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삶을 산다는 것은 미혼일때도 힘들지만 기혼으로 가장의 의무를 가지게 되면 의의 삶은 고사하고 가장의 의무를 핑계로 불의와 타협하기도?
그 문제는 마태복음 의 “의”를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매우 실제적인 고민입니다. 특히 가장(家長)의 책임은 사람을 쉽게 타협의 유혹 앞으로 몰아갑니다.
예를 들면:
가족 생계를 이유로 한 거짓,
조직 부조리에 대한 침묵,
불공정 거래 묵인,
권력 눈치 보기,
신앙 양심보다 현실 안정 우선
같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의로운 삶은 단순 개인 윤리 문제가 아니라 “대가를 치르는 삶”으로 자주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 은 미혼 금욕적 삶이었고,
예수 도 공생애 동안 가족 생계 책임을 지는 가장의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반면 성경은 기혼자들의 현실적 갈등도 숨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 이 가족 보호 명분으로 거짓말하고,
다윗 은 왕권과 가정 문제 속에서 죄를 범하고,
베드로 는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즉 성경은 인간이 책임과 두려움 속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매우 현실적으로 기록합니다.
동시에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가족 책임” 자체보다,
그 책임을 명분 삼아 양심 전체를 포기하는 상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은:
재물,
생존 불안,
사회적 인정
이 하나님보다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반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가족 돌보지 말고 이상적으로만 살라”
는 뜻으로 읽으면 성경 전체와도 충돌합니다.
바울 도 가족 돌봄 책임을 중요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는:
가족 책임
과
의와 양심
사이의 긴장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결국 핵심은:
“현실 책임 속에서도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가”
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시험이:
가난 자체보다,
가족을 위한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복의 “의”가 어려운 이유도, 그것이 수도원 속 추상 개념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의 압박 속에서 시험받는 의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