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으로 가장의 의무를 가지게 되면 의의 삶은 고사하고 가장의 의무를 핑계로 불의와 타협?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07|조회수12 목록 댓글 0

 

의의 삶을 산다는 것은 미혼일때도 힘들지만 기혼으로 가장의 의무를 가지게 되면 의의 삶은 고사하고 가장의 의무를 핑계로 불의와 타협하기도?

 

그 문제는 마태복음 의 “의”를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매우 실제적인 고민입니다. 특히 가장(家長)의 책임은 사람을 쉽게 타협의 유혹 앞으로 몰아갑니다.

예를 들면:

  • 가족 생계를 이유로 한 거짓,

  • 조직 부조리에 대한 침묵,

  • 불공정 거래 묵인,

  • 권력 눈치 보기,

  • 신앙 양심보다 현실 안정 우선

같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의로운 삶은 단순 개인 윤리 문제가 아니라 “대가를 치르는 삶”으로 자주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 은 미혼 금욕적 삶이었고,

예수 도 공생애 동안 가족 생계 책임을 지는 가장의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반면 성경은 기혼자들의 현실적 갈등도 숨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 아브라함 이 가족 보호 명분으로 거짓말하고,

  • 다윗 은 왕권과 가정 문제 속에서 죄를 범하고,

  • 베드로 는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즉 성경은 인간이 책임과 두려움 속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매우 현실적으로 기록합니다.

동시에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가족 책임” 자체보다,

그 책임을 명분 삼아 양심 전체를 포기하는 상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은:

  • 재물,

  • 생존 불안,

  • 사회적 인정

  • 이 하나님보다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반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가족 돌보지 말고 이상적으로만 살라”

는 뜻으로 읽으면 성경 전체와도 충돌합니다.

바울 도 가족 돌봄 책임을 중요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는:

  • 가족 책임

  • 의와 양심

  • 사이의 긴장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결국 핵심은:

“현실 책임 속에서도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가”

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시험이:

  • 가난 자체보다,

  • 가족을 위한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복의 “의”가 어려운 이유도, 그것이 수도원 속 추상 개념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의 압박 속에서 시험받는 의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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