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나라가 분열된 뒤 상당 기간 긴장과 전쟁을 반복했습니다.
분열의 시작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왕국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 남유다: 르호보암
-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1세
처음부터 양측은 서로를 정통 국가로 여겼기 때문에 갈등이 심했습니다.
분열 직후의 전쟁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열왕기상 14:30)
또한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 전쟁이 있으니라"
(열왕기상 15:7)
남유다의 아사 때에도 북이스라엘의 바아사 와 충돌했습니다.
항상 전쟁만 한 것은 아님
흥미로운 점은 두 나라가 항상 싸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 남유다의 여호사밧
- 북이스라엘의 아합
시기에는 혼인 동맹도 맺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공동으로 아람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아하스 시대의 특수성
그런데 이사야 7장의 배경인 아하스 시대에는 상황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 베가 와 아람 왕 르신 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공격했습니다.
그 목적은 단순한 침공이 아니라,
- 아하스를 폐위시키고
- 자신들이 원하는 꼭두각시 왕(다브엘의 아들)을 세우려는 것
이었습니다(이사야 7:6).
즉,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 국가인 북이스라엘이 외국인 아람과 손잡고 남유다 왕조를 무너뜨리려 했던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흥미롭게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원래 한 나라였습니다.
- 같은 조상: 아브라함
- 같은 조상: 이삭
- 같은 조상: 야곱
- 같은 율법
- 같은 성경
그런데 정치적 분열과 영적 타락이 계속되면서 형제 국가가 원수처럼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7장은 단순히 국제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형제가 형제를 공격하는 비극"이라는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하스 시대에는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를 공격했지만, 불과 수십 년 뒤에는 북이스라엘 자체가 아시리아 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이사야 7장은 남유다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북이스라엘 멸망 직전의 시대상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