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Pythagoras: 580~500 B.C.경)를 정점으로 해서 형성된 피타고라스 학파는 복잡한 계보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짧은 역사와 단순한 계보를 가진 밀레토스 학파와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오직 학문 그 자체를 위해서 만들어진 학파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념, 생활방식, 정치적 신념, 학문적 방향 등등 여러가지 점에서도 동일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는 학파라는 점에서 밀레토스학파와는 구별된다. 피타고라스 자신은 원래 이오니아 지방의 사모스 섬 출신이지만 그가 활약한 곳은 남부 이태리의 크로톤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적 성향은 이오니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이태리적인 것이라 여겨진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관한 논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들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상은 영혼윤회사상이다. 즉 우리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이 세계로부터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육체, 경우에 따라서는 동물의 육체에 깃들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들의 표현법에 따르면 육체 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혼이 육체에의 갇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속죄와 보다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들에 의하면 이런 속죄 및 각고의 노력이 없으며 육체의 단순한 변경으로 인간 윤회의 인고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은 당시 이미 상당히 유포되고 있었던 신비주의적 종파 특히 오르페우스교의 믿음과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윤회적 인고의 벗어남에 관한 방식에 관해서 차이를 나타낸다. 오르페우스교와 같은 기존의 종교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 및 시체를 피하는 것과 같은 금기사항을 기계적으로 지키는 것에 의해서 윤회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는 데 반해서, 피타고라스학파는 비록 이런 유의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와 더불어 보다 합리적인 철학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이들은 영혼을 정화하는 것만이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혼을 정화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금기사항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여러가지 정신적 작업 특히 철학과 수학, 음악, 체조 등에 몰두했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도들의 여러 활동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교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중 수학에 관한 깊은 연구결과 그들은 이 세계에 있어서 수가 가지는 중요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만물은 수로 세어질 수 있으며 두 사물 사이의 관계 또한 수적 비율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특히 감명을 주었던 것은 리라로 연주되는 악보의 음정들이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는 사실이었다. 음의 고저는 길이에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수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음계 또한 수적 비율에 따라서 표현될 수 있다. 음악에서의 조화가 수에 의존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주의 조화도 수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했음직하다. 그들의 사고는 음악에 있어서의 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전 우주에 있어서 수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깨달음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이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예컨대 ‘책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고 물어 보았을 때 우리는 ‘나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도 피타고라스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 나무가 어떤 방식으로 재단되고 모양을 갖추지 않으면 책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즉 나무라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에 어떤 제한을 부여함으로써 책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밀레토스학파는 질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데 반하여 피타고라스 학파는 형상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아낙시만드로스를 사로잡았던 개념이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 혹은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피타고라스의 사고를 맴돌았던 개념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질료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아페이론의 개념에 연결되는 반면에 형상의 개념은 페라스(peras)의 개념에 연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형상 혹은 제한의 개념은 항상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것에 대한 가장 좋은 예는 음악에서 보여진다. 소리 그 자체는 높고 낮은 반대 방향으로 뻗어가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인데, 여기에다가 어떤 일정한 비율로 제한을 가함으로써(리라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 예에서 볼 때 ‘아름다움’(음악적 조화)은 형상의 개념과, 그리고 수적 제한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은 이러한 예를 우주에까지 확대시켰는데, 따라서 그들에 있어서 우주는 조화로운 우주, 질서있는 우주이며, 이 우주를 조화롭고 질서있게 만드는 것은 수적 조화 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학적 개념을 물질적인 사물의 질서에다 전이시켰다. 그리하여 여러 점들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수학자의 학자적인 상상력에서가 아니라 바깥에 있는 사물 속에서 선이 산출된다. 동일한 방식으로 면은 여러 선들을 나란히 함으로써 산출되고, 마지막으로 물체는 여러 면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산출된다. 따라서 점, 선, 면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실제적인 단위들이며, 이런 의미에서 모든 물체들은 수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이 밀레토스인들과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른 사고유형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흥미를 유발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로 하여금 탐구의 계기가 되도록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것이지만, 그들은 이를 훨씬 넘어서 자신들의 사고영역을 수학적 형이상학에까지 확대시켰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밀레토스적인 우주관으로부터 벗어나서 우주를 다른 방식으로 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플라톤은 여러가지 점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큰 감명을 주었던 것은 이 학파에서 보여준 수학적 사변이었다. ‘불변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플라톤적 사고는 수학적 인식에 대한 그의 이해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