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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8장이 기록될때는 아직 아하스왕이 이방제단을 성전에 세우기 전이라 제사장 '우리야'를 진실한 증인이라고 표현?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23|조회수7 목록 댓글 0

그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연대기를 따져 보면 이사야 7~8장의 사건은 아하스 왕 초기에 일어난 아람-에브라임 전쟁(시리아-북이스라엘 동맹의 침공) 시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 열왕기하 16장의 이방 제단 사건은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를 만나기 위해 다메섹에 갔다가 그 제단을 보고 본떠 만들게 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시간 순서상으로는:

  1.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공격
  2. 이사야 7~8장의 임마누엘 예언
  3. 아하스가 앗수르에 도움 요청
  4. 다메섹 방문
  5. 제사장 우리야가 이방식 제단 제작

의 순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8장에서 우리야가 증인으로 등장할 당시에는 아직 열왕기하 16장의 불명예스러운 행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사야 8장 2절의 "진실한 증인"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우리야는 매우 경건하고 신실한 제사장이다"

라는 의미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자체의 관심은 우리야의 인격 평가가 아니라 예언 문서의 공적 증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날 어떤 사람이 나중에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특정 계약서에 증인으로 서명할 당시에는 법적 증인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해석은 크게 두 가지가 가능합니다.

첫 번째 견해

우리야는 이미 알려진 대제사장이었고, "진실한 증인"은 그의 공적 신뢰성을 가리킨다.

두 번째 견해

이사야 8장의 시점에서는 아직 이방 제단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므로, 우리야가 아직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두 견해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당시에는 공신력 있는 제사장이었고, 이후 아하스의 잘못된 종교 정책에 협력하게 되었다"

고 이해합니다.

성경에서도 어떤 인물이 한 시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등장하다가 후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솔로몬도 젊은 시절에는 지혜로운 왕으로 칭찬받지만 말년에는 우상숭배에 빠졌고, 베드로도 신앙고백 직후 예수님께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사용자의 추측처럼 "이사야 8장의 시점은 아직 우리야가 이방 제단 사건에 연루되기 전이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한 설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히려 시간 순서를 고려하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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