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주의의 반박
철학과 박고봉
결과주의는 행위자의 선택에 있어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주의적 선택이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결과주의란 어떤 상황에서 옳은 행위는 비개인적 관점에서 판단할 때 전체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산출할 행위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즉 결과주의는 행위의 옳음이 행위의 결과에 의존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결과주의는 비개인적 관점에서, 최선에서 최악까지 전체 사태들의 서열을 정하는 어떤 기준이나 원리를 제시하고 어떤 상황에서 옳은 행위는 행위자가 산출 가능한 최고 순위의 사태를 산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개괄적 정의로부터 알 수 있는 결과주의의 주요 특징은 특정한 사람의 이익에 비중을 두기 보다는 모든 사람의 이익에 동등한 비중을 둔다는 점(비개인성. 공평성), 전체 사태들의 서열의 정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주의의 이론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이론적 다양성), 좋음과 옳음과 독립적으로 규정하고 옳음을 좋음의 극대화로 정의 한다는 점이다.
결과주의의 이론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결과주의 이론들이 공유하는 직관은 "선을 극대화하거나 적어도 악보다 선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결과주의를 거부한다면 "선을 극대화 할 수 있는데도 극대화하지 않거나 악보다 선을 추구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입장으로 보일 수 있다. 최근 비결좌주의자들은 결과주의가 우리의 건전한 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결과주의자들은 비결과주의가 옹호하는 상식과 직관은 비합리적이므로 폐기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과주의와 동기주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속되어 이어진 논쟁이다. 행위의 선택에 있어서 동기가 중요한 지 결과가 중요한 지에 대한 논쟁이다. 관중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이러하다. 관중은 제나라 공자인 규의 신하였으나, 환공이 자신의 형인 규를 죽이고 군주의 지위에 올랐을 때, 관중은 공자 규를 따라 죽지 않고 오히려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이러한 관중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선생께 제나라의 정사를 맡긴다면, 관중이 세운 공적을 다시 이룩할 자신이 있는가?" 묻자, 맹자는 불쾌한 어조로 "관중은 증서도 본받으려 하지 않는 인물인데, 자네는 어찌 나를 관중 따위와 비료하려 드는가?"라고 대꾸한다. 나아가서 맹자는"무력으로 인을 가장하는 자가 바로 패"라고 하고, 또 "제환공 등 다섯 패자는 삼왕의 죄인"이라 하여 패자에 혹독한 비판을 한다. 이러한 패자들이 아무리 현실 정치적 결과에 있어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내면적 동기는 야심과 욕망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들을 '도덕적 전범'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듯 맹자는 윤리적 판단에 있어서, 행위의 객관적 결과보다는 오히려 내면적 동기의 측면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송의 주희도 마찬가지로 맹자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진량과의 논쟁에서 주희는 맹자처럼, 통치자가 도덕적으로 선한 동기를 가지고 통치에 임하면 현실 정치에 있어서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저절로 파생될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통치자가 성현의 인격만 실현할 수 있으면, 이러한 도덕성이 객관적으로 전개되어 저절로 합리적인 문화질서가 건립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칸트의 의무론이 동기주의 사상에 속한다. 칸트의 주장에 의하면 선한 동기에서 나온 결과는 선일 수 밖에 없는데 만약 그것이 악이라 하더라도 내적인 행위의 동기가 선이었으므로 그것이 나타낸 결과에 도덕성을 부여하려 하지 않았다. 칸트는 "이 세상에서나 이 세상 밖에 있어서나 무조건적으로 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선의지 뿐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행위에 있어서 동기주의를 주장하는 근거이고 그의 윤리학적 사상은 이러한 근거에서 전개된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들은 선의지의 구체적인 외적 실현이요, 인간의 실천적 기본원리의 발견은 곧 선의지의 내용의 탐구와 분석에 있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행위를 평가하는 근거는 그 행동의 결과에서가 아니라, 그 행위의 밑받침이 되는 인간의 의지에 있으며, 선함의 뜻도 행동의 목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자의 내적 의지에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선의지는 예상되는 결과나 목표를 얻을 수 있는 효과 때문에 선한 것이 아니라, 선하려는 의지 그 자체로서 선한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도덕적 행위는 선척적 선의지에서 출발하는 동기론을 뜻하며 더우기 어떤 의도를 갖고 행한 행동이라 해도 좋은 결과를 미리 예측하거나 기대되는 장래의 결과를 고려해서 행동으로 옮겼을 때에는 그건 행위는 도덕적으로 가치있는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특수한 의무를 간과하는 결과주의에 있어서 문제점이 있다. 가령 자신의 부모님과 다른 다수의 사람이 위기에 같이 처해 있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여기서 부모님을 살리면 다른 다수의 사람이 죽고 다른 다수의 사람을 살리면 자신의 부모는 죽게 된다. 이러한 선택에 있어서 결과주의는 다수의 사람을 살리는 행위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면 결과주의는 부모와 자식 간의 특수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부모님을 살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부모님을 살리는 선택을 한 사람에게 비판이나 비난을 할 수 없다. 왜냐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모두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