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총이 발명될
질문이 "처음에 총이 발명될 때는 어땠나?"라는 뜻이라면, 현대의 소총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1. 화창(火槍) — 총의 조상
10~12세기 중국에서는 창 끝에 화약통을 달아 불꽃과 쇳조각을 뿜어내는 화창(火槍)이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총알을 쏘는 무기라기보다 불과 파편을 내뿜는 무기에 가까웠습니다.
2. 수포(手砲, Hand Cannon)
13세기경에는 금속관에 화약과 탄환을 넣고 발사하는 수포(手砲)가 등장했습니다.
모양은 지금의 총과 전혀 다릅니다.
개머리판 없음
조준장치 거의 없음
점화구에 불씨를 갖다 대어 발사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3. 매우 위험한 무기
초기 총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위험했습니다.
총열 파열
불발
점화 지연
이 흔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방아쇠를 당겨도 바로 안 나가고 몇 초 뒤에 갑자기 발사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격 후에도 총구를 오래 전방으로 유지하는 습관이 생겼고, 현대 사격장의 안전규칙도 이런 역사와 연결됩니다.
4. 발전 과정
이후
화승총(火繩銃)
수석총(燧石銃)
뇌관식 총
후장식 소총
연발소총
순으로 발전했습니다.
사용자님이 교련과 군 복무 때 사용하신 M1 카빈, M16A1, K2는 이런 수백 년 발전의 결과물입니다.
흥미롭게도 최초의 총을 사용한 병사들은 오늘날 사격장에서처럼 "발을 들어 고장을 알리는" 수준의 안전 체계가 없었습니다. 총 자체가 실험 단계의 기술이었기 때문에, 적보다 자기 총이 먼저 터질까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처음 총이 발명되어 경쟁 무기가 활이였을 것인데 언제부터 총이 활을 압도했나
아, 질문의 핵심은 "총이 등장했을 때는 활과 경쟁했을 텐데, 언제 총이 활을 압도하게 되었는가?"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총이 발명되자마자 활을 압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백 년 동안은 활이 더 우수한 무기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출처 입력
초기 총은 활보다 못한 점이 많았다
13~15세기 초기 총은
명중률이 낮고
재장전이 느리고
비가 오면 사용이 어려우며
불발이 자주 났습니다.
반면 숙련된 궁수는
분당 여러 발 발사 가능
정확도가 높음
별도 화약 불필요
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쟁쿠르 전투에서 영국 장궁병들은 엄청난 위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총이 점점 유리해진 이유
활은 숙련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영국 장궁수는 어릴 때부터 수년~수십 년 훈련해야 했습니다.
반면 총은
몇 주~몇 달 훈련으로도 운용 가능
대량 양성이 쉬움
이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결정적 전환점: 16~17세기
나가시노 전투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 전투에서 화승총 부대가 큰 효과를 보이며 일본에서도 총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유럽에서도 16~17세기에 화승총과 머스킷총이 발전하면서 활보다 군사적 비중이 커졌습니다.
활이 완전히 밀려난 시기
대체로 17세기 말~18세기 초가 되면
유럽 군대
중국 군대
일본 군대
대부분이 총기를 주력 무기로 채택합니다.
총검(銃劍, Bayonet)이 등장한 것도 중요했습니다.
예전에는
총병
창병
이 따로 필요했지만,
총검이 생기면서 총 한 자루로
원거리 사격
근접 전투
를 모두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조선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화기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전쟁 전에는 활의 비중이 컸지만, 전쟁 후에는 조총과 화포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다만 조선의 궁술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활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13~15세기: 활 우세
16세기: 활과 총이 경쟁
17세기: 총이 주력 무기가 됨
18세기 이후: 활은 군대의 주력 무기 지위를 거의 상실
즉 총이 활을 이긴 가장 큰 이유는 처음부터 성능이 압도적이어서가 아니라, 훈련이 쉽고 대량 운용이 가능했으며 기술 발전으로 위력과 신뢰성이 계속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종종 "총이 활을 이긴 것이 아니라, 총을 대량 보급할 수 있는 국가 조직이 활을 이겼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