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로-퐁티의 철학은 현상학적 전통(Husserl)과 실존주의(Heidegger, Sartre)의 이중 유산을 받아들이고 있다. 현상학이란 살아있는 한에서 그리고 그 점에서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한에서 인간존재를 묘사하는 기획이다. 실존주의란 인간을 아직 완성되지 않고 조숙한 존재로서, 필연성과 의식 사이에, 자연과 자유 사이에 중간에 위치한 존재로서 생각하고자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실존의 정의(définition)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물과 정신 사이, 즉 즉자(en-soi)와 현전의 현상에서 매순간우리 눈앞에서 완성될 수 있는 대자(pour-soi) 사이의 종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물과 의식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의지, 다시 말하면 시간 내에서 구현되어 있고, 참여하고 있고, 또한 규정되어 있으면서도 최고 권한을 지닌 인간을 "세계에 있는(사는) 존재(être au monde)"로서 생각하려는 의지는 역사와 인류에 관한 반성 철학만큼이나 자연(본성) 철학을 인도하는 실이다.
세계에 있는(사는) 존재(l'être au monde)
자연철학의 중심은 영혼과 신체에 대한 고전적 문제이다. 여기서 고전적 이원론은 단번에 거부된다. 그래서 구체적 인간은 "즉자"(과학에 의해 분석될 수 있는 물체)도 아니며, "대자"(최고 권한의 의식, 절대적 자유)도 아니다. 결국 "분석적" 설명은 실재적인 것의 복잡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복잡성은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태(comportement, 행위 태도)는 형태(Gestalt)의 우주로서 간주되는 자연 속에서 집적된 구체화된 총체이다. 이 행태는 장소의 단순한 결과이라기보다 의미(sens)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일종의 논쟁(débat)이며,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시와 같은 현상학은 사물과 정신 사이에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성립하게 하거나 재확립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런 대화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사유하는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혼합체(mixte) 즉 세계 속에서 함축된 의식이며,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사유주체(je pense)"이라기보다 "지각하는 주체(Je perçois)"이다. 결과적으로 물체[신체]는 "지각의 현상학"의 중심에 있고, "지각의 현상학"은 마찬가지로 물체[신체]를 설명하기를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서술한다. 그러나 물체[신체], 이것은 상호 변할 수 있는 분자의 건축물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로 자연에 거주하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사람들은 "고유한 물체(le corps propre, 자신의 신체), 다시 말하면, 세계에 구현되고 현재하는 의미의 총체이다. 그 물체(신체)는 세계에 거주하고, 상호 주관성(intersubjectivité)의 양식으로 다른 의식과 세계를 나누어 갖는다.
상호세계(l'intermonde)
의미의 탐구에서, 메를로-퐁티는 의미를 의식 속에서 위치시키지 않고 의식들 사이에 위치시키고, "상호세계"에 대해, 즉 "역사, 상징주의, 만들어야 할 진리"가 동시에 있다고 하는 의미의 교착(entrelacs)에 대해 반성에로 나아간다.
첫 번째로 그가 현상학적으로 접근한 것은 역사이다. 후설(Husserl, 1859-1938)에 이어서 그는 역사를 진리와 의미의 점진적 도래로서 생각하였다.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창조, 메시아의 점진적 도래처럼 의미의 형성체가 자기 성장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리고 맑스(Marx, 1818-1883)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어려움 없지는 않았지만, 역사를 목적을 향한 변증법적 진보로서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맑스주의자와 결별하고서, 50년대부터 그가 참여하게될 "역사의 일탈(déraillement de l'histoire)"에 대한 당황함을 고백한다. (『의미와 무의미(Sens et non-sens, 1948)』)
상호세계, 이것은 제도와 상징들의 문화적 세계와 동일하다. 타자와 관계는 인류의 구성적 차원에서 상호충돌로서, 여전히 미완성적이라고 할지라도, 가능하고 성공적인 [상호] 소통으로 전개된다. 결국 언어행위는 의미의 현전이자 제도로서, 상호 주관성의 관계에서 동일한 직조물(tissu)을 구성한다. 특히 그의 저작(『철학의 찬미(Eloge de la philosophie, 1952)』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크라테스의 인물(figure)에 관한 명상이 대화의 반성에 대해 증거 하는 것처럼,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대화에 관한 반성의 중심적 지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의 대화(dialogue)는 그 자체로 의식과 세계가 유지하는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대화 속에, 그리고 우리가 보았던 대로 인간 조건이 규정하는 대화 속에, 기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