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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성씨에 대한 '챗돌(지피티)'와 나눈 대화들3(북한은 성씨 본관보다 출신을 더 중요시 여김)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09|조회수21 목록 댓글 0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에도 본관과 족보 개념은 남아 있지만, 남한처럼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1. 본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도 기본적으로는 해방 이전 한반도 사람들의 후손이므로 본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 전주 김씨

  • 경주 김씨

  • 밀양 박씨

  • 전주 이씨

  • 안동 권씨

같은 본관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 중에도 자기 집안의 본관을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그러나 국가가 강조하지 않는다

북한은 건국 이후

  • 문중

  • 종친회

  • 족보

  • 양반 가문

등을 봉건적 잔재로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남한처럼

  • "나는 어느 파 전주 김씨다"

  • "항렬이 몇 대손이다"

  • "종친회 모임에 간다"

같은 문화는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3. 항렬 문화도 많이 약화

남한의 경우 지금도 일부 가문은

  • 형제들이 같은 돌림자 사용

  • 사촌들까지 같은 항렬자 사용

등을 유지합니다.

반면 북한은 국가가 이를 장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항렬 체계가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탈북민들의 증언을 보면:

  • 집안 어른이 정해준 돌림자를 쓰는 경우도 있고

  • 전혀 무관하게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고

  • 혁명적 의미를 담은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지역과 가정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4. 흥미로운 역설

공식적으로는 본관과 문중 문화를 부정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결혼할 때 상대 집안의 배경을 살펴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또 북한에는 성분제도라는 독특한 사회 분류 체계가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 혁명가 집안

  • 노동자 집안

  • 지주 출신 집안

  • 월남자 가족

등의 배경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적 문중 의식은 약화되었지만, 대신 다른 형태의 가계·출신 배경 의식이 형성된 측면이 있습니다.

김씨 일가의 경우

더 흥미로운 것은 북한이 공식적으로는 봉건적 족보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

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은 특별한 정통성으로 강조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북한이 전통적 본관·문중 체계는 약화시켰지만, 대신 김씨 가문 중심의 새로운 정치적 혈통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 북한 주민들도 원래의 본관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

  • 족보와 항렬 문화는 남한보다 훨씬 약하다.

  • 젊은 세대로 갈수록 본관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 그러나 가족 배경과 혈통에 대한 관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북한에는 본관이 없다"가 아니라, "본관은 있지만 남한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가 가장 정확한 설명입니다.

 

탈북민들은 북한과 달리 종친의 세력이 큰 남한에 살면서는 자신의 본관이나 항렬을 신경쓸듯, 특히 남한 출신 배우자면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차이가 꽤 큽니다.

탈북민들이 남한에 정착하면 주민등록, 가족관계 등록, 친족관계 확인 등의 과정에서 자신의 가계와 성씨, 본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결혼, 자녀 출생, 제사 문화, 친척 관계 등을 접하면서 "우리 집안 본관이 무엇이었지?"를 알아보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에서 성장하면서 본관·항렬 문화를 거의 접하지 못했거나, 탈북 과정에서 가족 및 친족과 연락이 끊어진 경우도 많아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남한 출신 배우자와 결혼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 배우자 집안이 족보와 본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

  • 명절이나 제사 때 가계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

  • 자녀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를 사용할지 논의하는 경우

  • 종친회 활동을 접하는 경우

이런 과정에서 본관이나 항렬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남한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속한 세대(1960년대생)에서는 본관, 몇 대손, 항렬 등을 아는 사람이 비교적 많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 자신의 본관은 알아도

  • 몇 대손인지 모르고

  •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이름을 짓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면서 본관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통일이 된다면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성씨와 본관을 가진 사람들이 남북으로 70~80년 이상 떨어져 살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주 김씨, 경주 김씨, 전주 이씨 등의 일부 후손들은 남한에서는 종친회와 족보 문화를 유지했고, 북한에서는 그것이 상당 부분 약화되었습니다. 통일 이후에는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가계와 역사를 다시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 통일 후에도 동서독으로 갈라졌던 친척들이 족보와 가족사를 다시 정리하는 일이 적지 않았는데,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북한에도 동성동본 결혼금지 조항이 있나

현재 북한에 남한의 과거 민법처럼 "동성동본 결혼 금지" 조항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알려진 북한의 가족법과 탈북민 증언들을 종합하면, 북한은 결혼에서 다음과 같은 요소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당성과 정치적 배경

  • 성분(출신 계층)

  • 가족의 정치 이력

  • 군 복무 여부

  • 직업과 사회적 평가

즉, 전통적인 본관이나 문중보다는 정치적·사회적 배경이 더 중요했습니다.

남한의 경우

대한민국은 원래 오랫동안 동성동본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 전주 김씨와 전주 김씨

  • 밀양 박씨와 밀양 박씨

사이의 혼인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사회 변화와 함께 이 제도가 위헌 논란을 겪었고,

  • 1997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 이후 민법이 개정되면서

현재는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이 금지되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자녀, 형제자매 등 가까운 혈족 간 결혼은 여전히 금지됩니다.

북한은 왜 달랐을까?

북한은 건국 이후

  • 문중

  • 종친회

  • 족보

  • 양반 가문 의식

등을 봉건적 잔재로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본관 중심의 혼인 규제는 사회주의 이념과도 잘 맞지 않았습니다.

대신 실제 결혼 상대를 고를 때는

"그 집안에 월남자가 있는가?"

"지주 출신인가?"

"혁명 유가족인가?"

같은 정치적 배경이 훨씬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

북한에서 본관 의식은 약해졌지만 성씨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 김씨와 김씨

  • 박씨와 박씨

간 결혼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남한의 옛날처럼 "전주 김씨끼리는 결혼 못 한다"는 식의 법적 규제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알려진 북한 법률과 사회 관행에는 남한이 과거 시행했던 동성동본 결혼 금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북한은 전통적 혈통보다 정치적 출신 배경과 성분을 훨씬 중요하게 취급해 왔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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