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도인(자유인; 진리를 얻은 사람)은 부드럽고 미묘하고 오묘하고 통달하여 그의 정신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리었다. 보통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기에 억지라도 그를 묘사하자면 그는 행할 때는 망설이듯 하고, 조심하는 태도는 마치 겨울에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것과 같고, 신중히 경계함은 마치 주위를 살피는 염탐꾼이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처리할 때는 고지식하고 준업하기가 마치 까다로운 손님 같으며, 도덕을 닦고 정욕을 없앰은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재료 같으며, 그의 넓은 마음과 겸허한 태도는 깊은 산 골짜기와 같고, 그의 천지난만하고 우둔한 자세는 마치 혼탁한 큰 강물과 같다.
(1) 도와 덕
상급 수행자는 도를 들으면 애써 그것을 실천하고,
중급 수행자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 하고,
하급 수행자는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사실 하급 수행자의 비웃음 때문에 도의 심오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밝은 도는 마음 속에 빛을 품었지만 마치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는 겸허히 삼가므로 마치 물러서는 듯하며, 평탄한 도는 마치 울통불통해 보인다.
상덕은 스스로 낮춰 마치 깊은 골짜기와 같고, 가장 깨끗한 덕은 마치 때가 끼어 검은 듯하며,광대한 덕은 마치 부족한 듯하고, 굳건한 덕은 마치 외로운 것 같으며, 진실한 덕은 마치 변해버린 듯하다.
가장 큰 네모는 모서리에 각이 없고, 가장 큰 그릇은 느지막히 이루어지고, 가장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가장 큰 형체는 볼 수가 없다. 또한 대도는 은밀하여 이름을 붙일 수 없으나, 도야말로 만물이 낳고 자라게 하는 근본이다.
(2)도와 덕의 위대성
도가 만물을 낳고 덕이 만물을 기른다, 만물은 각종 모습을 드러낸 후 환경에 따라 자란다. 도와 덕은 만물을 생성하는 근본이기에 만물이 도와 덕보다 존귀하게 여겨야 할 것은 없다. 도가 존중받고 덕이 존숭받음은 어떻 것도 간섭할 수 없는 자연스런 것이다. 도가 만물을 낳고 덕이 만물을 기르고 아름답게 성장하게 하며 홀륭한 결실을 맺게 한다. 만물을 낳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만물을 성장시키되 주재자인 척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도와 현모한 덕의 성품이다.
(3) 도덕과 부도덕
도에 종사하는 사람은 도를 얻고
덕에 종사하는 사람은 덕을 얻으며
도와 덕을 깨우치지 못한 사람은 도와 덕을 모르는 채로 산다.
도를 얻은 사람은 도를 그를 얻어서 즐겁고
덕을 얻은 사람은 덕도 그를 얻어서 즐거우며
도와 덕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도와 덕도 그를 상실한 채로 산다.
(4) 도 1
어떤 혼성일체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천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존재 하였다. 소리도 떠나있고 모습도 떠나 있으며, 그것은 독존의 상태로 있으며 불변이다. 그것은 천하만물의 근본이다, 그것의 이름을 임시로 도라고 붙여 본다. 억지라도 그것의 모습을 묘사하자면 넓고 커서 끝이 없으며. 쉬지 않고 운행하며, 아무리 먼 데라도 닿지 않는 곳이 없고, 빙돌아 본래의 근원인 절대무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말하기를 도는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도 크다라고 하였다. 우주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사람이 그 중의 하나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5)시비선악
좋음이 나쁨으로 변할 수 있고, 착함이 악함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도리를 잃고 미혹 속에 빠진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성인은 점잖되 남을 깍지 않고, 예리하되 남을 다치게 하지 않고, 솔직하되 함부로 하지 않으며, 빛을 품고 있되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6) 도 2
도에는 만물의 이치가 들어있지만 형상이나 소리나 실체가 없다, 더욱이 영원불변한 것이지만 언어나 문자로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검정아라고 이름 붙이면 흰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를 이해하려면 언어나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온 마음으로 깨우치지 않으면 혼미 속에 빠진다. 이런 도리를 이해하고 천지만물의 기원을 깨우쳐야 한다. 천지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소리도 형상도 없었다. 이 상태를 가르켜 무(절대무)라 한다, 도(절대무)란 도의 본체로써 우주의 근원이다. 도가 생성 작용을 해서 만물이 거기에서 생겨났다. 이를 유라고 부른다, 유는 즉 도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천지의 시작 이전이 무(절대무)라고 깨치고 나면 도의 본체가 얼마나 오묘한 지를 이해하게 되고 만물의 근원이 유라는 것을 깨치게 되며 도의 작용이 얼마나 광대한가를 이해하게 된다.
(7) 도 3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유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다. 천하의 만물은 유로부터 생겨났지만 유는 무(절대무)로부터 온 것이다.
(8) 학식
진실한 말은 듣기에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달콤한 말은 진실하지 못할 수도 있다. 행위가 바른 사람은 말 수가 적은 경우가 많고, 구변이 좋은 사람은 행위가 바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의 대도와 하나되는 법을 알고 있다. 학식이 꼭 많이 있을 필요는 없다. 학식이 많은 사람이야 대도를 안다고 할 수가 없다. 성인은 욕심이 없으며,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은 남김없이 남을 위해 베품으로써 자신을 충족시킨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줌으로써 자신은 더욱 부유해진다. 천도는 욕심이 없으며, 만물을 이롭게 할 뿐 해롭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도에 순응한다. 성인은 베풀 뿐 다투고 뺏는 일이 없다.
2) 수상관
(1)참된 수행자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은 만물을 생성시키지만 아무 것도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참된 수행자도 이를 닮아 물처럼 베풀되 보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참고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모든 종자는 습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2) 물은 속성하며 자연을 쫓는다
천하에 물보다 유약한 것은 없으나, 견강을 공격하기에는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유약이 모아져서 양자강처럼 큰 힘이 되면, 천하가 그 앞에서 굽힌다. 물은 자신의 속성(유약성)을 놓치지 않는다. 참된 수행자도 조건과 상항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면서 세상과 화합 하기도 하나 자기의 본성(지혜와 자비)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 중에는 거의 한평생 원수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은은데 수행자도 그와 같을 수 있다. 바로 이 원수가 도반, 형제, 부모 등 가까운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들을 때론 수용하고 때론 거부하면서 본성을 놓치다.
유약은 강직을 이긴다.
움츠리게 하려거든 펴 주어라.
약하게 하려거든 먼저 강하게 해 주어라
없애 버리거든 먼저 추겨 세워 주어라
뺏으려거든 먼저 베풀어 주어라.
(3)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참된 수행자는 물같이 하심하고 겸허해서 자신을 항시 낮추지만 생사를 떠나 있는 자신의 본성을 놓치지 않는다.
(4) 물이 모이면 큰 강이 되어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닐 뿐만 아니라 깊고 맑으며 고요하다
참된 수행자는 지혜와 자비가 쌓이면 마음이 맑고 밝아지며 강강한 힘을 지니게 되며 고요하게 된다.
(5) 물은 만물을 그대로 비춘다
참된 수행자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아서 일체를 받아들이고 비춘다.
(6)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고 무상(변화함)을 이해해야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변화)한다'' 라고 하였다.
*산이 주인이고 사람은 객이 틀림 없는것 같고 고요함으로 정영 영감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대룡산 토굴 선인촌 용마골에서 산을 위해서 무엇을 해나 생각하며, 월해 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