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오늘날의 신사는 돈인가, 하나님인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남산의 조선신궁을 떠올린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그곳을 향해 올라가야 했다.
어떤 이는 타협했고 어떤 이는 저항했다.
그러나 신사참배의 본질은 건물에 있지 않았다.
본질은 충성의 문제였다.
누구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성경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의 신사를 보여 준다.
엘리야 시대에는 바알이었다.
다니엘 시대에는 금신상이었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탄이 보여 준 세상 만국의 영광이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신사는 존재한다.
다만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다.
오늘날의 신사는 돈일 수 있다.
성공일 수 있다.
명예일 수 있다.
권력일 수 있다.
심지어 종교적 성공이나 교회 성장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우상을 목각상이나 돌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우상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는 모든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우상이다.
사탄은 예수님께 세상 영광을 제안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왜냐하면 경배는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영성도 여기에 있다.
엘리야의 칠천인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신앙의 선배들은 천황숭배를 거절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 영광 앞에 무릎 꿇지 않으셨다.
이것이 칠천인의 영성이다.
순교를 사랑하는 영성이 아니다.
고난을 추구하는 영성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영성이다.
필요하다면 순교까지도 각오하는 영성이다.
오늘의 교회는 숫자보다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만 무릎 꿇는 사람.
세상이 주는 영광보다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는 사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고백하는 사람.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칠천인을 찾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