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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부부생활(5); 남편의 사랑

작성자요한목사|작성시간26.06.21|조회수2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4일

 

그리스도인의 부부생활(5); 남편의 사랑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부부생활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관계의 출발점부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내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남편은 아내에게 무엇이든지 명령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남편에게도 요구되는 복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면서, 남편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결과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계속해서 이야기해 온 것을 잘 읽어보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가볍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단지 감정적인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최소한 한때라도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문제는 많은 사람이 ‘사랑’을 자신의 편리함을 추구하거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종류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사랑’은 남편에게 요구되는 ‘복종’입니다. 아내에게 요구되는 ‘복종’과는 어떻게 구분될까요? 뒤에 이어진 말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 부분에 그 설명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교회를 사랑하셨습니까?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서 상대방에게 무엇이든지 명령하거나 끝없는 복종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행복과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이기적인 만족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지체들로 구성된 교회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수치와 고통을 당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사랑’이요,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 남편에게 요구하는 복종입니다. 만일 남편들이 이와 같은 ‘사랑’으로 아내를 대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예를 들어 배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고 있는데 구명조끼가 단 하나만 남아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때 구명조끼를 아내에게 입혀주고 자신은 물속에 빠져가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메시지 성경의 풀이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십시오. 그런 사랑의 특징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엡5:25, 메시지) 진정한 사랑의 특징은 ‘받는 것’(getting)이 아니라 ‘주는 것’(giving)입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에게 무엇인가 받아내려고 하지 말고, 오로지 주는 일에만 전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내에게 요구하는 ‘복종’이 더 쉬울까요? 아니면 남편에게 요구하는 ‘사랑’이 더 쉬울까요?

 

물론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내의 복종도, 남편의 사랑도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는 것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남편에게 복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가 모든 일에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남편을 존경하며 남편의 뜻에 따라 기꺼이 복종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아내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주며 사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남편에게 복종하기가 죽기보다 싫고, 아내를 위해서 무조건 내어주는 사랑은 상상하는 것조차도 힘들어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 속에 죄악의 쓴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남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남아 있고, 남편에게는 여전히 ‘아내를 좌지우지하려는 욕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 모든 죄의 욕망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완전히 죽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서로 복종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의 부부생활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요한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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