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관찰입니다. 말씀하신 현상은 단순히 "AI라서 싫다"기보다는 인간이 창작물과 맺는 관계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물 자체만 평가하지 않고, 그 뒤에 있는 사람의 노력과 이야기도 함께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노인을 보면, 전단지 내용에 대한 기대와는 별개로 "이분이 추운 날씨에도 서 계시는구나"라는 인간적 인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 가수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담아 만든 노래라고 들으면 노래의 완성도와 별개로 그 삶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반면 AI가 만든 광고나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 누가 만들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 어떤 삶의 경험이 담겼는지 알기 어렵다.
- 실패와 시행착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 너무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결과물이 비슷한 수준이라도 감정적 몰입이 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술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작품의 가치가 결과물에 있는가, 창작 과정에 있는가"라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림 한 장보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 고난, 철학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AI가 만든 것이라도 그 뒤에 인간 창작자의 의도가 보이면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 목회자가 설교 영상을 만들면서 AI를 보조 도구로 사용했다.
- 작곡가가 AI를 활용해 편곡했다.
- 영화감독이 AI 영상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이런 경우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인간의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AI 자체보다도 "인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창작물" 일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노동과 창조의 사명을 맡기셨다고 말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이름을 짓고, 땅을 경작하고, 문화를 형성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의 수고와 헌신에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말씀하신 "스킵이 미안하지 않다"는 느낌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노래를 끄면 가수나 연주자의 노력에 대한 생각이 들 수 있지만, AI가 자동 생성한 광고나 음악은 그런 인간적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미안함 없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AI 생성물이 많아지면서 "대량 생산된 느낌"을 주지만, 오히려 미래에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 더 희소해져서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도 생길 수 있습니다. 마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물건보다 수공예품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과 비슷한 방향입니다. 인간은 단순한 효율성만 추구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와 수고를 함께 소비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