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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주일설교

6월 셋째주 메시지 하나 되는 세 가지 방법

작성자말씀 선생|작성시간26.06.18|조회수26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17장 강해 4부 하나 되는 세 가지 방법

요한복음 17장 20-23

요절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제가 아는 한 교단은 한국에서 100명도 안 되는 작은 교단입니다. 외국에는 30만이 넘는 큰 교단인데 한국에서는 작은 교단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한국에 들어와서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내가 그곳에 가서 오늘 말씀을 전하며 하나 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다시 한 교회가 또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외국에서 그 교단은 창립자가 돌아가시자 현실 참여의 방향에 따라서 두 개로 나뉘어졌습니다. 이를 볼 때 크기가 작다고 나뉘지 않고 크기가 크다고 나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부부 들이 사는데 나뉘는 가정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이제는 제자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앞서 제자들이 하나 되도록 기도하셨듯이 교회도 하나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하나 되는 방법 세 가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 교회가 어떻게 하면 나뉘지 않고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배우고자 합니다.

 

(1) 성부 성자 성령 안에 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만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하나 됨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였듯이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서 먼저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에게 하나 됨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거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 안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성령님과도 하나 되셨습니다. 세 분 하나님이 하나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하나 된 것처럼 교회도 성부 성자 성령님 안에 있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이 제자들도 예수님 안에 붙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 되기 어려웠습니다. 먼저 물질 문제로 하나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물질 문제로 두 번이나 이민을 갔고 두 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에 개입하여 애굽왕 바로와 블레셋왕 아비멜렉을 책망하심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한 자녀를 낳지 못하여 갈등이 생겼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종 하갈을 첩으로 얻어 아들을 낳게 도왔습니다. 하갈은 아들을 낳자 사라를 무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집의 갈등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사라는 하갈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책임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원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당신이 종 하갈을 알아서 하라고 사라에게 모든 문제 해결을 위임하였습니다. 사라는 하갈을 학대하자 하갈은 견디지 못하여 도망갔습니다. 하갈이 나갔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식이 없는 문제가 아직도 있었고 그 원인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사라는 종이 없자 집안 일을 더 많이 해야 했습니다. 집은 냉기가 돌았습니다. 둘은 하나 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집에서 도망간 하갈에게 집에 가서 겸손히 사라에게 순종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갈이 순종하자 아브라함과 사라는 다시 화목해졌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사라에게 아들이 이삭을 주자 서로 금슬이 좋아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었을 때 크게 울었습니다. 그 만큼 사라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이 갈등도 있었지만 어떻게 이혼하지 않고 화목할 수 있었을까요? 그 가정에 하나님이 개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가정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개입하여 깨어지지 않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격이 반대입니다. 베드로는 MBTI로 하면 행동이 먼저 앞서는 전형적인 외향성의 ESTP이고 요한은 깊이 사색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INFP입니다. 저는 사도 요한의 MBTI가 나와 똑 같이 일치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둘은 하나 되기 참으로 어려운 사람입니다. 에너지 충전 방식도 충돌하고, 대화방식과 관심사도 충돌하고, 갈등해결 방식도 충돌합니다.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똑 같이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고백하였고 요한도 자신을 예수님의 사랑받는 자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할 때 그들은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 되어 손을 잡고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를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이 다른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하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서로 다른 성격이 상호보완이 되었습니다. 요한이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을 때 베드로가 행동하게 도왔고 베드로가 즉흥적으로 행동할 때 요한은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성령님 안에 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싸웠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너희가 성령님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너희가 성령의 전임을 알면 싸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개인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령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은 성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건물을 파괴하여 못쓰게 만들 듯이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면 성령님이 교회 안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왜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성령님을 경외하지 않고 성령님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분열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모임인 교회가 성령님이 계시는 성령님의 전인 것을 안다면 우리는 싸울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성령님을 경외하고 성령님과 관계성을 맺는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님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것을 믿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하나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됩니다. 분열되면 교회가 흩어지고 믿는 자도 불신에 빠집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 되면 교회에서 복음에 전파되어 비신자들이 교회에 모여들게 됩니다. 전도는 하나 되는 데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가 싸우지만 안으면 성도가 교회에 모여든다고 하였습니다. 싸우지 않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안에 있을 때 싸우지 않을 수 있고 그때 교회에 성도가 모여들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생각할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영광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영광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그 영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우리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교제하고 서로 하나 되는 화목한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싸움이 없습니다. 그곳은 사자와 어린양이 뛰노는 곳이고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곳입니다. 창과 칼이 필요 없어서 그것으로 농기구를 만드는 곳입니다. 군인의 옷이 필요없어 불태우는 곳입니다. 우리 예수님 믿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화목하게 살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를 교회에서 맛보고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나누어져서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교회는 한 건물에서 두 교회로 나뉘어져 따로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내 친구는 교회에 새로 부임하였는데 반대파가 목사가 갈 때 뱀을 사다가 예배당 앞에 풀어놓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둘이 나뉘어져 싸우면 둘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싸움을 걸어와도 한 사람이 선으로 그를 대한다면 선으로 대하는 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의 나라와 같습니다. 다윗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창을 던져 두 번이나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군사를 풀어서 다윗을 두 번이나 포위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윗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아히멜렉 제사장과 함께 85명을 죽였습니다. 사울은 회개하지 않고 죽었으므로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만약에 다윗이 이런 사울과 대항하여 싸웠다면 다윗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갈등을 전적인 내 문제로 생각하고 선으로 악을 대하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으로 대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자를 못하게 말리고 또 한번은 사울의 진영에서 물병만 가지고 왔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에도 선으로 대하였습니다. 사울이 죽었을 때 국장으로 장례식을 치러주었습니다. 조시를 써서 전국에 노래로 부르게 하였습니다. 사울을 장사지내준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사울을 자신이 죽였다고 한 아멜렉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사울의 손자를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사울과 다윗이 하나 되었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 되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나오고 사울의 후손에서 사도바울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완성하였고 바울은 그 복음을 체계화하고 세계화하였습니다.

저도 가정에서 하나 되는 문제는 심각하였습니다. 저와 가까이 있는 아내와 성격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분은 순종적이지 않고 창조적이고 직설적이었습니다. 내가 말씀을 인도하는데 그 분은 내가 말씀을 잘못 전한다고 나에게 공개적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말씀을 가르치다가 일어났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이것을 나의 문제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잘못했지만 상대방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를 보았습니다. 내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깨달았을 때 갈등이 해결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아들의 결혼 문제로 충돌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약속되고 아들도 결단하고 결혼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중간에 이 문제를 없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관계보다 일을 중시하였습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자 하는 일을 아내와의 관계보다 앞세웠습니다. 내가 관계를 일보다 중시하였을 때 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후에 지금은 다시 10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에 좋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사랑스럽고 고맙고 내가 죄송할 뿐입니다.

내가 회개하지 않았으면 하마터면 천국에 못 갈뻔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교회를 말아먹을 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하나 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3) 성숙할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교회 안에 있고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전함은 관계성 속에서 성숙을 의미합니다. 싸우는 것은 미숙한 것입니다. 성숙하면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 성숙하면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숙하고 한 사람이 미숙하면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많았습니다. 병고치는 은사, 방언의 은사, 통역의 은사, 능력을 행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복음도 열심히 전했습니다. 헌금도 많이 들어오는 풍요로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파당을 지어 싸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미숙해서 싸운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리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거나 작아지고 자신만 커져 있다는 말입니다. 어린 사람은 시기와 분쟁이 있습니다. 성숙했다는 것은 타인 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고 예수님이 커지고 나는 작아지는 것입니다. 성숙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신앙의 연륜이 있는데도 미숙한 것입니다.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계속하여 싸움을 파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신령한 젖 말씀을 사모해야합니다. 어린아이가 순종을 하면서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듯이 우리는 말씀에 순종을 통하여 자기 중심에서 벗어납니다. 예수님은 가장 성숙한 분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동하지만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며 나를 죽여야 성숙할 수 있습니다. 순종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만 하면 우리는 평생 미숙합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우리가 행복하고 성공하고 잘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성숙하기를 바라면 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받을 때 행복보다 줄 때 행복을 경험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받으려고 하기보다 주고 희생하는 일을 합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보다 자식이 잘 되면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 합니다. 이것이 섬기는 것요 성숙한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려면 한 사람이라도 성숙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 되려면 두 사람이 다 성숙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과 섬김을 배워서 성숙하고 하나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 될 때 다시 한번 복음이 전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더하여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신 것같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세상으로 알게 된다고 하십니다. 사랑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됩니다. 싸우는 것은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싸울 때 우리 교회에 마귀가 있다는 것이 전파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는 싸우지 말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성숙해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결론 하나되는 세 가지 방법

 

23절을 보십시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사람들은 숫자가 크든 작든 서로 싸우고 분열됩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의 단위인 부부도 서로 싸웁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성부 성자 성령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컬튜쇼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둘이 소개팅을 하였습니다. 서로 외모가 별로였습니다. 그런데 둘 다 아이유펜이었습니다. 아이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키, 가족관계, 좋아하는 옷, 신발, 생일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둘은 하나가 되어 결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삼위의 하나님을 서로 사랑하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악해도 내가 다윗처럼 선하여 하나나님 나라의 법칙으로 대하면 싸울지 않을 수 있고 둘 다 선하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성숙해야 합니다. 순종과 섬김을 통해서 성숙할 때 우리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어서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 되면 하나님의 복을 주십니다. 시편 133편 1-3절을 보면 하나 되는 자의 복을 노래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우리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영생을 얻고 영생을 전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7장 강해 4부 하나 되는 세 가지 방법

요한복음 17장 20-23

요절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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