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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 사진

2026.6.7(일) ~ 6.11(목) 4박5일 (2) 후쿠오카시

작성자박상승|작성시간26.06.13|조회수19 목록 댓글 0

3일차 ㅡ 이마리, 아리타,가라쓰
일본 사가현 니시마쓰우라군 아리타초에 위치한 아리타 포세린 파크(有田ポーセリンパーク, Arita Porcelain Park)이다. 이곳은 조선 도공들의 피와 땀으로 피어난 '아리타 도자기(이마리 도자기)'의 역사적 여정과 그 도자기가 유럽에 미친 거대한 문화적 충격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테마공원이다.
도조(陶祖) 이삼평: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 이삼평(李參平)은 1616년 아리타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양질의 백자 점토(도석)를 발견했다. 이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백자를 달구어 내는 데 성공한 사건으로, 아리타는 일본 자기의 발상지가 되었다.
유럽을 매료시킨 세계적 브랜드: 아리타에서 생산된 자기는 인근 이마리(伊万里)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대량 수출되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이마리(Imari) 웨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이 투명하고 화려한 조선 계열의 백자에 열광하며 '하얀 황금'이라 부르고 부의 상징으로 여겼다.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 츠빙거(Zwinger) 궁전을 장엄하고 정교하게 재현해 놓은 이곳은, 아리타 도자기가 유럽 건축과 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공간이다.
재현의 이유: 당시 독일 사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국왕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는 아리타 도자기에 극도로 매료되어, 츠빙거 궁전 내에 수많은 아리타 자기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도자기 방'을 만들 정도였다. 이러한 역사적 연결고리를 기념하기 위해 아리타에 츠빙거 궁전을 똑같이 세운 것이다.
전시관 (궁전 내부): 복원된 궁전 내부에는 다이묘(영주)들이 소장했던 초기 아리타 자기부터, 유럽 수출용으로 화려하게 발전한 이마리 양식의 대형 화병, 그리고 메이지 시대 국제 박람회에서 찬사를 받았던 명작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구 나가사키 형무소(정식 명칭: 나가사키 형무소 우라카미 형무지소)는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이자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삼의사(三義士)'로 추앙받는 구파 백정기(白貞基) 의사가 마침내 조국 독립의 염원을 품고 순국(옥사)하신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육삼정 의거: 백정기 의사는 1933년 3월 17일, 중국 상하이의 음식점 '육삼정(六三亭)'에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처단하려는 거사를 계획(육삼정 의거)했으나, 거사 직전 밀고로 인해 이강훈, 원심창 의사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형무소 수감과 순국: 일본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백정기 의사는 이곳 나가사키 형무소로 이송되어 가혹한 옥고를 치렀다. 지병과 수감 생활의 고초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선생은 1934년 6월 5일, "내가 죽어도 사상은 죽지 않을 것이며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오"라는 의연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39세의 나이로 순국하셨다.
유해 봉환: 해방 이후인 1946년, 백범 김구 선생 등의 노력으로 일본에 묻혀 있던 백 의사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어 현재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함께 안장되어 있다.
우라카미 형무지소와 원폭 피해: 백정기 의사가 순국하고 약 11년 뒤인 1945년 8월 9일, 형무소가 있던 이곳 우라카미 지역은 원자폭탄 투하의 폭심지(원폭 낙하 중심지에서 불과 200~300m 거리)가 되었다. 당시 형무소 건물은 형체도 없이 붕괴되었고 수감되어 있던 수많은 조선인, 중국인 징용자 및 정치범들을 포함한 134명이 전원 폭사하는 비극을 맞았다.


일본 나가사키현 운젠시의 운젠 아마쿠사 국립공원에 위치한 니타 고개 전망대(仁田峠展望台, Nita Pass Observation Deck)와 그곳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헤이세이신잔(평성신산, 平成新山)이다. 자연의 거대한 파괴력과 경이로운 회복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규슈의 대표적인 화산 지형 명소이다.
1990~1996년 화산 폭발이 낳은 '헤이세이신잔(平成新山)': 운젠산의 주봉이었던 후겐다케(普賢岳)가 1990년 11월, 무려 198년 만에 분화를 시작했다. 이후 1995년까지 분출된 용암이 쌓이고 무너지는 과정(용암돔 형성)을 반복하면서 기존의 산보다 더 높은 새로운 봉우리가 솟아올랐다.
당시 일본의 연호였던 '헤이세이(平成)'를 따서 헤이세이신잔(평성신산)이라 명명되었으며, 해발 고도는 약 1,483m(실제 최고점은 약 1,486m)에 달해 나가사키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었다.
1991년 6월 3일에는 대규모 화쇄류(뜨거운 가스와 화산재, 암석이 뒤섞여 흘러내리는 현상)가 발생하여 학자들과 취재진, 주민 등 43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가옥이 소실되는 대참사를 겪기도 했다. 현재도 화산 활동의 숨결이 남아 있어 일본의 주요 활화산 연구 및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 운젠시에 위치한 규슈의 대표적인 온천 지대, 운젠 지옥(雲仙地獄, Unzen Hell)이다. 이곳은 땅 위로 격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유황 가스와 흰 연기, 그리고 뜨거운 온천수가 끓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그러나 화산 지형의 경이로움 뒤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진 고초를 겪고 목숨을 바친 숭고하고도 가슴 아픈 순교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에도 시대 초기, 도쿠가와 막부는 기독교 금교령(박해령)을 내리고 신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잔혹한 고문을 자행했다. 1627년부터 1632년 사이에 시마바라번의 영주 마쓰쿠라 시게마사는 이곳 운젠 지옥의 펄펄 끓는 유황 온천수를 박해의 도구로 사용했다.
수난과 고문: 신자들을 결박한 채 섭씨 100도에 달하는 온천수를 몸에 조금씩 반복해서 끼얹거나, 뜨거운 구덩이에 밀어 넣는 잔혹한 고문(지옥 고문)을 통해 개종(배교)을 강요했다.
성 안토니오 이시다와 순교자들: 이 참혹한 박해 속에서도 수많은 신부와 신자들이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이곳에서 뜨거운 온천수에 삶겨 순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회 신부인 안토니오 이시다(Antonio Ishida)를 비롯한 수십 명의 신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순교자 기념비와 십자가: 현재 운젠 지옥의 가장 높은 언덕(다이토쿠 지옥 부근)에는 이들의 숭고한 영혼을 기리기 위해 하얀 '운젠 순교 십자가(지옥 순교비)'가 세워져 있어, 많은 천주교 신자들과 방문객들이 발길을 멈추고 묵념을 올리는 성지가 되었다.
오이토 지옥 (대실지옥, お糸地獄): 과거 '오이토'라는 이름을 가진 부정한 여인이 처형당한 곳에서 온천이 뿜어져 나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구역으로, 가장 격렬한 가스 분출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다이토쿠 지옥 (대명각지옥, 大叫喚地獄): 가스가 분출될 때 대지가 울부짖는 듯한 굉음이 들린다고 하여 '대명각(크게 부르짖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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