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보이는 것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 눈앞의 왕
- 직장의 상사
- 군대
- 경찰
- 여론
- 경제적 어려움
- 질병
이런 것들은 당장 피부로 느껴집니다.
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시대에도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앞에 있는 앗수르 군대를 더 두려워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런 수준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엘리야도 갈멜산에서는 담대했지만, 이세벨의 위협 한마디에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도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다윗도 수많은 시편에서 두려움과 믿음 사이를 오갑니다.
성경은 이들을 초인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서가 모세를 설명할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히브리서 11:27)
이 구절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실제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현실보다 더 실제적으로 여기는 믿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단순히 용기를 내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더 실제적인 현실로 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하스에게 가장 실제적인 현실은 앗수르였습니다.
이사야에게 가장 실제적인 현실은 만군의 여호와였습니다.
둘 다 같은 시대, 같은 사건을 보았지만 해석이 달랐습니다.
목회적으로 묵상하면, 이사야 8장 17절의 말이 더욱 깊게 다가옵니다.
"나는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이사야도 앗수르 군대가 안 보였던 것이 아닙니다.
그도 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때로
"두려움이 없는 상태"
라기보다,
"두려움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더 크게 여기는 상태"
에 가깝습니다.
성경의 신앙인들은 대개 처음부터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하나님 경외를 두려움의 최상위 자리에 두려고 애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용자가 말씀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사람보다 더 두려워하는 영적 수준"은 성경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의 믿음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한 번에 생기기보다, 이사야처럼 말씀을 붙들고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자라나는 경우가 많습니다.