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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에서 아하스 왕이 징조를 구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거부?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13|조회수16 목록 댓글 0

아하스의 말만 보면 매우 경건하게 들립니다.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사 7:12)

아마 아하스는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그래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곧바로 이 태도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사 7:13)

이것이 핵심입니다.

왜 아하스의 말이 문제였을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 자체는 맞습니다.

문제는 상황입니다.

여기서는 아하스가 먼저 표적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징조를 구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징조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였습니다.

예를 들어,

왕이 신하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

고 했는데,

신하가

"왕을 시험할 수 없으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 겸손해 보이지만 사실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아하스의 말을 "경건한 말로 포장된 불신앙" 으로 봅니다.

이미 아하스는 다른 길을 선택해 놓았습니다.

열왕기하 16장을 보면 아하스는

  • 성전의 금과 은을 꺼내고
  • 아시리아 왕에게 보내며
  • 군사 지원을 요청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까?"

를 고민하는 단계가 아니라

"나는 이미 앗수르를 의지하기로 했다."

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징조를 받으면 오히려 곤란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놀라운 표적을 보여 주시면 자신의 선택을 재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아하스는 기드온과 대조됩니다.

  • 기드온: "믿고 싶지만 두렵습니다.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 아하스: "이미 다른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표적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하스가 징조를 거절했음에도

"주께서 친히 징조를 주실 것이다."

라고 하시며 임마누엘의 징조를 선언하십니다.

결국 아하스의 문제는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정치적·군사적 해결책을 더 신뢰하면서도 그것을 경건한 말로 감추려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말 뒤에 있는 마음을 보시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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