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J. L. Austin, 1911~1960)은 옥스포드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그의 학문은 2차 대전을 중심으로 초기와 후기의 사상으로 나누어진다.
전쟁 전에는 라이프니쯔와 희랍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관심을 가졌었다. 전쟁 후에 그는 독자적인 철학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오스틴은 후기에 와서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들, 철학적 용어들의 문제들을 뒷전으로 하고, 철학적 이론보다도 일상언어를 명확히 하고 일상언어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오스틴은 무어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일상언어에 대한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오스틴은 일상언어 자체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는 그의 일차적인 관심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에 일차적 관심을 갖고 일상언어의 분석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비트겐슈타인과는 태도가 다르다.
그의 주저인 ?How To Do Things With Words?는 일상언어의 문제를 행위의 차원으로 환원하여 설명한다. 말의 수행적(performative) 성격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언어학의 구분에 따르면 화용론(pragmatics)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우리는 오스틴이 말의 수행적 성격을 분석하고 전통적인 언어관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입장을 “언어수행론” 혹은 “화행론”(話行論)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오스틴은 ‘진술’(statement)만이 진위를 가릴 수 있고, 따라서 진술만이 논리적 명제가 된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에 대한 진술만이 진위의 검증이 가능하고 그렇지 못한 문장은 무의미한 사이비진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통적인 논리실증주의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기록이나 보고가 아닌 사이비진술의 형태인데도 진위를 확인할 수 있고 따라서 객관적인 의미를 갖는 그런 문장들이 있다. 예를들어 결혼식에서 주례가 묻는 말에 대해 “예”라고 대답했을 경우에, 이것은 진술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지만, “예 나는 이 여인을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합니다.”라는 약속을 수행하고 있는 발화(utterance)이다. 이것은 결혼하는 사실을 보고하기보다는 결혼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그 자체가 수행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진술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있지만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오스틴은 이런 종류의 발화를 수행적 발화로 규정하여 보통 진술 혹은 진술적 발화와 구분하였다.
진술적 발화가 진위를 구분할 수 있는데 반해, 수행적 발화는 적절한가 부적절한가로 구분될 수 있다. 오스틴은 수행적 발화는 그것이 적절할 수 있는 조건을 지키면 오발행위나 남용행위가 되지 않고, 성공적인 발화행위가 된다. 사회적 관습이나 약정에 따르는 행위를 수반하는 말은 적절한 수행적 발화가 된다. 이처럼 오스틴은 수행적 발화와 진술적 발화가 근본적으로 차이점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기에로 가면서 오스틴은 이 구분, 즉 수행문과 진술문의 구분점을 지워버린다. 즉 모든 발화는 그 나름의 진위값을 가지며 동시에 행동을 수행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예를들어 “제발!”이란 말은 명령, 충고, 애원 등으로 모종의 행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진술은 단순히 사실에 대한 기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수행적 요소가 전혀 없는가? 그리고 수행적 발화는 전혀 진위의 구분이 가능하지 않는가? 오스틴은 이 구분 자체가 의미없다고 강조한다. 예를들어 “아마 내일 비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는 발화는 예언하는 행위에 관련된 것이지만 진위의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수상은 대머리이다”는 발화는 진술적 발화이지만 수행적 발화가 부적절한 것처럼, 역시 적절하지 못한 발화이다. 왜냐하면 현재 대한민국은 수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스틴은 수행문과 진술문의 전통적인 구분점을 지워버림으로써 모든 발화는 수행적 성격을 가짐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진술도 수행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오스틴은 발화가 다음의 세 가지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첫째, 발화행위(locutionary act)는 문장의 뜻과 지시를 결정하는 행위이다.
둘째는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로서 발화행위에 따르는 진술, 명령, 질문, 약속 등의 행위이다.
그리고 발화효과행위(perlocution-ary act)로서 발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청자를 설득하고 놀라게 하고 바쁘게 하는 등의 효과행위이다. 발화행위는 단순히 어린애가 응얼거리는 것과 같이 단순히 소리를 내는 행위이다.
발화수반행위는 이 발화행위가 구체적인 의미를 가짐으로써 특정한 행위를 수반하는 힘을 가진 행위이다. 발화효과행위는 상대편으로 하여금 모종의 행위를 하도록 하는 강한 힘을 가진 행위이다.
예를들어 제한속도가 시속 80킬로인 거리를 100킬로로 달리는 차안에서 운전석 옆에 앉은 사람이 “이곳은 제한 속도가 80킬로이구만!”하고 새삼 강조를 할 경우에, 아마 이 발호는 단순히 어떤 사실을 진술하거나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줄여 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발화효과행위가 될 것이다. 이처럼 오스틴은 서얼(J. Searle)과 함께 ‘어떤 것을 말한다’는 것은 바로 ‘어떤 것을 행한다’는 소위 언어수행 혹은 언어행위론의 토대를 확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