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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 임병식 방)

흠이 있는 수석

작성자청석 임병식|작성시간26.06.15|조회수15 목록 댓글 0
흠이 있는 수석


임병식


베란다에 늘어선 수석들 가운데는 평소 눈길조차 주지 않다가 문득 시선을 붙드는 돌이 있다. 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그런 돌 가운데 산수경석 하나가 있다. 황토빛 석질은 단단하고, 파임은 깊고 자연스러우며, 전체의 균형도 좋다. 한쪽에는 관통까지 있어 산수의 묘미를 갖추었다. 수석으로서 갖출 것은 거의 다 갖춘 돌이다.
그런데도 이 돌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상처가 떠오른다. 정상부의 봉우리 하나가 깨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 흠 하나가 돌 전체의 인상을 바꾸어 놓는다.
이 돌은 사십여 년 전 돌밭에서 만났다. 물가에서 오랜 세월 다듬어진 돌이 아니라 돌밭 초입에 드러나 있던 돌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의 눈길이 스쳐 갔을 것이다. 누군가는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내려놓았으리라.
“아깝다.”
아마 그 한마디였을 것이다.
수석은 무엇보다 파손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형상이 뛰어나도 흠이 있으면 평가가 달라진다. 이 돌 역시 그 봉우리 하나 때문에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흠 하나를 제외하면 너무도 빼어난 산수경석이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져와 한동안 곁에 두고 바라보았다. 흠은 흠대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대로 감상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돌은 어느새 베란다 한쪽으로 밀려났다. 다른 돌들에 가려 존재를 잊고 지낸 날도 많았다.
그런데도 이따금 시선이 그 돌에 머문다. 이제는 상처보다 돌이 품고 있는 시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생각해 보면 이 돌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디어 왔을까. 먼 옛날 모암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파편이 바람과 비, 눈보라를 맞으며 오늘의 형상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사이 수많은 생명의 발길이 스쳐 갔고, 헤아릴 수 없는 계절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 돌이 우리 집에 머문 세월 또한 짧지 않다. 사십 년이면 강산도 여러 번 변할 시간이다.
앞으로의 운명은 알 수 없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집에 머물겠지만,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 돌을 바라보면 묘한 인연이 느껴진다.
만약 이 돌이 처음부터 완벽했다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먼저 발견하여 소중히 간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흠이 있었기에 선택되지 못했고, 결국 내 곁까지 오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 돌은 흠 때문에 내 차지가 된 셈이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면 문득 사람의 인연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자리와 저마다의 인연이 있다.
가끔은 나 자신을 이 돌에 비추어 본다.
어쩌면 나 또한 이 돌과 다르지 않은지 모른다. 흠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내가 걸어온 길과 맺어 온 인연들 또한 지금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고, 이 돌 또한 흠이 있었기에 내 곁에 오게 되었다.
오늘도 그 돌은 베란다 한쪽에 묵묵히 서 있다.
깨진 봉우리 하나를 이고서.
나는 한참 동안 그 돌 앞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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