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적 정의 제도에 관한 가치문제
철학과 201219180 김준태
형사적 정의제도는 사회가 제정한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처벌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해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유서가 깊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행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 관습을 통해 옳다고 여겨지는 행위는 승인되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승인되지 않는다. 이때 승인의 경우는 상으로써 격려되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대가로 처벌이 가해진다. 처벌은 이처럼 관습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서 여러 도덕적, 철학적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처벌은 이러한 논쟁에서부터 멀어지기 위해 이를 더욱 신중히 행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처벌은 사형에서 공형으로 자의적 형벌제도에서 법치주의로 바뀌었다.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전통적 봉건 질서를 뒤바꾸어 놓았다. 왕권에서 시민권으로의 전환은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시민의 이익을 기초로 한 시민 사회는 시민의 권리나 의무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18세기 앙시앙, 레짐의 공개적 잔혹한 처벌 제도도 형벌을 완화 시켜야 한다는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우선 체형이 없는 처벌의 요구가 억눌린 민중의 심정적 분노로 나타났다. 이것이 19세기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처벌 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법치주의를 토대로 세워진 현대 사회에서는 처벌의 중요성도 그만큼 심화 되었다. 심화 된 만큼 처벌의 복잡성도 증대 되었다. 이에 따라 처벌에 대한 논의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형사상 정의제도에 대해 의무론적 입장을 고수한다. 의무론에 깔린 기본적인 입장을 응보적 정의의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응보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선악의 행위에 응하여서 그 갚음이 나타나는 고락(苦樂)의 결과’ 이다. 이 정의를 ‘갚는다’ 는 측면에서 볼 때 응보를 변상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이는 부채를 청산 하는 것이므로 죄 지은 자에게는 그에 응당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의무론적 입장에 응보적 정의를 적용시킨 관점으로 이 글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형사상 정의제도에 대해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형사상 정의제도의 문제들에 대해 공리주의자들은 처벌을 통하여 획득된 결과에 관심을 갖는다. 공리주의에서 처벌의 목적은 ‘형법이 갖는 위협 때문에 잠재적인 범행이 예방 된다’는 사실에 있다. 또 공리주의자들은 처벌이 가져올 나쁜 결과보다 처벌을 함으로써 생겨날 좋은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결과는 형사재판 제도가 갖는 예방의 효과(deterrent effect)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예방의 효과를 특수한 예방의 경우와 일반적 예방을 구분한다. 특별 예방론은 형벌의 목적은 범죄 또는 범죄자에 대한 응징 내지 보복이 아니고 범죄인의 재범행을 방지하고 그 사람을 사회생활에 다시 적응하기 쉽게 하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고 보는 이론이다. 또 일반 예방론은 형벌의 목적이 특정인이 아닌 사회 일반에게 범행을 하면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통해 경각심과 위협을 주고 형집행을 통해 법적인 금지사항들을 알려서 형법규범의 위반을 막아보자는 데에 있다는 견해이다. 일반적 예방의 사례로는 경찰이 속도위반 차량에 경고장을 주는 것을 보고서 우리가 속도를 줄일 경우가 있다. 이처럼 공리주의자들은 예방적 차원에서의 처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볼 때 일정한 유형의 행위를 범죄로 공표하는 결정은 다른 모든 결정과 마찬가지로 그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생기는 결과에 의해 정당화 되어야 한다. 우선 그러한 행위를 수행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그러한 행위를 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욕구가 좌절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둘째로, 사회는 새로운 범죄를 처벌하고 시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공급함으로써 추가되는 경비를 들이게 된다. 그 결과 그러한 자원은 다른 선호의 충족을 위해서 사들이게 된다. 끝으로 새로운 범죄를 저질러 체포된 사람은 처벌 받을 것인데, 이 역시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손실로 간주된다. 따라서 범죄로 결론지어지는 것은 결과에 의해 정당화 된다. 또 공리주의자는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의 목록을 모두 작성하고 서로의 비중을 잰 후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손실이 더 클 경우 그 행위는 범죄로 규정되어서는 안 되며 이득이 클 경우 그것은 범죄로 규정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리주의적 분석을 해악의 원리와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그 두 가지는 일치한다. 결국 행위를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생기는 이득이 그것을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생기게 될 손실을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행위를 규정함으로써 생기는 이득에는 예를 들어 상해를 받게 될 사람을 상해로부터 보호하는 경우가 있고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생기게 될 손실에는 추가되는 행정적 비용이나 잠재적 범죄자의 좌절된 욕구가 있다.
공리주의자에 따르면 형사적 정의제도의 전체적인 목표는 범죄자들을 처벌로 위협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돈으로 환산되는 안 되든 간에 그에게 생길 이득이 그에게 올 손실을 능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처벌의 위협은 바로 그러한 계산에 변화를 줄 것으로 생각 된다. 면책조건과 감형조건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가? 제레미 벤담이 제시한 공리주의적 해명을 살펴보면 정신이상의 범죄자는 정신이상인 까닭에 처벌의 위협에 의해서도 범죄가 예방될 가능성이 없으며 따라서 그를 처벌한다고 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 또 벤담은 ‘처벌이 합당치 않은 경우들’에서 ‘악의를 가진 자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처벌은 범죄자가 고통을 받는 까닭에 손실을 내포하게 된다. 그러므로 벤담에 따르면 우리는 정신이상의 범죄자는 면책해야한다.
형사적 정의제도에의 공리주의적 입장에 대한 반박으로 나는 의무론적 접근 방식을 취할 것 이다. 의무론적 접근 방식에는 기본적으로 응보적 정의가 깔려 있는데 나도 의무론적 접근 방 식 중 응보적 정의의 관점에서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을 하겠다. 여기서 응보적 정의는 기본적으로 처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뒤따르는 결과에 상관없이 본래적 선이라는 생각이다. 응보적 정의는 침해된 당사자에 의해서 수행되는 보복인 복수와는 구별 된다. 요약하자면, 응보적 정의론에 따르면 사회가 범죄자를 처벌할 경우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할 정도만큼 처벌해야 하며 그 이상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형사적 정의제도에 대해 예방효과를 강조한다. 죄인에 대한 것이라도 처벌에 있어서는 그가 사회에 끼칠 유익한 결과에 의해서만 정당화 될 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범죄의 예방을 위하여 처벌을 가혹하게 강화할 수 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으로 사망 사고가 증가하면 공리주의자들은 어떤 처벌을 강구하겠는가? 100만원, 1000만원의 벌금형으로도 부족하면 이번에는 아예 운전자의 손을 자르는 처벌을 강구할지도 모른다. 범죄의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그들은 처벌을 얼마든지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처벌을 통하여 아무리 범죄가 방지된다’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 까지 처벌한다면 일반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응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 유익한 결과에 의해서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응보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갖는다. 응보는 위에서도 말했든 개인적 보복인 복수와는 다르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을 어긴 자들에게 그에 응당한 처벌을 가해 사회의 틀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형사적 정의제도는 그 자체로 정당화 될 수 있다.
절대형주의는 형벌의 의미와 정당성을 ‘형벌은 그의 효과와 관계없이 절대적이다.’는 원칙에 따라 형벌의 범죄자나 일반인에 대한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응보라는 목적 속에서 찾으려는 입장을 말한다. 이에 반해 공리주의자들은 일정 유형의 행위를 범죄로 공표하려면 그 결과로 얻어 지는 이익에 의해 정당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결과 중심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결과주의로 치 닫을 수 있다. 처벌을 했을 때의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공리주의에서는 간과하고 있다. 의무론자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행위가 정당하게 범죄로 규정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그것이 사람에게 해악을 주어야 한다. 둘째, 그것이 그들의 권리를 침해해야한다. 셋째, 이러한 새로운 범죄를 처단하고 시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추가자원은 처벌보다 더 긴요한 다른 사회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위의 조건에 대해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반박할 만 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그것들이 피해자 없는 범죄의 문제에 대해서 중립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의무론적 입장에서 다시 반박하자면 한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자살 하는 것을 말리지 않는 상황을 예를 들면 공리주의자의 입장에서는 해악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범죄이다. 그러나 의무론자의 입장에서 시각을 달리 해 보면 자살하는 인간은 생명권을 포기 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처벌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피해자 없는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리주의자들은 형사적 정의제도의 전체적 목표가 범죄 예방이라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자인 벤담은 정신이상자의 범죄는 처벌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에 면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정신이상자라고 해도 아무런 예방효과는 갖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공리주의에서는 정당화 조건에 대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때에만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역시 모순점이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을 누가 판단할 것이냐는 문제이다. 이에 반에 의무론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응보주의에 따라 정당화된다. 나를 죽이고자 한 사람이 나의 생명권을 침해 하려 하였으므로 응보주의의 원리에 따라 그에 응당하게 생명을 지키려 하다 발생한 우발적인 일이기 때문에 정당화 될 수 있다.
기존응보주의 형벌론자 중 일부는 법규범 위반자의 도덕적 책임이 그에게 형벌에의 응분을 갖게 만든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없음이 밝혀진다. 또 다른 응보주의자는 형벌은 사정적 정의를 실현시킴으로써 정당화 된다고 보긴 하지만 이 때의 시정적 정의 실현을 위반자에게만 초점을 두어 생각함으로써 역시 한계를 갖는다. 이에 먼저 시정적 정의라는 것은 피해자에게 보상을 함으로써 과거에 훼손된 분배적 정의의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라는 것과 이 시정적 정의의 실현은 인간의 의무임을 밝혔다. 그리고 어떤 형벌 은 이런 시정적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므로 이 시정적 정의의 실현은 바로 형벌의 정당화 근거 중 하나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 공동체에서 인간이 행위 할 때 어떤 행위는 승인되고 어떤 행위는 승인되지 않았다. 행위에 대한 승인과 불승인의 규범 체계로써 윤리, 도덕은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개인이 해야만 되는 행위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규정한다. ‘처벌의 관습은 불승인의 체계로써 공동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제재’를 의미한다.
행위는 행동과 달리 인간의 의도와 자유 등이 내재되어 있다. 이 자유 의지는 행위는 자발적 행위이고 어떤 강압이 배제된 행위이어야 한다. ‘자유의지’의 행위는 정말로 자유로운가? 숙명적 결정론의 철학적 주장 하에서 자유 의지는 자유 개념이 상충되는바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정론의 철학적 주장에서도 ‘이 세계는 결정 되었으나 인간의 의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선택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비결정론의 철학적 주장 하에서 자유 의지는 인과 관계가 전혀 없는 자유이므로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지금까지 형사적 정의제도에 관한 가치문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서론에서도 말했듯 형사적 정의제도, 즉 처벌을 할 수 있는 제도는 인간의 발전과정과 함께 해왔다. 그 역사만큼이나 여러 논쟁들도 많이 있었다. 이에 대한 주장으로 나는 응보적 관점에서 보았다. 의무론적, 응보주의적 관점에서 형사적 정의제도를 보자면 그 목표는 범죄자를 그들이 유발한 해악과 대등한 정도만큼 처벌함으로써 응보적 정의를 엄격하게 구현하는 일이다. 오직 타인의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해악을 끼치는 행위가 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한 모형에 따르면 범죄자는 그의 행위가 인과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책임 있는 행위자이고 다른 모형에 따르면 그의 행위가 강제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책임 있는 행위자이다. 이런 모형에 맞지 않는 범죄자에 대해서도 범죄에 대한 면책조건이 성립하게 된다. 법적 절차는 실수로 범죄 고발이 된 자에 대한 보호를 강조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범죄자들이 처벌을 회피하는 수가 증대될지라도 강조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