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절에 하나님께서는 왜 이사야와 함께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동행케 해서 아하스왕을 만나게 했을까, 특별히 스알야숩의 말이나 행동이 드러나지도 않는데
매우 중요한 관찰입니다.
이사야 7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은 단순히 이사야만 보내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스알야숩도 함께 데려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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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본문 어디에도 스알야숩이 말을 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스알야숩의 존재 자체가 메시지라고 봅니다.
스알야숩이라는 이름의 의미
스알야숩(שְׁאָר יָשׁוּב)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남은 자가 회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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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입니다.
이사야의 자녀들은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산 표적" 역할을 합니다.
후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 의 이름도 예언 자체입니다.
이사야는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사야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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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하나님은 이사야의 자녀들까지 예언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아하스에게 주는 첫 번째 메시지
아하스는 지금
아람
북이스라엘
연합군 때문에 나라가 끝날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 옆에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를 세워 두십니다.
이는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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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암시입니다.
나라가 큰 징계를 받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완전히 끊어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하스에게 주는 두 번째 메시지
이 이름은 동시에 경고이기도 합니다.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많은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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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도 포함합니다.
만약 모두가 안전하다면 굳이 "남은 자"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스알야숩의 이름은
소망의 메시지
심판의 경고
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왜 하필 아이를 데려왔을까?
아하스는 왕입니다.
그는 군사력과 외교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장군이나 대신이 아니라 한 어린아이를 그의 앞에 세우십니다.
이는 인간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는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네가 보는 것은 연합군이지만, 내가 보는 것은 남은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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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 6장과 연결해서 보면
흥미롭게도 이사야는 바로 앞장인 이사야 6장에서 유다의 완고함과 심판을 예언받았습니다.
그때 이사야가 묻습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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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라가 황폐해질 것을 말씀하시면서도 마지막에
"그루터기"
"거룩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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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남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알야숩은 바로 그 약속의 살아 있는 표지판입니다.
즉,
이사야 6장의 "남은 자 사상"
이사야 7장의 "스알야숩"
은 서로 연결됩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아하스는 눈앞의 적군만 보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의 곁에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세워 두셨습니다. 그래서 스알야숩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그의 이름 자체가 하나님께서 유다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설교가 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는 훗날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사야서의 중요한 주제인 "남은 자(Remnant)" 신학의 첫 등장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