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3400 // 철학과 // 한유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고...
주 제 :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말의 의미와 실존주의,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하여...
구 성 : 실존주의의 비난에 대한 해명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1) 실존주의는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는 것을 그 첫 번째로 주장한다.
기존의 세계관은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종이칼을 만들 때 그 물건이 머리 속에 떠오르고, 그것이 소용될 곳, 즉 효용 가치 등을 생각하고 만든다. 즉, 본질을 생각 한 후에 종이칼이라는 실존을 만드는 것인데,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2) 실존주의적 인간관은, 인간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중에 비로소 그 스스로를 만들어 내는 존재가 된다고 본다. 인간은 다만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실존주의의 기본 생각이다.
(3) 인간은 자기존재에 책임이 있다. 이 말은 앞의 두 가지에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로, 실존이 본질에 앞서서, 인간이 자의와 상관없이 던져질 것이지만,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엄격히 말해서 자기 개인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모든 인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말도 된다.
(4) 인간은 곧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불안은 행동의 일부이며 내가 선택하는 개인적 행위가 인류의 가는 길을 결정해 주기도 하기 때문에 그 책임감은 더욱 크고 불안도 커질 수 있다.
(5) 인간은 자유 그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일단 내던져진 후에,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까닭에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유의지가 유물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6) 실존주의는 무신론적이라고 하지만, 신의 존재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신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인간 자신 외에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의 견 : 휴머니즘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을 목적으로 삼고, 다시 최고의 가치로 삼는 학설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인간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세운다는 말인데, 이것은 다시 실존주의적 인간 즉 세계의 중심에서 무한한 가능성과 책임을 져야하는 실존주의적 인간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이 말은 샤르트르 실존주의의 기본적인 명제라 할 수 있다. 만일 이 이야기를 반박한다면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쉽게 포크를 통해 예를 들어본다면 포크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 ‘손잡이가 있고 앞쪽으로 좁고 길쭉한 두 개 혹은 세 개정도의 찌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이 것으로 음식이나 과일 등을 찍어 먹을 수 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포크의 이론적인 본질이 되는 것이고, 실재 존재하는 포크라는 개체는 바로 실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크의 용도 생김새라는 것 즉 본질이 이미 있었기에 우리는 포크를 만들 수 있고 포크라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런 생각은 17세기 철학자들이 본 인간과 신의 관계에 잘 나타나는 데,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의 본질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기에 인간은 신이 결정한 본질에 충실한 인간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이런 보편성은 어떤 사람이나 획일적이다 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무신론자인 그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주장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전통철학의 여하한 본질 규정도 철저히 거부했다. 만일 포크나 안경과 같은 물질이라면 이미 규정되어 있는 본질에 따라 제작자가 만들었기 때문에 실존보다 본질이 앞선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샤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을 만들었다고 주장되는 신의 존재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인간 존재는 그 어떤 본질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오직 자유로운 선택과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존주의자들은 철저한 무신론자 이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의 생각으로 인간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었기에 인간을 설명하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기 샤르트르의 실존주의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에서의 인간은 신이라는 절대자의 주위에서 맴도는 것이 아닌 중심에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존재로 우뚝 서 있는 존재이다. 비록 그의 존재가 불안하고 과정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불안은 중심에선 자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