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강해 3부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4-19
요절 요한복음 17장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김양재 목사의 ‘우리들 교회’는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결혼이 행복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거룩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해야 하나 될 수 있고 하나 되어야 영광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 살아도 안 되고 세상과 동화되어 살아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거룩해야 하나 될 수 있고 영화롭게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좋은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나타내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악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제자들은 본래 세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었고 제자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제자들의 왕은 하나님이고 세상의 왕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박해를 받는 것은 제자들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당연한 증거입니다. 제자들이 오히려 세상에서 미움 받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미움 받지 않으면 세상과 동화되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우리는 당연히 미움을 받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 받을 때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세상의 미움을 피하기 위해서 잘못된 두 가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을 피하여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 미움을 받으니까 고통스럽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그들과 사는 것이 피곤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천국에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세상의 미움을 피해 산속이나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제자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기 쉽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수도원 운동이 생긴 것입니다. 수도원은 스님들이 절을 산속에 짓듯이 산속이나 광야에 만듭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나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면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교회 성도들과만 교제하고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단들도 그렇게 합니다. 이전에 박태선은 천부교 교주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이단의 뿌리입니다. 그들은 신앙촌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세계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을 피하여 사는 것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도피하여 사는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을 영지주의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 엣세네파가 이런 영지주의자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나 깊은 산속에 거하면서 영성을 키우고자 하였습니다. 사막에 살았던 쿰란 공동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피해서 살면서 하나님과 성도들끼리만 관계성을 갖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영성은 아닙니다. 진정한 영성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도록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둘째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타협하여 동화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거대한 물결과 같습니다. 물질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 파도가 밀려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만나면 돈 이야기, 주식 이야기, 결혼 이야기, 자녀 이야기만 합니다. 아니면 정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성도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 전부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체성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잃기 쉽습니다. 이런 자들을 세속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게 살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요즘 유럽이나 미국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세상 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크리스천과 세상 사람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성도들이 세상 문화에 점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혼율이나 세상과 똑 같고 교회 안에 돈 문제로 갈등하는 것이 세상과 똑 같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세속화 되면 이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 하나님께 버림 받고 세상에서 짓밟히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번영신학, 성공 신학, 기복신앙들이 다 세속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질주의, 육신주의 가치관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습니다. 교회도 성도의 숫자만 늘리고자하는 것도 거룩한 것 같지만 세속주의와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야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방주에 물이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방주에 물이 들어오면 방주가 가라앉아 방주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속화 되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방주가 물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산으로 가서 도피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방주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방주는 물에 떠 있어야 방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지 물을 떠나 산으로 가면 방주로 의미가 없습니다. 방주는 물에 있어야 하지만 물이 방주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내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생복락하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악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세상에서 사는 신앙을 성육신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말씀이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마치 별이 어둠에 있지만 밝게 빛나듯이 세상에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연꽃이 더러운 물에 살지만 깨끗하듯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에 영향을 받지 말고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야 복음이 전파됩니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가 어떻게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요?
(2) 진리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낸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면서 거룩하게 사는 본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게 살면서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삶은 무엇일까요?
거룩은 죄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주위의 스랍들은 하나님을 보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도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레위기는 모세 오경의 중간에 있어서 거룩함을 가르쳐줍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점을 본 받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사랑이 있고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배워야 거룩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켜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옷입는 것이나 먹고 사는 것도 거룩하게 먹고 살아야 합니다. 환경도 거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줄 정도로 헌신하셨습니다. 거룩을 가르치는 레위기의 마지막은 헌신이 나옵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첫열매를 드리라고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의 일부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삼대 절기에 가난한 자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도 지키고 국가의 법도 지키고 교회의 법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평등한 세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말씀으로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서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에 절대성을 갖고 살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망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망할 것을 각오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망할 것을 각오하면 신기하게 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망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고자 무식할 정도로 고집을 부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식을 고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섬김에 목숨을 걸자’고 표어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예배와 말씀과 기도에 절대성을 갖자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벨론 땅에 살면서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작은 결단을 하였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자 뜻을 정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 절대적으로 기도하고자 방향을 결단하였습니다. 기도를 하면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는 절대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목숨을 걸고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불 속에 들어가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았을 때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성을 갖고 순종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면 떠나고 할례를 하라고 하면 할례를 하고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면 좇아내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면 드렸습니다. 그는 물질 문제에서도 분명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주는 뇌물을 거절하였고 롯에게 땅을 양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상주심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나 종이나 가나안 헷 사람이나 애굽사람이나 아비멜렉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아브라함을 본받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지금까지 미쳐서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삶을 본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가치관 사이에서 적당히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죄악되어서 신앙생활하기는 어렵지만 물질이 풍부한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도 믿고 물질적으로도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그가 따르던 재산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들라오멜 동맹군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나중에는 소돔이 심판을 받아 남은 재산이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아내도 잃어버리고 사위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아내나 딸들이나 사위들에게까지 아무런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는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가 딸들과 잠을 자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모암 압몬 족속은 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절대성을 갖되 은혜로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해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주의에 빠집니다. 스스로 자기 의에 빠져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불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율법이 칼이 되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수 있습니다. 옳은 말을 하는데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율법은 항상 은혜와 성령으로 감싸야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절대성을 갖되 오직 은혜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말씀을 지켜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에 의지하여 작은 것이라도 다니엘처럼 결단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성폭행을 당하고 사생아를 낳은 오프라 원프리는 매일 감사제목 5 가지를 찾는 감사일기를 썼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 멜론을 먹었는데 완벽하게 익어서 정말 달콤하고 시원하였다. 공원을 산책할 때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을 피부로 느꼈다. 오랜만에 친구를 전화를 나누며 함께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작은 결단을 실천함녀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40살부터 새벽기도를 결단하고 양식쓰고 기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거의 30년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루틴이 되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쓰셔서 나를 거룩하게 하여주셨습니다.
결론) 교회가 거룩해야 영광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떠나 살아서도 안 되고 세상에 동화되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거룩해야 합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방주와 같이 물에 떠서 살면서 물이 들어오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밧줄을 던져 구원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절대성을 갖고 하되 은혜로서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작은 것을 결단하고 실행에 옮겨 루틴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신앙입니다.
그런 삶을 산 대표적인 사람이 노아라고 생각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거룩하게 하고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세사 사람들이 다 육신의 소원을 따라서 살아도 그는 말씀과 성령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그는 말씀대로 다 준행하였다는 말이 두 번 반복하여 나옵니다. 창세기 저자는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에 준행하며 살았을 때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가족들과 그 시대의 동물들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될 때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가 영화롭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가운데 영화롭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7장 강해 3부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4-19
요절 요한복음 17장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장 강해 삼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