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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철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8-9권 요약

작성자임철욱|작성시간12.06.12|조회수3,063 목록 댓글 0

니코마코스 윤리학 8-9권

 

서론

이장에서는 필리아(phila) 즉 우정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좋은 삶, 가치 있는 삶에서 우정이 필수불가결함을 다루는 것이다.

또한 자애(self love)의 본성과 문제를 살펴보고자한다.

이러한 검토를 마무리하며 에우다이몬적 삶에서 우정의 위치를 정리하는 것이다.

덕붙이자면 그리스어 필리아는 단순히 친밀함과 친숙함을 전제로 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매상과 소매상의 관계와 같은 일상적 관계에 내포되어야할 상호성의 축면이 있음을 알아두어야 한다.

 

8권 1장 가장 위대한 외적 좋음으로서 우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일종의 탁월성이거나 혹은 탁월성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정에 관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정을 가장 위대한 외적 좋음으로 제시하는데

이 우정이 탁월한 이유는 단지 완전한 우정이 탁월한 사람들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우정 자체의 속성이 탁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에 관해 일반적 신념(친구의 가치, 고독의 불필요, 위기의 도피처)을 나열하지만 또한 여러 가지 난제를 같이 불러 일으킨다.

1. 옹기장이는 같은 옹기장이와 우애하는가?

2. 우정의 성립조건은 무엇인가?

3. 우정의 종류는 과연 한가지인가?

 

8권 2장 우리가 사랑할 만한 것

 

(1)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사랑할 만한 것이 좋음과 유익을 낳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 정리하자면 나의 목적에 부합하는 좋은것,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유익을 주는 것이다.

우정은 서로가 잘되기를 바라는 선의를 갖고 있기에, 또한 이선의와 상호적인 인식하에 있을 때 성립된다.

정리하자면

1) 앞에서 언급된 원인 중 하나로 서로 사랑하는 경우

2) 서로의 선의가 필요하며

3) 쌍방의 선의가 인식 될 때 친구가 된다.

 

8권 3장 우정의 종류, 완벽한 우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에는 세가지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

1. 유익, 2. 즐거움 3. 좋음

여기서 유익과 즐거움은 어떤 교환적 가치에 근거한다. 상대가 나에게 유익을 줄수 있는 한, 즐거움을 줄수 있는 한 이 우정은 성립된다. 상대가 그 역할을 하는 한도내에서 그 모습만을 우리는 사랑하고 ‘그 모습만’이 잘되도록 선의를 갖는다. 그러기에 이러한 우정은 일시적이며 이기적이기에, 많은 욕구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에 불과한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좋음 자체는 얼핏보면 자기애의 확장 같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점은 거기에 있지 않다. 탁월성을 갖춘 사람, 그 품성이 가진 훌륭한 관계의 지속능력, 확신에 대한 유익성을 살펴 볼때 탁월한 사람만이 올바로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유익이나 즐거움에 상관없이(특수성) 좋음에(탁월성)에 기초한 사람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이 탁월성 내에서 상대가 잘되길 바라는 품성의 탁월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이 완벽한 우정일 뿐만 아니라 누가 이 완벽한 우정의 주인공이냐는 실질적인 문제를 따지고 있다.

 

8권 5-6장 우정과 상호작용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은 상호적 선의에 적합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서로 공유된 경험, 공유된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시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기에 완전한 우정은 단시간에 완성될 수 있는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유익은 서로의 목표와 길항하지만 즐거움과 좋음은 서로의 목표가 일치하는 우정의 동등성(parity)를 갖는다.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며 그와 동일한 것을 돌려 받는다.

 

9.4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자기애)는 우정으로서 연결되는가?

훌륭한 사람이 자기자신과 맺는 관계는 동시에 타인과 맺는 우정으로써 확장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한다.

그러나 자기애가 곧 우정의 원인이라는 것은 도출되지 않는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지 우정을 통해서 두 사람이 자신들의 관심사를 확장한다는 의미로 말한건 아닌지 싶다.

어떻게 본다면 인간 내면, 영혼의 세계도 이런 유사 우정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성에 복종하는 영혼의 부분은 이성과 함께하는 영혼의 부분이 가장 훌륭하다고 판단하는 목적을 욕구한다. 즉 영혼의 조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른 자아의 문제, 나쁜 영혼들의 부조화, 자기애에 관한 것들은 좀더 설명을 필요로 한다.

 

9.7 자기 가능태의 실현으로서 선행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의 선의는 빛과 채문인의 관계에서 보이는 이기적인 욕망에 근거해 있지 않다고 한다. 마치 선행을 베푸는 이와 받는 이의 것처럼 유익을 구치 않거나 그 도움을 감사하는 틀, 혹은 제작자가 작품을 사랑하는 유형에 빗대어진다.

작품을 통해 제작자는 자신의 가능태를 활동으로 실현시킨다. 나의 도움을 통해 상대는 내 도움만큼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유비는 악행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이 한계다.

 

9.8 탁월성과 자기애

모든 행위는 그럼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을 갖춘 고귀한 이는 오직 타인의 이익과 고귀한 것을 위해서만 행동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의 돈, 명예, 육체적인 즐거움을 타인의 몫보다 우위에 두는 이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philatus)으로서 비난받는 것이다.

탁월성을 갖춘 사람은 욕구가 아닌 이성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신에게 이용 가능한 수단들의 참된 가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 진정한 자기 사랑은 자기희생과도 연관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고귀한 것을 행동함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기회를 만난다고 한다. 이런 동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던 사람들의 행동들은 그것들의 가치를 부여하는 특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9.9 에우다이몬적인 요소인 우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의 필요를 세가지로 제시한다.

1. 에우다이몬적 삶은 최고로 좋은 삶인데 외적 좋음인 우정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2. 베푸는 것이 보다 탁월하기에 그것은 베풀수 있는 우정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최고업적으로 보이는 에우다이몬적 사람의 지위가 의존적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혹이 있다.

3. 훌륭한 친구는 선택할만한 것이다라는 이유이다.

 

삶은 욕구한다는 사실로부터 유추된다.

즉 모든 훌륭한 삶이 지각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거꾸로 말하면 선택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존재하는 에우다이몬적 삶은 없다.

그러므로 우정은 필수불가결하다.

 

삶을 온전히 선택하고 돈독하게 하는 것이 우정이다.

매사 화를 잘내고 전투적인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생기를 얻을지는 모르나

본질적인 생명의 원천이나 삶을 소유하거나

돈독하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생각

우정과 탁월성

 

사실 몽테뉴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그저 당신이기에 사랑한다는 말. 그것만큼 인간다운 관조와 책임감이라는 탁월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든 탁월성이라는 최소의 개념을 통해 그 합리성을 드러내려 하는 듯이 보인다. 아마도 숱한 반박자들에 대한 대응이겠지 싶다. 중요한 것은 우정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 자신의 탁월성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탁월성, 즉 아름다움은 숱한 관계들의 실제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뜻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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