이 나빠졌다. 그의 저서론 <제일 작품>(Opus principale), <대작>(Opus majus), <오푸스 미누스>(Opus minus), <오푸스 테르티움>(Opus tertium), 과학 저서로는 <일반 수학>(Communia mathematica), <일반 물리학>(Communia naturalium) 등이 있다. 그는 불분명한 이유로 종단에서 의혹의 대상이 되어 그의 교리는 정죄되었다. 죽은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와 알베르트 마그누스가 죽은 다음에 죽었으며 스콜라주의 신학보다는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와 그의 진영에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7. 2. 1. 대철학자

로저 베이컨의 철학은 아비센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는 아비센나를 따름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것으로 믿었으나 아비센나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몇몇 중요한 점에서 다르다.


7. 2. 1. A. 물리학

로저베이컨은 자유롭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모든 학문의 백과사전을 쓰려고 했다. 학문의 순서는 문법, 논리학, 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이다. 여기서 물리학은 심리학을 포함한다. 그는 동시대 여러 학자들의 자연과학과 수학적 지식이 부족한 채 선생이 된 자들을 비판하였다. 베이컨은 질료와 형상이라는 근본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과학적 지식의 정수를 보유하려는 야심을 가졌다. 질료는 공통 실체이며 복합적 존재에서 수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질료는 수동적 가능성이며 하나님은 능동적 가능성이다. 그는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질료를 모든 사물에서 수적으로 하나라는 가정을 비난하고 질료는 필연적 존재 즉 하나님이 아닌 모든 존재에 보편적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형상의 위계 질서로 질료의 위계 질서가 규정된다. 질료의 세 가지 종으로 양이나 변화에 종속되지 않는 영적질료, 운동에 종속되는 천상 몸체의 질료, 운동과 변화에 모두 종속되는 달 밑 몸체의 질료가 있다. 자연적 존재들을 구성하는 질료는 결여가 있어 항상 욕구를 일으킨다. 질료의 가능성은 완전을 향하는 갈망하여 그러한 의미에서 질료는 씨앗 이성이다.

베이컨에 따르면 형상은 그 존재 속에 포함된 모든 열등한 형상을 보존한다. 본성은 보편적 본성과 구체적 본성이 있어 본성의 활동 측면으로 보자면 보편적인 것이 먼저 나오며, 의도 측면에서 보자면 개별자가 보편자보다 앞서 나간다. 베이컨은 각 개별자가 보편자보다 더 귀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종의 증식 혹은 번식이론이 있다. 종은 어떤 능동인이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칠 때 통하는 매개물이다. 이러한 종 개념의 물리적 세력에 확대됨에 따라 모든 자연 현상에 수학적 해석의 가능성이 보였다. 종의 능동인으로 설명하려는 이러한 그의 물리학은 그의 <대작>에 통합되어 있다.


7. 2. 1. B. 사람

인간 영혼의 문제 역시 아비센나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라 연구한다. 지적 영혼만이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것이며 생장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은 능동인이 질료의 가능성으로부터 이끌어 낸 것이다. 지적 영혼만이 개별 실체이고 그러므로 신체와 전혀 별개로 규정된다. 합리적 영혼은 천사처럼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되며 모두 실체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능력들은 영혼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신체의 경우와 같이 전체는 본질상 하나이다. 베이컨은 선택의지가 영혼의 한 능력이며 다양하지만 질서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혼의 지적 활동은 신체와 별개의 것으로 신체에 속하며 영적 실체로서 본성적으로 불멸적이다. 영혼의 일부인 능동 지성 외에 영혼과 전적으로 구별되어 존재하는 보편적으로 능동적인 지성이 곧 하나님이다. 가지적 모델은 하나님 속에서 지식과 활동의 원리이며 우리의 능동지성은 이 모델을 알지 못하고 혼동스럽게 안다. 능동 지성의 가지적 모델이 창조되며 이 가지적 모델의 빛이 환영에게 비추는 것이 곧 가능 지성이다.


7. 2. 1. C. 존재

존재는 유비적이며 집합 전체에 동일하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앞섬이나 뒤섬의 절서에 의하여 속하기 때문이다. 추상을 통하여 사물을 볼 수 있고 바로 이러한 것이 형이상학자들이 연구하는 주제이다. 신으로서의 절대 개념도 검토하게 되므로 형이상학은 신학이다. 베이컨에 따르면 존재는 우리가 파악하는 다양한 양상들이지 그 속성과 구별되지 않는다.  보편자는 개별자 속에서 개별자와 함께 창조된다. 보편성이란 술어화할 수 있음이므로 보편자는 논리학 영역에 속한다. 하나님은 최초의 영원한 능동인이며 본질이 무한하다. 마치 예술가의 마음속의 형상처럼 하나님 속에서는 단일적인 범례가 있어 이 속에 모든 가능적 사물들의 다원성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고 모든 사물들을 움직이게 한다. 이러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능동 지성인 하나님과 비교할 때 사람은 단순히 가능적이다.


7. 2. 2. 개혁자

베이컨은 당대에 철학 연구와 신학 연구가 대체로 타락한 것으로 보았던 현실에 대해 불평했다. 동시대인의 편견과 무지와 게으름을 비난한다. 신학은 하나의 완전한 지혜이며, 교회법과 철학이 이 신학을 열어보이는데 꼭 필요하다. 능동 지성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교리는 철학이 계시에 포함되게 해 준다. 베이컨에 따르면 철학은 우리의 지성에 비치는 신적 조명의 결과인 것이다. 그는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와 마리쿠르의 피에르에게 학문적으로 깊이 감명을 받아 스승으로 즐겨 언급하였다. 수학과 실험은 베이컨에게 천상이나 지상의 세계 속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필수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실험과 관련해서는 내적이며 영적인 실험과 왼적이고 감각에 의한 실험 두 가지가 있다. 실험 과학이라는 말이 인류에게 베이컨을 통해 처음 나타났는데 이것은 완전한 확실성, 학문들이 얻을 수 없었던 결론의 논증, 자연의 비밀을 훔쳐보고 과거와 미래를 발견하게 해주는 특권, 이상 세 가지 특권을 가지고 있다. 로저 베이컨의 <대작>에서 우리는 기독교 지혜의 설명보다는 고학 언어의 진지한 연구에 필요한 조건들의 분석, 수학적 방법의 설명, 지리학 논문, 점성술과 그 용법에 관한 논문, 실험적 방법에 대한 기술, 고대 도덕론자들로부터 빌려온 윤리적 교리 등 폭넓은 박식함과 구체적 사실에 대한 생생한 관심, 과학 발전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조건에 대한 건전한 평가들을 볼 수 있다. 이 불행한 천재는 13세기의 비참한 형편과 그의 나쁜 건강 속에서도 종종 시대를 앞선 지성을 보여주었다.

 

 

 

<중세철학사> (E.질송) 요약 과제 보나벤투라(Bonaventure) 편 (p.461 ~ 473)



8. 1. 2. 보나벤투라와 그의 학파

보나벤투라는 신학자로서 스콜라주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명제집> 주석서 서문의 첫째 질문처럼 신학의 고유한 과제는 신앙을 가지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신앙에 의도적으로 덧붙인 합리적 요소를 추상하는 것이다. 신앙과 이성의 연결고리는 사랑이며 인간 영혼은 무한한 선, 곧 하나님을 즐기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합리적 존재에게 이러한 최고선을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신학이 바로 신앙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에 합리적 사변은 바로 신학으로 나온다.


8. 1. 2. A. 하나님

필연적으로 논거의 기원에서 신앙을 요구하는 대상들이 있기 때문에 인간 이성의 능력을 넘어서 신학적 사변에만 속하는 것이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신학자는 철학을 잘 사용할 수 있지만 신학자의 결론은 철학에 적합하지 않다. 반대로 자연 이성을 통해 어떤 대상을 파악하여 믿을 만한 것으로 제공된다 해도 이성적 사변의 모든 대상들은 공통적으로 가지적인 것의 형식적 이유를 담고 있다. 따라서 신앙은 동료 여행자처럼 이성이 여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서야만 한다. 

보나벤투라의 교리는 사람이 다른 사물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그의 전망은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로서 감각적 세계를 파악하는 경향과 스스로를 자신의 전체 조명을 통하여 사람에게 계시하는 자인 신적인 빛과 하나님에 본성적으로 열려있는 피조물로서 인간을 파악하는 경향, 이 이중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신비적 경향을 보이지만 그는 특별히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피조물을 고찰함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나누어 가지기 때문이 아니고 유한자가 무한자를 모방 혹은 닮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체 우주는 삼위일체를 모든 페이지에서 읽게 하는 유일한 책이다. 이러한 세상은 하나님께 말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조명의 방법을 통해 사물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사물들이 표현하는 하나님에게 오르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첫 번째 감각적 세계에서 하나님의 그늘과 흔적을 발견하는 단계, 두 번째 우리 영혼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단계, 세 번째 창조된 사물을 넘어서 우리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배의 신비적 즐거움으로 이끄는 단계를 거친다. 보나벤투라는 사물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기법을 중단하지 않는다. 사물들은 항상 하나님의 비밀스런 현존을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의 눈의 비늘을 떼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눈멀지 않았다면 만물은 하나님을 선포하고 우리의 귀가 멀지 않았다면 만물이 우리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첫번째 수준의 상승으로써 인간 지성이 있다. 사물들의 모든 속성은 한 원인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감각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우리는 우리 영혼에서 신적인 빛의 반영인 하나님을 추구하면서 그림자 혹은 표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한다. 하나님의 개념은 이미 우리의 가장 단순한 지적 활동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개별적 실체를 스스로 지속하는 존재라는 개념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선 좀더 높은 원칙들이 요청된다. 우리 지성은 개별자를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것으로 알게 되는데 이것은 순수하고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존재 개념이 우리 속에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변적이며 불확실한 지성은 또한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변화하지 않고 필연적인 진리를 파악하며 우리는 우리 속에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던 바대로 우리의 지성은 우리가 스스로 속에 충분히 들어갈 때마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발견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은 외감의 도움없이 알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실존의 증거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실존을 반성할 수 없을 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존재 증명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나님은 현존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며 그의 실존은 본래적인 필연성으로 생기는 직접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에 이미 실존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보나벤투라에 따르면 우리의 사유로써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언 정도이며 그의 본질에 대한 파악은 조금도 가능하지 않다. 두번째로 신비적 명상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순례는 신적 현존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는 이미 우리의 말과 글을 떠나 철학의 한계를 넘는 일임을 지적해야 한다.


8. 1. 2. B. 영혼

영혼은 완전한 가지적 실체이고 동시에 자신이 생기를 불어넣는 유기체의 형상이므로 신체가 죽은 후에도 살아 남을 수 잇다. 영혼은 감각 기관에서 자신의 감각적 기능을 발휘하며 영적으로 그 감각 행위를 겪는다. 또한 영혼은 자신이 방금 겪은 그 행위에 관련된 판단을 가져오고 간접적으로 반응한다. 감각적 상은 지성의 자료이며 추상 작용도 가능 지성의 일이다. 이러한 추상작용을 보나벤투라는 순수 심리학에서만 살핀다. 가능 지성이란 지성의 능동적 기능이며 가능 지성에 빛을 비추는 기능을 하는 능동 지성과 추상 작용을 실제로 하는 가능 지성을 보나벤투라는 동일한 한 영혼에서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두 기능으로 본다. 추상 활동이 지혜를 얻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지성은 자신과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선 감각적 지식에 의지해야 한다. 지성은 기계적 기술의 생산물과 자연 대상들에 낯설지만 현존하는 하나님을 향하게 될 때는 감각적인 것이 전혀 없는 지식의 좀더 높은 수준에서 나오기 때문에 전혀 다르다. 보나벤투라는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혼동하지 않았고 후자의 전통을 장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두 철학의 종합으로 보았다. 특히 하나님의 이데아들에 의한 지성의 조명이라는 교리를 보나벤투라는 자기 학파에 전달했으며 이 교리는 인간 사유 속에 필연적 진리가 있음을 나타낸다. 인간 지성이 얻을 수 있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certitudinalis cognitio)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신적 이데아가 인간 지성에 조명하기 때문에 소유가 가능하다. 신적 이데아가 우리 지성을 판단하고 우리 지성이 사물들을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이성 혹은 이데아를 얻지 못하고 그 반영으로써 모호한 형태로 얻기 때문에 신적인 빛은 약해진 광선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보나벤투라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완전한 근거를 갖춘 지식을 절대 얻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물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창조된 원리는 분명하고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분명하고 확실한 지식은 완전하지 않다. 인간 지식의 이러한 두 측면은 인간이 하나님과 사물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극단의 매개자로써 하나님으로부턴 절대적 확실성을, 사물로부턴 상대적 확실성을 얻는다.


8. 1. 2. C. 세계

보나벤투라는 세상이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반대한다. 모든 피조물들은 피조물로부터 존재하지 않고 창조주의 작용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만이 순수 능동성이며 유한한 존재는 항상 조재의 좀더 깊은 가능성에 대하여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이 가능성이 바로 질료이며 천사와 인간 영혼은 실체이기 때문에 영적 질료와 질료를 규정하는 형상으로 이루어진다. 질료 혼자서는 개별화의 원리를 구성할 수 없으며 형상에 의하여 규정된다. 질료와 형상의 연합이 개별화의 참된 원리이며 그렇기 때문에 천사는 참된 개별자가 아니라 개별 종일 따름이고, 신체가 파괴된 후에도 영혼이 살아 남는 것이다. 영혼은 그 자체로 이미 구성된 신체를 갖고 있으며 신체와 구별된 상태에서 자신의 완전을 이룩한다.

자연에 대한 보나벤투라의 교리에서 다양한 존재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복합적 형상 혹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형상의 다원성 입론과 우주 속에 있는 모든 현상과 모든 존재의 원초적 형태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씨앗이성의 개념을 특징적인 측면으로 꼽을 수 있다.

보나벤투라의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적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보여지며 그럼에도 인간 지식과 사물의 본성에 대한 개념을 다시 배열하는 데에 그의 개성적인 태도를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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