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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사마리아인'의 한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설교: "선한 사마리아인의 한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본문: 누가복음 10:25-37

들어가는 말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 비유를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저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 한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 보려고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게도 한계가 있었을까?"

놀랍게도 이 질문은 우리를 비유의 더 깊은 의미로 인도합니다.


1. 사마리아인은 강도와 싸운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사마리아인이 만난 사람은 이미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들을 물리친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터의 승리자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의 돌봄자였습니다.

만약 강도들이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맞서 싸웠을지,
도망쳤을지,
사람들을 불렀을지,
우리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초인(超人)으로 소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도 두려움을 느끼고 위험을 계산하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2. 선행에도 한계가 있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짐승을 사용했습니다.

여관비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무한한 자원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루 이틀 정도의 비용을 지불했지만 평생 책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냈던 돈도 언젠가는 바닥날 수 있었습니다.

즉 사마리아인의 사랑은 위대하지만 무한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한계를 가집니다.

부모의 사랑도,
목회자의 사랑도,
교회의 사랑도,
친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3. 사마리아인도 상처받을 수 있다

만약 그가 여러 번 도움을 베풀었는데 배신을 당했다면?

만약 자신이 강도를 만났다면?

만약 자신이 상처 입어 길가에 쓰러졌다면?

그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언제나 돕는 자가 아닙니다.

어떤 날은 도움을 받는 자가 됩니다.

어떤 날은 구조자가 됩니다.

어떤 날은 구조받아야 할 사람이 됩니다.


4.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단지

"착하게 살아라"

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은 사마리아인처럼 살려고 노력하지만 늘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피곤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사마리아인이지만,
내일은 강도 만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사마리아인을 찾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여관비 이틀 치를 내신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상처를 치료한 정도가 아니라 죽은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인간의 사랑이 멈추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됩니다.


결론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해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도 인간입니다.

그에게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나는 언제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

가 아니라,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본받되,
결국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는 고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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