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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철학

스토아

작성자소희|작성시간05.06.05|조회수441 목록 댓글 1

스토아철학


철학적인사고의 새로운 가지(枝)가 자라난 곳은 역시 아테나이였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때문에 학파 전체를 나타내는 스토아(stoa)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창시자- 제논(기원젼 300년경 키프로스섬의 키티온출신)-키니코스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이것이 전형적인 사상이 되버림.

그 밖에 클레안테스(스토아학파의 특징 드러내주고, 제우스송가를 지음), 크리시프(제2의 창시자이며 훌륭한 선생임.)

중기스토아-(기원전2세기와 1세기에 해당) 파타이티오스와 포세이도니오스가 대표적.

후기스토아-세네카(네로의 스승), 에픽테토스(저서; 도덕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자리에 앉아있는 철학자)


A. 논리학

논리학은 형식적인 학문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실질적인 학문이다. 스토아학파는 인식의 근원에 대해서 감각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키니코스주의와 얽혀져 있다. 표상과 따라서 인식 전체의 기능은 모사를 하는데 있다. 여기서는 주관과 객관의 사이의 분명한 이원서일 전제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인식의 대상이 그 구체적이고, 있는 그대로 모사되며, 더 나아가서는 인식의 대상이 도장처럼 영혼에 찍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인식이 모사라고 한다면, 당연한 진리를 확증하려는 노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 무엇이 원형과 모사가 일치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증해주는가? 그것은 표상으로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진리의 기준이 자명한 표상, 즉 우리들이 이미 저항할수 없고 소위 붙들고 늘어지는 그러한 표상의 질에 있다고 한다. 완벽한 조건의 갖춰졌을때 사람들은 어떠 표상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들이 꿰뚫어 볼수 있는것은 스토아학파도 지식의 영역에서 의지를 발견했다는 사실과, 더욱이 스토아의 체계가 의지에 할당한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하는 사실이다.(인식의 밑바탕)

스토아학파의 사고의 요소는 판단과 개념과 추론이다. 판단이란? 주체가 태도를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판단은 한가지의 표상에 대해 동의할 때 생겨난다.) 동의한다는것이란? 어떤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실제로 있다고 확신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동의에 의해서 실체적인 판단이 생기기는 하나 , 참과 거짓에 관한 결정은 동의를 하는 의지에 있는것이 아니라, 표상 내용 자체가 서로 다른데에 있는것이다. 이표상내용이 사태와 일치하면 그판단은 참이요, 만약에 일치 하지 않으면 거짓인것이다. 판단은 여러 개념으로 나눠진다. 스토아학파에서는 단순한 기호로서의 언어와, 이 부호가 지시하는 사상 내용으로서의 개념과, 그리고 이 사상 내용이 지시나는 대상등이 구별된다. 그래서 후세에는 말과 개념과 사물이 구별된다. 스토아 학파가 추리론에 기여한 공헌은 프란틀의 부정적인 견해와는 반대로 오늘날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한 평가를 받고 있다. 테오프라스트와 에우데모스의 모범에 따라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선언적인 추론과 가언적인 추론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리형식을 한층 보완한다.(사고의 요소)

B.자연학

스토아학파의 자연학은 뚜렷하게 두 가지 특징으로 나뉘는데 유물론과 범신론이다.

(유물론)-존재의 해석, 연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모든 존재들의 밑바탕에 있는 실재다. 우시아는 히포케이메논이며 히포케이메논은 히일레이다.  존재의 본질은 제2의 측면도 가지고 있다. 존재는 힘이기도 한것이다. 이때에 힘은 살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되며, 힘의 개념은 존재를 물활론적으로 해석한것이다.

(범신론)-존재에 관한 해명. 스토아학파는 존재의 근거에 관한 물음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이러한 근거를 탐구할때에 존재를 넘어서는것은 당장 거부한다. 세계의 근거는 세계 자체안에 있다. 세계는 영원하고 잴 수 없는 것이며, 또 무한한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리 만큼 풍부한것이다. 이원리는 내재적이고 세계의 근원적인 힘이며, 또 근원적인 불, 근원적인 프네우마 및 세계영혼이라고 부리며 동시에 세계이성,세계법칙,예견 및 운명이라고 한다. 세계이성은 스스로의 관념의 내용을 통해서 사물을 형성시키고 세계에서 생기는 사건전체를 형성시킨다. 종자의 로고스도 질료적인 원인이며, 이데아가 아니다. 순수한 이데아드은 발전의 먼 목표로서 미래에 있으며 발전은 이데아를 향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유신론자들이 아니고, 범신론자들이었다. 세계가 스스로 이뤄진다면, 이세계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스스로가 신이다.

C. 윤리학(스토아학파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것)

(인간의 영혼생활)-영혼은 인간에게 자기 운동, 따라서 생명을 부여하는 바의 것이다. 신체-영혼-이성이라고 하는 세 부분의 한가지 항이라고도 한다. 더 나아가 영혼은“지도적인 영혼의 부분” 즉 이성만을 뜻할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체로서 함께 작용하는 위와같은 기능을 총칭하고도 한다. 영혼은 항상 프네우마이며, 프네우마는 영혼과 불과 공기가 합쳐져서 이룩된것이다. 한편으로는 영혼이 물질적인것이면서도 다시 그런것이 아니며, 또 한편으론 감각적이면서도 다시 정신적인것이다. 스토아학파의 인간학의 핵심 부분은 충동에 관한 이론이다. 충동은 원래 감각적인 영혼에 속하는 바의 것이다.그러나 충동에 있어서는 육체 감성및 이성이 함께 작용한다. 인간은 신체로부터, 즉 감각을 통해서 표상을 받아들이며, 이표상들은 자동적,자발적으로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드은 열정을 “신선한광기”라고 표현했다. 예컨대, 고통은 악이 있다는 것에 관한 신선한 광기이며 쾌락은 선이 있다는 것에 관한 신선한 광기인것이다. 좁은 시야를 넓혀 객관적인 진리가 승리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일 것이다.  정열이라는 뜻에 격정에 대립되는 것은 고귀한 격정이다. 욕정에 대립되는 것은 올바른 의지이네, 이 의지는 그 자체로서 보자면, 선한 의지이거나 만족이다. 스토아학파가 그 인간상을 이용한 앞서간 시대의 철학은보통이런 맥락속에서 영혼의 불멸에 관한 문제도 탐구한다. 적어도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만이라도 항상 영원한 신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스토아학파는 그들의 유물론에 맞추어 다른길을 취하지 않을수 없었다. 스토아학파 내에 처음부터 있었던 전형적이고 부분적인 절충주의로서, 포세이도니오스는 영혼이 불멸한다는 플라톤의 증명을 받아들이고 있으며,세네카에게 있어서는 바로 영혼 불멸이 그의 교실의 근본적인 교조로 되고 있다.

(윤리적인 원리의 문제)

윤리적인 선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물음에 대해 크레안테스는 본성에 따르는 생활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선이란 우리들에게 덧붙여지는것, 또는 몸소 마련된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혹은 “인간의 이성적인 본성에 들어맞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행위이다” 이밖에 “덕은 올바른 이성이다”,“독은 통찰이다”등의 개념들이 붙는데 이런 따위의 여러 가지 설명들은 공허한거에 지나지 않는다. 사도들은 근본적은 선을 오이케이오시스라고 하는 개념에서 유래된거라고 하는데, 제논이 이개념에다 스토아학파 전체에 통용되고, 그들의 특징을 이루는 의미를 부여했다. 즉 스토아학파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은 플라톤의 윤리하이 말하고 있는 그런 오이케이온도 안고 또 꼭같이 이상화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의 본성도 아니며, 감각적인 자기지각에서 충동적으로 생긴 오이케이오시스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가지 개념이 윤리학의 자연주의적 근거를 넘어설수 있는것 같아보인다. 이런 개념은 완전히 올바른 윤리적인 행위라는 개념이다. 완전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있어야한다는 관점에서, 즉 의무자체를 위해서 특별히 선을 행하는 자이다. 이럴때에 사람들은 윤리적인것의 관념적, 규범적인 성격에 접근하는데, 이것이 칸트가 스토아의 윤리학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토아 윤리학의 가장 고귀한 성과들 중의 하나는, 자연법의 개념과 이와 관련이 있는 인간성의 이상이다. 국가와 정부들에 의해서 제정된 실정법의 타당성은 결코 영원함과 동시에 모든 실정법 전체의 기존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일종의 불문법, 즉 자연법에 그 근원을 가지고 있다. 스토아학파는 인간은 법칙과 이성에의해서 통제되고 자여에 따른 삶을 해나감으로써 행복을 발견한다고 한다. 스토아윤리학의 근본적인 요소인 오이케이오시스는 인간을 내적인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한다. 이 오이케이오시스에서 삶의 목표가 생겨난다. 그래서 내적인 인간과 영원한 법칙에 대한 인간의 관계만이 고려되고 있다.

(실천적인 도덕론)-스토아학파도 이론만으론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페리파토스학파가 이론적 관상적인 생활을 실천적인 행위보다 중요시한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첫 번째 요청은 행위생활에 관한것인데, 스토아학도는 의지의 인간이다. 그는 노력가 팽팽한 긴장, 투쟁, “소크라테스적인 강인함”, 포노스를 사랑한다. 그래서 디오게네스와 헤라클레스가 스토아학파의 모범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또 그들은 현실주의자이며, 실천적인 생각에서 중요한것, 즉 세차게 일을 시작하고, 결단에 따라 행위하는것등을 잘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기의 본질과 행위를 철저하게 일관시키는것이 항상 최고의 의무들 중의 하나라고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삶을 가능케 해주는것은 바로 공공생활에 참여하는것이다. 고독속에 쳐박혀 있어서는 안되고 활동적인 생활을 하려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스토아덕론에서 바라는 두 번째 요구는 아파티아의 권고 인데, 덕과 보성에 알맞은 행위의 길이 방해 받지 않기 위해서는 격정이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즉, 정욕, 분노,공포에 움직여서는 안된다는것이다. 그리고 현자라는 개념을 설명하는데,현자는 모든덕을 다 갖추고 있으며 항상 올바르게 행동한다. 그는 정말로 흔들리지 않고 진정으로 행복하다.


d)운명과 자유

현자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이때의 자유는 내면의 자유, 즉 이성적인 인간의 자유이다. 이러한 자유는 정확하게 한정된 자유다. 육체와 격정이라고 하는 영혼의 병과 같은, 외부세계와 관계가 있는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속박이다. 그리고 스토아학도는 운명론자이다.그리고 운명이 전능하다는 사실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사실때무에 극복할수 없는 어려움. 즉, 자유와 필연성과의 모순이 생겨버린다. 스토아학도는 자유의 뜻을 달리 해석함으로써 이런 모순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자유는 현실에 있어서는 필연성과 일치된다는 것이다. 오직 어리석은 사람만이 꼭 있지 않으면 안될것을, 그 것과는 다른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와반대로 현자는 사건의 법칙을 자기 자신의 법칙이라고 본다. 현자는 다른것을 조금도 기대하지 않고 운명을 긍정한다. 한가지의 다른의지는 자의이며, 이 자의는 정욕과 무질서의 격정이 넘쳐 흐르는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욕정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자유롭지가 못하며, 자기 충동의 노예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물론이라는 배후를 관련하여 스토아철학의 전형적인 특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어려움들은 철학의 위안에서 운명, 섭리 및 자유의 문제등을 다룬, 보에티우스에게 있어서도 분명히 느낄수가 있다. 그가 자유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여는데 어려움을 안겨준 것은, 스토아학파의 유물론이 만들어낸, 세계의 법칙과 인과관계라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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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요한 | 작성시간 05.06.10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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