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을 받으며.....
(감회) 안녕하십니까? 청예단 김종기입니다. 먼저 아산상 수상의 영예를 베풀어주신 아산사회복지재단 정몽준 이사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그동안 수고해 주신 각계의 심사위원님들과 실무진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무엇보다 오늘 이 자리에 서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회가 깊은지 모르겠습니다. 청소년단체가 이렇게 권위 있는 큰 상을 받은 일이 처음이기에, 이 영광과 기쁨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편, 저희 수상이 우리 사회에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 문제를 반증한다고도 생각되어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우리 청예단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 가슴 벅찬 일들도 많았지만, 대체로 고단한 길이었고, 그 바탕에는 가슴 저미는 아픔이 스며있습니다.
(출발의 회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하는 외아들을, 자살로 잃은 부모의 심경은 그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슬픔이니 고통이란 단순한 표현만으로는 너무 빈약합니다. 17년이 지났건만 부모의 마음은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이 심한 폭행을 당해서 고통스러워 할 때마다, 경찰을 찾아가 치안을 추궁하고, 전국의 청소년상담실에 전화해 상담 받고자 했지만, 저희를 도와줄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내 아들은 별다른 대책도 없이 그렇게 허무하게 갔습니다. 무엇이 내 아들을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내 아이가 남기고 간 게 무엇일까? 를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부모가, 제 아들과 같은 불행한 아이가,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시작한 첫걸음이었습니다.
(17년 전의 학교폭력의 어려움) 학교폭력의 실체를 알리고,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에서 만난 학교폭력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철옹성이었습니다. 거기에 정면으로 맞선 지난 17년은 한마디로 고독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학교폭력이란 용어조차 없던 시절, 우리는 세상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고정 관념과, 학교폭력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관료와 싸워야 했습니다. 심지어 한 교육공무원은 제 앞에서 “부모가 잘못하니 자식이 자살하지~!”라고 냉소를 주며 우리가 하는 일을 불쾌해하기도 했습니다. 문제 학교를 돕기 위해 찾아가도 “우리 학교에는 학교폭력이 없어요!”라는 말과 함께 학교 정문에서 내쫓기던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학교폭력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철옹성에 대항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의가 살아 있고, 그러한 정의는 근래에 학부모, 교사, 공무원, 시민들의 줄을 잇는 자원봉사와, 우리 직원들의 헌신적인 애정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사례) 돌이켜 생각하면 감동스런 일들이 많습니다. 학교폭력, 성폭력을 당하고, 그 참혹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여학생을 진정어린 상담과 치료로 구해내서 일상으로 복귀시킨 일, 오랜 동안 왕따를 당하고 우울증으로 정신병 약물치료를 받던 학생을, 2년에 걸친 소송으로 결국 학교폭력 피해자로 입증시켜 보상 받도록 한 일, 할머니와 폐지를 줍던 왕따 소녀에게 후원금을 모아 주고, 치료 상담으로 스스로 극복하도록 도와, 대학에 진학시킨 일. 이렇듯, 저희는 눈물어린 수많은 아픔들과 함께 겪으면서 가슴이 쓰라렸고, 그들이 스스로 아픔을 극복하고 일어설 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학교폭력 NGO의 어려움) 한국에서의 대개의 NGO가 그러하지만, 특히 우리 청예단이 하는 학교폭력과의 싸움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학교폭력은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선입관이 민간단체인 저희를 더 어렵게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초까지 ‘학교폭력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는 편견 때문에 정부나 교사도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우리 이름이 ‘학교폭력예방재단’에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으로 바뀐 까닭도, 그렇게 ‘학교폭력’이란 용어 자체도 쓸 수 없도록, 허가를 안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의 실태) 안타깝게도, 학교폭력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가해경험 학생이 70만 명이나 됩니다. 이중 당장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위험군 만도 5만 명이 된다고 추정됩니다. 작년 12월 대구 권군의 자살 사건 이후, 정부가 과거에 비해서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지자체에서는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거부하면서, 가해자의 인권도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로, 학교폭력 해결 노력에 힘을 빼기도 합니다.
(청예단이 해온 일들) 저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교사, 청소년상담관련 전문가, 학부모 등, 연간 60여만 명에게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지난 2004년에는 거리곳곳에서 시민 47만 명의 서명을 받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요청이 있는 학교에는 전문가를 파견하여 컨설팅을 해주고, 피․가해자를 중재시키는 화해중재상담과 치료상담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최첨단 상담기법입니다.
또한 학교폭력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1년 반에 걸친 각고의 노력으로 UN 경제사회이사회에서 특별협의지위를 승인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청예단은 UN에 학교폭력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고 조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3세계 빈곤국가에 ‘어린이 행복도서관’을 지어 줌으로써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 받았던 도움을 민간차원이지만 되갚고 있습니다. 지금 라오스에 시작한 이 활동을 점차 네팔, 몽골 등으로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불광불급(不狂不忣)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미칠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고는, 이 세상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 나이 48살에 검은 머리로 시작해, 지금은 65살의 반백이 되었지만, 저와 우리 직원들은 항상 미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단체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제가 지금까지 이토록 열심히 달려올 수 있었던 힘이랄까, 이유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 죽음이란 극한 선택을 할 정도로 힘들었것을 생각하면, 그 아비로서 죄인인 내가 힘들다는 것 때문에 쉽게 포기하거나 실패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던 아들에 못 다한 한(恨)이자 엄중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둘째, 우리 곁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그들의 아픔과 하소연을 들어주고, 그 힘든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셋째, 우리를 믿고 돕는 헌신적인 봉사자와 후원자들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면, 한마디로 사람과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의 가교 역할입니다. 물질만이 아닌 그 어떤 것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그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로 전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은, 신뢰를 상실한 현대 사회에서 아주 소중한 기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청예단은 정부와 기업이 할 수 없는 그러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과 가치와 자긍심은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힘이며,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해서도, 실패해서도 안 되는 근본 이유입니다.
(소회 & 향후 각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청예단 활동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재원 마련입니다. 오늘 귀 재단에서 주시는 귀한 상금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상금은 사람이 재산인 우리 청예단에서 직원들과 자원활동가들을 교육시키고, 학교폭력 대안학교를 만들기 위한 종자돈으로만 사용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산인 NGO에서 역량 있는 인재를 육성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습니다. 대안학교를 통해서 상처받은 학생들의 영혼과 가해 학생들의 일그러진 마음을,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함께 치유하겠습니다. 이 상금은 단 1원도 헛되이 쓰지 않고 별도 관리하여, 더 높은 가치로 사회에 재창출 할 것을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또한 교단을 포기하고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으십니다. 지방에서는 지방채를 발행할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합니다. 최근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많은 우려가 증가되고 있습니다. 교육이 무너지면 국가의 미래도 무너집니다. 스승정신이 사라져가는 학교에 참 스승이 필요합니다. 불의에 항거하고, 미래를 창조해갈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참 교육자를 발굴해서, 용기를 드리고 세상에 알리는 “참 스승상”의 제정이 필요합니다. 연간 약 8~9억 원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제도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교육 현장에 범시민적 응원을 보내야 합니다. 이 일은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시급한 일입니다.
(마무리 발언) 끝으로 우리 청소년의 문제는 결국 우리 어른들의 자화상입니다. 우리 스스로 가정을 중시하고, 법과 질서를 지키며, 약자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것도, 학교폭력으로 고통 받는 이 땅의 청소년들을 구제하는 것도, 결국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올바른 생활과 청소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합니다. 오늘 이 영광스러운 수상을 통해서 저와 우리 청예단은, 더욱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음을 국민 앞에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상의 영광을 그동안 저희를 믿고 성원해 주신 수많은 회원님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시민들에게 바칩니다. 앞으로도 불광불급의 정신으로,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헌신해서 아산상의 권위를 발전시키고, 이 고마움에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11월 23일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김 종 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